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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달동안 오라 가라 하더니, 뭐 실패했다고?

[재미있는 입속여행]④

[환자 이야기] 치통으로 며칠째 고생하다 도저히 못 참아 치과에 방문한 40B. 아프다던데, 비싸다던데. 하지만 당장 너무 아파서 못 살겠기에 어쩔 수 없이 방문했다.

치과의사 왈, 이가 많이 상해서 뽑을 가능성이 높긴 하지만 뽑으면 비용도 많이들고 다른 이에도 안 좋으니까 시간을 들여서 살려 보잔다. 좋은 의사 만났다는 생각에 그러자고 동의하고 시작한 게 화근이었다. 이 놈의 신경치료는 왜 이렇게 아픈지, 그리고 끝도 없이 불러데는지. 벌써 3달째 치료가 계속된다. 아무래도 부를 때마다 보험료를 받을 수 있으니까 그런가 보다. 오늘도 치료를 안 끝내 주면 한마디 해야지 하는 마음으로 치과에 갔더니 치료가 실패한 것 같다며 뽑잔다.

아니 그럴 거면 처음부터 뽑을 것이지 왜 바쁜 사람 오라 가라 하면서 아프게 고생시킨 건지 정말 혈압 오른다.

 

[의사 이야기] 이가 너무 많이 썩어서 끙끙 앓으면서 찾아왔던 환자. 썩은 정도가 너무 심해서 뽑는 것이 좋겠지만 그래도 환자를 위해서 최후의 수단은 써 보는 것이 좋겠다. 임플란트돈도 돈이지만 그 성능 역시 자연치랑은 비교 할 수 없이 떨어지는게 사실이니까. 뽑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과 치료가 오래 걸릴 것이라는 걸 충분히 설명하고 치료를 시작했다. 두 달 넘게 교과서에 나온대로 별 무리 없이 진료를 했지만 안타깝게도 차도가 없다.

큰 돈도 안 되는 근관 치료에 너무 많은 시간을 들이니까 직원들도 별로 안 좋아하는 것 같고 환자도 올 때마다 표정이 별로 좋지 않다. 오늘이 벌써 석 달째. 아무래도 이제는 포기해야 할 것 같다. 비록 술식 자체는 성공 못 했지만 그래도 의사로써 해야 할 건 다 한 듯하다. 하지만 환자에게 이를 뽑자고 얘기를 했더니 이럴 거면 그때 뽑지 왜 바쁜 사람 석 달이나 고생시키냐면서 화를 낸다.

분위기 보아하니 보철 진료는 다른 병원에서 할 듯하다. 에휴, 차라리 그날 바로 뽑아 버리고 임플란트로 처리했으면 돈도 벌고 힘도 안 들었을 것을. 괜히 살려 본다고 그 힘든 근관 치료 땀 뻘뻘 흘리면서 한 대가로 돈도 못 벌고 욕만 먹는구나. 역시 어떤 선배 말대로 뽑아버리는 게 속 편하고 환자랑 마찰도 안생기고 돈도 벌고 일석삼조인가 보다.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고통 중 가장 크다고 알려져 있는 치통. 신경치료는 그 통증을 줄이고 치아를 살려내는 술식으로 잘만 성공하면 환자와 신뢰를 쌓는데 큰 도움이 된다. 죽을 만큼 아파서 온 환자의 통증을 경감시켜주는 것이야말로 '환자가 의사에게 바라는 것'일테니까.

하지만 치과의사 입장에서 가장 힘들고 부담감이 큰 술식 중 하나가 신경치료이다. 신경치료는 크게 치아의 머리 부분에 해당하는 부분의 신경만 제거하는 치수절단술(pulpotomy)과 뿌리 쪽에 있는 신경까지 전부 제거하는 근관 치료(endodontics)로 나눠지는데 오늘 이야기하려는 것은 뿌리까지 제거하는 근관치료에 관한 것들이다. 동통이 생길지도 모르는 상황임에도 치과의사가 근관치료를 함부로 진행하지 않는 이유를 하나 둘 알아보도록 하자.

 

 

지난 시간에 치과 질환, 특히 충치의 단계를 칼로 자르듯 명확하게 진단하는 것이 어렵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따라서 애매한 경우에는 낮은 단계의 치료를 진행한 후 예후를 지켜보는 것이 진료의 원칙이다. 충치가 생긴 듯 만듯한 경우라면 바로 2단계로 넘어가지 않고 일단 구강 관리를 강화한 후 자가 치유 가능 여부를 관찰해야 한다. 신체의 다른 골격과 다르게 치아는 재생이 안 되므로 한번 삭제된 치질은 인공물로의 대체가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근관 치료를 신중하게 고려해야 하는 첫 번째 이유는 이것이다. 근관 치료를 진행하기 위해서는 상당량의 치질을 삭제해야 하고, 또 치수를 제거해야만 한다. 근관 치료를 받은 치아는 그렇지 않은 치아에 비해 그 수명이 짧다는 통계 자료도 있다.

