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막걸리 바람이 분지도 벌써 꽤 되었습니다.한창 열기가 오를 땐, 저 혼자 속으로 이 바람도 조금 있으면 '불타는 조개구이'나 '안동 찜닭' 같은 신세처럼 금세 식을 걸로 예상했는데 여전히 거센 편입니다. (하지만 레드와인 열풍이 그랬듯, 막걸리 곡선도 정점을 지나 하향 추세인 것만은 분명하지요.)막걸리는 한계를 가지고 있는 술입니다.'국민의 술'은 될 수 있어도, 국주(國酒)가 되기엔 모자람이 많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배우 이승기가 국민 남동생은 되어도 국민배우가 되지 못하는 것과 같은 것이죠.)무엇이 문제일까요? 일단 제조가 너무 손쉽고, 재료가 흔히 구할 수 있는 것들이며, 최신식 제조시설이 아니어서 고부가 가치를 창출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아무리 유리병 용기에 담고, 캔에 담아도 소비자들은 일단 막걸리는 싼 것이라는 고정관념이 있기 때문에 가격 저항을 하게 됩니다.막걸리 제조공장(양조장)들도 그리 현대적이거나 최신식이 아닙니다. 쌀 창고에 쥐가 들락거리는 곳도 부지기수이고요. 게다가 술 자체가 맑지 않고 현탁액이며, 시간이 지나면 침전물이 가라앉기 때문에 정부 주도 의전에서 공식 만찬주로 부적격입니다. 이름에서부터 벌써 '막 걸은' 술이기 때문
본과 4학년 초 동급생에게 바둑을 배웠는데, 늦 바둑은 스승을 넘지 못한다더니 기껏 3급까지였다. 짠물로 소문난 인천·부산 기원에 가도 반타작은 했는데, 서울바둑치고 물 급수는 아니었는지 아니면 내기 바둑으로 유도하려는 위장술에 속은 것인지, 아직도 궁금하다. 넉 달 만에 3급은 한 세대 안에 일본과 맞수로 성장한 한국바둑에 비하면 자랑도 아니다. 단기간에 스승을 따라잡은(Catch-up) 공통점은 있다. 조남철-김인-조훈현-이창호-이세돌로 이어지는 계보 중, 1980년대 조훈현의 성취다.소설 정글북의 모델인 늑대소년처럼, 인간사회와 격리되어 10여 년 간 정지되었던 발달과정을 2년에 따라잡은 예는, ‘내재적 발달(Immanent Development)’이론으로 설명한다. 다시 그의 제자 이창호는 따라잡기를 뛰어넘어, 국내 외 고수를 모조리 물리치고, 십여 년 간 무적으로 군림한다. 순장바둑에서 얻은 육박전의 장끼에 더하여, ‘민족고유의 자산(Inherent Assets)’인 끈질긴 승벽(勝癖)의 승리다.바로 이러한 장점이 한강의 기적·민주화 기적에 이어 한류열풍으로 이어진 것이라고 믿고 싶다. 목숨을 걸고 수련한 고수들에 의하여 바둑의 수는 꾸준히 향상
저기 저 담벽, 저기 저 라일릭, 저기 저 별, 그리고 저기 저 우리집 개의 똥 하나, 그대 모두 이리와 내 언어 속에 서라. 담벽은 내 언어의 담벽이 되고, 라일락은 내 언어의 꽃이 되고, 별은 반짝이고, 개똥은 내 언어의 뜰에서 굴러라. 내가 내 언어에게 자유를 주었으니 너희들도 자유롭게 서고, 앉고, 반짝이고, 굴러라. 그래 봄이다. 봄은 자유다. 자 봐라, 꽃 피고 싶은 놈은 꽃 피고, 잎 달고 싶은 놈 잎 달고, 반짝이고 싶은 놈은 반짝이고, 아지랭이고 싶은 놈은 아지랭이가 되었다. 봄이 자유가 아니라면 꽃피는 지옥이라고 하자. 그래 봄은 지옥이다. 이름이 지옥이라고 해서 필 꽃이 안 피고, 반짝일 게 안 반짝이던가. 내 말이 옳으면 자, 자유다 마음대로 뛰어라.[자유]봄은 노란색으로 시작해서 은분홍으로 흩날리다 사라집니다. 봄은 가늘게 뿌리는 비나 엷은 바람 또는 들판 위로 피어오르는 흐릿한 아지랭이로 기억됩니다. 봄은 반팔 티셔츠를 옷장 속으로 불러 오고, 봄은 때론 그 발산할 데 없이 가슴 조린 젊은 날의 춘정을 떠올리게 합니다.아파트 단지에 벗꽃이 며칠째 지고 있습니다. 보도에 눈처럼 꽃잎이 쌓여 차들이 지날 때마다 한번씩 크게 들썩입니다.
