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의 식도락 노트에 용두식당과 함께 세트 메뉴로 붙어 다니는 식당이 있습니다. 풍기읍내의 '서부냉면'이 바로 그곳입니다. 그 쪽 여행을 할 때 봉화의 용두식당을 먼저 가기도 하고, 풍기의 냉면을 먼저 먹고 용두식당을 나중에 들르기도 하니 어찌되었든 두 식당에서 취급하는 한우구이를 하루에 두 번씩이나 먹게 됩니다. 봉성의 솔잎 숯불구이(돼지고기)를 먹으러 갈 때도 있지만 이럴 경우 용두식당이나 서부냉면 둘 중에 하나는 포기를 해야 하니 베르테르 못지않은 번민이 따릅니다. 당일치기로 울진이나 영덕까지 내려가 대게를 먹는 날에도 한 곳만 선택을 해야 하니까 그 아쉬움은 이루 말할 수가 없을 정도입니다. 우리나라 최장 터널인 죽령터널이 생긴 이후로 풍기는 이제 오지라 할 수는 없는데, 예전엔 풍기나 영주에 한 번 가려면 박달재를 지나 죽령이나 이화령을 거쳐 돌고 돌아야 했습니다. 그 정도로 오지였던 경상도 두메산골인 풍기에 난데없는 정통 평양냉면이 왠말입니까?지금은 은퇴하신 대학 은사님이 계십니다. 교수님의 원래 고향은 평안도이신데, 전쟁 때 피난을 풍기로 내려오셨고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이곳에서 다니시다 고등학교는 다시 다른 지역으로 유학을 가셨다는군요. 그런데
영화 '봄날은 간다'에서 상우가 은수에게 말합니다.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라고. 그러나 사랑은 변합니다. 노련한 은수는 이미 그걸 알고 있고, 어리버리 상우만 모르고 있었던 거죠.그럼 우리의 입맛도 변할까요? 대략 60대가 넘어가면 혀의 미뢰세포가 많이 소실되어 미각이 둔화되고 결국은 음식의 간을 맞추기가 힘들어집니다. 어머님들은 자식들에게 해주는 반찬이 불안하여 자꾸 소금이나 간장을 집어넣기 마련입니다. 결국 소금찌개나 간장국이 되는 경우도 허다하지요. 그렇다고 어머니께 투정을 부리면 곤란합니다. 영화 '음식남녀'의 주인공인 '주부사'가 미각을 잃은 이유가 가족으로부터의 소외감이나 고독 따위로 포장되었지만, 결국 노화가 근본 원인입니다. 그런데 예전부터 단골로 다니던 식당의 반찬들이 과거와 같은 맛이 아니라면 내 입맛이 변한 건지 아니면 식당의 찬모 손맛이 변한 건지.... 이도 저도 아니면, 식당의 영업 전략에 따라 일부러 바꾼 것인지 요령부득입니다.경북 봉화는 두메산골 지역이지만 의외로 먹거리가 다양한 지역입니다.일단 송이버섯의 최대산지이죠. 양양군이 더 많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양양은 인접한 인제, 평창, 고성 등지에서 채취한 송이의 집산지라
제주에 갈 때면 열에 다섯은 ‘J 식당’을 찾습니다.물론 열에 아홉은 골프 때문에 제주에 갔으니, J 식당의 다금바리는 친구들과 ‘19홀’을 완성하기에 안성맞춤이라는 말입니다.지난 토요일에도 제주행 비행기를 타기 전 김포공항에서 전화를 걸었습니다."접니다! 오늘 다금바리 있어요?"그러나 사장님의 대답은 평소와 조금 다릅니다. 예전엔 요즘 파도가 거세 몇일 배가 못떠서 없으니 다른 어종으로 드시라든지 혹은 몇 킬로그램짜리가 하나 있다거나, 1킬로그램은 다금바리로 드시고 나머진 돌돔(갓돔)이나 뱅에돔으로 채워 드시라는 게 통상의 답변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중국산이 있는데 이 놈도 맛이 똑 같아요!"랍니다. 이런 경우는 처음입니다. 갑자기 뜬금없는 중국산이라니요...?시쳇말로 '대략난감'입니다. 나름 양반 체면에 그건 또 얼마냐고 묻지도 못하고 덜컥 예약부터 했습니다. 제주에 도착해서 골프 치는 내내 마음 한구석이 불안했음은 물어보나 마나지요.사람이란 원래 얄팍한 존재입니다.아무리 미인이고 학력이 좋아도 '신정아'의 정체가 드러나는 순간, 그녀에 대한 애정이 단박에 식어버리듯이 오늘 다금바리가 중국산이라는 말 한마디에 그렇게 쫀득쫀득했던 육질이 왠지 오늘따라
