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 갈 때면 열에 다섯은 ‘J 식당’을 찾습니다.물론 열에 아홉은 골프 때문에 제주에 갔으니, J 식당의 다금바리는 친구들과 ‘19홀’을 완성하기에 안성맞춤이라는 말입니다.지난 토요일에도 제주행 비행기를 타기 전 김포공항에서 전화를 걸었습니다."접니다! 오늘 다금바리 있어요?"그러나 사장님의 대답은 평소와 조금 다릅니다. 예전엔 요즘 파도가 거세 몇일 배가 못떠서 없으니 다른 어종으로 드시라든지 혹은 몇 킬로그램짜리가 하나 있다거나, 1킬로그램은 다금바리로 드시고 나머진 돌돔(갓돔)이나 뱅에돔으로 채워 드시라는 게 통상의 답변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중국산이 있는데 이 놈도 맛이 똑 같아요!"랍니다. 이런 경우는 처음입니다. 갑자기 뜬금없는 중국산이라니요...?시쳇말로 '대략난감'입니다. 나름 양반 체면에 그건 또 얼마냐고 묻지도 못하고 덜컥 예약부터 했습니다. 제주에 도착해서 골프 치는 내내 마음 한구석이 불안했음은 물어보나 마나지요.사람이란 원래 얄팍한 존재입니다.아무리 미인이고 학력이 좋아도 '신정아'의 정체가 드러나는 순간, 그녀에 대한 애정이 단박에 식어버리듯이 오늘 다금바리가 중국산이라는 말 한마디에 그렇게 쫀득쫀득했던 육질이 왠지 오늘따라
고통의 祝祭 -편지계절이 바뀌고 있습니다. 만일 당신이 生의 機微를 안다면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말이 기미지, 그게 얼마나 큰 것입니까.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당신을 만나면 나는 당신에게 色쓰겠습니다. 色卽是空. 공시. 색공지간 우리 인생. 말이 색이고 말이 공이지 그것의 실물감은 얼마나 기막힌 것입니까. 당신에게 色쓰겠습니다. 당신한테 空쓰겠습니다. 알겠습니다. 편지란 우리의 감정결사입니다. 비밀통로입니다. 당신에게 편지를 씁니다.識者처럼 생긴 불덩어리 공중에 타오르고 있다.시민처럼 생긴 눈물 덩어리 공중에 타오르고 있다. 불덩어리 눈물에 젖고 눈물덩어리 불타 불과 눈물은 서로 스며서 우리나라 사람모양의 피가 되어캄캄한 밤 공중에 솟아 오른다.‘한 시대는 가고 또 한 시대가 오도다’, 라는 코러스가 이따금 침묵을 감싸고 있을 뿐이다.나는 감금된 말로 편지를 쓰고 싶어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감금된 말은 그 말이 지시하는 현상이 감금되어 있음을 의미하지만, 그러나 나는 감금될 수 없는 말로 편지를 쓰고 싶습니다. 영원히. 나는 祝祭主義者입니다. 그중에 고통의 축제가 가장 찬란합니다. 합창 소리 들립니다. ‘우리는 행복하다’(까뮈)고. 생의 기미를 아는
일본을 다시보자.평범한 풍속화 우끼요에가 인상파 화가들에게 깊은 영향을 주었고, 남성의 밤 문화에 불과할 수도 있는 게이샤에서 푸치니는 파격적인 영감을 얻었다. 무사도는 서구의 기사도를 초월하는 아우라로 윤색되어, 할리우드에서 수많은 버전으로 발전하였다. 문화사적인 가치라면 몰라도 예술적인 깊이에는 한계를 보이는 수많은 일본의 생활문화가, 수백 년 간 막부의 보호와 육성을 거쳐, 온 국민에게 사랑받는 전통문화로 뿌리내린 결과다. 밋밋한 목각인형 코케시도 전통과 권위를 인정받아 맥을 이어가고 있다. 모두가 너나없이 의미를 부여하면, 작은 돌 하나도 생명을 얻어 살아 숨 쉬는 법이다. 태평양 전쟁사를 읽으면 그 시절 일본이 항공모함 20척을 보유하고 미국과 맞장을 뜬 강국이었다는 사실에 놀라지만, 그보다 서구열강의 뇌리에 문화강국의 이미지를 심어놓아, 이미 국격이 매우 높았다는 사실은 흔히 간과한다.일본을 우습게 보는 나라는 한국뿐이라는 외국기자의 경고에 귀를 기울이자. 짧은 기간에 이룩한 한국의 약진에 칭찬이 쏟아지고 외국인 투자가 몰리는 것은, 우리의 역동성을 인정하고 발전가능성에 투자하는 것이지, 문화나 국격과는 별개의 문제다. 국민소득이 3만 달러 선을
