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을 쓴다는건 아무나 하는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이것저것 고민할게 많다보니 정작 글은 못쓰고 애꿎은 시간만 낭비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6월이 가기전에 한 편은 올려야 하지 않을까 하는 조급함으로 네모난 페이지를 열었습니다. 음악을 만들고 연주하고 녹음 하는 것...세상의 그 무엇보다도 행복한 일들이다.첫 멜로디가 떠올라 오선지를 펼칠 때의 기분.마치 사춘기의 소년이 처음으로 사랑편지를 쓰려는 느낌과도 비슷하다.- 센티멘탈리즘 북클릿 내용 중 -이태리에서 활동했던 클래식 피아니스트 박종훈과의 인연은 그의 두 번째 음반 센티멘탈리즘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국내 뉴에이지 뮤지션으로 활동하던 이루마, 데이드림, 안단테, 메이세컨등 몇몇을 제외하곤 이렇다할 뮤지션이 없는 상황에서 사춘기의 설레임으로 곡을 쓴다는 그의 고백이 참 신선했던 것 같습니다. 아니그 글이 아니라 이태리의 낭만과 향취를 그대로 오선지에 옮겨서 들려주는, 센티멘탈리즘의 진수를 드러낸 그의 감성이 신선했습니다. 박종훈의 감성을 처음 접했던 그 날의 떨림은 오늘날까지도 가슴 한 켠을 설레게 합니다. 'Chong Park'이라는 일명 종박으로 음반을 발매했을 당시 그의 존재는 베일에 쌓여 있었습
옛말에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떠들썩한 소문이나 기대에 비해 실속이 없을 때 그런 비유를 들어서 말하곤 하는데요? 뉴에이지 음악을 소개하겠다고 큰소리 쳐 놓고 차일피일 미루다 보니 계획했던바와 다르게 늦장 부리게 되었습니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먹고 사는 일이 우선이다보니 늦어졌습니다만,좀 더 부지런히 좋은 정보를 공유하도록 노력하겠다는 각오와 함께지면을 빌어 송구한 마음을 먼저 전합니다.많은 뉴에이지 음악과 뮤지션 가운데 어떤 음악을, 어떤 뮤지션을 먼저 소개 해야 할까 적잖은 고민을 했습니다. 뉴에이지의 역사와 함께한 올드한 아티스트를? 가장 최근에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는 아티스트를?아니면 국외 뮤지션? 국내 뮤지션? 이것 저것 참 많은 고민을 했던것 같습니다.결국 시간만 허비하고 애당초 계획했던대로 국내 뉴에이지 뮤지션을 먼저 소개하는것이 바람직하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별다른 이유는 없습니다. 우리의 정서와 문화가 무엇보다 소중한 까닭입니다. 그렇다고 특별히 애국심이 뛰어난것은 아니고 그저가장 한국적인것이 가장 세계적이다라는 말처럼 우리의 문화가 세계의 문화를 지배하게 될것이라는 다소 소녀틱한 발상으로이루마의 음악을 소개하고자
눈을 뜨면 유리 창문으로 들어오는 아침 햇살이 싱그러운 날이 계속 되고 있습니다. 며칠 촉촉한 비가 내린 대지에 적당히 내리쬐는 햇살은 봄을 살아가는 만물에겐 자연이 주는 귀한 선물임에는 틀림이 없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신선한 봄의 기운이 한창인 즈음에 뉴에이지(New age)라는 장르의 음악을 빌어 소통할 수는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것이 더 없이 기쁩니다. 반면 마음 한 켠에는 걱정 반, 설레임 반,.. 불분명한 감정들이 복잡 미묘하게 얽혀 혹여 민폐가 되지 않을까하는 염려가 앞서기도 합니다.. 필자가 뉴에이지(New age)라는 장르의 음악과 함께한 시간은 오래되었으나, 덴틴의 “오늘의 뉴에이지”에 기고를 한다는 것은 얇은 지식으로 블로그에 뉴에이지 음반을 소개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기에 설레임보다는 걱정이 더 앞섭니다. 그러나, 남아일언 중천금(男兒一言重千金)이요, 여아일언 수시변동(女兒一言隨時變動)이라는 우스개 소리를 떠올리며 조심스럽게 용기를 내봅니다.오늘을 사는 우리가 하루를 살아간다는 것, 마냥 즐거울 수 만도 기쁠 수 만도 없는 삶에 음악은 작은 위로이면서 기쁨이 될 수 있다는 희망으로 새로운 시대 정신에 의해 탄생된, 세상의 모든 소리를 아우
