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19 (일)

  • 맑음동두천 20.0℃
  • 맑음강릉 27.5℃
  • 맑음서울 21.0℃
  • 맑음대전 21.2℃
  • 맑음대구 22.3℃
  • 맑음울산 23.3℃
  • 맑음광주 21.0℃
  • 맑음부산 23.6℃
  • 맑음고창 ℃
  • 맑음제주 21.1℃
  • 맑음강화 20.0℃
  • 맑음보은 19.5℃
  • 맑음금산 18.6℃
  • 맑음강진군 19.5℃
  • 맑음경주시 22.9℃
  • 맑음거제 20.9℃
기상청 제공

석창인의 밥집 이야기

골뱅이에 관한 보고서

[석창인의 밥집 이야기]- <16>

연애를 할 때도 그렇지만, 남자들 사이에 새로운 관계를 만들 때도 그렇습니다. 연애가 성공하려면 처음 몇 달 동안 매일 만나주는 일 정도는 기본 중의 기본이지요. 결국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이란 초장에 굳히기가 제대로 들어가야 뭔가가 이루어진다는 사실입니다. 매사에 뜨뜻미지근한 사람은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우물쭈물 하다가 급기야 애인도 빼앗기고, 취업 자리건 승진 자리건 결국은 남의 차지가 되고 맙니다. 정치가로 혹은 기업가로 성공한 사람들을 가만히 살펴보면 결단성과 과단성이 뛰어난 경우를 자주 봅니다.

음식점에서도 단골이 되어 대접을 잘 받으려면 주인장에게 뚜렷한 각인을 시켜줘야 합니다. 두어달에 한 번 씩 가뭄에 콩 나듯 조용히 왔다가 사라져봐야 주인이 기억할 리가 없지요.

최근 몇 주 동안 열심히 다닌 횟집이 있습니다. 사실 이곳은 식사를 할 만한 메뉴가 거의 없습니다. 다른 횟집들에서 쯔께다시(덤찬)로 나오는 놈들 위주로 메뉴가 구성되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매운탕과 이것저것 섞어서 밥을 먹는 사람도 봤지만 아무래도 이 횟집은 2차로 적당합니다. 근처 피칭웨지 거리에 있는 단골 고깃집에서 배를 채운 뒤 아쉬움을 달래기 위한 마무리 착지 코스입니다.

횟집 주인은 하나 건너 아는 사이였는데 나이도 갑장인지라 아예 직거래를 트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이 친구가 잠수사 출신입니다. 잠수사가 운영하는 횟집이라면 뭔가 해산물에 관해서는 전문가이고 또 속이지는 않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원래 우리나라에서 잠수사는 대개 산업용 잠수사들 입니다. 물속에서 용접 업무를 한다거나 교량 보수공사 따위를 하는 것이죠. 인명구조를 하는 경우도 있고, 천안함 사건에서 맹활약을 보였던 군잠수사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바닷속 해산물 채취와는 아무 연관이 없고, 오히려 그 방면은 제주 해녀가 더 뛰어날 겁니다. 그럼에도 그를 신뢰하는 이유는 깊은 바닷속을 제 집 드나들 듯 하였고, 또 포구의 해산물 취급점에서 제대로 된 물건을 공급 받을 수 있다는 점 아니겠습니까?

물건이 진짜면 가격은 조금 올라가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생고무 씹는 맛이 나는 그렇고 그런 소라나 골뱅이만 먹다가 야들야들한 놈을 한번 먹어 본 뒤로는 그깟 몇 푼은 정말 아깝지 않더라는 말입니다.

혹자는 고개를 갸웃할 겁니다. 근사한 횟집에 가면 공짜로 나오는 해산물을 돈을 주고, 그것도 어마어마하게 비싼 값(실제로 이것저것 주문했다간 지갑이 거덜 납니다)에 왜 사먹느냐고 말입니다. 그러나 이 집의 매력은 냉동을 했다든지, 수입산 이라든지, 혹은 물이 갔다든지 하는 것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그야말로 '야물딱진' 횟집입니다.

요즘 제철인 참가자미 세꼬시는 항상 기본이고, 어느 날은 참소라를 또 어느 날은 골뱅이를...

 

오늘은 골뱅이입니다. 이놈의 생김새가 하도 야릇하여 영화 '괴물'의 모티프가 되었다고도 하네요. 골뱅이 맛이 야들야들한 거야 기본이지만 이 집은 특히나 더 부드럽습니다. 맛간 골뱅이는 일단 냄새부터 이상하고, 조금 오래 되었거나 통조림 골뱅이는 대개 양념으로 무쳐 먹기 마련입니다.

