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 보건국은 40세부터 50세 사이의 관리직에 종사하는 공무원을 대상으로 정기 신체검진은 물론 영양상태 조사를 정기적으로 기행하며 담배나 알코올, 설탕 섭취를 억제시킨 후 15년 동안 지속적으로 추적조사를 실시했다. 한편 같은 연령층을 대조군으로 하여 그쪽은 아무것도 알리지 않고 또한 아무런 제약이나 조건을 부여하지 않고 그냥 정기적으로 건강을 조사하여 두군을 비교 분석한 결과를 발표했다. 결과는 예상을 뒤엎고 실험군, 즉 담배, 당분 등을 억제시키고 정기적으로 영양상태를 조사해 온 군에서 심장혈관질환, 고혈압, 사망 혹은 자살을 기도한 사람들이 더 많았다는 보고였다. 이것은 「핀란드증후군」이라 부를만치 흥미롭고 경악스러운 결과를 나타낸 보고였다. 건강해지려고 노력하고, 이상적인 생활행동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오히려 좋지 못한 것으로 나타난 것은 아이러닉한 결과였다. 즉 건강와 과보호나 신체의 지나친 효율적인 관리는 오히려 개인을 과보호하고 의존심을 키우며 면역성의 부족현상으로 저항력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초래하여 자기 자신의 신체에 대한 스스로의 책임을 면제하려는 경향으로 자아(自我)의 확장을 방해하며 나쁜 건강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 서론 최근 들어 치과 건강보험 급여에 대한 관심이 크게 증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관심은 청구와 관련해서 즉각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단편화된 내용으로 건강보험에 대한 폭넓은 이해에 도달하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단지 급여기준만 알고 있어도 진료를 하고 치과의원을 경영하는 측면에서 본다면 크게 불편할 것도 없겠지만, 급여기준을 잘못 이해하거나 단편 일률적으로 적용하는 오류를 범하는 경우도 많은 것 같습니다. 이번 치과 건강보험에 관한 연재는 기존에 많이 이야기되는 보험 청구에 관한 내용이라기보다는 치과 건강보험 급여와 관련해서 다양한 측면에서 이야기를 풀어내 보려고 합니다. 이를 통해서 많은 치과의사들이 건강보험 청구라는 치과경영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정책적인 측면에서도 관심을 기울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올해의 치과 건강보험 화두는 치과임플란트 급여적용일 것입니다. 2014년 7월 1일부로 75세 이상 어르신들에게 치과임플란트가 건강보험 적용되면서 많은 치과의사들이 치과임플란트 건강보험 급여기준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분명히 관심들은 있는데... 왜 대부분의 치과의사들은 [치과임플란트 급여 관련 Q&A]라는 소책자를 안
