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조선일보의 위크리 비즈에 재미있는 기사 하나가 실렸다. 사과의 효과를 설명하는 내용인데, 그 대표적인 경우를 바로 의료사고에서 찾고 있다. 이 기사는 '사과하지 못하게 하는 법적 상황이 문제를 더욱 크게 만든다'며, 미국의 사과법(appologty low)을 소개하기도 했다. 내용을 옮기면 이렇다. 의료 사고가 흔히 소송으로 이어지는 이유가 무엇일까. 2006년 당시 힐러리 클린턴과 버락 오바마 상원 의원은 학술지 '뉴잉글랜드 의학 저널'에 기고한 칼럼에서 그 이유로 '의사들이 소송이 두려워 방어적으로 환자들을 대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하면서 의사와 환자가 마음을 열고 소통할 수 있도록 연방 의료법 체계를 바꾸자고 제안했다. 미국 50개 주(州) 중 36개 주에는 '사과법(apology law)'이란 제도가 있다. 클린턴과 오바마의 주장은, 이런 법을 연방법으로 만들자는 것이었다.1986년 매사추세츠주에서 시작한 이 법의 요지는 의료 사고 현장에서 환자 측에게 의사가 "미안하다(I am sorry)"고 말한 것이 법정에서 의사에게 불리한 증거로 채택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왜 이런 법이 생겼을까? 환자가 갑자기 사망했을 때 의사는 책임 유무를 떠나 환자
저희가 어렸을 적에도 해태, 오리온, 롯데제과가 있었습니다. 삼립식품의 호빵도 있었고, 샤니식품, 삼강식품 등도 있었는데, 이중에는 아직도 건재한 회사들이 있는가 하면, 상호는 남았지만 주인이 여러 차례 바뀐 곳도 있고, 통폐합하여 다른 이름으로 바뀐 곳도 있습니다. 그런 유수의 회사에서 만든 종합선물세트라도 선물 받는 날이면 지금의 로또 당첨 이상으로 행복했었지요. 장롱이나 벽장 속에 형 몰래 숨겨두고 며칠이고 몰래 꺼내 먹던 기억이 새롭습니다.그러나 이런 번듯한 회사의 과자를 사먹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길거리에서 파는 달고나(뽑기), 번데기, 소라(지금 생각하니 다슬기), 쫀득이, 라면땅, 비닐튜브 속에 든 달콤한 그 무엇... 대략 이런 과자들이 저희들의 군것질 대상이었습니다. 만화가게에서 파는 오뎅이나 핫바는 큰맘 먹고 저지르는 사치였지요. 동네 문방구에서도 소라과자, 달팽이과자, 무지개색 웨하스 같은 인근 과자공장에서 만든 것들을 팔기도 했고요.수원 세류초등학교에서 역전 쪽으로 내려가다 보면 과자공장이 둘 있었습니다. 두 곳 다 저희 반 친구들 집이었는데, 그 집에 놀러가는 날은 각종 과자로 배를 채우고 오는 날입니다. 대개 만들다가 실
IRA를 아시는지요? 북아일랜드 공화국의 독립투쟁은 1994년 북아일랜드의 신페인당이 휴전을 선언하고 이어서 2001년 IRA가 무장해제를 하면서 현재는 영국과 평화 시기를 보내고 있지만, 언제고 다시 터질 가능성이 많은 휴화산에 다름없습니다. IRA의 투쟁을 다룬 영화는 셀 수도 없이 많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 '아버지의 이름으로', '마이클 콜린스', '제네럴', '크라잉 게임' 등 입니다. 제가 기억하는 영국 영화들 중에 감동을 받은 것은 죄다 IRA 영화이거나 '대처리즘'에 반대하는 좌파적 영화들이죠. 그렇다고 제가 좌파는 절대 아닙니다. 하지만 '빌리 엘리엇'이나 '풀 몬티', '브라스드 오프' 같은 영국식 좌파 영화는 상당히 재미있고 또 생각할 여지를 남겨주더군요. 사족입니다만, '크라잉 게임'이라는 영화는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남성의 성기가 등장하기도 했지요. 보이 조지가 부른 주제가도 일품이었고요. 뭐 요즘이야 송강호의 볼 품 없는 거시기도 자랑스레 나옵디다만.... 크라잉 게임이 개봉할 당시엔 상당한 반향을 불러일으켰지요. 북아일랜드만 독립투쟁을 한 것은 아닙니다. 스페인의 바스크 지방에도 투쟁단체가 있습니다. 바
