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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창인의 밥집 이야기

공자님의 음식이야기

[석창인의 밥집 이야기]- <23>

 

공자가 살았던 때가 지금으로부터 2500여 년 전이었으니까 예수님보다도 500살 연상이었고 막내격인 마호메트 아저씨와는 무려 천 살 가까이 차이가 납니다. 바로 한 세대 위에 석가모니가 계시지만 거의 호형호제급이라고 보면 됩니다.

 

사정이 이러하니 당시 중국이 아무리 세계최강국이었다 할지라도 일반 서민들의 문화와 풍습은 상상하기 힘든 미개 수준이었음은 당연합니다. 심지어 당시에 인육을 먹었다는 기록들도 심심찮게 있고, 반역죄를 저지른 놈을 죽인 뒤 젓갈을 담가 그 후손들에게 먹였다는 이야기도 고서에 등장합니다.

중국 사람들 '구라'가 세기로는 알아주긴 합니다만, 공자의 키가 무려 2m 80cm(96)이라는 기록이 있고 앞이마가 펑퍼짐한 언덕 같다고 해서 이름을 구()라고 했다는군요. 그러니까 뻥을 감안한다면 얼마 전 영화 '공자'의 주인공이었던 주윤발과 얼추 비슷한 키가 아니었을까요?

 

공자의 아버지는 숙량흘이라는 사람이었는데 공자를 낳을 때 이미 70살이 넘었을 때고 공자 어머니는 아직 스무 살이 되지 않았으며, 기록에 따르면 '야합'을 해서 낳았다고 하니 지금으로 치면 '미성년자 혼빙간'.... 뭐 이런 거를 통하여 출생하지 않았을까 여겨집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지만, 공자는 지금 우리나라로 치면 강남 8학군에서 귀족과외 선생님 출신이었습니다. 서민들은 입에 풀칠하기도 힘든 시기에 사교육비로 귀하디귀한 육포(말린 고기)를 받았는데 그 제자 수가 3천명을 헤아렸다니, 요즘 같았으면 국세청 특별세무조사감이었을 겁니다.

 

공자가 다른 분야에서는 타의 모범이 되었지만, 돈 문제에 대해서만 그의 명성에 걸맞지 않게 철저했던 이유는 어렸을 적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가난하게 살았던 트라우마 때문이겠지요. 대신 치사하게 돈을 버는 것이 아닌 청부(淸富)를 강조했음도 분명합니다. 청렴을 모토로 했으니 제자가 줄을 섰을 테니까요.

공 씨네 집안의 '돈 집착 DNA'는 지금도 면면히 흘러 공씨 후손들이 운영하는 고량주 회사 제품인 '공부가주(孔府家酒)'로 지금도 엄청난 돈을 긁어모으고 있고, 손문과 장개석의 처형이었던 송애령의 남편인 공상희 역시 공자의 후손이었는데, 그는 당대 중국 최고의 부자로 알려져 있지요. 물론 '송시스터즈' 아버지인 송가수가 철저히 정략결혼을 시킨 결과이긴 하지요.

그런데 공자네 후손들이 왜 술도가까지 운영했는지에 대해서는 아래의 글을 통해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공자는 팔불출은 아니지만, 먹는 것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까다롭게 굴었습니다. 일종의 팔불식(八不食)인 것이죠.

 

공자의 먹거리에 관한 투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쌀밥이었으면 좋겠어. 회는 얇게 썬 것이 맛있고.

밥은 쉰 것 같고 생선이랑 고기는 맛이 변한 것 같아 안 먹을래.

색이 변한 것 같아 안 먹을래.

냄새 나서 안 먹을래.

덜 익어서 안 먹을래.

먹을 때가 아니어서 안 먹을래.

고기를 똑바로 썰지 않아 안 먹을래.

찍어 먹을 장()이 없어서 고기도 안 먹을래.

시장에서 사온 술은 안 먹을래.

                                                                                       - 신계숙 교수의 '역사로 본 중국음식'에서

 

 

그런데 그의 투정을 곰곰이 따져보면 아무거나 먹었다가 식중독에 걸려서 고생을 하였거나 심지어 목숨을 잃은 사람들이 많았던 시대였기에 당시로는 파격적인 섭생을 한 것입니다. 심지어 술도 자기가 담근 술이 아닌 것은 정체가 불명하여 입에 대지 않았던 것이죠. 그러니 당연히 직접 술도가를 운영할 밖에요.

이외에도 공자시대에는 예로 시작해서 예로 끝나는 시기였기에 먹는 예법도 상당히 까다로웠습니다.

요즘도 사람들은 무병장수를 기원하며 각자의 독특한 섭생을 합니다만, 공자의 '팔불식'도 한 번 새겨둘 만 하지 않습니까?

 

                                            사진: 영화 '공자-춘추전국시대' 포스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