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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중 칼럼

해피 엘피와 번개팅 : 실버 통신 2

[임철중의 거꾸로 보는 세상] . <249>

 

   은퇴를 하니 낡은 연식, 망팔(年式 望八)의 삭신으로 넓은 빌라의 관리가 벅차다.
 탈출구는 실버하우스, 첫걸음은 세간 1/4로 줄이기다.  이십여 년 길이 들어 가족처럼 임의로운 가구며 옷을 버리는 일은 괴로운 헤어짐이다.  LD·CD·DVD·LP 등 8천여 장과 홈시어터 장비가 가장 큰 덩치인데, 마침 ‘사이언스 빌리지(사빌)’에 영화관과 강당이 있어, 기증형식으로 맡기기로 했다.  독일제 괘종시계와 조각 작품 3점, 선친의 유품으로 학생 때 요긴하게 사용한 백년 넘은 현미경과 책도 동참했다. 
 사빌은 한국과학기술인 공제조합에서 지어, 입주민은 대부분 과학연구·기술개발에 평생을 바친 분들이다.  최상급 하이엔드도 아니건만 매킨토시 앰프와 탄노이 캔터베리 스피커에 모두가 열광한다.  마니아들이 당장 음악 감상 동호회를 만들고, 동네야구 주장은 공 임자라며 필자에게 회장을 맡긴다.  명칭을 ‘Happy LP’라고 붙이고, 첫 모임에 바흐의 무반주첼로를 들었다.  한 번도 10시를 넘기지 못한 볼륨을 12시 넘게 올리고, 34좌석 계단식 극장에 앉아 듣는 즐거움.  비록 턴테이블은 조강지처처럼 아무렇지도 않은 테크닉스지만, 가끔 지-익 딱 하는 잡음을 추임새 삼아, 바흐의 첼로를 LP로 캔터베리로 듣는 호강을 누린다.

 

   베토벤 광팬 한 분이 총무를 자청하였다.  60대 중반으로 사빌에서 가장 어린(?) 부총무는, 세계 각국 대중가요에도 정통하여, 곡목선정부터 해설까지 유인물준비를 도맡아, 일주일 전에 나누어준다.  월2회 정기 감상회가 너무 아쉽다하여 필자가 ‘번개 팅’을 제안했더니 모두가 대환영, 매주 월요일 플러스 알파로 진행한다. 
 지난 31일 번개 팅은 영국 팝 감상 3부작의 제1탄.  클리프 리차드·톰 존스·비틀즈의 60년대 LP 판으로, 두 시간 넘는 레트로(Retro; 復古)였다.  클리프의 이대 강당 공연 때 한 여대생이 무대에 던진 팬티는 손수건의 오보라든가, 막 개통한 고속버스 터미널에서 몇 달을 신물이 나게 본 어설픈 칼라의 톰 존스 비디오영상 등, 시답잖은 회고담이 오갔다.  칼라TV를 방송한 것은 그로부터 10여 년이 지난 5공 때다.  덤으로 준비한 영상자료에서는, 비틀즈 해리슨이 유부녀 패티(Pattie Boyd)에게 대쉬하여 결혼하고, 다시 세계 3대 기타리스트인 에릭 클랩튼이 청혼하여 이혼·결혼을 반복한 연예계 ‘콩가루 집안’ 스토리도 나왔다.  일곱 살 연상의 행위예술가 오노 요코와 존 레논의 사랑과 결혼, 그리고 불륜이야기도 빠질 수 없다. 
 모델이자 사진가인 패티는 해리슨과 에릭 뿐만 아니라 많은 정상급 연예인들에게 영감을 불러일으킨 뮤즈요, 레논의 여신은 오노 요코였다.  그렇게 탄생한 명곡들이, 해리슨의 Something과 에릭의 Wonderful Tonight, 그리고 김연아가 감동의 고별 갈라 쇼 배경음악으로 선택한 레논의 Imagine이다.

 

   영감이란 신이 천재의 대뇌 주름 속에 감춰둔 ‘숨은그림찾기’다.  아니라면 하이든의 107개 교향곡과 모차르트의 600여곡, 베토벤의 아홉 교향곡을 설명할 방법이 없다.  신이 인간과 결합하려면 천상을 내려와야 하듯, 뮤즈와 예술가가 결혼하면 천재의 영감도 작동을 멈춘다.  뮤즈의 유효기간은 ‘손만 잡고 자는 사이’까지요, 이루지 못할 사랑의 고뇌가 영감의 원천인가?  해리슨도 에릭도 결혼이 파경으로 끝났고, 레논의 후기 작품도 반전과 평화라는 사상전환의 유산일 뿐, 그가 암살당한 뒤 보여준 요코의 처신은 많은 팬들에게 실망과 분노를 불러 일으켰다.  
 예술을 즐기는 사람끼리 만나 함께하는 ‘생각의 공유’는, 뇌의 젊음을 지켜주는 운동이자 묘약이다.  사경을 헤매는 환자에게 격려 한 마디는 “정신 줄 놓지 마!”  아닌가?  노인에게 꼭 필요한 것은 육체적 건강에 못지않게 정서적 자극과 참여다.
 그것이 비단 노인에게만 국한된 것일까? 

 

 

 

 

: 임철중 
전 대한치과의사협회 대의원총회의장 
 임철중 치과의원 원장 

전 대전고등법원 민사조정위원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