십여 년 전 상트 페테르부르크 음대에 한국인 유학생이 수백 명이라고 했다.이 같은 한국인의 향학열은 정평이 나있고, 정경화 남매처럼 세계적인 아티스트의 탄생으로 국위를 선양하고 있다. 원조 격인 피아니스트 한동일씨는 언젠가 인터뷰에서, 하루도 거르지 않고 다섯 시간씩 연습을 한다고 했다. 연주회를 앞두고는 12시간이다. 연습벌레라기보다 아예 목숨을 건 사투다. 일본 바둑계를 평정한 조치훈도, “나는 목숨을 걸고 바둑을 둔다.”고 말한 적이 있다. IMF사태로 풀이 죽고 지친 우리국민에게 처음으로 웃음을 다시 찾아준 영웅이 박세리였다. 해저드에 걸린 공을 벌타 없이 치려고 양말을 벗는 순간, 새까만 종아리 밑으로 드러난 눈부시게 흰 발목... 엄청난 연습량을 웅변하는 바로 그 “오늘의 샷"이, 오늘날 LPGA를 주름잡는 수많은 “세리 키드”를 잉태하는 신호탄이었다.숭례문 단청(丹靑)이 다섯 달 만에 벗겨졌다고 한다. 분분한 원인분석 가운데, 필자는 “전문성 부족” 에 방점을 찍고 싶다. 이쯤에서 프로 중의 프로, 정상급 전문인이 갖추어야 할 덕목을 생각해본다. 첫째, 정상에 오르려면 누가 뭐래도 “삼신할머니의 점지, 즉 유전자에 타고난 재능이 들어 있어야 한다
소고기 육회를 듬뿍 넣어 비벼먹는 진주 비빔밥입니다. 원래 진주 교방(쉽게 말해서 요정 혹은 기생집)에서 만들어 내는 비빔밥은 칠보화반이라고 하여 붉은꽃이 활짝 핀 것처럼 꾸미지만, 진주의 천황식당이나 제일식당에서는 일반 대중을 위해 얼기설기 내는 모양새입니다.위 사진은 구마모토의 명물인 말고기 사시미(바사시)입니다. 마블링이 소고기 이상이죠? 실제 식용으로 기르는 말이기 때문에 고베소고기처럼 육질을 개량한 것입니다. 말의 발음이 '바'이기 때문에 '니기리'를 더하여 '바니기리'라는 스시(초밥)로도 먹습니다. 물론 스테이크로도 먹고요.위 두가지 음식은 전혀 공통점이 없어 보이지만, 임진왜란이라는 공통분모가 숨어 있습니다.진주비빔밥은 진주성이 왜군에게 함락 당할 때, 군사들과 백성들이 결사항전을 다짐하고자 모든 소를 징발하여 잡은 뒤에 같이 비벼 먹은데서 유래한 음식입니다. 어차피 전쟁에 지면 소가 필요도 없고 왜군에게 뺏길 것이기 때문이죠. 결국 6만 내외의 군사와 백성이 희생된 슬픈 전쟁 음식인 셈입니다. 그에 비하여 전주비빔밥은 그보다는 역사도 짧고 덜 유명했지만, 마케팅 효과로 널리 알려진 음식입니다. (해주도 비빔밥이 유명합니다. 해주는 곰탕, 냉면
울음이 타는 가을江 박재삼 마음도 한자리 못 앉아 있는 마음일 때,친구의 서러운 사랑 이야기를가을햇볕으로나 동무삼아 따라가면,어느새 등성이에 이르러 눈물나고나.제삿날 큰집에 모이는 불빛도 불빛이지만해질녘 울음이 타는 가을江을 보것네.저것 봐, 저것 봐,네보담도 내보담도그 기쁜 첫사랑 산골 물소리가 사라지고그 다음 사랑 끝에 생긴 울음까지 녹아나고,이제는 미칠 일 하나로 바다가 다와 가는,소리죽은 가을江을 처음 보것네.객기시인이 말년을 소일하던 종로2가 현현각에서 선생을 뵌 적이 있다.허름한 건물 계단을 5층까지 올라간 끝에 조그만 문을 밀고 들어서자 중년의 사내 몇몇이 한창 열기가 오른 포커 판을 앞에 두고 앉은 채로 방문객을 맞았다.그 중 한 분이 작은 목소리로 겨우 내 용무에 응대를 해 왔고, 나는 그의 주문대로 시인이 ‘하던 판만 마저 하고’ 내게로 건너오는데 방해가 되지 않도록 다소곳이 그를 기다렸다.그 때의 용무란 말단으로 참여한 3류 잡지의 창간호에 선생의 축시를 넣고 싶다는 것이었는데, 격에 맞지 않는 고료였음에도 선생은 그저 웃음으로 내 젊은 만용을 용인하셨다.몇 년 후, 선생이 타계하셨다는 소식에 덤덤히 선생의 시집을 다시 빼어 들었다.그리
강릉이라는 작은 도시에 사는 덕에 집에서 나와 40분 정도만 걸으면 학교에 도착합니다. 이것저것 구경하며 천천히 걸어도 한 시간이 걸리지 않습니다. 차를 타면 보지 못할 것들을 걸어 다니면 많이 보게 됩니다. 오늘은 금요일 출근길에 찍은 ‘시시한’ 사진들을 올려봅니다. 모두 스마트 폰으로 찍은 사진입니다.비온 뒤의 상쾌한 아침.학교 가는 중학생.어느 커피숍의 벽.미인과 함께 사진 한 장 찍고...우리 병원 건너편 꽃집. 얼굴 안 나오게 찍으라고 하니 손만 찍을 수밖에...8시 수업이 방금 끝난 듯. 보존과 조교수와 전공의들.이곳이 우리 병원.엄흥식서울대학교 치과대학 졸업서울대학교병원 치주과 전공의 수료서울대학교 대학원 치의학 박사강릉원주대학교 치과대학 교수강릉원주대학교치과병원 원장