골뱅이가 전국적으로 널리 퍼지기 시작한 때는 1960년대 이후라 하니 그리 내력 있는 음식은 아닌 게지요. 예전엔 지천으로 널려 일본으로 수출도 했다지만, 요즘은 동해산이 너무 귀해 일부에서만 통용되고, 나머지는 전부 수입을 한다는군요. 외국 사람들은 먹지도 않는 골칫거리였는데, 이제 전량 우리나라로 수출을 하게 되었으니 칠레의 홍어와 비슷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골뱅이와 맥주 그리고 을지로도 뗄려야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을지로 인쇄골목에 있던 골뱅이 가게들은 맥주 맛도 좋지만, 골뱅이 파무침이 예술입니다. 참기름이나 설탕을 뿌리지는 않지만 대충 얼기설기 섞어 만든 골뱅이 안주가 맥주를 계속 끌어당기게 만듭니다. 진미포나 북어포를 넣어서 남은 양념에 무쳐 먹는 맛도 일품이고요. 항상 동표냐 유동이냐로 고민하던 차에 이렇게 신선한 골뱅이는 '두꺼비' 안주로는 그만입니다. 하지만 을지로 골뱅이 무침은 맥주가 어울리지요.

참! 골뱅이의 원래 명칭은 ‘물레고둥’이랍니다. 간혹 백고둥이라고도 하고 백골뱅이라고도 하는데 당연히 동해산이 최고지요. 예전 동표 통조림 회사가 폐업을 했음에도 상표를 누가 사들여 요즘도 나오긴 한다지만, 내용물은 국내산이 아니고 러시아산이라고 하던가요?

그러니 동표가 낫다 혹은 유동이 낫다고 주장하는 것은 의미가 없어졌습니다. 그래도 동표가 부드럽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런거야 약품 처리로 간단히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요?

서울 삼성동에도 야들야들한 골뱅이를 비롯하여 동해안 해산물을 맛볼 수 있는 곳이 있습니다. 속초 바로 위에 있는 항구 이름인 '아야진'을 상호로 쓴다니 그곳에서 잡은 놈들로만 음식을 내겠지요?

 

 

아래 글은 '골뱅이의 추억'에 관한 스토리입니다.

골뱅이의 '골'자도 좀 으스스한 느낌이고 '뱅'자도 그리 친숙하지 않아서 중고등학생 때는 대체 뭔 음식인지 무척 궁금했더랬습니다.

그러다 골뱅이라는 단어가 제 머리에 확실히 새겨진 사건이 있었는데, 때는 대학 예과 1학년 겨울이었습니다. 당시 수원의 한 써클(요즘은 동아리라고 한다지요?)에서 동기들끼리 대천(지금의 보령)으로 동계 수련회를 갔었지요. 그 때만 해도 서슬퍼런 군사정권 시절이었고, 칼라 TV 방송도 없었으며, 프로야구도 태동하기 전이었습니다. 더욱이 '통행금지'가 12시부터 새벽 4시까지여서 주당들은 곤욕을 치루기 일쑤였던 때였습니다.

당시에 대천 해안가는 -지금도 군부대가 있지요- 통금 시간에 바닷가로 나가면 바로 사살된다는 소문도 있던 곳이었습니다.

저희들은 여관방에 앉아서 고스톱, 훌라, 마이티 등을 치면서 막걸리와 소주를 마시고 있는데 마침 안주가 떨어졌지 뭡니까?

하여, 옆자리에서 광이나 팔고 있던 모 여대 의예과 1학년 친구한테 여관 밖 가게에 가서 골뱅이 통조림을 좀 사오라고 했지요. 시계를 보니 통금 30분 전 쯤이었거든요. 그런데 골뱅이를 사러 간 친구가 통금이 지나도 들어오질 않는 거였습니다.

저희들은 모두 나가 대천 해수욕장을 뒤지기 시작했습니다. 혹 바닷가로 나가서 사고를 당하진 않았을까, 아니면 동네 깡패들에게? 별 걱정을 다 하면서 해수욕장 아래부터 뒤져 가는데, 멀리 그 친구가 걸어오는 것이 보였습니다.

대체 어디 갔었냐고 물었죠?

그랬더니 그 친구 왈 "가게마다 다 들렀는데, 그 통조림이 없대... 그래서 두 번이나 대천을 돌다가 들어가는 참이라고..." 합니다.  저희는 바로 여관 앞 가게에서 파는데 무슨 소리냐며 대체 뭐를 달라고 했냐고 되물었죠. 그랬더니 그녀 왈 "뱅골이 달라구 했지!".

그래서 그 친구는 별명이 '뱅골이'가 되었고, 지금은 내과원장으로 맹활약 중이라는....

 

 

     간판에 아예 '잠수사의 집'이라고 써두었네요.

 

    우렁쉥이(멍게)인데 위의 홍시 껍질 같은 빨간 놈은 비단멍게랍니다.

 

     참가자미 세꼬시 작은 놈입니다.

 

1차로 등심을 구워먹고 헤어지기 섭섭하여 2차는 해산물을! 이제 집에 가서 아이들을 위한 '치킨'을 주문하면 '육해공'이 완성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