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로네마크 교수는 생전에 한국을 세차례나 방문하며 한국의 애정을 보인바 있다. KAOMI 임순호 고문은 “그는 분야는 달랐지만 열린 마음으로 치의학 분야에 도움을 주었다. 인류애를 향한 그의 진심어린 강의는 늘 감동을 주었다”고 그를 회상했다. 김명래 고문 역시 ”자신이 발견하고 축적된 연구 업적을 늘 공유하면서도 겸손했다”며 고인의 성품을 회고 했으며, 한종현 직전회장은 “치과 임프란트로 많은 치과계에 종사하는 이들 뿐만 아니라 전 세계 인류에게 공헌하신 분”이라고 기억했다.
아래는 KAOMI 홈페이지에 올린 조의문이다.
브로네마크 교수님의(Per-Ingvar Brånemark) 서거를 애도하며…
-임프란트계의 큰 별 지다. Per-Ingvar Brånemark (1929.05.03~2014.12.20)
대한구강악안면임프란트학회는 2014년 12월 20일 향년 85세의 일기로 영면하신 현대 치과 임프란트의 아버지 브로네마크 교수의 서거를 회원 여러분들과 함께 진심으로 애도합니다.
그는 스웨덴 Lund대학을 졸업한 정형외과 의사였으며. 1969년 Gothenburg대학의 해부학 교수가 되었습니다. 1952년 티타늄 광학 챔버를 사용하여 생체 광학현미경 연구를 하던 도중 토끼의 하지 뼈에 장착한 티타늄 광학 챔버가 치유기간 후에 제거할 수 없었고. 이 우연하고 획기적인 발견으로 골유착(Osseointegration)이라는 개념을 기초로 하여 치과용 임프란트가 개발되었습니다. 1965년 그에 의해 환자의 하악에 최초로 치과 임프란트 치료가 시도 되었습니다. 그 당시 티타늄 금속을 인간에게 사용하는 것에 대한 비난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1978년 NIH와 하버드 대학이 공동 주최한 최초의 치과 임프란트 Consensus Conference에서 후향적 성공율에 대한 한계를 보고 1982년 토론토에서 열린 국제학술대회에서 15년간의 임상결과를 발표하여 학자들이 골유착 개념에 대한 치과 임프란트의 임상적 가능성과 예후를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후에 그는 이를 국제적으로 참가한 모든 학자들의 열린 마음과 편견없는 협력과 소통, 아이디어와 문제의식과 결과에 대한 공유 때문에 가능한 일 이었다고 하였습니다.
현재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치근형 임프란트의 개발과 사용을 최초로 제시하였으며 지속적인 노력의 결과 임프란트 성공율을 획기적으로 높였습니다. 또한, 전 세계적으로 환자들에게 저작의 즐거움이라는 혜택과 잃어버린 아름다운 미소를 돌려주었습니다. 이는 항상 환자들을 위한 배려와 자비로운 마음에서 비롯된 과학지성의 산물 이었습니다.
대한구강악안면임프란트학회는 브로네마크 교수님의 연구에 대한 중단없는 열정과 인류에 대한 거대한 사랑의 실천을 존경하고 지지하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The edentulous patient is an amputee, an oral invalid, to whom we should pay total respect and rehabilitation ambitions. – 2005, Per-Ingvar Brånemark
아래는 학회를 대표해 허성주 회장이 브로네마크 교수 가족들에게 전한 위로전문.
(news.editors@nobelbiocare.com)
Condolences from the Korean Academy of Oral and Maxillofacial Implantology
Dear the Brånemark family,
Alas! We were deeply saddened to learn of Professor Branemark’s passing away and
I would like to express my sincere sympathy to your family on behalf of the Korean Academy of Oral and maxillofacial Implantology.
He showed the important road where nobody went in dentistry. He opened new horizon in restoration of patient oral health.
He gave better quality of life to the patients all around world. He was highly respected by the clinicians, researchers, students and
patients as the most distinguished visionary leader in medical and dental fields.
I am well aware of the difference he made in the lives of many people all around the world.
We will follow his foot steps to improve human happiness. He will be missed by many.
With sincere condolence,
Seong Joo Heo, D.D.S,M.S.,Ph.D
President
The Korean Academy of Oral and Maxillofacial Implantolog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