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가 살았던 때가 지금으로부터 2500여 년 전이었으니까 예수님보다도 500살 연상이었고 막내격인 마호메트 아저씨와는 무려 천 살 가까이 차이가 납니다. 바로 한 세대 위에 석가모니가 계시지만 거의 호형호제급이라고 보면 됩니다. 사정이 이러하니 당시 중국이 아무리 세계최강국이었다 할지라도 일반 서민들의 문화와 풍습은 상상하기 힘든 미개 수준이었음은 당연합니다. 심지어 당시에 인육을 먹었다는 기록들도 심심찮게 있고, 반역죄를 저지른 놈을 죽인 뒤 젓갈을 담가 그 후손들에게 먹였다는 이야기도 고서에 등장합니다.중국 사람들 '구라'가 세기로는 알아주긴 합니다만, 공자의 키가 무려 2m 80cm(9척 6촌)이라는 기록이 있고 앞이마가 펑퍼짐한 언덕 같다고 해서 이름을 구(丘)라고 했다는군요. 그러니까 뻥을 감안한다면 얼마 전 영화 '공자'의 주인공이었던 주윤발과 얼추 비슷한 키가 아니었을까요?공자의 아버지는 숙량흘이라는 사람이었는데 공자를 낳을 때 이미 70살이 넘었을 때고 공자 어머니는 아직 스무 살이 되지 않았으며, 기록에 따르면 '야합'을 해서 낳았다고 하니 지금으로 치면 '미성년자 혼빙간'.... 뭐 이런 거를 통하여 출생하지 않았을까 여겨집니다.잘 알려
혹시 초밥(스시)을 좋아하시고 또 영화까지 좋아하십니까? 만약 그러하시다면 케이블 방송이나 여러 매체를 통해 다운받아 볼 수 있는 영화를 하나 소개하고자 합니다. 지난 주말 감기몸살로 꼼짝을 못하는 바람에 한 번 더 보았는데 역시나 감동 그 자체입니다. 스시 하나 만드는데도 저렇게 전력을 다하는데 저는 치과를 너무 ‘날로 먹고’ 있는 건 아닌지 반성도 되고요.1. 스시제가 특별히 좋아하는 음식을 굳이 꼽으라면 냉면과 초밥(스시) 그리고 충무김밥 정도입니다. 하지만 제대로 만드는 냉면집들은 집에서 너무 멀고, 스시도 서울로 가야 하거나 바다까지 건너야 할 뿐더러 게다가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비쌉니다. 충무김밥 역시 멀리 통영까지 가야 하니 약식으로라도 먹으려면 명동까지 내달려야 합니다.그런 음식들은 대충 아무데서나 먹으면 될 일인데 굳이 그렇게까지 하나 하며 저를 이상한 사람 취급도 하지만, 나름 식도락가연 하는 체면에 그렇게 호락호락 몸을 허락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위의 세 음식을 가만 따져보면, 비주얼 상으로 화려하지도 않고 절대 복잡하게 생겨 먹은 음식들이 아닙니다. 냉면의 경우도 찬 육수에 국수를 말아 먹으면 되는 것이니까, 시중에 파는 ‘청수냉면’
홍어 이야기를 하자니 갑자기 김주영 작가의 '홍어'라는 소설이 생각납니다. 주인공의 아버지가 워낙 바람둥이여서 별명이 홍어라고 했던가요? 그러다 결국은 마지막에 부인으로부터 처절한 응징을 당하고 맙니다만, 어쨌든 홍어는 수컷의 거시기가 쌍으로 두 개여서 바람둥이를 상징한답니다. 요즘은 홍어의 생식기를 회로 먹으면 오도독하면서 쫄깃한 식감에 제법 인기가 많다지만, 원래는 암컷을 더 비싸게 쳐준다고 합니다. 그래서 어부들이 잡자마자 수컷의 거시기를 떼서 암놈처럼 팔았다고 하더군요(일종의 성전환수술이라고 할 수도 있겠네요). 그래서 나온 말이 '만만한 게 홍어 X'이구요. 사실 홍어 맛의 핵심은 첫째로 코에 있고요, 둘째가 날개, 셋째가 꼬리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홍어 거시기와 애도 인기라지요? 보신탕집에 가면 단골들에게 ‘만년필’을 서비스로 내주는 것처럼, 홍어식당에서도 홍어 생식기는 주인장과 친해야 나오는 특식입니다.가끔 낚시로 홍어를 잡아서 들어 올리면 홍어 두 마리가 같이 올라오는 경우도 있다는데 이는 홍어가 교미 중에 잡힌 것입니다. 수컷의 날개 끝 뾰족한 부위로 암놈을 움직이지 못하게 꽉 잡고 있기 때문이고, 암놈은 낚시의 먹잇감을 놓치
