“Can't take my eyes off you.” 한 줄 가사로도 가슴이 쿵 내려앉는 이 곡은 사랑의 시작을 알리는 세레나데로도, 이별의 뒷모습을 비추는 배경음으로도 무척 자주 쓰입니다. 프랭크 발리(Frankie Valli)의 1967년 원곡이 빌보드 2위에 오르며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은 이후, 수많은 가수가 이 곡을 다시 불렀죠. 그중에서도 가장 이질적이고 특별한 버전을 고르라면 나는 단연 Morten Harket의 해석을 떠올립니다. 노르웨이 출신 밴드 a-ha의 보컬로 잘 알려진 Morten Harket은 1993년 솔로 앨범 'Poetenes Evangelium'을 발표한 후 1995년 ‘Can't Take My Eyes Off You’를 수록한 Wild Seed 앨범으로 대중 앞에 다시 섭니다. 원곡의 활기찬 리듬과 브라스 섹션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대신 전반부는 무중력 상태의 피아노와 그의 투명한 파르세토만이 공간을 메우죠. 따라서 Harket의 그것은 단순한 커버가 아니라 한 편의 시처럼 다시 쓴 노래였습니다. 더구나 곡이 절정으로 다가가면서도 끝내 폭발하지 않는 그의 표현 방식은 듣는 이의 마음을 더 오래 붙잡아 두는데요, '보이지
"My Sharona"는 누가 들어도 잊기 힘든 기타 리프를 가진 곡입니다. 1979년, 펑크가 지나가고 뉴웨이브가 고개를 들 무렵 갑자기 튀어나온 이 곡은 당시 미국 청춘들의 턴테이블을 지배했었죠. 한국에서도 그 도입부 베이스 리프는 누구나 어디선가 한 번쯤은 들어봤을 법합니다. 이 곡을 부른 'The Knack'은 1978년 미국 LA에서 결성된 파워팝 밴드입니다. 활동 초창기부터 비틀즈와 비교될 만큼 주목을 받았지만, 대중의 관심은 거의 이 곡 하나에 쏠려 있죠. 데뷔 앨범 'Get the Knack'에 수록된 이 노래는 발표되자마자 빌보드 싱글 차트 6주 연속 1위를 기록하며 대히트를 쳤고, 이후 ‘역사상 가장 성공한 데뷔 싱글’ 중 하나로 남게 됩니다. 당시 Berton Averre가 리드기타를, Bruce Gary가 드럼을, Prescott Niles가 베이스를 그리고 Doug Fieger가 보컬과 리듬기타를 맡았었죠. 곡의 탄생 배경도 꽤 흥미롭습니다. 피거는 당시 17살이던 Sharona Alperin이라는 소녀에게 한눈에 반했고, 몇 달간의 구애 끝에 결국 이 곡을 헌정하게 됩니다. LA에서 부동산 중개인으로 활동 중인 샤로나는 지금도 자신의
살아가는 일이 점점 낯설어집니다. 지난 시간을 돌아보면 내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아득해집니다. 아버지 처럼 살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젊을 땐 미처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가끔씩 그분 앞에서 버릇없거나 오만해지기도 했습니다. 지금에사 돌아보면, 퇴근해 돌아와 식구들과 둘러앉아 저녁를 먹고,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TV를 보다가 깜빡 잠에 빠지고, 아침이면 다시 서둘러 출근하는, 권태로울 틈 없는 일상마저 의미로운데 말이죠. 나로선 내 안에 그런 시간을 꾸릴 자신이 없어집니다. 갈수록 일이 손끝에서 비켜나고 관계도 모호해져, 아들의 눈빛에서 까닭없는 불안을 읽은 날은 무슨 증상처럼 두근두근 가슴이 뛰기 시작합니다. 나이에 대해서도 마찬가집니다. 언제부턴가 운동 후 스멀스멀 피어나는 땀냄새를 느낄 때마다 자리가 불편해집니다. 누구를 해치자고 쓴 시간이 아님에도 지나온 시간들이 다시 나를 겨눕니다. 그럴 땐 그저 나를 반성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 말아야 할 것과 해야 할 것을 가리지 못한 잘못 말입니다. 그때 난 왜 바보같이 그걸 꼭 해야 한다고 믿었을까요? Scorpions는 독일 하노버가 고향인 루돌프 생커와 마이클 생커 형제가 주축이 돼 1965년에