 

 

근관 치료를 신중하게 접근하는 두 번째 이유는 치료 과정 중의 환자의 불편감에 있다. 근관 내부의 신경 조직과 염증 물질이 남아있다면 치료 도중 환자는 아픔을 느낀다. 하지만 현미경을 사용하지 않고는 살펴보기조차 어려운 근관의 두께와 각 치아마다 다른 형태를 보이는 특성 때문에 근관 내부의 조직을 전부 제거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따라서 치료 도중 환자가 동통을 호소하는 일은 흔한 일이다.
또 근관이 3개 이상 있는 큰 어금니는 한 달 이상의 기간 치료가 진행되는 경우도 있다. 얼마 전 학회에서 만났던 한 캐나다의 교수는 하나의 치아를 살리기 위해 2년이나 근관 치료를 진행한 케이스를 발표하기도 했다. 장기간의 치료 기간과 그 과정에서의 고통은 환자에게 부담이 되는 요소이지만 이는 의사에 대한 신뢰를 하락시키는 요인이기도 하기에 치과의사에게도 큰 부담감으로 다가 온다. 또 시간과 노력에 비해 터무니없이 낮게 책정된 보험 수가 때문에 진료가 장기화되면 병원의 경영이 어려워지는 것 역시 무시할 수 없는 문제이다.

 

 

근관 치료를 함부로 시행해서는 안 되는 세 번째 이유는 진료비용 상승에 있다. 근관 치료를 시행한 이는 많은 치질 상실과 치수의 제거로 일반 치아에 비해 상당히 약해져 있는 상태이다. 형태가 온전하다 하더라도 죽은 나무가 살아있는 나무에 비해 훨씬 약한 것을 생각하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약해진 상태에서 계속해서 씹는 힘을 받는다면 해당 치아는 부러진다. 이를 막기 위해 금속 등으로 치아를 보강해 주는 술식이 필요하다.
흔히 '금으로 씌운다'라고 표현되는 금관 수복은 현재 건강 보험이 적용되지 않기 때문에 진료비가 비싼 편이다. 여러 날에 걸쳐 아픈 치료를 받고 이제 끝났나 보다 하는 마음인 환자에게 다시 고가의 진료비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참 미안한 일이기도 하다. 고가의 진료비를 지불하는 것 외에도 금관 수복을 위해 또다시 많은 양의 치질을 삭제해야 하는 것 역시 환자의 치아 건강에 좋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근관 치료에 신중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높지 않은 성공률에 있다. 치과를 방문하는 환자들이 너무 쉽게 '그냥 신경 죽여 주세요'라고 이야기들 하지만 근관 치료의 성공률은 90~95%에 불과하다. 만약 술식이 실패할 경우 해당 치아는 발치 후 틀니, 임플란트 등의 방법으로 수복해야만 한다. 90%라는 숫자가 높게 느껴지겠지만 근관 치료를 시행한 10명 중 한 명은 해당 치아를 상실한다고 생각한다면 근관 치료가 얼마나 어려운 술식 인지 이해가 갈 것이다. 대부분의 환자들이 당연히 성공할 것이라며 가볍게 생각하는 것 역시 의사를 당황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당장 큰 동통을 느낄 만큼 심하게 이가 썩은 환자라면 치료 과정의 아픔이나 예후의 위험성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것이다. 그렇지만 큰 불편이 없던 환자라면 치료 도중에 치료 전 보다 더 큰 불편감을 느낄 수 있고 심지어 그 아픈 것을 참아냈음에도 치아를 상실했다면 누구라도 의사를 불신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가벼운 충치로 판단(내원 당시에는 시큰 거리는 불쾌감 수준) → 충치가 깊어서 근관치료 결정(치료를 받고 나니까 처음 왔을 때보다 아픈 정도가 더 심하다. 슬슬 이 의사가 건드리고 나서 이가 더 아프다는 생각에 신뢰감 하락 중) → 한 달 넘게 치료를 하더니 실패했다고 뽑고 임플란트 하란다(애초에 별로 아프지도 않은 이였는데 병원 치료를 받으니까 임플란트로 바뀌다니!).
정확한 사전 지식 없이 위와 같은 과정을 겪는다면 누구라도 화를 낼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치과의사라면 신이 아닌 이상 여러 차례 겪는 상황이다.

 


물론 사전에 충분한 설명을 하는 것이 환자와의 신뢰를 회복시켜 주기도 한다. 하지만 독자 여러분이 가벼운 충치라고 생각하고 치과에 갔는데 '이거 치료하다가 깊으면 근관 치료해야 되고요, 그거하다 잘못하면 뽑을 수도 있어요' 하는 이야기를 듣는다면 아마도 의사의 실력을 의심하면서 다른 곳으로 갈 것이다.
결국 환자와 의사의 신뢰가 무너진 현재의 상황은 의사에게 더 높은 단계의 진료를 진행해서 환자의 동통을 최소화시키고 더불어서 경제적 이익을 얻는 길을 택하라고 끊임없이 유혹하고 있는 셈이다.
처음부터 근관 치료를 하거나 아픈 이를 빨리 뽑고 임플란트를 하는 방식으로 해결한다면 가장 이익을 보는 것은 해당 치과의사이고 그 손해는 모두 환자에게 돌아간다.
치과에 찾아갔더니 해달라는 신경치료(근관치료)는 안 해주고 자꾸 조금만 더 써보라는 의사. 그리고 아픈 게 나아지지 않는데도 발치 후 임플란트로 넘어가지 않고 계속해서 근관치료를 진행하려는 의사. 이런 분들은 정말로 여러분과 여러분의 치아를 아끼고 사랑하는 분들이다.
부디 조급증과 잘못된 정보 때문에 올바른 치료를 하시는 분들을 오해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글: 이승훈

필자 이승훈은 단국대학교 치과대학을 졸업하고

현재 이수백치과 원장으로 근무 중이다.

대한치과의사문인회 회원으로 진료와 더불어

개성이 강한 작품활동을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