'복지'라는 게 사실 그렇습니다. 그 좋다는 걸 누가 마다하겠습니까만, 일단 시행되고 나면 다시 되돌리기가 힘들다는 것이 문제죠. 요즘 경제위기를 겪고 있는 그리스나 스페인과 같은 남유럽 사람들이 복지축소 때문에 시위를 하는 경우를 봐도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그렇다면 복지라는 놈은 일종의 '하방 경직성'을 가졌다고도 할 수 있겠네요.저희 치과의 경우도 주5일 근무의 달콤함에 빠진 결과, 이제는 초과근무 수당을 더 준다 해도 추가 근무를 사양하기 일쑤입니다. 게다가 요즘처럼 경제 사정이 좋질 않아도 1박2일 여행 맛에 수년간 빠지다 보니 마치 마약 중독처럼 되어 이젠 벗어나기 어려워졌습니다. 어쨌거나 사람들이 끊임없이 복지 확대를 요구하는 것은 인지상정이니만큼 이제는 그 '정도'나 '수준'을 고민해야 할 것입니다. 양방의 병의원들에 비해서 영세한 치과들의 경우, 복지를 꼭 '돈'으로만 해결하려는 경향이 많습니다. 점심시간이나 퇴근시간을 조금 넘겨 진료를 마쳤을 경우에도 결국 '돈'이 해결사 노릇을 하는 것이죠. 그러나 이런 방식의 대처는 올바른 대처법이라 할 수는 없습니다. 돈은 돈대로 나가고 여전히 직원들 입은 삐죽 튀어나와 있거든요. 제 나름대로의 보상은
1950년 12월 16일 흥남부두. 제10군단 아몬드 육군소장이 선택한 승선(乘船) 순위 1번은 미 해병 제1사단이었다. 그 의미를 새겨보자. 첫째, 심각한 타격을 입은‘병동(病棟)사단’에 대한 응급 배려다. 사상자가 70%에 가깝고, 생존자 반 이상은 심한 동상환자였다. 둘째, 유공자 예우다. 해병사단 12,000 명을 격멸하려고, 중공군 제9병단은 장진호 전투에 7개 사단 12만을 투입하였다. 제1사단은 후퇴하면서 17일간 중공군의 발을 묶어놓아(tie-down), 동북지역 국군과 UN군 10만이 흥남으로 집결할 시간을 벌어주었다. 중공군은 사상자 45,000명으로 아군의 6배에 달하는 피해를 입어(공군의 폭격과 해군 함포사격의 도움) 3차 공세에 합류하지 못하고, 적군의 진격은 수원 선에서 멈추었다. 결국 아몬드 장군은 영웅의 값비싼 희생에 ‘마땅한 예우’를 해준 것이다. 짧은(3년, 월남전 9년) 국지전에서 미국은 36,576명의 꽃다운 젊은이를 잃었다.(전사자를 54,000명으로 집계한 보도가 더 많다.) 트루먼의 결단과 UN의 참전결의는 빠르고 추상같았으나, 막대한 희생과 매카시즘에 대한 반동으로, 아이젠하워 후보의 종전(終戰)공약이 대세가 되
호주 국립병원에서 일을 하다 보면 다른 곳에선 하지 못할 몇 가지 흥미로운 일들을 하게 되는데요, 주로 병원에서 일을 하지만 양로원, 초중고등학교, 감옥 등을 돌아가면서 출장을 다니게 되요. 그중 저희 타운스빌 국립병원에서만 가는 특별한 곳이 있는데요, 바로 원주민들만 사는 Palm Island라는 섬입니다. 타운스빌에서 비행기로 약 30분 정도 거리이고, 호주에서 유명한 산호초 안에 들어 있는 이 작은 섬은 일반인들의 출입을 제한하고 있어요. 호주에 영국인들이 처음 정착을 하고, 1920년 백호주의가 강했던 시기에 호주 정부에서 문제 있는(혼혈 원주민) 원주민들을 강제로 이 섬으로 보내어 가두었죠. 마치 미국드라마 Lost에 나오는 섬 마을같이 특별한 곳이에요. 200여개의 다른 지역, 다른 부족 원주민들이 모여 살다보니 서로들 많이 다투기도 하고, 백인 경찰들과의 마찰도 항상 일어나고요. 2004년도에 발생한 폭동 때는 원주민들이 정부 건물들에 불을 지르고, 섬에 거주하던 호주 경찰들은 모두 병원으로 피신해 타운스빌에서 다른 경찰들이 구하러 올 때까지 갇혀 있었던 적도 있었다고 해요. 제가 Palm Island에서 근무를 했던 2010~2011년도에는 다