몇년전 '치과가 싸이에게 배워야 할 교훈 5가지'라는 제목의 기사에 삽입한 동영상이 바로 Postmodern Jukebox(PMJ)가 1920년 게츠비 스타일로 편곡해 발표한 싸이의 '젠틀맨'이었다. 이 포스트모던 쥬크박스는 편곡과 피아노을 맡고 있는 Scott Bradlee가 동네 친구들과 자기 집 거실에서 연주하는 장면을 유튜브에 올리기 시작하면서 유명해졌다. 1930년대 빈티지 스타일의 노래들이 독특하고 흥겨운 편곡과 함께 인기를 끌면서 본격적인 커버밴드로 활동하게 됐다. Scott Bradlee가 piano를, Adam Kubota가 bass를, Chip Thomas가 drums를 맡고 있고 보컬과 세션을 노래에 맞게 초빙해 함께 작업하는데, 이 밴드의 보컬로는 '젠틀맨' 'Careless Whisper' 등을 부른 Robyn Adele Anderson과 'Creep'의 Haley Reinhart가 특히 대중들의 인기를 얻고 있다.유튜브의 정책이 바뀌면서 다른 사이트에서 동영상을 감상하기가 다소 불편해지긴 했지만, 좋은 음악을 위해서라면 충분히 감수할만하다고 본다. 아래에 그룹 웸의 'Careless Whisper'와 레디오헤드의 'Creep'를 Po
지난 12일 LA 스테이플스센터에서 열린 제59회 그래미상 시상식은 영국 가수 아델(Adele)을 위한 잔치였습니다. 미국 가수 비욘세와 경합을 벌일 것이라던 당초의 예상과는 달리 아델은 올해의 노래, 올해의 음반, 올해의 녹음상에 '최고 팝 솔로 퍼포먼스상'과 '베스트 팝 보컬 음반상'까지 휩쓸면서 당당히 5관왕에 올랐습니다. 2015년 연말에 발표한 음반 '25'가 크게 히트를 친 덕분이죠. 이 음반은 발매 첫주에 340만장이나 팔려 나갔고, 수록곡 'Hello'는 유튜브 10억뷰를 넘기는데 겨우 87일 밖에 걸리지 않았다는군요. 커버 영상이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한국 여고생이 동급생의 피아노 반주에 맞춰 부른 Hello 커버영상은 유튜브 조회수 1,900만을 넘겼고, 이 여고생은 덕분에 미국의 인기 TV프로 'The Ellen Show'에 출연하기까지 했습니다.이 노래를 사람들은 왜 그렇게 좋아하는 걸까요. 백인 여가수답지 않은 아델의 짙은 soul 창법이 노랫말과 잘 어우러진 때문일 겁니다. 'Hello'에서 아델은 받지 않는 옛 애인의 전화에 대고 마치 상대가 듣고 있는듯 길게 얘기를 이어갑니다. 가사는 이렇게 시작하죠.여보세요, 나에요.몇년이
가수 밥 딜런이 노벨문학상을 탔다는 소식은 무척이나 놀라웠습니다. 그에게 그만한 자격이 없다는 말이 아니라 전 세계 내노라하는 문인들조차 노미네이트 되는 것만으로도 화제를 삼을 만큼 권위를 인정받는 상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 고은 시인은 몇년째 단골 후보지만 아직까지 이 상의 주인은 되지 못했습니다. 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 역시 전 세계에 수많은 독자들을 두고 있지만 이 상을 타지는 못했습니다. 그런데 대중가수가 이 상을 타다니요. 노벨 문학상은 지금까지 소설가들이 많이 받았습니다. 한 편의 소설이 갖는 감화력 또는 '스토리의 힘'을 인정한 때문일 겁니다. 그렇다면 노래는 어떨까요? 가령 가수 송창식의 '고래사냥'이 한국사회에 끼친 문학적 정서적 영향이 다른 한편의 시, 한편의 소설보다 못하다고 단정할 수 있을까요? 아마 노벨상위원회는 이런 점을 고려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문학이 어차피 대중에게 정신적인 무언가를 전이하는 수단이라면 좋은 노래 좋은 가사도 충분히 그런 역할을 담당할 수 있다고 본 거겠죠. How many times must a man look up Before he can see sky? Yes, 'n how many ears mus
비가 내렸다 그치기를 반복하는 전형적인 여름입니다. 그동안 잘 지내셨는지요? 녹쓴퍄노 님의 뉴에이지에 이 난을 맡기고 한 일년 잘 쉰듯 합니다. 즐거우셨으리라 믿습니다. 음악도 음악이지만 녹쓴퍄노 님의 정성이 대단했거든요. 마치 전도사라도 된 양 독자님들께 작은 느낌 한올까지 전달하기 위해 긴 칼럼을 마다 않았고, 사진 한 장인들 직접 찍어 사용했습니다. 저 같으면 어림도 없을 얘깁니다. 일단 곡이나 뮤지션에 대해 그렇게 집중적으로 들려드릴 '꺼리'도 없을 뿐더러 늘 쓰는 일에 치여 긴~ 칼럼을 견디지 못합니다. 그러다 보니 미진했으리란 반성이 남습니다만, 그럼에도 '뭔가 있는 듯' 여운을 남기는 데는 오히려 유리한 측면도 있습니다.녹쓴퍄노 님은 그런 '은근슬쩍'없이 꽉 채운 칼럼 8편을 남겼습니다. 제가 뉴에이지란 음악을 접하게 된 것도, 이루마, 박종훈, 프라하 같은 천재적인 뮤지션들의 이름이나마 듣게 된 것도 녹쓴퍄노 님의 이 칼럼을 통해서 였습니다. 그래서.., 이 분이'오늘의 뉴에이지'를 계속 꾸릴 수 있었더라면 좋았을 테지만, 너무 바빠진 나머지 부득이 덴틴 독자님 곁을 떠나게 됐습니다. 남겨진 8편의 칼럼을 보듯 좋은 기억으로 녹쓴퍄노 님을 보내
