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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창인의 밥집 이야기

스시 장인, 지로의 꿈

[석창인의 밥집 이야기]- <21>

 

 

혹시 초밥(스시)을 좋아하시고 또 영화까지 좋아하십니까? 만약 그러하시다면 케이블 방송이나 여러 매체를 통해 다운받아 볼 수 있는 영화를 하나 소개하고자 합니다. 지난 주말 감기몸살로 꼼짝을 못하는 바람에 한 번 더 보았는데 역시나 감동 그 자체입니다. 스시 하나 만드는데도 저렇게 전력을 다하는데 저는 치과를 너무 ‘날로 먹고’ 있는 건 아닌지 반성도 되고요.

 

1. 스시

제가 특별히 좋아하는 음식을 굳이 꼽으라면 냉면과 초밥(스시) 그리고 충무김밥 정도입니다. 하지만 제대로 만드는 냉면집들은 집에서 너무 멀고, 스시도 서울로 가야 하거나 바다까지 건너야 할 뿐더러 게다가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비쌉니다. 충무김밥 역시 멀리 통영까지 가야 하니 약식으로라도 먹으려면 명동까지 내달려야 합니다.

그런 음식들은 대충 아무데서나 먹으면 될 일인데 굳이 그렇게까지 하나 하며 저를 이상한 사람 취급도 하지만, 나름 식도락가연 하는 체면에 그렇게 호락호락 몸을 허락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위의 세 음식을 가만 따져보면, 비주얼 상으로 화려하지도 않고 절대 복잡하게 생겨 먹은 음식들이 아닙니다.

냉면의 경우도 찬 육수에 국수를 말아 먹으면 되는 것이니까, 시중에 파는 ‘청수냉면’ 국수에 조미료 육수를 부으면 냉면 한 그릇 뚝딱 만들기는 아주 쉬어 보입니다.

 

스시의 경우도 처음엔 서양인들의 눈에 우스꽝스러웠던 모양입니다만, 지금은 스시를 즐긴다는 것 자체가 양코배기들한테는 상류층의 상징처럼 되었다지요? 어쨌거나 날생선 조각을 밥 뭉친 것에 올려 먹는 것에 불과해 보이는 것은 사실입니다. 충무김밥도 비슷한 경우입니다.

 

그러나 가장 쉬운 일이 가장 어려운 법입니다.

제 경우에도 쉬운 치료들이 가장 어렵고 문제가 많이 터집니다.

냉면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스시도 재료를 구하는 일이 가장 중요한데, 좋은 식당들과 그저 그런 식당들과는 시작에서부터 차원이 달라집니다.

영화에서도 괴팍하게 생긴 쌀가게 아저씨가 자기 쌀을 제대로 이해하는 ‘지로’에게만 쌀을 공급한다고 합니다. 롯본기 그랜드 하이얏트 호텔에서 아무리 쌀을 달라고 사정을 해도 밥을 제대로 지을 줄 모르는 곳에는 줄 수가 없다는 것이죠.

횟감 구하는 것도 츠키지 어시장의 최고수들한테서 받아 올 뿐더러 네타(횟감) 고르는 수준도 탁월합니다. 재료가 준비되면 이제 밥을 지어야 하고, 횟감 밑손질이 시작됩니다.

 

스시집들마다 밥을 짓고 보관하는 노하우가 다르겠지만, 지로네 가게는 밥의 보관통부터 남다릅니다. 사람의 체온과 같이 유지해야 하니까요. 문어 손질하는 모습은 그야말로 고통입니다. 속칭 '시다바리'들이 이를 맡는데 문어를 손으로 치대는 '맛사지'를 40~50분 동안 해서 문어의 억센 질감을 부드럽게 만들더군요.

주방 십년차가 되어야 가장 손쉬워 보이는 다마코야끼(계란구이)를 만들게 합니다. 헤아릴 수 없는 실패의 연속 끝에 지로가 오케이를 하는 순간, 그 견습요리사는 환호와 함께 눈물을 흘렸다는군요.

 

2. 스시집

일본에서 최고로 맛있는 스시집은 어디일까요?

제가 일본 사람도 아니고 스시 평론가도 아닌데 어찌 알겠습니까만, 일단 언론 지상이나 평론가들 사이에서 인정하는 집들은 몇 군데 알고 있습니다. 또 직접 가 본 경험도 있고요.

후쿠오카에도 하나 있고, 삿포로에도 스시젠이라고 있습니다. 오사카와 교토에도 물론 난다 긴다 하는 스시집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에도마에 스시의 본산인 동경에서 최고인 집이 곧 일본 최고 아니겠습니까?

2008년 미슐랭가이드 동경편이 처음 나왔을 때 스시로 별 셋을 받은 식당은 딱 두 곳입니다. '스키야바시 지로'와 '스시 미즈타니'가 바로 그 곳입니다. 물론 근자에 젊은 스시 장인이 오너인 '스시 사이토우'가 별 셋 그룹에 추가되었지만, 일단 두 곳이 동경 최고임은 분명합니다. 그런데 미즈타니 아저씨도 지로의 수제자였다고 영화에서 본인이 직접 자백(?)을 합니다. 개인적으로 ‘미즈타니’는 세 번이나 갈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로네 식당은 아직 경험이 없는데 이는 독특한 예약시스템 때문이었지요.