완연한 봄입니다. 거리마다 벗꽃이 만개했습니다. 아파트를 들어서는 기분이 그래서 조금은 나아졌습니다. 보름전만 해도 웬지 모르게 우중충했거든요. 때 맞춰 대청소를 한번 해야 할 것도 같습니다. 사무실도, 제 머리속도 그리고 이 웹페이지도..오늘은 그래서 여성 보컬들의 노래를 몇곡 준비했습니다. 봄과 여성이 무슨 관계냐고요? 글쎄요.. 그걸 꼭 찝어서 말하긴 뭣해도.., 어쩐지 그래야 할 것 같지 않나요? 순서대로 Carole King 'You've got a friend', Heart 'Crazy on you', Fleetwood Mac 'Rhiannon', Blondie 'Heart of glass' 입니다. 캐롤 킹의 You've got a friend는 언제 들어도 마음이 훈훈합니다. 그룹 하트의 앤 윌슨(보컬), 낸시 윌슨(보컬, 기타) 자매는 70년대 팝계를 주름잡은 여장부들입니다. 플리트우드맥의 스티비 닉스는 70년대 중반 모든 남성들의 로망이었습니다. 그녀가 합류하고 내놓은 앨범 '플리트우드맥'과 '루머스'는 공전의 히트를 치면서 볼품없던 블루스 밴드를 일약 세계적인 락밴드로 변모시켰죠.블론디의 데보라 해리는.., 더 말해 뭣하겠습니까. 노래부터
이 코너를 맡기로 한 녹슨퍄노님은 아직 준비가 더 필요한 것 같습니다. 누구에게나 처음은 쉽지 않은 법입니다. 다년간 뉴에이지 분야 인기 블로거로 활동해온 그임에도 전문매체에 고정칼럼을 갖는다는 건 또 다른 부담인가 봅니다. 녹슨퍄뇨님은 4월 개편에 맞춰 더욱 신선하게 만나 뵙도록 하고, 그동안 막간을 이용해 제가 올드팝을 몇곡 더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지난번 Cranberries의 Dreams를 소개하자 독자 한 분이 'Zombie'를 언급하지 않은 데 대해 서운해 하셨습니다. 이 분 말씀으론 크랜베리스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곡이 '잠비'라는 거죠. 그렇고 말고요. 1994년에 발표한 2집 앨범 'No need to Argue'에 들어 있는 이 곡 Zombie는 발매되자마자 유럽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단숨에 수백만장의 음반을 팔아치웠다고 합니다. 한때 TV 오디션 프로그램의 단골 레퍼토리이기도 했고요. 아일랜드 출신 4인조 밴드인 크랜베리스의 매력은 아무래도 여성 보컬 Dolores O'riordan에게로 모아집니다. 그녀의 끝을 비틀듯 꺽어 올리는 창법은 국내에서도 몇몇 밴드들이 따라 한 적이 있습니다. 물론 어느 누구도 오라이어던의 매력을
내가 맨 처음 들었던 짐 모리슨과 더 도어스의 노래는 물론 '라이트 마이 파이어'였다. 1967년이었다. 그때 나는 열여덟이었고,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대학에도 재수학원에도 가지 않고 온종일 라이오로 로큰롤만 들었다. 다른 해와 마찬가지로 그 해에도 실로 많은 히트송이 나왔지만, '라이트 마이 파이어'는 내게 이를테면 예외적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긴 곡이었다. '마음에 불을 붙여'라고 번역한 제목은 너무 밝다. 이 곡은 어디까지나 '라이트 마이 파이어'지 다른 무엇도 될 수 없다. Come on baby, Light My Fire Come on baby, Light My Fire Try to set the night on fire 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 중 '짐 모리슨의 소울 키친'이란 글에서 따온 내용입니다. 우연히 이 글을 읽고, 그도 젊은 시절을 음악을 들으며 보냈다는 발견이 무척 반가웠습니다. 저 또한 그 나이엔 팝을 무척 좋아했습니다. 못하는 영어로 끙끙대며 가사를 번역하고, 겨우 곡명과 가수 이름 정도를 낚아채기 위해 AFKN 라디오에 온 신경을 집중하곤 했었죠. 그러다 문득 '나는 왜 이걸 듣지?'라는 질문을 안해 본 건 아닙니다. 하지만 이