2003년 5월, 오늘을 예고라도하듯 신선한 이름의 음반이 발매되었습니다. 마이스터(Meister)라는 이름의 Prayer 음반이 뉴에이지 틈새 시장에서 조용히 얼굴을 내밀었던 것입니다. 단골 레코드샵에서 열 손가락에 먼지 묻혀가며 발견한 마이스터 음반은 첫 만남부터 설레임이었습니다.20대 젊은 청년 구성원들의 열정의 결과물이라 할 수 있는 Prayer 음반에서 깨알만한 글씨 하나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Music Composed Arranged by LEE JI SOO..." 그렇게 지수 앓이는 시작되었던것 같습니다. 뉴에이지와 탱고와 재즈와 클래식등 장르를 넘나들며 자유자재로 편곡한 Paryer 음반은 선택권이 다양하지 않던 그 시절에 고민하지 않고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기쁨을 줬던 몇 안되는 음반 중 하나였습니다. SBS드라마 ‘천년지애’에 삽입되었던 기억의 가사처럼 ‘너무나 많은 시간을 함께 했었기에 그 큰 빈자리를 채울 수 없어 애타게 기다리는...“ 여심과 같은 음반이라고나 할까요. 참 많은 시간을 위로 받았던 음반이었습니다.그리고 2005년 1월 음반 쇼핑몰 신보 아이콘에서 발견한 익숙한 이름 이지수.. “처음”이 아니면서 처음 같은 수줍은 고
“국내 최초의 여성 뉴에이지 뮤지션! 메이세컨 maysecond ”이라는 타이틀을 걸고 첫 데뷔 음반이 발매 되었을 당시, 국내에서 뉴에이지 음악을 작곡하고 연주하는이는 그리 흔치 않았습니다. 이루마 외에 이렇다할 뮤지션이 없었을뿐더러 뉴에이지 음악에 대한 대중의 인식이 그리 너그럽지 못한것도 한 몫 했습니다. 그 즈음에 출현한 메이세컨이라는 이름의 다소 이질적인 뮤지션의 등장은 그리하여 신선함 그 자체였습니다. 피아노를 선물 받은 날이자 그녀의 생일인 5월 2일을 의미하는 동명 타이틀로 내세운 데뷔 음반 [May Second(2003년)]은 음악으로 듣는 시집이라 해도 될 것 같습니다. 그녀의 음악을 듣는다는 것은 가슴 밑 바닥까지 들쳐진 자아를 느끼게 합니다.고독이면서 숱한 인내심으로 살아가는 날들에 대한 위로이면서 영혼을 훔쳐 저당잡힌 듯 깊고 아늑한 심연으로 빠져들게 합니다. 그리하여 살아갈 이유를 찾는 과정을 음악 안에서 발견할 수 있었던 음반이기도 합니다.2년 후에 발매된 2집 [Blue Marble(2005)]이 발매될 즈음엔 하나 둘 두각을 나타내는 뉴에이지 뮤지션이 점차 출연했습니다. 국내 뉴에이지 음악의 태동을 거쳐 봄 아지랑이 피어오르듯
탱고의 본고장 아르헨티나에서 아스트로 피아졸라의 미망인 라우라 에스칼라다(Laura Escalada)를 감동시킨 한국인 뮤지션 듀오 오리엔탱고의 음반과의 인연은 지금으로부터 1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피아노 솔로 음반에 열광했던 당시에 듀오 오리엔탱고의 음반은 듣는다는것에 대한 즐거움의 가치를 바꿔 놓은 음반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퇴근 후에 습관처럼 들렸던 레코드샵에서 손가락 끝에 먼지 묻혀가며 뒤척거린 음반들 틈새에서 이들의 음반을 발견했던 날의 감동은 잊을 수 없습니다. 당시 자신만의 독창적인 아르헨티나 탱고의 역사를 썼던 아스트로 피아졸라의 누에보 탱고와 몇 년 전 소치 올림픽 피겨스케이팅 프리 프로그램 곡으로 김연아가 연기하면서 대중적으로 더 친숙해진 아디오스 노니노와 리베르 탱고를 비롯한 몇 몇 곡의 탱고 음악에 심취해 있던 터라 감동의 크기가 컸던 것 같습니다. 아르헨티나로 이민 갔던 피아니스트 정진희와 바이올린의 성경선의 만남은 탱고 음악에 한국적인 정서를 담은 새로운 탱고 음악의 역사를 썼다 할 수 있습니다. 두 사람의 인연은 아스트로 피아졸라가 그러했던것처럼 탱고라는 음악에 독창적인 그들만의 감성을 담아 그 누구도 모방하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