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04 (토)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석창인의 밥집 이야기

진료실에서의 음식냄새

[석창인의 밥집 이야기]- <17>

산부인과도 그렇겠지만 치과의사라는 직업도 그리 향기로운 직업은 아닙니다.

평소 구강을 청결하게 유지하시는 분, 담배를 피우지 않는 분, 상큼한 향수라도 뿌리고 오는 중년... 이런 분들만 치료한다면야 얼마나 행복하겠습니까만, 사실 대다수 환자분들은 그렇질 않습니다. 심지어 치과에 와서 담배를 피우지 않는 척 하는 여성분들도 꽤 계시지만 셜록홈즈 이상의 감각을 가진 저를 속일 수는 없습니다.

꼭 입안에서 나는 냄새가 아니더라도 단백질로 구성된 머리카락이나 옷에도 냄새 입자가 흡착하기 때문에 가까이서 치료를 하다보면 본의 아닌 고통(?)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이런 상황의 대표적인 경우가 바로 치주질환이 심하여 곪은 냄새가 나는데 더하여 골초이신 분들입니다. 경험하신 분도 계시겠지만, 밀폐된 택시를 탔는데 잇몸도 나쁘고 담배에 쩔은 기사분이시라면 그야말로 생지옥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죽하면 제가 뭘 두고 왔다고 거짓말을 하고 중간에 내리기까지 했겠습니까?

시장의 어물전에 생선을 파시는 분들한테는 죄송한 말이지만, 그 분들에게도 약간 동물 사체(?) 썩은 냄새가 납니다. 물론 머리카락과 옷에서 나는 것이지만, 저는 숨을 30초 씩 참다가 쉬다가 하며 끝까지 치료를 해드립니다. 열심히 일하면서 얻은 냄새는 비록 고약하긴 하지만, 고단한 삶의 냄새이니까요.

 

열악한 구강상태, 독특한 체취, 흡연 등을 제외하고도 저희들을 괴롭히는 것이 또 있습니다.

바로 음식 냄새입니다. 특히나 오전 첫 환자들과 오후 2시 이후 환자들에게서 나는 음식 냄새가 그러합니다. 대개는 치과에 오기 전에 양치질을 하시고 오시지만, 한 번의 양치질로도 냄새가 잘 없어지지 않는 음식들이 꽤 있습니다. 그중 최악이 아침부터 불고기를 드시고 오는 경우입니다. 불고기에 들어가는 특유의 마늘냄새는 모든 냄새를 압도합니다.

요즘 읽고 있는 일본 만화에도 그런 내용이 나오더군요. 주인공이 가다랑어 회와 마늘 다진 것을 앞에 두고 전전긍긍 할 뿐 젓가락을 대지 못하는 겁니다. 그 이유가 다음날 오전에 비지니스 상담이 있기 때문이라네요. 사실 가다랑어의 비린내를 잡기 위해 마늘을 먹는 것인데, 하루가 지나도 마늘 냄새가 체액을 통해 나기에 일본 사람들이 겁을 내는 것입니다. 홍어도 만만치 않습니다. 저녁에 홍어회를 먹고 자고 일어났는데 침구에 홍어 냄새가 배어있을 정도이니까요.

우리가 해외에 가면 외국인들이 저희들 몸에서 마늘 냄새가 난다고 하지만 저희가 전혀 인식을 못하고 있듯이, 외국인들의 노린내도 그들 스스로는 절대 모르고 우리만 느낄 뿐입니다. 그래서 외국인들을 만날 때는 조금 진한 화장품이나 향수가 필요한 것입니다.

 

불고기와 쌍벽을 이루는 음식은 김치찌개입니다. 그것도 묵은지 김치찌개라면 거짓말 조금 보태서 호흡 곤란 증세까지 생깁니다. 게다가 식사를 할 때 입고 있던 옷 그대로 치과에 오면 입안과 입 밖 양 쪽에서 저를 협공해 옵니다.

물론 저도 점심 때 김치찌개나 부대찌개를 먹을 때가 많습니다. 당연히 환자들도 제게서 나는 냄새를 싫어할 것이므로 저도 예방조치를 '단디'합니다. 일단 와이셔츠 소매에도 냄새가 배기 때문에 스킨을 옷에도 한번 뿌려줍니다. 손도 반드시 세정제를 써서 씻고, 양치질도 두 배 이상 시간을 씁니다.

그래도 냄새가 난다면야 어쩌겠습니까... 제가 김치찌개를 포기할 수는 없고 환자분이 저를 포기하겠지요...

조금 다른 이야기입니다만, 예전에 진료를 마치고 택시를 탈 경우에 기사님이 치과에 근무하느냐고 물어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요즘은 냄새 나는 재료가 많이 없어졌지만 과거 FC, 유진올, 각종 소독약들의 냄새가 워낙 강해서 남들이 저의 직업을 금방 눈치를 채곤 했습니다.

 

치과가 복합상가에 소재한다면 피하고 싶은 이웃 업종들이 몇 있습니다.

제일 먼저가 중국집입니다. 오전부터 짜장 볶는 냄새가 온 상가를 뒤집어 놓지요. 마찬가지로 세탁소의 약품냄새도 복도를 점거한 세탁물만큼이나 위협적입니다. 같은 의료업으로 말씀드리기 뭐하지만, 잘 되는 한의원이 같이 입점해 있어도 고역입니다. 한약 달이는 냄새가 정말 고통스럽거든요. 특히나 입시철 같은 시험을 앞둔 시기에는 총명탕이 많이 나가는 모양인데, 이웃한 저희들은 그 냄새에 총명이 사라지고 멍청해지기까지 하니까요.

 

    김치찌개는 찌그러진 양은 냄비나 양푼이에 끓여야 제맛이 납니다.

 

     삼겹살과 돼지목살을 반반 섞은 김치찌개가 최곱니다.

 

    위에서부터 수원 '신사강식당', 수원 '밥상차려주는 남자' 그리고 서울 '장호왕곱창 김치찌개'입   니다.

 

     마늘을 듬뿍 넣은 불고기는 모든 냄새를 압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