“국수 언제 먹여줄 거야?” 미혼 남녀에게 흔히 던지는 멘트다. 그래서 국수를 장터나 단체회식용 서민음식으로 알지만, 실은 있는 집 아니면 잔치 때나 맛보는 귀하신 몸이었단다. 밀은 보리보다 수확이 늦고 쌀과 이모작이 어려워 생산량도 적었다는데, 전란의 폐허에서 어떻게 칼국수 같은 값 싼 분식이 가능했을까?미국과 상호안전보장법(1951)에 의하여, 소위 ‘잉여농산물’로 밀이 대량 공급된 때문이었다. 원조 근거는 미 공법 480호로 단일 화 되었다가, 1963년부터 무상이 아닌 장기차관으로 바뀌었다. 이렇게 ‘칼국수 대전’이 탄생하고, ‘막 파스타’ 칼국수가 배고픈 ‘피난 코리아’를 먹여 살렸다. 밀에는 글루텐이 많아 위장은 낯가림으로 불평을 한다. 밀가루음식의 캡은 본시 빵이지만, 반죽·발효·숙성에 오븐을 거치는 과정은 시간과 품이 드니까, 위를 속이려고 적당히 물과 섞어(?) 무쇠로 된 빵틀에 구워내는 ‘막 빵’을 고안해 낸다. 그것도 막 노동자가 허기를 때우는 값싼 ‘풀빵’과, 그럴듯한 꽃무늬에 달달하게 팥고물이 들어간 ‘국화빵’으로 신분에 차별이 있었다. 빵에 곁들일 주스는 냉차가 제격이다. 역 오른쪽에 7, 8 가구가 몰려 사는 낡은 일본식가옥이 있
얼마 전 명절음식 준비하던 중 커다란 그릇에 가득담긴 육전 재료를 보고 딸아이가 겁먹은 소리로 속삭인다. “엄마 이거 언제 다해요?” 딸아이 관점에서 이게 엄청 많은가 보다. 난 담담하게 “얼른 끝날걸? 얼마 안되는데?”라고 말하며 나도 딸아이만한 시절 아니 그보다 더 훨씬 이전에 이런 일들에 대해 겁을 먹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지나보니 내게도 어린 시절 어머님이 주신 과제 중에 해도 해도 끝이 없을 거 같은 일들이 있었다. 그중에 콩나물 다듬기였고, 중간 멸치 손질 하는 과제였다. 어머님께서 쟁반 수북이 쌓인 콩나물을 주시면 그게 얼마나 많고 해도 해도 줄지도 않는지, 멸치는 왜 그리 비릿내가 나는지, 그리고 그럴 땐 꼭 때 맞춰 얼굴이랑 몸은 가려운 곳이 자꾸 생겨 몸을 비틀고 언니를 불러 이곳저곳 긁어달라고 부탁하며 얼굴을 찡그리고 했던 기억들이 있다. 일상의 일들이 이렇게 커 보이던 시절 1년 가까이를 외가댁에서 보내면서 외할머님은 호기심과 의문이 많은 나에게 여러 가지로 연구대상이었다. 내가 뭔가 이야기만 하면 척척 해결해 주시는 것이 마치 마술사 같았다. 그 중 하나가 깨에 대한 내 의문이었다. 여름이 끝날 무렵 할머니는 수확한 깨를 마당 한켠에
새 밀레니엄 전야에, “이대로 넘어갈 수는 없다.”라는 절박감에 쫓겨 총회를 불과 3주 앞두고, 협회 의장직에 출사표를 던졌다(1999). 동반 연임을 원한 협회장과 의장에게는 실례였지만 여러분의 도움으로 무난히 당선, 상처투성이일지언정 ‘치과전문의제도’안을 통과시킨 결과에 보람을 느낀다. 의장에 취임하자 바로 그해 10월 종합학술대회에서 전 회원에게 나누어 드릴 세 번 째 칼럼 집 ‘거품의 미학’8천부를 자비로 출판하였다. 가급적 자제해왔던“치과인 끼리 주고받을 이야기”30여 편을 우정 넣었다. 