해방과 함께 일본기원 초단면장을 들고 돌아온 조남철에게는, 한국기원 창설, 즉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당시 국내 고수들 수준은 두 점 접바둑쯤으로 짐작한다. 네 귀와 변에 열여섯 점을 미리 놓고 흑이 천원에 첫수를 두는 신토불이 ‘순장바둑’은 살벌한 육탄전 전술에 강하다. 그러나 일본은 이미 4백 년 전부터, 361로 어디에나 자유롭게 착수하는 전략적 포석 차원에 올라있었다.일찍이 도사쿠(道策)가 정립한 근대바둑을 슈사쿠(秀策)가 견실한 실리 운석(運石)으로 보강하고, 오청원·기타니(木谷) 합작품인 신 포석으로 화점(花點)이 부활하는 등, 최소한 두 차례 이상의 혁명(발상의 전환)을 경험하였다. 이처럼 도예(道藝)로 숭상하며 오랜 세월 갈고 닦은 일본과 한국의 실력 격차는 당연하였다. 오오다케(大竹)의 소위 우주 류(宇宙 流)에서 임해봉(林海峰)의 두터움으로 이어진 화려한 공중전은 물론, 중국식 포석도 3 연성의 변형이니, 모두 신포석의 연장선상에 있다. 한국기원의 처음 20년은 조 국수의 독무대였는데, 그 아성을 김인 국수가 접수한다. 김인을 일본바둑으로 보는 시각이 있으나, 입단 후에 1년 유학이 전부이니, 순수 토종이 맞다. 뛰
치과에 혼자 씩씩하게 들어오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특히나 처음 방문 때는 치과 공포심을 이기고자 반드시 누구와 동반하기 마련입니다. 어린아이는 부모님과 그리고 연로한 노인들은 딸이나 며느리 혹은 드물긴 하지만 효성이 지극한 아들과 같이 옵니다. 겁이 많은 젊은 사람이라면 먼저 치료를 받았던 친구를 동반하지요. 팔순이 넘으신 어르신들은 부부가 손잡고 들어오는 경우가 많은데, 괜히 가슴 한쪽이 시려올 때가 많습니다. 제 3의 젠더인 '아줌마'들은 한 사람이 치료받는데 단체로 와서 대기실을 점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인스턴트 무료 커피 역시 같은 숫자로 나갑니다. 그런데 아줌마들 심리가 참 묘합니다. 환자가 거의 없을 땐 원래 치료 받기로 예약이 된 분만 받고 가는데, 환자가 미어터지는 날은 꼭 자기도 보고 가겠다는 이상한 심리가 작동합니다. 가뜩이나 바쁜데 아줌마들 하소연 들어주는 일도 보통이 아닙니다.특수한 경우지만, 종교인들은 어떨까요?대처승이 아닌 대개의 스님들은 혼자 살기 때문에 자기 관리에(특히나 구강건강) 실패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신부님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목사님들은 가정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배우자인 사모로부터 간섭 겸 관리를 받아서 대체로
드라마 ‘응답하라 88’ 최종회(20)의 엔딩 크레딧이 흐른 뒤에 마지막 멘트는, “응답하라, 나의 쌍 8년도, 내 그리운 날이여!”다. 1988년은 대한민국 국민에게 감격의 한 해였다. 그러나 필자세대의 쌍 8년은 단기(檀紀) 4288년 즉 1955년이다.그 해에 UNKRA (UN 한국재건 단)가 문 닫고 정부에 부흥부(復興部)가 발족하였다.내 발로 일어선 이때가 개발연대기(年代記) 시발점으로 삼기에 딱 좋은 해 아닌가?허허벌판 폐허가 하루가 다르게 변하던 역동의 시절을 지나면서, 누가 좀 철 지난 얘기를 하면, “야, 지금이 쌍 8년도인 줄 알아?” 면박을 주는 것이 유행어였다.단기 88년에 홀로서기 시작하여 서기 88년 민주화의 첫걸음에 맞춰 세계올림픽을 주최했으니, 과연 세대차는 물론 표현의 차이까지 느끼게 해준 33년의 세월이었다.복고주의의 복고라면 restore·revive·react·recover 등 다양한 동사가 있는데, 정치나 유행패션이 아니라 “그 시절 추억에 잠기기”와 비슷한 말은, 20%쯤 부족한대로 relive다. 좋게 보면 감정이 풍부한 장점이나, 현실도피로 흐른다면 독이 된다.사회와 담쌓고 화려한 과거 속에 살아가는 왕년의 스타