제가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훨씬 전에 수원으로 이사를 왔으니 수원 사람이 된지도 벌써 근 오십 년 가까이 되는 것 같습니다. 물론 지금 살고 있는 동네는 수원 인근이긴 하지만, 초중‧고를 수원에서 나왔고 또 치과도 개업 이래 수원을 떠난 적이 없으니 오리지널 수원 사람이라고 우겨도 누가 뭐라 그럴 사람은 없습니다. 심지어 제가 지금 사는 용인의 유명 인사나 정치인들은 하나도 모르지만, 수원을 배경으로 정치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미주알고주알 뒷담화도 가능할 정도입니다. 제가 초등학교 5~6학년 때 수원 인구가 대략 12만 정도였는데, 이는 전국 10대 도시에 간신히 들까말까 할 정도였으며 목포, 전주와 엇비슷했습니다. 그러나 현재는 그 때보다 무려 열 배나 커졌습니다. 땅덩어리까지 커졌으면 좋으련만 인구만 늘었으니 변두리는 죄다 아파트 단지로 들어찼고 중심가는 사람들로 복작복작합니다. 인근 화성시와 오산을 수원과 통합한다면야 금상첨화겠지만, 지역 공무원들의 이기주의와 토호 세력들의 각종 이권이 개입된 문제인지라 지지부진합니다.제가 어렸을 때는 속칭 이중 언어(Bilingual)를 구사했습니다. 그러니까 집에서는 경상도 사투리를, 학교에서는 표준말을 썼던 것이죠.
소동파가 그랬던가요? 복어는 '죽음과도 바꿀 수 있는 맛'이라고 말입니다. 그 양반의 시 중에는 복사꽃이 필 무렵에 바다에서 강으로 올라오는 복어에 대한 것도 있는데 이는 복어 종류 중에 황복을 이릅니다(대개 복어를 먹는 시기는 겨울철인데 황복 만큼은 봄인 게지요). 복어가 성질이 나서 배를 불룩이거나 살이 통통하게 오른 모습이 돼지를 닮았다 하여 하돈(河豚)이라고도 하는데 그 배에서 나는 소리도 돼지 꿀꿀 소리와 비슷합니다. 쥐가 나무를 갉아 먹는 듯한 '빠각빠각' 소리를 내는 것을 들은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황복을 우리나라에서만 고급으로 쳐주는데 실제로 맛은 중하급입니다. 지금은 작고하신 프라자호텔 뒤편 '송원'의 숙수 김송원옹께서도 예전에 저희들에게 황복에 대해 좋은 평가를 하지 않더군요. 서시유(西施乳)라는 말도 복어를 표현할 때 쓰는 단어입니다만, 순두부 같은 복어의 정소(이리)를 이르는 말인지 복어의 껍질과 점막 사이의 부드러운 살을 이르는 것인지 분명치 않습니다. 서시는 월나라의 경국지색으로 오나라의 부차에게 끌려가 미모 하나로 그를 망가뜨린 여인입니다. 그런데 그녀의 젖가슴을 만져보지도 못한 사람들이 복어의 이리(혹은 살)에 비유하다니 저승