이제는 공개토론도 하고 결단을 내리자는 뜻이었다.물론‘치과의료 문화상’수상에 대한(1998. 4. 25) 감사와 보은의 뜻도 있었다. “남기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니까 글을 쓴다. 출판을 준비하면서 책 말미를 장식할 ‘마침표’가 아쉬웠다. 마침 대전은 새 천년을 맞아 낙후된 동부지역에 활기를 불어넣고 동서 균형발전을 도모하고자, 역사(驛舍) 밑으로 관통도로를 뚫는 대역사(役事)를 진행 중이었다. 평생 낯익었던 역 광장이 천지개벽을 하니, 사라질 풍경에 추억의 일화를 곁들여 글로 남기고 싶었다. ‘바람 찬 흥남부두’나 ‘이별의 부산정거장’ 못지않은 한 많은 사연들
'도다리국'은 일 년 내내 먹을 수 있지만, '도다리쑥국'은 일 년에 한 달에서 한 달 반 남짓, 그것도 초봄에만 맛 볼 수 있습니다. 쑥 향은 이미 날아갔고, 질겨서 끊어지지도 않는 ‘개쑥’도 상관이 없다면야 도다리쑥국은 '사철음식'이 되겠지만, 시대는 이제 '제철음식' 제대로 먹기가 대세 아니겠습니까?도다리쑥국에 들어가는 '해쑥'도 일반 뭍에서 나는 쑥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남해안과 섬 지역에서 바닷바람을 맞으며 이른 봄에 땅을 뚫고 나온 '해쑥'만이 도다리쑥국을 완성시키는 '화룡점정'이거든요. 게다가 음식의 주연이라 할 수 있는 도다리마저 봄이 되어야 물이 한껏 오릅니다. 오죽하면 '봄 도다리, 가을 전어'라는 말도 생겼을까만, 진짜 봄 도다리는 살이 탱글탱글하고 찰집니다. 꼭 도다리만 넣어야 쑥국이 완성되지는 않지만, 광어나 가자미를 넣어서는 일단 맛도 맛이거니와 쑥과 어우러지는 풍미도 별로이고, 쑥국을 부르는 말의 운치도 나지 않습니다.경남 통영은 도다리쑥국의 본향입니다. 물론 거제도를 비롯하여 인근의 큰 섬들이 들으면 섭섭하겠지만, 통영시가 '선점의 효과'를 톡톡히 보는 것은 사실이지요. 게다가 각종 언론에서 해마다 봄소식을 전할 때 도다리쑥국
대전예술의전당 개관이래(2003) 후원회장을 맡아 가끔 공연리뷰를 쓰게 되었다.많지 않은 글 중에 세 번 이상 나온 분들은, 한국 창작춤 단체 창무회를 창단하고 시립무용단장을 역임한 김매자씨와 플루티스트 재스민(최나경)양, 그리고 소프라노 한예진씨다. 필자에게 울림이 컸던 이 세 분을 리뷰 본문을 인용하여 소개한다. 김매자: 정밀(靜謐)한 정지동작과 때로는 부드럽고 때로는 역동적인 연결동작은, 탈춤에서 택견 권법까지 변화무쌍이다. 정지동작에서는 여백의 운치가 넘치는 한국화 류의 설치미술이요, 움직이면 동작이 정연한 병사들의 진(陣)을 연상시킨다.관객석 뒤에서 무대까지 휘돌아간 백색의 무대장치와 함께, 독창적이고 뛰어난 미장센의 완성이었다. (2003 아트홀 심청) 아크로배틱 매스게임처럼 정밀(精密)하게 맞물려 돌아가는 군무(群舞)는, 심청전·얼음 강·불이문(不二門)을 거치며 향상일로인 김매자 브랜드에 영락없다. 3·4부는 비 내리는 비래리로부터 우슬현을 감싸 도는 세 내(대전천·갑천·유등천)를 표현, 마치 작은 샘에서 발원하여 강을 이루어 대해로 흘러나가는 스메타나의 ‘몰다우’처럼, 훌륭한 ‘표제무용’을 연출한다.(2009 아트홀 대전블루스 0시 50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