소고기 육회를 듬뿍 넣어 비벼먹는 진주 비빔밥입니다. 원래 진주 교방(쉽게 말해서 요정 혹은 기생집)에서 만들어 내는 비빔밥은 칠보화반이라고 하여 붉은꽃이 활짝 핀 것처럼 꾸미지만, 진주의 천황식당이나 제일식당에서는 일반 대중을 위해 얼기설기 내는 모양새입니다.위 사진은 구마모토의 명물인 말고기 사시미(바사시)입니다. 마블링이 소고기 이상이죠? 실제 식용으로 기르는 말이기 때문에 고베소고기처럼 육질을 개량한 것입니다. 말의 발음이 '바'이기 때문에 '니기리'를 더하여 '바니기리'라는 스시(초밥)로도 먹습니다. 물론 스테이크로도 먹고요.위 두가지 음식은 전혀 공통점이 없어 보이지만, 임진왜란이라는 공통분모가 숨어 있습니다.진주비빔밥은 진주성이 왜군에게 함락 당할 때, 군사들과 백성들이 결사항전을 다짐하고자 모든 소를 징발하여 잡은 뒤에 같이 비벼 먹은데서 유래한 음식입니다. 어차피 전쟁에 지면 소가 필요도 없고 왜군에게 뺏길 것이기 때문이죠. 결국 6만 내외의 군사와 백성이 희생된 슬픈 전쟁 음식인 셈입니다. 그에 비하여 전주비빔밥은 그보다는 역사도 짧고 덜 유명했지만, 마케팅 효과로 널리 알려진 음식입니다. (해주도 비빔밥이 유명합니다. 해주는 곰탕, 냉면
'나의 소원은 첫째도 자주독립이요, 둘째도 자주독립이요... '라고 백범 선생께서 설파하셨지만, 저는 그런 원대한 소원이 아니라 인간적이면서도 소박한 소원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낮술'입니다. 그것도 남부럽지 않게 마시는 낮술 말입니다.점심시간에 병원 인근의 감자탕집이나 순댓국집 등에 가보면 반주로 ‘쏘주 각 일 병’ 정도는 일상이 되어버린 이웃 아저씨들과 드센 동네 아주머니들을 목도하면서, '지금껏 나는 인생 헛살았구나!'하고 자조를 한 적이 많았습니다. (치과의사라는 직업 때문에 낮술을 한 잔도 못하는 그 자괴감이란...)요즘 일부 어르신들 중엔 ‘비아그라’ 반의 반 쪽 정도를 혈액순환 개선을 목적으로 드시는 분들이 계신데, 아스피린을 장복하는 경우처럼 부작용도 분명 있을 것입니다. 때문에 건강만 허락한다면 반주 두어 잔이 오히려 비아그라 이상의 효과를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싶네요.그런데 왜 예로부터 낮술을 금기시했을까요?여러 가지를 상정해 볼 수 있겠지만, 우선 낮술을 드시는 분들은 대개 전날 밤의 과음 때문에 해장을 목적으로 마시는 경우입니다. 하지만 쓰라린 위장이 다시 알코올로 마취가 되면 더 마시게 되어 결국 인사불성이 되고, 이로 인하여 돌이킬
봉사료, 팁, 촌지, 봉투, 와이로, 급행료, 거마비... 등의 단어는 전부 다른 사람에게 돈을 준다는 뜻이지만, 그 목적은 제각각 다릅니다. 봉사료와 팁 이외에는 공여자의 불순한 의도가 도사리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지요.이집트 피라미드 안에서나 왕가의 계곡에서 '바쿠시시'가 없으면 사진조차 찍지 못하게 하다가도 일단 돈이 건네지면 아예 필자의 카메라를 뺏어들고 중요한 유물을 마구 찍어서 줍디다만, 어쨌거나 위에서 언급한 단어들은 사람이 살아가는데 중요한 윤활유가 되기도 하고 더러는 폐유가 되어 주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 모두 쇠고랑을 차게도 합니다.오늘은 팁에 대해서만 생각을 좀 해보죠.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하고 팁은 코끼리도 싸이 춤을 추게 만들 수 있지만, 문제는 팁의 타이밍입니다. 솔직히 말해서 팁 말고도 남에게 주는 돈은 전부 타이밍의 예술입니다. 요즘도 교사에게 촌지를 주는지는 모르겠으나 만약 학기 초나 중간에 준다면 검은 뜻이 있음이 분명하고, 학년을 모두 마치고 일 년 동안 아이를 돌보아준 것에 감사하다며 전해주는 선물은 그야말로 착한 촌지입니다. 병원에 입원하여 수술을 집도하는 의사에게 촌지를 준다면 언제 줘야 좋을까요? 수술이 잘 되어 퇴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