 

물론 자갓서베이나 일본에서 발행되는 음식점 가이드에서 최고로 치는 스시집은 다른 곳들입니다.

여기서 프랑스 사람들의 미식기준과 미국 스타일의 기준이 매우 판이함을 알 수 있습니다. 저 역시 미슐랭 스타일을 선호하는데, 대략 그 기준은 음식의 독창성과 맛, 요리의 일관성 그리고 셰프의 혼입니다. 화려한 인테리어와 대중적 인기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것이지요.

 

여하튼 스시의 정점에 ‘스키야바시 지로’라는 식당이 있고 그 집엔 지로 오노와 그의 큰 아들이 있습니다. 다음 동경 여행은 당연히 그곳이 목표인데, 그 비싸다는 스시 값도 골프 두 번 안 치면 충분합니다.

 

3. 쇼쿠닌(職人)

영화에서 숨어 있는 주제는 사실 '쇼쿠닌'에 대한 예찬일 수 있습니다.

쇼쿠닌은 '직인' 즉, '장인'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우리나라에서는 예로부터 천대했던 기능인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뭔가 한 우물을 파면 그 방면에서 최고로 인정을 해주는 분위기는 막부 시대부터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한 직업을 몇 백 년이나 대대로 이어올 수 있었겠지요. 우리나라 같으면 자식 만큼은 절대 자기의 일을 따르게 하지 않고, 고시 공부를 시켜 법복을 입히거나 의사를 시키려 합니다만, 일본은 직인에 대한 경외가 남다르기 때문에 다른 사무직 일을 하다가도 가업을 이어 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지로의 두 아들도 스시 장인입니다. 작은 아들은 롯본기에서 같은 이름의 스시집을 하는데 여기도 미슐랭 원스타입니다. 병역 의무가 없는 일본에서는 고등학교를 마치면 바로 평생의 직업을 찾아 세상에 뛰어드는 친구들이 많습니다. 저희처럼 20대를 술 퍼먹고 헤매는 경우가 많질 않으니 출발선부터 우리와 차이가 나는 거지요.

 

저희들은 일본을 언제나 깔보고 얕잡아 봅니다. 물론 그 배경엔 아베와 같은 극우파들의 꼴사나운 행태가 일차 원인입니다. 그렇다고 올림픽 금메달 수에서 앞선다고, 한일전과 같은 운동경기에서 이겼다고 그리고 일본의 불황과 저성장을 고소해 마지않는 것도 그리 소망스럽지는 않습니다. 그러다가 일본이 노벨상 같은 것을 타면 또 우리나라의 처지와 한계를 스스로 탓하곤 하지요.

 

엄밀히 말해 과학자들도 쇼쿠닌이고 또 쇼쿠닌 정신이 없으면 뭔가를 성취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대학의 교수 신분을 먼저 내세우지 결코 과학자임을 내세우지 않습니다. 이공계열 교수들에게서 쇼쿠닌 정신이 사라지고, 신분 유지용 SCI 논문 수에 매달리고, 산더미 같은 행정업무와 실력자 줄대기에 급급한 이상 노벨상은 언감생심입니다. 문학상도 물 건너 간 지 오래임이 분명한데, 올해도 어김없이 어느 시인 집 앞에서 기자들이 장사진을 쳤다는군요. 과학상이나 문학상도 올림픽 메달 따는 것과 비슷하다고 보는 거는 아닌지 걱정스럽습니다.

 

영화에서 스시를 만드는 장인은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와 같은 위치라고 말합니다. (솔직히 병원의 원장도 마찬가지이죠.)

모든 파트의 악기와 악보를 파악하고 있어야 하고, 그 준비 또한 철저한 것이 닮은꼴이라는 겁니다.

손님이 들어오면 손을 닦는 '시보리'를 내오고 음료수나 맥주를 준비하고 그리고 첫음식 만들어 내기까지가 1악장이라면, 2악장은 본격적인 음식의 전개가 이루어지고 또 격랑과 같은 파도도 일렁입니다. 3악장은 마무리입니다. 마키도 나오고 다마코야끼도 나옵니다. 지로네 가게에서는 후식으로 멜론이 서빙이 되더군요.

지로는 손님의 좌석도 신경을 씁니다. 남녀의 순서라든가 왼손잡이인지 오른손잡이인지에 이르기까지 말입니다. 각 파트의 소리를 세심히 체크하는 지휘자와 하등 다를 게 없습니다.

미슐랭 쓰리스타 레스토랑 기준은 그 집 음식을 먹으러 가기 위해 여행을 계획할 만한 가치가 있느냐 여부입니다. 저 역시 벌써 계획을 짜고 있으니 지로네 스시집은 분명 쓰리스타가 맞나 봅니다.

 

  북해도 최고의 스시집인 스시젠.

 

 오도로는 다 좋은데 입에 넣으면 바로 녹아버리는 단점(?)이 있습니다.

 

 북해도의 연어알(이쿠라)는 치아로 터뜨리면 마치 폭죽처럼 단맛이 쏟아져 내립니다.

 

  애기똥 같은 우니도 향긋한 아이스크림 같습니다.

 

  긴자 8초메 구석에 위치한 미슐랭 쓰리스타 스시 미즈타니입니다. 이곳은 사진촬영을 불허하더군요.

 

  관광객들에게 인기만점인 긴자 규베에 스시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