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국내 취항을 앞둔 저가항공사 에어아시아가 계열사를 통해 인천~방콕 6만9천원짜리 편도 항공권을 내놓았다. 이 믿기 어려운 가격은 국내 저비용 항공사 특가 상품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금액이다. 당연하게도 이 회사의 홈페이지는 온종일 몰려드는 네티즌들로 '접속 불가' 상태가 됐고, '에어아시아'라는 이름은 금방 네이버 실시간 급상승 검색어 1위에 올랐다.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공항을 허브로 두고 있는 에어아시아는 세계 88개 도시에 150개 노선을 운항하는 아시아 1위 LCC(Low Cost Carrier)로, 승객들에겐 값싼 티켓으로 인기가 높지만 항공업계에선 그저 달갑지 않은 '가격파괴자'로 불릴 뿐이다. 이 회사의 토니 페르난데스 회장은 그러나 '고객의 충성심은 저렴한 항공료에서 나온다'고 굳게 믿고 있다.
대형 할인마트에는 한 때 최저가격 보장제라는 것이 있었다. 경쟁 마트보다 비싸게 팔았다면 그 차액의 두 배를 되돌려 주겠다는 제도이다. 소비자들로선 나쁠 게 없다. 느긋하게 쇼핑을 즐긴 뒤 영수증만 잘 보관해두면 절대 10원인들 남들보다 비싸게 살 이유가 없어지는 것이다.
행여 직원이 실수로 계산을 잘못해서 돈을 더 내게 되더라도 걱정할 필요는 없다. 언제든 영수증을 들이밀면 더 낸 돈을 돌려받는 것은 물론 오천원권 상품권까지 덤으로 받을 수 있다. 마치 싸게 팔면서도 '혹 내가 모르는 더 싸게 파는 방법은 없을까'를 고민하는 사람들처럼 보인다.
‘싼 가격은 누군가의 한숨에서 나온다’
여기까지는 모든 것이 좋다. 싸게 제공할 수 있고, 싸게 살 수 있는 관계가 뭐가 문제겠나. 하지만 그것으로 끝일까? 싸게 많이 파니까 모두가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관계로 엮일 수 있을까? 아니다. 어느 한 쪽이 특별히 좋기 위해선 대부분의 경우 어느 한 쪽은 일정부분 손해를 각오하는 것이 맞다.
저가항공기나 국적기나 목적지까지 나를 데려다 주는 기본용역에는 차이가 없다. 6만9천원짜리 티켓이라고 해서 방콕 상공에서 승객들에게 일회용 낙하산을 나눠주진 않을 테니까. 하지만 나머지 문제들에 대해선 솔직히 자신하기 어렵다. 내가 타고 있는 이 항공기가 몇 년이나 된 것인지, 출발 전 정비는 제대로 했는지, 돌아오는 비행기도 올 때처럼 출발이 지연되지는 않을지.. 결국 승객들은 항공사가 비용을 아낀 만큼의 불안감을 항공료에 얹어 지불하는 셈이다.
할인마트의 경우도 다르지 않다. 최저가격을 유지하기 위해선 생산자도 최저가격에 물건을 납품해야 한다. 문제는 그 납품가격이 생산원가 위인지 아래인지 마트 측은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형마트는 그저 납품가격에 적정 이익만 붙여 팔면 그 뿐이다. 뒤에서 유통약자인 농민들이 울건, 중소 제조업자가 울건 그건 처음부터 이들이 상관할 바가 아니다.
소비자들을 즐겁게 하는 싼 가격의 이면에는 이처럼 누군가의 한숨이 배여 있다. 결코 선한 소비라고 할 수 없는 소비행태를 이들은 푼돈을 미끼로 마약처럼 전파시킨다. 그나마 다행스런 건 가격이 높건 낮건 같은 이름의 공산품이라면 품질 자체에는 차이가 없다는 점이다.
그런데, 그렇다고는 하지만.. 그 가격파괴의 대상이 공산품이 아니라 의료행위라면 어떨까? 삼성병원과 아산병원이 줄줄이 가격표를 내걸고 최저가격 보상제를 외친다고 상상해보라.. 그럴 리야 없겠지만, 만약 그랬다면.. 방금 삼성병원에서 축농증 수술을 마친 A씨가 진료비 영수증을 들고 경쟁병원으로 찾아가 이곳 수가보다 싼지 비싼지를 비교하는 게 가능할까?
