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일 일요일 아침 9시. 제2생활관 1층에 자리한 치과진료소 문이 열리자 아직 잠기가 덜 가신 '서울특별시립은혜로운집'의 하루가 조용히 시작된다. 유니트체어 세 대가 나란히 놓인 작은 공간이지만, 이곳은 매주 일요일이면 어김없이 사람들로 북적인다. (사)열린치과봉사회(회장 채규삼)가 2년째 이곳에서 봉사를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날은 둘째 주 진료팀의 차례. 정돈영 원장(연세 크리스마스치과)과 기세호 원장(기세호치과)이 진료를 담당했고, 김용희 소장이 보철물 제작을, 베테랑 봉사자들인 송명진, 전만희, 조미순, 김선숙 선생이 스케일링과 체어사이드를 맡았다. 여기에 삼육대 치위생학과 김서진, 이세빈 학생까지..
이미 오랜기간 손발을 맞춰온 봉사팀은 치과에 당도하자마자 누가 뭐랄 것도 없이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 해야 할 일에 집중해 조용하고 빠르게 준비를 끝냈다. 이어 호명에 따라 약간은 불편한 걸음걸이의 환자들이 치과로 들어와 하나씩 체어를 차지하고 누웠다. 진료가 시작된 것이다.
이곳 은혜로운집은 정신건강에 어려움을 겪는 이들을 위한 정신요양시설이다. 2007년 설립돼 현재 124명이 이곳에서 생활하고 있는데, 진료 대상은 대부분 50대 이상의 남성 환자들이다. 구강관리에 신경을 쓰기 어려운 환경 탓에 틀니 같은 보철 수요가 많은 편이고, 치통을 호소하는 이들도, 레진 치료가 필요한 이들도 그리고 노쇼 환자도 매주 빠짐없이 나온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하나원 진료가 중단되면서 그곳 열린치과봉사회 진료팀을 온전히 이곳으로 옮겨 올 수 있었다는 점이다.

밤새 축복처럼 살짝 눈이 내린 이날은 환자 수도 평소보다 많았다. 매주 열명 남짓이 고작이었는데, 19명이나 진료를 신청한 것. 이유를 물으니 정 원장은 '최근 스케일링을 진료 항목에 포함시킨 때문이 아닐까' 짐작했다. 각오를 다잡은 봉사팀이 빠르게 진료 명부를 채워나갔다.
진료실 안의 시간은 늘 그렇듯 조용히 흘러갔다. 말수가 적은 환자들은 묵묵히 차례를 기다렸고, 봉사자들은 불필요한 말을 아꼈다. 손짓과 눈짓으로도 소통은 충분했는데, 대신 긴장을 풀지 못한 환자에게는 먼저 이름을 불러주고, 끝난 뒤에는 “수고하셨습니다” 한마디를 꼭 건넸다. 그 짧은 인사가 이곳에서는 꽤 중요한 절차처럼 느껴졌다.
오전 9시 10분부터 시작한 진료가 1시간 반 만에 끝이 났으니 모두들 어지간히 집중력을 발휘했나 보다. 이 시간동안 봉사팀은 새로 틀니를 장착하고, 인상을 뜨고, 장착한 틀니의 불편감을 살피고, 발치를 하고, 레진 치료를 하고 그리고 스케일링을 했다. 환자당 체어타임이 길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누구 하나 서두르지도 않았다.
10시 40분, 마지막 체어가 정리됐다. 유니트에 덮개를 씌우고, 기구를 정리한 뒤에야 모두들 숨을 고른다. 일요일 오전을 통째로 내어준 그들이지만, 그런 만큼 남은 휴일의 반토막이 무엇보다 소중해졌다. 몇몇은 늦은 아점을 위해 근처 식당으로 향했고, 몇몇은 미뤄둔 볼 일을 위해 서둘러 길을 나섰다.
이들을 태운 몇대의 승용차가 정문을 빠져나간 뒷쪽으론 은혜로운집을 포근히 둘러싼 봉산이 하얀 눈을 뒤집어 쓴 채 거대한 크리스마스 트리처럼 밝게 서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