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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중 칼럼

 실버 통신 4 : 워라밸과 워뮤밸

[임철중의 거꾸로 보는 세상] - <251>

 

   사이언스 빌리지(사빌)에 둥지를 튼 뒤, 새벽산책은 거의가 탄동천 코스다.  바로 집 앞이 건널목이요, 길 건너 중학교 운동장을 끼고 돌아, 5분이면 숲길과 만난다.
 대덕운동장까지 나이에 어울리는 만보(漫步)로 다녀오면 한 시간쯤, 만보(萬步)는 못되어도 일일권장량 6천보는 훌쩍 넘긴다.  지질자원연구원쯤이 알맞고, 조폐공사에서 되돌아오면 40분쯤 걸린다.  짧은 코스를 잡은 날은 조폐공사 앞 천변에 앉아, 10여분쯤 쉬며 한 시간을 마저 채워 7 시, 샤워와 아침 식사시간에 딱 들어맞는다. 
 한창 뜨거운 7, 8월이지만, 거추장스러운 마스크를 벗으면 시원한 새벽공기에 피톤치드향이 물씬하다.  개울 징검다리로 내려가는 넓은 돌계단 위에 앉았으니, 새벽 산책객들과 마주칠 일도 없고, 엉덩이까지 시원하게 호강을 한다.  새들이 짹짹대고 개울물은 졸졸 흐르니, 생각에 잠기기에 “딱 좋아!”다.  갑자기 동남쪽 하류에서 찬란한 햇살이 닥아 온다.  어느새 시간이 그렇게 흘렀나?  그런데 그 많던 매미며 여치는 어디 갔지?  “아직은 날개가 이슬에 젖어 날지 못해요.”  조금만 참으면 너희들 날개도 햇볕에 말라, 훨훨 날며 짧은 여생을 여한 없이 노래하겠지... 

 

   오늘의 명상 주제는 은퇴다.  며칠 전 입주한 90대 분을 두고, ‘은퇴시점’과 실버타운 입주 ‘연령제한’ 얘기가 오갔던 까닭이다.  필자가 제안한 ‘국민평균수명 빼기 10’이라는 아이디어에 모두 고개를 끄덕인다.  건강이나 수명에는 개인차가 있으므로 병원 종합건강진단서에 적힌 ‘생물학적나이’를 참조한다.  예를 들어 그 숫자의 50%를 감해준다.  입주 전 건강검사가 필수요, 코로나 19에 대비, 외출과 외부인 방문을 적극 통제하는 실버타운 원칙에도 맞는다.  기준을 넘어서면 재택(在宅) 건강관리 또는 전문 요양 복지시설을 이용함이 옳다.  근무하던 직장에 꼭 필요한 원로로서, 시간제로 출퇴근하는 입주민을 부러워하기도 한다.  아침식사는 늦고 저녁은 일러, 어차피 정규직 출퇴근은 안 되고, 사빌의 취지에도 어긋난다.
 직장은퇴와 실버타운 입주를 두고 한 번 병합심리를 해보자.  사실 두 통과의례는 동전의 양면이다.  어느 하나를 틀어쥐고 놓지 못하면 다른 하나도 온전할 수 없다.
 요즘 검색순위 #1인 워라밸(Work & Life Balance)은, 직장과 가정, 일과 삶의 균형이다.  특히 의료인에게는 천직(天職)의식과 공공성이라는 혹이 붙어있어서, 대체로 가족으로서는 낙제다.  초등에서 서울의대를 거쳐 심지어 정형외과전문의시험까지, 평생 수석을 놓친 적이 없는 형님이, 홍능 KSC병원 과장으로 있을 때 함께 살았다.
 큰 수술 전날 밤엔 두툼한 원서 몇 권을 펼쳐놓고 자정이 넘게 공부하고, 수술회의에 맞춰 이른 새벽에 나간다.  그런 날이 일주일에 두세 번이니 신혼의 형수님도 무던하였다.  미국에서 다시 보드를 따서 30년쯤 개업한 뒤, 1999년 65세에 칼같이 은퇴하여, 내 시간을 갖고 형수와 노후를 즐긴다.

 

   형님보다 딱 10년만 더,  필자는 75세 은퇴를 목표로 4년(치료 2년 + 보정 2년) 앞서 교정신환을 받지 않았는데, 단 하나 예외는 모교의국에서 의뢰한 티처증후군 환자였다.  당장 수입이 반 토막 나고 치료경과 지연에 몸이 달았지만, 큰 탈 없이 마무리 하였다.  대체로 한국인은 은퇴를 인생의 임무가 끝나는 것, 돌아오지 않는 강을 건너는 것쯤으로 여겨 망설인다.  매미는 땅 속에서 알-유충-번데기로 7년의 세월을 보낸다.  오랜 인고(忍苦) 끝에 문자 그대로 우화등선(羽化登仙)한 도인(道人)처럼 날개가 돋아, 성충이 되어 훨훨 날며 노래하는 것은 고작 열흘 남짓, 짝짓기를 끝으로 생을 마감한다.  조선조 왕이 매미의 5덕(五德)을 상징하는 익선관을 쓰고 정사에 임한 뜻을 알듯하다.  홀가분한 몸으로, 일에 매몰되어 놓친 것이나 지나친 것들에 한 번 여생을 걸어보는 일은 임무종료가 아니라 새로운 도전이다.  은퇴란 결국 거시적(巨視的)인 워라밸 아닌가?  걷고 사색하는 탄동천 산책은 워뮤밸(Walk & Muse Balance), 몸과 맘을 다독이는 나 혼자만의 의식(儀式)이다.

 

<뱀의 다리> 
 영어선생님은, 걷는 walk는 그냥 워-크, 일하는 work는 ‘ㄹ’ 받침을 30%쯤 넣으라고 하셨다.  思索과 冥想은 muse이고 女神·詩的靈感은 대문자 Muse인데, 마지막 줄은 필자가 만든 造語로서, 3 단어 첫 자를 대문자로 통일했을 뿐, 본래는 muse다.  

 

 

 

 

: 임철중 
전 대한치과의사협회 대의원총회의장 
 임철중 치과의원 원장 

전 대전고등법원 민사조정위원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