사람들이 세상을 이해하는 방법으로 미음에 의존하는 종교적인 관점과 어떤 통팔에 의해서 이해하려는 철학적 관점이 있으며 실험과 관찰에 의한 과학적 관점으로 세상을 이해하고 인간관계를 형성하면서 살아간다. 특히 과학적 관점에 의한 여러 가지 벌칙들은 미래를 예측하게 하고 삶을 편리하고 풍족하게, 안전하게 만들어 주기 때문에 유용하고 일관된 지식의 체계를 이루고 있다.우리는 세상 모든 일을 과학적 지식에 의해서 판단하고 접근하려는 경향 때문에 과학만능주의라고 성토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그로인해 인간성의 상실을 가져 온다는 표현으로 경멸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과학적 사고방식을 선호하는 사람들은 모든 현상을 인과관계로만 파악하려 들고 그 관계가 일치되지 않을 경우 불합리하다고 생각한다. 과학적 사고가 아닌 감성적인 판단에는 신뢰성이 없는 것으로 치부해 버리기 때문에 과학적 사고와 인문학이나 예술적 사고와는 항상 갈등을 일으키게 마련이다.과학적 사고 방법은 자연법칙을 추출해내고 확인하는 데는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하지만 인간의 정신 세계에 대해서는 과학적 법칙으로 설명하기에는 너무나 미천한 부분이 많다.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지식은 엄밀히 정의되고 실험으로 검증된 지식
추억이란 오랜 세월에 헹궈낸 앙금이어서 엄마 품처럼 푸근하고, 슬픔과 아픔은 머릿속의 지우개로 조금씩 지워져 모난 곳이 없다. 밉던 곱던 그 시절에 가깝던 지인들은 세월의 뽀샵(Photo shop)을 거쳐 선남선녀가 되는 것이다. 19에서 20세기 초까지 미국 쇼 무대는 민스트렐(Minstrel)이 스타였다. 중세 이후 수백 년간 활약한 유럽의 노래꾼에서 유래한 말로서, 백인이 검정 칠을 하고 흑인으로 출연하는 코믹 뮤지컬의 원조다. 영화 ‘Jolson Story: 1946’를 보면 당시 인기를 짐작한다.Minstrel 작곡가 Bland가 만든 “내 고향으로 날 보내 주.”는, 미국의 슈베르트라는 포스터의 전통에 따른 사투리와 멜로디의 흑인민요다. 평생 허리가 휘도록 노예로 일한 늙은 흑인이, 태어나 자란 버지니아 목화농장으로 보내달라고 애원한다. 포스터(Stephen Foster: 1826-1864) 작곡 “Old Black Joe”에서 조는, “내 마음이 젊고 밝던 시절(when my heart was young gay)은 가버리고”라며 운명에 순응한다.윤석중의 노랫말 “기러기 떼 기럭기럭 어디서 왔니?”로 익힌 “Massa’s in the cold,
째보는 언청이를 말합니다. 그것도 우리가 전공 분야인 입술 언청이, 그러니까 한자어로는 구순열(어떤 지휘자 부인과 이름이 같군요.^^)입니다.군산과 목포엔 째보선창이라는 부두가 있습니다. 과거엔 흥청거리는 부두였지만, 지금은 매립되거나 폐항구처럼 되었습니다. ?째보선창은 마치 입술이 찢어진 모양새로 안으로 움푹 들어온 선창이라는 말이겠지요. 군산의 째보는 이곳 선창을 쥐락펴락했던 객주가 언청이라서 그렇게 불렀다는 이설도 있긴 합니다.그런데 째보선창에 관한 문학적 기록은 꽤 됩니다. 멀리는 채만식의 '탁류'가 대표적이지요. 소설에서 작가는 째보선창가의 미두장에서 현물투기를 하는 인간 군상들과 일제수탈을 고발합니다. 가까이는 박범신 선생의 소설 '소금'에도 나옵니다. 원문을 옮겨보면, 탁류에 대한 언급도 있습니다.'땅콩밭을 처분하고 고향인 세도를 떠나 군산 째보선창으로 이사한 것은 내가 고등학교에 입학하던 해였다. 채만식의 소설 ‘탁류’에서 가산을 모두 탕진한 ‘정주사’가 “두루마기 둘러쓰고 풍덩 물로 뛰어들어 자살이라도 해볼까” 하고 늘 탄식하던 곳이 바로 째보선창이었다.한때는 고군산열도 일대에서 들어온 고깃배들과 김제평야의 질 좋은 미곡들이 모두 모여들어 그
안익태씨 이전에 애국가는 스코트랜드 민요 ‘올드랭자인’의 곡을 빌려 썼다.Auld lang syne은 영어로 Old long since, 즉 “그리운 옛 시절”로 Those were the days! 와 통한다. 추억은 누구에게나 가슴 뭉클한 아픈 손가락이니 ‘추억장사’는 밑지는 법이 없다. ‘응팔’의 대박이 드라마의 장군이라면, ‘오빠생각’은 영화계의 멍군이다.영화 국제시장이 관객 1.400만 명을 넘겼을 때 예상된 추억상품의 수작이다. 국제시장은 흥남철수작전에서 시작하여 광부·간호사의 서독 파송(派送) - 월남 파병 – 중동 건설로 이어지고, 1983년에 “이산가족 찾기”의 눈물바다로 정점을 찍어, 6·25의 잿더미에서 기적을 이룩한 대한민국의 ‘개발연대기’였다.‘오빠생각’은 단순한 연대기(年代記)를 넘어, 그 기적을 가능케 한 우리 민족의 저력, 즉 강한 연대감(공동체 의식)과 불굴의 자립 의지를 그린 ‘작품’이다. 중학생 때 본 전송가(Battle Hymn, 1957)는 에이즈 합병증으로 사망한(1985) 미남 스타 록 허드슨 주연의 A급 영화다. 딘 헤스대령은 1950년 12월 중공군에 쫓기는 급박한 1·4후퇴 상황에서, C-47 수송기 15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