TV에 유독 토크쇼가 많아졌다. 시시콜콜한 연예인들의 뒷 담화에 지쳐갈 무렵 이젠 그들의 가족까지 합세했다. 사위도 나오고 아들딸도 나와서 끊임없이 뭔가를 지껄인다. 부부가 함께 출연하는 무슨 프로를 보다가 '저렇게 한꺼번에 다하면 다음엔 무슨 얘기를 하려나' 걱정했었지만 그건 기우였다. 다음에도 또 다음에도 그 출연자는 거미줄을 뽑아내듯 끊임없이 얘기를 토해내 사람들을 웃겼다. 어디서건 모두가 말로서만 존재를 확인하려 든다. 못된 짓도 지적하는 사람이 없으면 못된 짓이 아니다. 함부로 민원인을 무시하는 공무원도 댓바람에 언성을 높여 따지면 보기에 민망할 정도로 금방 허둥댄다. 말의 힘은 곧 존재의 힘이다. 내가 말하지 않으면 나는 지는 것이고, 상대가 면전에서 마음껏 침을 튀기도록 내버려 두는 건 전쟁에서 순순히 안방을 내어주는 굴욕이나 마찬가지다.세태가 이럴진대 치과도 예외는 아니다. 경쟁이 심해지고 환자 끌기가 일반화되면서 대체로 말이 너무 많아졌다. 환자들의 얘기를 듣기보다 먼저 말하려 드는 것이다. 할인마트에 가보라. 의류매장 앞에 멈춰서기만 해도 곧바로 점원이 달려와선 '무엇을 찾는지'를 묻는다. '고객들이 이런 류의 친절을 좋아할까?'에는 관심도
다시 봄이 왔다비탈진 공터 언덕 위 푸른 풀이 덮이고 그 아래 웅덩이 옆 미루나무 세 그루 갈라진 밑둥에도 푸른 싹이 돋았다 때로 늙은 나무도 젊고 싶은가 보다기다리던 것이 오지 않는다는 것은 누구나 안다 누가 누구를 사랑하고 누가 누구의 목을 껴안 듯이 비틀었는가 나도 안다 돼지 목 따는 동네의 더디고 나른한 세월때로 우리는 묻는다 우리의 굽은 등에 푸른 싹이 돋을까 묻고 또 묻지만 비계처럼 씹히는 달착지근한 혀, 항시 우리들 삶은 낡은 유리창에 흔들리는 먼지 낀 풍경 같은 것이었다흔들리며 보채며 얼핏 잠들기도 하고 그 잠에서 깨일 땐 솟아오르고 싶었다 세차장 고무 호스의 길길이 날뛰는 물줄기처럼 갈기갈기 찢어지며 아우성치며 울고 불고 머리칼 쥐어뜯고 뭄부림치면서……그런 일은 없었다 돼지 목 따는 동네의 더디고 나른한 세월, 풀잎 아래 엎드려 숨 죽이면 가슴엔 윤기나는 石炭層이 깊었다 風景이성복 시인은 1952년 경북 상주에서 출생했다. 서울대 불문과를 졸업했고 1977년 '정든 유곽에서'로 계간 '문학과 지성'을 통해 등단했다. 1980년 첫 시집'뒹구는 돌은 언제 잠깨는가'를 냈고, 이 작품집으로 제 2회 김수영 문학상을 수상했다. 나른한 봄 풍경을 거
저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영덕이 어디고 강구항이 뭐하는 곳인지를 어렴풋이나마 알게 된 것은 대략 15~6년 전 쯤 부터일 겁니다. 물론 그 이전에도 영덕대게는 임금님 진상품이었고, 영주와 안동 쪽 내륙으로 해산물을 실어 나르는 출발지로 알려졌으니 완전히 이름 없는 소도시는 아니었습니다. 6.25 전쟁 때는 학도병들이 장사상륙작전을 펼친 곳으로도 유명했고, 법원의 지원과 검찰의 지청까지 있을 정도로 경북 북부동해안에서는 나름 사법과 행정의 중심지이기도 하지요.그러나 아무리 용을 써본들, 15년 전 쯤에 방영된 드라마 한편보다는 못합니다. 그 드라마가 방영되어 전 국민들이 알기 전까지는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는 김춘수의 시처럼 영덕과 강구항은 그저 그런 한적한 시골읍과 항구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죠.그 드라마 이름은 바로 '그대 그리고 나'입니다. 최진실, 박상원, 차인표, 최불암, 박원숙 등과 같은 초호화 멤버들이 어림잡아 6개월 이상 강구항에 출몰(?)하면서 촬영을 한 덕에 그 이후 몇 년 동안 강구항의 모든 대게집들은 ‘드라마에 방영된 집’이라거나 ‘진실’이나 ‘불암이’ 아저씨가 다녀간 집이라고 써 붙여
한국에서 일하시는 치과의사 분들이 저에게 가장 많이 물어보시는 질문 중 하나가 호주 치과의 근무 환경이에요. 그래서 이번 칼럼에서는 호주 치과의 근무 환경에 대해 간략하게 이야기 해 드릴려고해요.우선 개인병원은 병원 원장님과 페이닥터간의 계약에 따라서 근무환경이나 조건이 천차 만별인데요, 보통 페이닥터들은 인센티브(insentive)를 받고 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인센티브는 주로 지역이나 병원에 따라서 페이닥터가 벌어 들이는 수익의 약 38%에서 45% 정도로 다양하게 정해져요. 시골 병원일 경우에는 교통비용이나, 차 그리고 집까지 병원에서 제공하는 경우도 있고요. 휴가는 일년에 보통 한달 정도지만, 이것 역시 정하기 나름이에요. 물론 인센티브를 받는 페이닥터들의 휴가는 대부분 무급이죠. 근무시간 역시 다양하고, 토요일 까지 일해야 하는 경우도 더러 있어요.국립병원은 공무원이다 보니깐 직급과 년차에 따라 일정한 봉급을 받아요. 국립병원도 주마다 차이가 조금씩 나기 때문에 여기 칼럼에서는 저희 퀸즐랜드주 국립병원 근무 환경 및 조건을 기준으로 이야기 해 드릴께요. 호주에서도 한국처럼 많은 치과의사들이 대도시를 선호하다 보니, 소도시에서 일할 경우 rura