시카고 출신 그룹 Styx의 노래들은 1970년대말부터 우리나라에서도 자주 라디오 전파를 탔습니다. 'Come sail away', 'The Best of Times'이나 'Blue collar man'은 물론이고, 오페라 풍의 Suite madame blue같은 곡들도 마이아들 사이에선 꽤나 인기를 누렸죠. 하지만 오늘 소개할 곡은 이들의 9집 앨범 Cornerstone에 들어있는 'Boat on the River' 입니다.이 곡은 Styx가 그동안 보여준 음악 스타일과는 다른 매우 서정적인 노래인데요. 어쿠스틱 기타와 아코디온의 멜로디에 맞춘 토미 쇼의 호소력 짙은 보컬은 단번에 대중들을 사로잡았습니다. 79년 당시 발매되자마자 거의 전 유럽에서 Top 10에 랭크되는 큰 성공을 거두었다니 두말하면 잔소리지요. 이 Boat on the River는 노랫말도 화제가 됐었는데요, 그룹 이름 Styx(죽음의 강)와 연관해 심오한 여운을 남겨주었기 때문입니다.-오 강은 깊고, 강은 모래 위의 물결처럼 내 생을 어루만집니다. 길들은 평온의 바닥으로 날 이끌어, 내 찌푸린 얼굴 사라지게 하고.. 그 강가의 배로 날 데려다 줘요, 내 다시는 울지 않을테니.-노랫말을
하드 락의 전성기인 70년대를 호령한 수많은 밴드들 중 빅4을 꼽으라면 누굴 지목하시겠습니까? 제 생각이 아니라 이 부분은 이미 거의 정설이 되어 있더군요. Black Sabbath와 Red Zeppelin, Deep Purple 그리고 나머지 하나가 오늘 소개드릴 Uriah Heep 입니다. 유라이어 힙은 7월 1일이면 매년 FM을 통해 만날 수 있습니다. 이곡 'July Mornning'은 유라이어 힙을 유럽이 아니라 세계의 밴드로 도약시킨 곡입니다. 대중성을 떠나 음악 자체도 헤비 메탈과 아트락을 적절히 융합시킨 보기 드문 수작으로 꼽히지요. 하지만 저는 이 밴드의 단 한곡만 선택하라면 주저치 않고 Lady in Black을 꼽을 겁니다. 각자의 취향이 다르겠지만, 제가 생각하는 좋은 곡의 조건은 듣는 이를 깊숙히 끌어 당기는 흡인력과 감동이거든요. 들어보면 아시겠지만, 레이디 인 블렉의 단순한 몇 소절의 반복이 만들어내는 흡인력은 거의 절정의 수준입니다. David Byron(보컬)과 Ken Hensley(키보드)가 acoustic 기타와 둔탁한 드럼에 맞춰 토해내는 후렴구의 화음 또한 쉽사리 헤어날 수 없는 감동으로 다가옵니다.사실 제가 더 놀란 건
요절한 천재 Jim Morrison에 대해 조금 더 얘기해야 겠습니다. 짐은 겨우 27년을 살고 저 세상으로 갔습니다. 스물일곱이면 우리로 치면 이제 막 군대를 다녀오고, 세상을 어떻게 살아갈지 좀 더 구체적으로 고민할 나이입니다. 그 나이에 그는 이미 음악으로 모든 걸 이뤘고, 그리고 홀연 팬들 곁을 떠났습니다.짐의 인생에 대해 생각해봤습니다. 음악적으로는 어떨지 몰라도, 20대에 남자가 철이 들기란 매우 어렵습니다. 더구나 당시 젊은이들 사이에서 짐의 인기는 상상 이상이었을 터이므로, 늘 대중의 관심 속에 살아야 하는 고충 또한 인기 못지않게 컸을 것입니다. 그런 시간들이 결국 소모적인 삶으로 이어진 건지도 모릅니다.술과 마약과 폭력.. 그의 음악처럼 삶 자체가 자꾸만 사이키델릭하게 흘러 갔습니다. 대중들이 그의 음악에 매료되면 될수록 그는 조금씩 자신을 죽여 나간 것입니다. 이 무렵 공연 중에 짐은 자주 사고를 쳤다는군요. 2집 앨범이 나온 직후인 1967년 12월 코네티컷주 뉴 헤이븐에서 짐은 공연 도중 경찰관을 모욕하는 발언을 해 체포되는 일이 있었습니다. 69년 3월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에선 술에 취한 채 공연 도중 외설행위를 했다는 혐의로 고소를
The Doors를 처음 접한 건 78년 무렵 'Waiting for the sun'으로 였습니다. 물론 김기덕의 2시의 데이트를 통해서 였죠. 당시 가사 내용은 잘 몰랐지만, 진지하면서도 사이키델릭한 분위기가 지금껏 듣던 락과는 조금 다르다는 느낌을 주기엔 충분했습니다.특히 이 곡에서 짐 모리슨의 보컬은 락 밴드에 어울리지 않을 만큼 단정했습니다. 들어보면 아시겠지만, 초기 도어스와는 분명히 다른 맛을 그는 이 Waiting for the sun에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후 Light my fire나 Riders on the storm 같은 곡들을 찾아서 듣기도 했는데, 제가 수용할 수 있는 한계 역시 여기까지였습니다. 소위 가장 도어스 다운 곡으로 꼽히는 'The End' 마저도 제겐 가슴 뛰는 감흥으로 살아나지 못했거든요.그래서 오늘 소개드릴 곡도 'Waiting for the sun'과 'Riders on the storm'입니다. Riders on the storm은 정말 폭풍의 한 가운데를 달리는 듯한 평온하면서도 긴장된 느낌을 줍니다. 끝까지 따라다니는 빗소리와 키보드의 반복되는 리듬이 그런 긴장과 안정을 동시에 만들어내는데요. 짐 모리슨도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