산부인과도 그렇겠지만 치과의사라는 직업도 그리 향기로운 직업은 아닙니다.평소 구강을 청결하게 유지하시는 분, 담배를 피우지 않는 분, 상큼한 향수라도 뿌리고 오는 중년... 이런 분들만 치료한다면야 얼마나 행복하겠습니까만, 사실 대다수 환자분들은 그렇질 않습니다. 심지어 치과에 와서 담배를 피우지 않는 척 하는 여성분들도 꽤 계시지만 셜록홈즈 이상의 감각을 가진 저를 속일 수는 없습니다.꼭 입안에서 나는 냄새가 아니더라도 단백질로 구성된 머리카락이나 옷에도 냄새 입자가 흡착하기 때문에 가까이서 치료를 하다보면 본의 아닌 고통(?)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이런 상황의 대표적인 경우가 바로 치주질환이 심하여 곪은 냄새가 나는데 더하여 골초이신 분들입니다. 경험하신 분도 계시겠지만, 밀폐된 택시를 탔는데 잇몸도 나쁘고 담배에 쩔은 기사분이시라면 그야말로 생지옥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죽하면 제가 뭘 두고 왔다고 거짓말을 하고 중간에 내리기까지 했겠습니까? 시장의 어물전에 생선을 파시는 분들한테는 죄송한 말이지만, 그 분들에게도 약간 동물 사체(?) 썩은 냄새가 납니다. 물론 머리카락과 옷에서 나는 것이지만, 저는 숨을 30초 씩 참다가 쉬다가 하며 끝까지 치료를
연애를 할 때도 그렇지만, 남자들 사이에 새로운 관계를 만들 때도 그렇습니다. 연애가 성공하려면 처음 몇 달 동안 매일 만나주는 일 정도는 기본 중의 기본이지요. 결국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이란 초장에 굳히기가 제대로 들어가야 뭔가가 이루어진다는 사실입니다. 매사에 뜨뜻미지근한 사람은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우물쭈물 하다가 급기야 애인도 빼앗기고, 취업 자리건 승진 자리건 결국은 남의 차지가 되고 맙니다. 정치가로 혹은 기업가로 성공한 사람들을 가만히 살펴보면 결단성과 과단성이 뛰어난 경우를 자주 봅니다. 음식점에서도 단골이 되어 대접을 잘 받으려면 주인장에게 뚜렷한 각인을 시켜줘야 합니다. 두어달에 한 번 씩 가뭄에 콩 나듯 조용히 왔다가 사라져봐야 주인이 기억할 리가 없지요. 최근 몇 주 동안 열심히 다닌 횟집이 있습니다. 사실 이곳은 식사를 할 만한 메뉴가 거의 없습니다. 다른 횟집들에서 쯔께다시(덤찬)로 나오는 놈들 위주로 메뉴가 구성되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매운탕과 이것저것 섞어서 밥을 먹는 사람도 봤지만 아무래도 이 횟집은 2차로 적당합니다. 근처 피칭웨지 거리에 있는 단골 고깃집에서 배를 채운 뒤 아쉬움을 달래기 위한 마무리 착지 코스입니다. 횟집
예전 고흥 나들이 때 인연을 한 번 맺은 뒤로 고흥 이야기만 들리면 마치 제 일처럼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고향도 아니면서 나로호 발사 성공을 고흥 사람 이상으로 좋아했고, 그 동네 출신의 인사동정까지 챙겨 볼 정도입니다.고흥은 지형상으로 '캥거루 불X' 모양으로 생겼습니다. 좌우로 득량만과 여자만이 있어 각종 해산물의 보고이기도 하지요. 고흥반도에 딸린 소록도 역시 일제때부터 나환자촌으로 널리 알려져 있고, 요즘은 외나로도와 거금도까지 다리로 연결이 되어서 많은 관광객들과 식객들이 찾는 곳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캥거루 불X의 목 부분 바로 위에 위치한 곳이 벌교읍인데, 이곳이 마치 고흥의 목줄을 쥐고 있는 꼴입니다. 보성, 벌교는 고흥보다는 여수, 순천, 광주, 목포 등 외지로 나가기가 편합니다. 아무리 고흥에 유명한 뭐가 있다고 하더라도 조정래의 태백산맥에 등장하는 '벌교 꼬막'에 눌려 제 대접을 못 받아왔습니다. 오죽하면 고흥 학생들이 외지로 나갈 때면 터미널이나 기차역에서 벌교 주먹들한테 매를 맞고 다 털리곤 했겠습니까. 들리는 풍문에 따르면 고흥 지역의 사람들이 하도 당하다 보니 터미널 같은 곳에 고흥의 힘쎈 장사들을 파견 보내 학생들을 보호하려