계절을 느끼며 사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봄이 봄처럼 느껴지지 않는 경우도 있지만, 봄이 온 줄도 모른다는 건 그만큼 불행한 사람이 많기 때문이겠지요. 하여, 일부러 시간을 내어서 봄맞이 나들이를 간다는 것은 각박한 세상을 부대끼며 살아가는 현대인으로서는 남다른 호사나 여유가 아닐까 여겨집니다. 하지만 일상의 바쁜 와중에 짬을 내어 산수유 축제니, 매화 축제니, 벚꽃놀이니 하는 것도 실업이나 불황으로 인해 많아진 시간 때문에 더 흥청이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힘들수록 시를 읽고, 음악을 듣고, 새 봄의 나물로 미각을 돋운다면 이 어둡고 긴 터널을 통과하는데 한줄기 빛은 되지 않을까요? 사람마다 봄을 맞이하는 음식들은 매우 다양할 것입니다. 달래, 냉이, 두릅, 씀바귀, 봄동... 같은 봄나물이나 채소도 있겠고, 저처럼 도다리 쑥국, 우럭젓국 혹은 주꾸미 요리를 택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남해안의 도다리쑥국은 봄 맞으러 가는 길치고는 너무 멉니다. 서울 시내에 도다리쑥국 제대로 낸다는 집을 찾아낸 것도 멀리 남해안까지 봄마중 가기가 너무 힘들기 때문이었는데, 역시나 서울에서는 봄맛을 제대로 느끼질 못했습니다. 아무래도 봄은 그곳에 가서 느
사람이라면 누구나 견물생심의 유혹에 흔들리는 마음을 갖고 있다. 좋은 물건을 갖고 싶은 욕심에 그것을 가질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해 자기 소유물이 된다면 긍정적인 견물생심(見物生心)의 예라 할 수 있다. 반면에 좋은 물건을 탐하는 욕심만 있고 어떠한 노력도 하지도 않고 더군다나 자신의 분수를 넘어서는 물건을 탐낸다는 것은 언감생심(焉敢生心)이다.많은 사람들의 부러움을 사는 직업인 치과의사는 견물생심에 항상 절제력과 겸손함을 지녀야 한다.자기 욕심만 채우려 한다거나 자기 것만 소중하게 여기고 남의 것은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치과의사의 명함에는 ‘성공’이라고 써져있지만 사람들은 ‘불행’이라고 읽기 때문이다.견물생심을 영어로 하면 Seeing is wanting이고 견과생심은 Seeing is eating이라 표현할 수 있다. 물건을 보고 자연스레 욕심이 생기는 것처럼 과자를 보게 되면 그것을 먹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것은 당연지사일 것이다. 평범한 가정의 집안을 들여다보면 온통 우식성 식품들이 여기저기 널려져 있어 아이들이 쉽게 꺼내 먹을 수 있어 충치로부터 자유스럽지 못하다.충치 예방을 위한 식이습관의 기본 원칙은 見菓生心과 “You are what
임상가들의 관심은 질병의 원인이나 본질을 생각하기 앞서 질병의 진행과정에 대한 예측이나 치료효과에 대한 예후 등에 관심이 더 집중되어 있다. 지극히 당연한 관심일지도 모른다. 질병의 원인은 아직도 모르는 점이 많고 애매한 점도 많기 때문에 진행과정이나 처치요법에 대한 관심과 연구에 몰두할 수밖에 없다. 마치 소방수가 화재 현장에서 불길을 잡는 것처럼 화재가 왜 났으며 화재의 진원지가 어디인가는 미쳐 생각 할 겨를이 없다고나 할까? 우리는 언제나 불길을 잡아야 하며 잡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이다. 다행히 불길이 완전히 진화되면 안도와 성취에 도취되어 자만스러워지기도 한다. 이것이 임상가들의 속성 같은 것이다. 실험실에서 연구하여 나온 결과와 사람에게 직접 진료시술에 대한 결과 사이에 생기는 지적격차에 대한 갈등은 언제나 있게 마련이다. 속된 말로 이상과 현실은 틀리다. 설령 임상치의학에서 이론과 시술이 통일되어 있는 부분이 많다 하더라도 실제로는 사회적 조건에 따라 달라지는 특성이 있는 것이 바로 치의학 분야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치과의료를 질병개념으로 해석하려는 우리 전문가의 입장과 건강이나 질병으로 보기보다는 단순히 불편함이나 외관상의 변화 즉 심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