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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창인의 밥집 이야기

죽음을 무릅쓰고라도...

[석창인의 밥집 이야기]- <18>

소동파가 그랬던가요? 복어는 '죽음과도 바꿀 수 있는 맛'이라고 말입니다. 그 양반의 시 중에는 복사꽃이 필 무렵에 바다에서 강으로 올라오는 복어에 대한 것도 있는데 이는 복어 종류 중에 황복을 이릅니다(대개 복어를 먹는 시기는 겨울철인데 황복 만큼은 봄인 게지요). 복어가 성질이 나서 배를 불룩이거나 살이 통통하게 오른 모습이 돼지를 닮았다 하여 하돈(河豚)이라고도 하는데 그 배에서 나는 소리도 돼지 꿀꿀 소리와 비슷합니다. 쥐가 나무를 갉아 먹는 듯한 '빠각빠각' 소리를 내는 것을 들은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황복을 우리나라에서만 고급으로 쳐주는데 실제로 맛은 중하급입니다. 지금은 작고하신 프라자호텔 뒤편 '송원'의 숙수 김송원옹께서도 예전에 저희들에게 황복에 대해 좋은 평가를 하지 않더군요.

 

서시유(西施乳)라는 말도 복어를 표현할 때 쓰는 단어입니다만, 순두부 같은 복어의 정소(이리)를 이르는 말인지 복어의 껍질과 점막 사이의 부드러운 살을 이르는 것인지 분명치 않습니다. 서시는 월나라의 경국지색으로 오나라의 부차에게 끌려가 미모 하나로 그를 망가뜨린 여인입니다. 그런데 그녀의 젖가슴을 만져보지도 못한 사람들이 복어의 이리(혹은 살)에 비유하다니 저승의 부차가 벌떡 일어날 법도 합니다. 하지만 복어회가 생선회 중에 가장 쫄깃하므로 아마도 정소를 불에 살짝 구웠거나 지리에 넣어 익힌 맛을 표현할 때 서시유라 하지 않았을까요?

요즘은 복어 철이 따로 없습니다. 바로 양식 때문입니다.

조금 다른 얘기인데, 옛날에는 ''자가 들어가는 직업을 최고로 쳐주었지만, 정부가 그런 직업일수록 그쪽 대학 학과를 많이 만들거나 합격생을 대거 배출시켜 금값을 똥값으로 만들어버립니다. 대표적인 직업이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 변호사, 공인회계사 등입니다. 심지어 공인회계사 같은 경우는 아예 회사에 취업을 할 때 자격증을 숨긴다는 소문도 있습니다. 공인회계사인 것이 알려지면 귀찮은 일만 많이 시키고, 후에 문제가 되면 책임을 지라고 하고, 자격증 수당은 겨우 일이십만 원만 주니 말입니다.

생선과 같은 해산물도 옛날에 귀하고 비싼 것들이 요즘은 똥값이 된 게 참으로 많습니다. 이 모든 것이 양식이 성공하면서부터입니다. 광어가 양식이 되면서 도다리가 더 비싸지고, 전복이 양식이 되면서 서비스로 끼워주던 오분작은 금값이 되었습니다. 복어도 마찬가지죠. 심지어 황복도 양식이 되니 사철 즐길 수 있어서 좋긴 하지만, 이게 양식인지 자연산인지 소비자는 구별할 수가 없다는 점이 문제입니다. 오로지 주인장을 믿을 수밖에 없습니다. 신학에서 흔히 이야기 하는 '알고 믿는 게 아니라 믿고 아는 것'을 횟집 버전으로 바꾸어 '알고 먹는 게 아니라, 믿고 먹는 것'입니다.

 

양식이 되면서 복어의 독이 사라진 것은 일면 좋은 점도 있지만 아쉬운 점도 많습니다. 일본인들은 아주 약한 독성을 오히려 즐긴다고도 합니다. 입술이 약간 파르르 마비되는 정도 말입니다. 물론 그러다가 한방에 훅 가는 경우도 있습니다만... 자연산 복어의 독은 그들의 먹이에서 만들어진다는군요. 그런데 양식장에 자연산을 몇 마리 풀어 놓으면 양식에도 독이 만들어진다고 하니 신기하기까지 합니다.

