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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중 칼럼

실버 통신 5 :  방짜 유기(鍮器)

[임철중의 거꾸로 보는 세상] - <252>

 

   솟을대문을 지나 오른쪽이 사당 채, 야트막한 돌계단을 오르면, 등나무가 얽혀 성긴 지붕과 바람벽을 이룬 작은 마당이 있었다.  기단과 댓돌을 올라 두 칸쯤의 대청, 다음이 네 칸 넓이의 제실이다.  기고(忌故)가 들면 일가친척들이 모이니까, 제실 문을 들쇠에 걸어, 제실과 대청이 하나로 통했다.  어른과 맏손자는 제실문턱 안에, 다음은 항렬에 따라 대청에 서고, 나머지는 등나무 마당에서 참섭한다.  서손(庶孫)은 항렬이 높아도 제실 안에 설 수 없었다.  윤보선 전 대통령은 영의정 윤두수 후손인 해평 윤씨 가문인데, 숙부 윤치영은 서자라 하여 댓돌 아래 세웠다 한다.
 윤보선은 부산파동 때 이승만과 결별하고(1952) 다시 박정희에 맞섰으나, 윤치영은 끝까지 이승만을 받들고 허약한 제2공화국을 비난했으며, 열렬한 박정희추종자였다.
 한 살 터울의 숙질간에 둘도 없는 불알친구였지만, 정치색이 달라 80이 넘어서야 비로소 다시 손을 잡았으니, ‘서자 론’은 참새들이 지어낸 얘기인지도 모른다.
 
   각설하고, 제기(祭器)는 성안(成顔)도 못한 증조부 때 장만하셨다니, 못해도 족히 150년이다.  요즈음 방짜처럼 반짝이지는 않아도, 묵직하고 은은하여 위엄이 있다.
 기일이 닥치면 동네 아낙들까지 모여 제기를 닦는다.  잿간에서 삼태기에 담아온 재를 볏짚에 묻혀 살살 문지르면, 녹이 벗겨지고 광택이 되살아난다.  볏짚을 태운 고운 재라야 생채기가 나지 않는다.  제사가 끝나면 나눠주는 봉송으로 온 식구가 이틀은 먹으니, 일감이 드문 그 옛날에 제사 품앗이는 벌이로도 쏠쏠했다.  그 잘난 재개발로 용운동 집도 사당도, 법동에 있던 비슷한 규모의 외가댁 사당도 헐렸다.
 며칠을 혼자 끙끙거리며 가구 형(型) 사당을 설계했다.  상단에는 4대조 여덟 위의 신주를 모실 감실(龕室)을 얹었다.  접이 식 중단을 펼치면 넉자 석자짜리 제사상이 된다.  하단은 목기와 유기와 향로가 들어가는 수납공간이다.  치과 인테리어공사로 만나 피차에 흉허물이 없던 문 목수가, 문짝에 12 간지 동물을 새길 만큼 정성을 쏟았다.  돌쩌귀에 온갖 장식을 달고 옻칠에 이르기까지 한 달 넘게 걸렸건만, 신접 위선(神接 爲先)하는 일이라며 재료비만 받았다.  이 조립식·이동식 사당이, 40년 가까이 4대 봉사(四代奉祠)를 이어준 일등공신이었다.

 

   은퇴 1년 전 신주 8위를 천안공원 묘 앞에 매혼(埋魂)하였다.  서투른 세필로 축문을 쓰던 축판과 향로만 남기고, 방짜유기는 동생들에게 나눠주었다.  우리는 상전이 벽해가 되고, 사고와 생활방식이 딴 나라로 변하는 현장을 모두 지켜본 세대다.
 작은 아파트 장만에 일생을 거는 외아들 세대는 간이사당을 모실 공간조차 없다. 
 내 세대에 간이사당마저 없애고 묘제(墓祭)를 결심한 이유다.  “감 놔라, 대추 놔라.”한다는 말은, 가문·지방에 따라 제례절차가 조금씩 다르다는 의미다.  갱(국) 외에 3종 탕(湯)이 있는데, 통상 육소어(肉素魚)지만 우리는 소(두부) 대신 닭을 올려 모우린(毛羽鱗)이라고 불렀다.  진설도 참사자로부터 과채적탕반(果蔡炙湯飯)의 순서로 조금 다른데, 도라지 시금치 고사리의 삼색 나물은 같다.  기일 전날 초저녁부터 상을 차려, 자정 넘어 영신 강신으로 시작한 제사는, 소지 철상과 음복으로 끝난다.
 이어 온 식구 친지가 둘러앉아 제삿밥을 먹는다.  어머님이 염장해 둔 짠 조기는, 안동 간 고등어 열 마리와도 안 바꾼다.  삼색나물 비빔밥에 갱과 3종 탕을 두루 섞어 끓인 국물 맛은 기차다.  이삼 십리 밤길을 걸어와 한밤을 지새우고, 혹한에 댓돌 아래 섰던 친척들은 또 얼마나 꿀맛이랴.  새벽 참이 끝나 숟가락을 놓으면 첫닭이 울었다(鷄鳴聲).  제사란 단순한 례가 아니다.  오늘의 나를 있게 해준 조상님께, 존경과 감사를 드리는 인내와 극기의 제의다(忍耐·克己·祭儀).  조상 대대로 전해온 종교요 교육이요 훈련이다.  제례가 아니라도, 고통을 견디고 감사를 배우는 교육은 이어져야 한다.  겉만 반짝거리는 내로남불·분노조절장애의 무리들을 보라. 


 방짜에 얽힌 일화 한 가지.  초헌은 육탕 아헌은 계탕 종헌은 어탕과 함께, 제주(祭酒) 석 잔을 올렸다.  집사(執事)는 숙부였는데, 뜨거운 방짜 탕기(湯器)에 손가락이 누렇게 눋도록, 단 한 방울도 흘리지 않았다.  인내와 극기의 롤 모델이셨다.

                                       
* 오랜 신고(辛苦) 끝에 K 팝은 서서히 뜨는데, 원천자산(?)인 세시풍속(歲時風俗)은 광속(光速)으로 사라져 간다.  물이 고이기도 전에 샘물만 마구 퍼내면, 한류가 과연 지속 가능할까?  우리 것을 지키려는 서두름으로, 낯선(?) 옛말들을 그대로 썼다.
        

 

 

 

: 임철중 
전 대한치과의사협회 대의원총회의장 
 임철중 치과의원 원장 

전 대전고등법원 민사조정위원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