'나의 소원은 첫째도 자주독립이요, 둘째도 자주독립이요... '라고 백범 선생께서 설파하셨지만, 저는 그런 원대한 소원이 아니라 인간적이면서도 소박한 소원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낮술'입니다. 그것도 남부럽지 않게 마시는 낮술 말입니다.점심시간에 병원 인근의 감자탕집이나 순댓국집 등에 가보면 반주로 ‘쏘주 각 일 병’ 정도는 일상이 되어버린 이웃 아저씨들과 드센 동네 아주머니들을 목도하면서, '지금껏 나는 인생 헛살았구나!'하고 자조를 한 적이 많았습니다. (치과의사라는 직업 때문에 낮술을 한 잔도 못하는 그 자괴감이란...)요즘 일부 어르신들 중엔 ‘비아그라’ 반의 반 쪽 정도를 혈액순환 개선을 목적으로 드시는 분들이 계신데, 아스피린을 장복하는 경우처럼 부작용도 분명 있을 것입니다. 때문에 건강만 허락한다면 반주 두어 잔이 오히려 비아그라 이상의 효과를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싶네요.그런데 왜 예로부터 낮술을 금기시했을까요?여러 가지를 상정해 볼 수 있겠지만, 우선 낮술을 드시는 분들은 대개 전날 밤의 과음 때문에 해장을 목적으로 마시는 경우입니다. 하지만 쓰라린 위장이 다시 알코올로 마취가 되면 더 마시게 되어 결국 인사불성이 되고, 이로 인하여 돌이킬
정식 교과목은 아니지만, 임플란트 회사에서 장비를 빌려 이틀 동안 수술과 보철 실습을 진행한다. 졸업을 앞둔 4학년들이라 실습에 임하는 태도가 예사롭지 않다.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자신이 심은 임플란트의 사진을 찍는 학생. 실습에서처럼 실제 임상에서도 항상 성공하길... ■ 강릉원주치과대학 4학년 2학기 임플란트 실습시간입니다. 정식과목은 아니지만 임플란트 회사에서 장비를 빌려 이틀동안 수술과 보철 실습을 진행했습니다. 졸업을 앞둔 4학년들이라 그런지 실습에 임하는 태도가 예사롭지 않습니다.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자신이 심은 임플란트의 사진을 찍는 학생들. 실습에서처럼 실제 임상에서도 항상 성공하길 바랍니다... (학생들의 초상권 보호를 위해 뒷모습만 올립니다)엄흥식서울대학교 치과대학 졸업서울대학교병원 치주과 전공의 수료서울대학교 대학원 치의학 박사강릉원주대학교 치과대학 교수강릉원주대학교치과병원 원장
1988년 어느 날 장맛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아침에 의학용어 기말고사 치러지고 있었는데 시험 유형은 영어는 한글로, 한글은 영어로 바꾸어 적는 주관식 시험이었다. 비교적 대부분의 문제들이 술술술 풀렸지만 몇 개의 단어가 어떤 치과대학 학생의 발목을 잡고 있었다. 그 중의 하나가 ‘deciduous'였다. 정답이 생각이 날 듯 말듯 하며 답답해하고 있었는데, 시험 감독중인 어떤 수련의 선생님께서 이렇게 독백하듯이 말씀하셨다. “음... 장마가 끝나면 낙엽이 떨어지는 가을이 오겠구나.” 번뇌 중이던 치과대학 학생은 그 선생님의 독백에서 deciduous의 답을 찾을 수 있었다. 치과대학을 졸업한지 20년이란 세월이 흐르다보니 수많은 추억들은 이미 지우개로 지워져 버렸지만 필자의 머릿속에 몇 개 안남은 학창시절의 추억거리이다. ’Deciduous‘라는 의학 용어로 소아치과와 인연을 처음 맺은 그 치과대학 학생은 졸업 후 소아치과 수련을 하게 되었고 지금은 전라도 광주에서 소아치과로 개원중이며 많은 생각들 속에서 이곳에 ’소아치과 에세이‘를 연재하고 있다. 소아치과에서 주로 진료하는 Deciduous는 어차피 교환될 치아라는 이유만으로 State of Art와 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