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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아프다고 버티다간 생명이 위험하다

[이승훈의 재미있는 입속여행]- 完

  

<환자 이야기 1> 

이가 아파서 치과에 가서 근관(신경)치료를 받았다. 치과에서는 1주일 뒤에 오라고 했지만 한번 치료 받고 나니까 안 아파서 안 갔다. 안 아프면 그만이지 소심한 의사들이 하라는데로 했다가 괜히 약만 더 먹고 돈만 더 쓸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 달쯤 지나던 어느 날, 갑자기 몸이 으슬으슬하고 열이 났다. 감기약을 사 먹었지만 차도가 없더니 갑자기 턱 아래쪽이 붓기 시작한다.

이비인후과에 갔더니 치과에 가보란다. 턱이 부었는데 이빨만 보는 치과에 뭐하러 가라는지 몰라서 그냥 이비인후과에서 주는 약만 먹고 나아지길 기다렸는데 3일째 되는 날 아침 거울을 보니 얼굴이 딱 2배가 되어있었다.

놀라서 치과에 갔더니 대학 병원에 가보라고 하고 대학병원에서는 왜 이제 서야 왔냐고 야단 치더니 2주일은 입원해야 한단다.

 

<환자 이야기 2 >

해마다 봄만 되면 잇몸이 쑤시고 붓는 증상이 있었지만 잇몸병 약을 먹으면 아픈게 가시 길래 그것만 먹고 버텼다. 어차피 치과 가봐야 다 뽑으라고 할 테니까 차라리 약으로 안 아프게 하면서 그냥 쓰는 게 좋을 것 같다.

어서 틀니 할 돈을 모아야 치과 가서 이도 뽑고 할 텐데 돈이라는게 모을만하면 자꾸 쓸 일이 생겨서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 그런데 올 봄 잇몸 아픈  건 어째 작년 보다 너무 심하다.

잇몸만 붓는게 아니라 몸에서 으슬으슬 열도 나고 볼도 좀 부은 것 같다. 아침에 나올 때까지만 해도 괜찮았는데 점심때가 넘으니까 눈도 못 뜰 정도로 얼굴이 부어만 간다.

놀라서 달려간 대학병원 응급실. 의사가 이야기하길 1주 이상 입원해야 한다면서 하는 얘기가 하루만 더 뒀으면 진짜 죽을 뻔 했다나? 잇몸이 좀 아프다고 사람이 죽을 뻔 했다는 것이 당최 이해가 안간다.

 

치과라고 하면 가벼운 질환만 치료한다는 인식이 일반적이다. '그깟 이빨 하나 빼 버리면 그만'이라고 생각하지만 심하게 썩은 치아나 진행 정도가 심한 치주 질환을 방치하면 자칫 목숨이 위험해 질 수도 있다. 오늘은 심하게 썩은 치아나 치주병을 방치했을 때 생길 수 있는 죽을 병 '치성 농양(abscess origins in tooth)'에 관해 이야기 하겠다.

 

 

위의 사진은 '그깟 이빨 하나' 제때 안 뽑아서 생긴 질환이다. 그나마 제때 병원에 도착해서 치료를 받았으니 망정이지 몇 시간만 더 지체됐으면 생명이 위험했을 응급환자들이다.

 

군대 다녀오신 분들 중에 발바닥에 봉와직염에 걸렸거나 걸린 것을 보신 분들 많을 것이다. 사회에서는 드문 봉와직염이 군에서 특히 발에 많은 이유는 군화 때문이다통풍이 잘 안되고 습기가 차기 쉬운데다가 세척도 용이하지 않은 군화에 몸에서 가장 감염에 취약한 발이 장기간 들어 있다 보니 세균 감염이 생기는 것이다. 그럼 군인도 아니고 더욱이 피의 흐름이 좋아서 감염에도 강한 구강 내에 감염 질환인 농양이 생기는 이유는?

치료 중에 중단한 근관치료, 치료시기를 놓진 치주 치료, 발치시기를 넘긴 치아의 잔존(이상 세가지를 묶어서 이하부터는 구강 내 감염원)이 원인이다.

 

우리가 평소에 세균 감염에 크게 걱정하지 않고 사는 이유는 몸의 방어 기전이 잘 발동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방어 기전 중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피부에 의한 물리적인 방어이다. 즉 신체의 표피 쪽에는 상당한 방어력이 있지만 내부 방어력은 생각 보다 감염에 취약하다. 그까짓 세균이라고 생각 할지 모르지만 단지 못에 찔렸다는 이유로 파상풍에 감염 되서 다리를 자른 '살인의 추억'의 한 장면을 생각해 보자. 실제로 혈관이나 내부 장기까지 감염이 확산되는 패혈증에 걸리면 병원에서도 속수무책인 경우가 있다.

 

건강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입 안에는 수 없이 많은 세균을 가지고 있다. 물론 우리 몸에 상주하는 모든 세균이 다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몸 안에 있는 대부분의 세균은 건강에 도움을 주는 존재들이다.

하지만 그것은 적절한 위치에 존재 할 때 이야기이다. 예를 들면 장에 도움이 되는 유산균은 구강 내에서는 충치의 원인 균으로 작용한다.