얼마 전 건축사무소 '공간'이 부도가 났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착잡했었습니다.웅장하다 못해 두려움까지 느끼게 만드는 H 그룹 빌딩과 조선시대 왕들의 거처였던 창덕궁 바로 옆, 비록 자그마하지만결코 주눅 들지 않고 꼿꼿하게 있었는데 그만 세월과 현실의 벽을 넘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다행히도 저명한 아트 컬렉터 한 분이 구입을 해서 미술관으로 사용한다고 하니 작은 위로가 되었지요.요즘은 승효상이라는 양반이 1세대 건축가인 김중업과 김수근 선생의 뒤를 잇는다고는 하지만, 산업화 시대 혹은 개발 시대의 선배들과는 약간 스타일이 다릅니다. 아무래도 김중업과 김수근 선생은 국가에서 의뢰한 대형 건축물 작품이 많습니다. 물론 일반 주택을 비롯하여 작은 건축 작품들도 있지요. 헌데, 그들의 생애와 작품 세계를 체계적으로 정리한 도감까지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승효상씨는 널리 알려 진대로 '빈자의 미학'이 그의 건축철학입니다만 약간은 느닷없어 보입니다. 그렇게 비싼 작가가 부자들의 의뢰를 받아 건축물을 만드는데 가난한 사람의 미학이라니요. (악어의 눈물도 아니고 말입니다.)거추장스럽고 화려한 작품이 아니라 대략 원초적 기본 얼개에 충실한 작품을 하겠다는 뜻이겠거니 혼자 짐작은
남아프리카공화국(이하 남아공) 하면 생각나는 것들은 무엇이 있을까요?아파르트헤이트, 골드, 다이아몬드, 희망봉, 보어전쟁, 신세계 와인, 골프천국, 어니 엘스, 라티프 굿센, 게리 플레이어, 요하네스버그, 케이프타운, 썬시티, 블루 트레인, 투투 주교, 2010년 월드컵, 최초의 인공심장 수술... 그러나 넬슨 만델라를 빼고는 남아공을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최근 그 '어른'께서 타계하셨고, 모든 나라의 지도자들이 아프리카 대륙 남쪽 끝으로 그를 조문하기 위해 모여들었습니다. 장례를 통해 갈등을 풀고 화해를 하는 이청준의 소설 '축제'의 내용처럼 미국의 오바마와 쿠바의 라울 카스트로가 악수를 하였고, 남아공 사람들도 그 엄숙한 장례식장을 오히려 노래와 춤이 있는 축제의 장으로 만들더군요. 그러니까 한 위인의 죽음은 단지 슬픔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차원으로의 승화를 준비하는 과정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디다. 제가 만델라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나 존경하는 정도는 일반 사람들과 비슷할 겁니다. 그러나 남들과 다른 점은 제가 남아공을 무려(?) 두 번이나 방문을 했었고, 심지어 만델라가 투옥되었던 로벤섬과 그 안의 교도소를 방문했던 기억 때문에 좀 더 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