복어의 독에 대해서는 워낙 연구가 많이 되어 있고 알려진 게 많아서 더 이상 언급할 것은 없지만, 몇 해 전 골프 비거리 늘리려고 캡술에 복어독을 넣고 나눠 먹은 사람들이 승용차에서 같이 죽은 경우가 있었지요. 무슨 근거로 비거리가 늘어나는지 아직도 요령부득입니다. 복어의 독은 신경독이긴 하지만, 결국 호흡근육이 마비되어 죽게 됩니다. 그러니까 일단 응급실에 도착하여 인공호흡기만 부착하면 99%회복이 가능합니다. 괜히 쓸데없는 민간요법을 찾다가 시간을 놓치는 경우가 많지요.

우리나라 부관연락선이 운항하는 일본의 시모노세키가 바로 복어의 본향입니다. 시모노세키는 일본 본섬의 맨 아래쪽이고 현해탄을 사이에 둔 항구입니다. 옛 죠슈번인 야마구치현에 속해 있는 도시이기도 하고 여러모로 우리와 악연이 많은 곳입니다. 이웃한 하기시가 바로 요시다 쇼인이라는 정한론 창시자의 고향이기도 하고요(쇼인도 복어를 먹지 말라는 글을 썼다고 합니다). 아베 같은 인간도 야마구치현이 그의 정치적, 정신적 고향입니다.

복어와 시모노세키는 여러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임진왜란을 일으키고자 사무라이들과 군사들을 시모노세키에 집중시켰는데 그곳에 머무르는 동안 복어를 먹다가 죽은 사람이 무척 많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사건 이후 복어 금식령이 내렸다는군요. 이후 정확하게 300년 후인 1892년 초대 조선총독인 이토 히로부미가 시모노세키의 춘범루라는 곳에 머물다가 폭풍우가 거세어 떠나지도 못하고 심지어 먹을 것이 떨어지자 결국 복어를 먹었는데 그 맛이 기가 막혀서 복어 금식령을 해제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춘범루가 바로 공식적인 첫 복어요릿집인 것입니다. 아이러니한 것은 청일전쟁에서 진 중국의 이홍장과 승전국인 일본의 이토 히로부미가 조약을 맺은 곳이 바로 춘범루였는데 이 조약 이후에 일본은 노골적으로 조선을 병합하려고 했으니 이래저래 시모노세끼와 춘범루 그리고 복어는 우리나라와 슬픈 스토리를 품고 있다고 봐야겠군요.

그렇다면 과연 복어를 먹어야 할까요? 아니면 먹질 말아야 하나요?

 

이덕무라는 조선의 실학자도 그 집안의 가훈을 '북한산 백운대를 올라가지 말고, 복엇국을 먹지 말라'고 했다니 결국은 사소한데 목숨을 걸지 말라는 이야기 아니겠어요?

그러나 저는 소동파의 의견을 따르렵니다. 죽음과도 바꿀 맛이라 했으니 말입니다.

  

   황복

                                                           송수권

살구꽃 몇 그루가 피어

온 마을이 다 환하다

이런 날은 황사바람 타고

자꾸만 장독대에 날리는 살구꽃잎....

갈대 움 트는 것 보러

앞 강변에 나간 마을 사람들

혈기 방장한 나이로 복쟁이떼 건져다

날회를 먹고

떼초상 난 적 있었지

지금쯤 금강 하류

서시유방(西施乳房)처럼 매끈한 배때아리 뒤집으며

황복떼 오를까

황산옥(黃山屋)에 들러 자는 듯 먹어 봤음

 

 복어회 한 접시가 나왔습니다

 

 

  자연산 밀복입니다. 꼬리지느러미로 히레사케를 만들어 마시면 금상첨화겠군요.

 

    

  역시 씹는 질감이 다른 어종과는 확연히 다릅니다. 다금바리(자바리)보다 훨씬 쫄깃하고 담백하지요.

 

 

-어의 정소인 이리입니다. 그냥 회로도 먹고, 살짝 구워서 먹어도 좋습니다. 나중에 지리에도 넣어 줍니다.

간혹 곤이(고니)와 애 그리고 이리를 헷갈려 하는 분들이 많은데, 복어 곤이는 독이 있어 먹으면 죽습니다. 여하튼 수컷 정소를 이리, 암컷 난소를 곤이(고니)라 이르고 애는 생선의 간을 뜻합니다.

 

밀복과 졸복의 크기 비교입니다.

 

   맑은탕(지리)에 넣을 재료들입니다.

 

    한소금 끓여 떠먹으면 술이 확 깹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