 

강아지에게 물리면 공수병을 걱정해야 하겠지만 만약 사람에게 물리면 그 보다 훨씬 많은 종류의 세균 감염 위험이 있다. 입 안에서는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세균이라 하더라도 내부 기관에서는 치명적인 감염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구강 내 감염원이 위험한 이유는 그렇게 세균이 많은 입 안과 세균에 취약한 몸 안 쪽 사이의 통로 역할을 함으로써 세균이 드나들 수 있도록 하기 때문이다. 젊고 건강하다면 신체 내부에 세균이 침입 하더라도 방어해 낼 수 있지만 몸이 약한 노인이라든지 당뇨병 등의 전신질환자, 과음이나 과로, 환절기 감기 등으로 몸이 약해진 상황이라면 어느 날 갑자기 문제가 될 수 있다.

어제까지 아무것도 아닌 구강 감염원이 오늘 아침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을 위의 사진처럼 만들 수도 있다는 얘기다. 농양까지 생긴 환자의 경우 이미 신체 방어기전이 세균에 완전히 패배한 상황이기 때문에 세균 증식은 기하급수적으로 이루어진다.

 

실제로 기자가 대학 병원에서 근무하던 시절 응급 환자를 보던 중에 조금 부어서 온 환자 별 생각 없이 항생제 처방해서 돌려보냈다가 정확히 3시간 후에 얼굴이 2배 크기로 부어서 달려오는 바람에 큰일날 뻔한 경험도 있다.

 

그럼 구강 내 감염원이 어떻게 신체에 위해한지는 잘 알았고 위의 환자들이 어떻게 진료를 받을지도 알아보자. 치과에서 하는 대부분의 진료는 염증의 정도를 낮춘 상태에서 진행한다염증이 심한 상태에서는 마취가 잘 듣지 않고 또 마취제가 들어갈 때 환자가 너무 고통스러워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위와 같이 농양까지 생긴 감염환자는 한가하게 투약하고 기다릴 시간이 없다는 것이다. 일단 세균의 개체수를 낮춰놓지 않으면 농양은 기하급수 적으로 커져서 잘못하면 정말 생명이 위태로울 수도 있기 때문이다.  

 

 

 

좀 부은 것 가지고 너무 과장한다고 생각된다면 위의 사진을 보기 바란다.

농양 환자의 CT 사진이다붉은 화살표로 표시한 가운데 까만 구멍이 식도와 기도다. 사람 의 피부는 바깥으로 부어오르는 것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당연히 안쪽 방향으로도 팽창을 한다. 이렇게 팽창이 계속 되다 보면 기도가 막히는 상황도 발생할 수 있고 이 경우 당연히 생명이 위험하다.

 

응급 구호의 원칙 ABC 중에 가장 먼저 오는 Aair way(기도 확보)이다숨을 쉬지 않으면 사람은 당연히 죽는다. 그래서 최악의 경우를 막기 위해 의학 드라마에 가끔 나오는 기관 절개술(Tracheostomy)을 받는 경우조차도 있다.

 

이런 이유로 정말 생명이 위험할 수도 있기 때문에 환자가 좀 고통스럽더라도 시술을 해야 한다. 잘 듣지도 않는 하지만 너무 고통스러운 마취가 끝나면 농양의 핵심까지 길을 내고 안의 고름과 염증 조직을 긁어낸다. 고름이 잘 빠지도록 관을 꼽고 하루에 2~3회씩 식염수나 소독액으로 내부를 세척해낸다.(마취 안 하고 하기 때문에 이것도 매우 아프다.)

 

그리고는 항생제 투여 후 예후 관찰치과의사로써 제일 힘든 것 중 하나가 농양 수술이다아무리 건장한 환자라도 고통을 참지 못해 어린 아기처럼 울부짖고 카레색의 고름에서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냄새가 난다.

 

다행히 기본적인 수칙만 잘 지킨다면 치성 농양은 좀처럼 발생하지 않는다.

뽑아야할 치아는 미루지 말고 제때 뽑고 잇몸 치료, 근관 치료만 제대로 받아도 저 지경으로 농양 생기는 것은 쉽게 예방할 수 있다.

 

경제적인 여유가 안 된다면 보철 수복은 나중으로 미루는 한이 있더라도 구강 내 감염원에 대한 치료는 미루지 말고 제때 받는 것이 좋다. 자연치를 유지한다는 핑계로 뽑아야 할 치아를 그대로 둔다거나 어차피 병원가면 뽑자할 테니 쓸 수 있을 때 까지 쓰겠다는 잘못된 인식이 치성 농양의 가능성을 높인다는 점 잊지 말자.

 

특히 환절기를 앞둔 이 즈음에(올라간 기온 때문에 왕성한 세균 활동을 겨우내 약해진 몸으로 맞서야 하는 봄철은 더 위험)는 명절때 찾아 뵌 김에 시골에 계신 부모님들 치아 건강에도 신경 쓰기 바란다.

 

 

 




글: 이승훈

필자 이승훈은 단국대학교 치과대학을 졸업하고

현재 이수백치과 원장으로 근무 중이다.

대한치과의사문인회 회원으로 진료와 더불어

개성이 강한 작품활동을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