문제는 편법에 지나치게 관대한 사회감시망
지금도 물론 비급여 수가를 공개하도록 하고 있지만 그건 그저 환자들이 참고할만한 수준에 그친다. 같은 상병이라도 의료진에 따라, 환자 개개인에 따라 치료과정도 예후도 다를 의료행위에 정찰가격을 붙인다는 자체가 무리이기 때문이다. 환자들 역시 공개 된 수가 이외의 부가요소들이 치료과정에서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이해한다. 그것까지 막는 건 환자 자신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들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의료행위에서의 가격파괴는 어떤 의미일까? 가령 서민치과를 내세운 U모치과의 임플란트 수가는 정말 다른 치과들의 그것보다 싼 걸까? 이걸 항공사의 방콕행 티켓처럼. 할인마트의 맥스웰 커피처럼 단순 비교하기는 정말 어렵다.
설명했듯 이외의 변수가 너무 많은 까닭인데, 그럼에도 이들이 무리지어 싼 수가를 무기로 내세우는 건 가격이야말로 가장 빠르게, 가장 효과적으로 시장친화력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정부도 사회도 의료의 총량을 비교하기보다 그 중 일부에 불과한 가격을 비교하는 쪽으로 서서히 관점을 옮겨가고 있다는 점이다. 가격파괴자들이 항공에서 대형마트에서 성공을 거뒀듯이 의료분야에서도 성공을 거둘 수 있도록 공정경쟁이라는 이름으로 차츰 이들에게 힘을 실어주고 있다는 점이다.
국민들과 의료계가 함께 가는 방법
지난주 주간조선이 커버스토리로 다룬 ‘입법마피아’ 기사는 이런 측면에서 무척 당혹스럽다. 관련자들의 법 위반 여부는 둘째 치고, 이 건을 지난 청원경찰들의 입법 로비사건과 같은 시각에서 바라보고 있다는 점에서다.
두 건의 차이는 두 단체가 추구한 입법의 취지에서부터 뚜렷이 나타난다. 청목회의 로비가 회원들의 구체적 이익을 위한 것이었다면, 치협의 그것은 법의 허점을 이용해 이익을 얻는 편법개원의 통로를 막는데 시종 집중했다.
의료인의 복수 의료기관 개설을 금지하는 조항이 있어왔음에도 명의만 빌려 여기저기 치과를 개설하고 실제적인 주인행세를 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소위 ‘1인1개소 법’은 이런 편법을 방지하기 위해 의료법 일부 개정을 통해 ‘어떠한 명목으로도 둘 이상의 의료기관을 개설 운영 할 수 없도록’ 명시한 법률이다.
이건 사회 정의 차원에서도 상당히 의미가 크다. 선량한 대부분의 치과의사들이 의료법에 따라 1인1개소 원칙을 준수하는 사이 몇몇 치과의사들이 편법으로 치과를 늘여 거대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그걸 기반으로 싼 가격을 내세운다면 이를 어떻게 봐야 할까?
안타깝게도 우리 사회는 그런 불공정한 일부의 편법에 쉽게 눈감는 대신 이로 인한 갈등을 U모치과와 치협의 치졸한 밥그릇 싸움으로 몰아갔다.
사회 전체가 편법에 물들어 있기 때문이다. 세월호 사건을 겪고, 나라 전체가 ‘원칙대로’를 목표로 국가 개조에 나서고 있는 지금, 반성 없는 편법을 감싸는 듯한 이런 기사가 버젓이 유력지의 표지를 장식하는 것만 봐도 이는 너무나 확연하다.
어차피 이번 건의 키는 ‘국회의원들에게 전달된 후원금이 개별적인 것인지, 조직적인 것인지’에 달려있다. 하지만 진실이 무엇이든 이것 한가지만은 알아둘 필요가 있다. 그것은 바로 ‘편법은 한번으로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개설에서의 편법은 운영의 편법으로, 진료의 편법으로 이어져 결국 환자들에게도 좋지 않은 결과를 줄 수 있다는 점이다.
이런 기본적인 문제를 제쳐두고 뭘 바로잡겠다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