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등포 독일치과에서 열심히 환자들과 씨름하던 김춘진 원장이 어느 날 갑자기 김춘진 의원이 되었을 때…, 이후 김 의원과 마주친 치과계의 지인들은 여전히 의원답지 않게 소탈한 그를 통해 국회의원이란 신분을 좀 더 살갑게 느낄 수 있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시간이 되는 대로 그는 여기저기 다리를 걸쳐 놓은 치과의사들의 모임에 불쑥 불쑥 모습을 드러내곤 하는데, 그런 부지런함이 결국 10년째 치과 일을 손에서 놓고 있는 그를 여전히 치과계의 일원으로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그가 치과 대신 10년째 출근하고 있는 여의도 국회, 김춘진 의원의 방은 의원회관 신관 836호로 표시된다. 새로 지어 이사 오기 전의 의원실과 비교하면 면적이 넓어진 느낌은 들지만, 전체적으론 그다지 폼이 나지 않는 구조라는 생각이 들게 했다.
오래 묵은 사무실에서 느낄 수 있는 안온한 분위기라든지, 구석구석 제대로 활용이 된 생활의 손때 같은 것들을 새 공간에서는 도저히 찾을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국회는 무조건 선(選) 수’
주인 없는 방에서 10여분을 기다린 끝에 마주한 김춘진 의원께 그래서 ‘이 방이 몇 평이나 되는지’ 부터 물었지만 대답은 ‘잘 모르겠다’였다.
눈대중으론 40여평은 족히 될 성 싶고, 구조도 비교적 간단해서 현관에서 창 쪽으로 세로로 절반을 뚝 잘라 한쪽은 보좌관 사무실로, 다른 한쪽은 의원실과 탕비실 등을 배치해 두었다.
의원실은 전에 사용하던 구관보다 훨씬 넓어져 있었다. 책상과 소파 그리고 회의용 원탁 테이블에 양 벽을 따라 책장과 상패 같은 걸 넣어둔 장식장이 길게 자리를 차지했는데도 공간이 남는다.
‘여의도에 개인이 이 정도의 사무실을 운영하려면 돈이 얼마나 들까’하는 생각을 잠시 했었지만 이내 포기하고 말았다. 시작부터 계산이 복잡했기 때문이다.
커튼을 길게 내려친 창밖으론 여의도의 오후가 나른하게 펼쳐져 있다. 아마 한 블록의 건물 군 사이로 여의도 광장이 보일 듯도 싶었다. 꽤 괜찮은 전망이고 위치이다. 그래서 또 한 번 ‘방’에 관한 질문을 던졌다. ‘의원실은 어떻게 배정하나요?’
그러자 이번에는 제대로 답변이 돌아온다. “국회는 무조건 선(選) 수에요. 선 수가 높으면 좋은 방을 차지하고 선 수가 낮으면 신관에도 못 들어오고 구관을 써야 해요. 나는 3선이니까 서열로 따지면 3등분의 딱 중간 그룹이지. 그러니까 이 정도 하는 거고, 구관은 주로 초선 의원들이 이용하죠.”
‘그렇구나. 여기도 속된 말로 짬밥 순이구나.’ 대한민국의 서열문화는 정말 어쩔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쎄 그거야 뭐, 다른 나라들도 그럴지 모르지만...
14관왕에 빛나는 의정활동 성적표
말마따나 김춘진 의원도 어느새 3선이다. 3선이면 중진이고, 당내 비중도 그만큼 높다. 중진이 왜 중요한가 하면 10년쯤 정치를 하다보면 눈앞의 현상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일의 전후를 동시에 간파할 수 있다. 따라서 실수가 적다.
정치에서의 실수는 치명적이다. 중진 층이 두터운 정당은 그래서 원내 활동이 안정적이다. 민주통합당의 중진인 김춘진 의원은 거기다가 의정활동 성적까지 좋다. 그는 늘 사회적 경제적 약자 편에서 그들을 위한 법률을 발의하는데 앞장서 왔다.
요즘 김 의원이 가장 관심을 쏟고 있는 법안은 그가 대표 발의한 ‘인신매매방지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안’과 ‘국제조직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안’이다.
그는 국회도서관을 가장 많이 이용한 의원이며, 국정감사 최우수 의원이고, 입법 및 정책개발 최우수의원인 동시에 제 18대 대한민국 헌정대상에 빛나는 의원이다. 각종 매스미디어가 선정한 의정활동 순위에서 그는 14관왕이 되기도 했다. 비결이 뭘까?
“치과의사라는 직업이 의정활동에 아주 적합해요. 치과에 환자가 오면 증상을 살피고, 병력을 파악한 후 목표에 맞게 치료계획을 세우고, 치료 후엔 예후까지 관찰하잖아요. 입법도 마찬가지에요. 관련 히스토리를 검토하고, 수요자가 뭘 원하는지를 파악한 다음 법률을 입안하고, 이후 만족도까지 조사해야 하거든요. 다른 거 없어요. 환자 보듯이 하다 보니까 성과는 저절로 따라오던데. 하하”
그런 그에게 정치인으로서의 꿈을 물었다. 어떤 답이 돌아왔을까? ‘행복한 대한민국을 만드는 것’이란다. 그 행복한 대한민국을 향해 그는 그가 가진 가장 큰 권리인 입법권을 활용해 조금씩 조금씩 다가가고 있다.
치과계 동료들에게도 김 의원은 ‘치과뿐만 아니라 지역사회 리더로서의 역할까지 맡아 줄 것’을 당부했다. 취재를 마치고 주섬주섬 가방을 챙긴 기자에게 그가 지역구인 부안産 참뽕 와인꾸러미를 건냈다. 의원회관 신관 836호 앞에서였다.
<사진: 이근옥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