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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중 칼럼

실버 통신 7 : 선택

[임철중의 거꾸로 보는 세상] - <254>

 

   2013년 대한치과의사회 대의원총회가 대전 컨벤션센터에서 열렸다.  필자가 의장이던 새 밀레니엄 첫해로부터 12년 만이다.  국회 개원 중으로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랄 강창희 국회의장이 내려와 축사를 했다.  고문단 석을 가리키며, “저기 계신 지헌택 고문님은 제 고교 대선배이시며, 전임 김형오 국회의장 장인이십니다.”
 지 선배가 일어나 꾸벅 인사를 한다.  말은 안 해도 내심 뿌듯하셨을 게다.  당시는 청와대가 국정을 주무르는 십상시 시대가 아니고, 국회의장이 장관 인사를 추천할 만큼 민주주의 정치가 작동하던 시절이었다.  강 의장은 대전고 4년 후배인 김명수 총회의장과 동기동창이니, 최소한 협회 숙원사업에 대한 대정부 언로는 무난했다.  제1부 행사 뒤에 지 선배님을 시내관광으로 모셨다.  중학교 5년을 대전서 보냈지만, 상전이 벽해로 변한 모습에 연신 감탄하다가, 대청댐 전망대 계단 앞에서 발을 멈춘다.  “닥터 임, 나 여기 못 올라가.”  아뿔싸, 90 노구(老軀)를 깜빡한 것이다.  선배님은 서울치대 졸업 후 세브란스병원 보철과를 맡고 치대를 설립하였으며, 협회장을 연임하고 협회 사를 처음 발간하였다,  2002년 부부동반 동유럽여행을 함께 했는데, 말로만 듣던 선배의 외국어실력에 깜짝 놀랐다.  일본 보철학회에 참석하여, 미국교수 특강을 일본어로 통역했다는 전설은 사실이었다.  더 놀란 것은 날렵한 발걸음.  만 80의 나이가 무색하게 골목길을 누벼, 젊은(?) 우리가 숨이 찰 정도였다.  그런 분이 야트막한 계단 앞에서 한숨을 쉬시다니, 역시 세월의 무게란 엄혹함을 깨달았다.  아말감 한 줄 사려고 대우빌딩 클리닉에서 재료 상까지 10여분을 걸어 다닐 만큼, 진료에 꼼꼼하고 욕심 없으셨던 분.  언젠가 모임에서 따로 불러내더니, “아이들이 치과를 그만 두라네”  “자서전도 쓰셨고 이제 슬슬 여행이나 즐기세요.”  핸드피스를 놓고 몇 년 만엔가, 2017년 7월, 95새를 일기로 소천 하셨다.  국내외 업적과 수상·훈장은 익히 알려진 바 있고, 전문직업인으로서 할 수 있는 봉사·기여를 다하였으며, 무엇보다도 마지막 몇 년의 여유를 누릴 수 있었던 ‘은퇴의 선택’이야말로 진정 ‘복 받은 인생’이었다.  

 

   본과 3년 때 월간지 ‘치과공론’이 나왔다.  필자는 김경술 사장과 동기생 고 이병태의 강권으로, ‘치과 영어회화’라는 칼럼과 만화를 연재하고 콩트도 썼으니, 꽤나 겁 없는 학생이었다.  유양석 선배가 레진으로 치근(齒根)을 만들었다는 임플란트 기사도 치과공론에서 처음 읽었다.  1967년 제5차 아태회의 학술대회에, 서울치대 교정과 수련의로서‘가철성 교정장치’라는 테블클리닉을 들고 나갔는데, 거기에서 유선배의 증례보고를 보고 또 한 번 감탄하였다.  임플란트학회 창설멤버로 군진과 학회에 많은 업적을 남겼고, 후배들의 귀감인 93세의 최장수 개원의이시다.  

 

   지헌택과 유양석 두 선배님 두 분 모두 공직과 군진에서 장기간 봉사하고, 학술적 업적도 컸다.  성공적인 개원 끝에 은퇴생활 몇 년을 누리고 가신 지 선배나, 아직도 정정하게 클리닉을 지키시는 유 선배나, 누가 봐도 참으로 복인(福人)들이시다.
 그러니까 은퇴란 ‘선택 사양’이다.  조금 일찍 그만 두든 끝까지 진력(盡力)하여 천직을 지키든, 주어진 직분에 최선을 다한다면, 모두가 본받을 아름다운 인생이다.
 아침에 눈뜨면  5분만 더 누워 있을까 말까? 에서, 저녁에 드라마 한 편 더 보고 잘까? 까지, 사람은 하루에 천 몇 번의 선택을 한단다.  “삶이란 태어나서(Birth) 죽을(Death) 때까지의 선택(Choice)”이란 사르트르의 말은, B와 D 사이에 C가 들어간 절묘한 표현이다.  다만 궁극적인 선택만은 ‘능동적인 의지’로 결정함이 옳다는 것이 필자의 개인적인 의견이다.  연료계(燃料計)에 마일리지가 조금은 남아있어야, 사람은 스킨로션을 바르고 옷매무새를 다잡는다.  은퇴나 실버타운 입주연령에 “평균수명 빼기 열”을 주장하는 이유다.  물론 사람마다 개인차가 매우 크므로, 건강은 나이순(順)이 아니라는 사실을 부정하는 건 아니다.

 

 

 

글: 임철중 
전 대한치과의사협회 대의원총회의장 
 임철중 치과의원 원장 

전 대전고등법원 민사조정위원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