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는 쇠를 씹어 먹어도 될 정도로 왕성한 소화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게다가 남녀불문하고 그 나이엔 뱃속에 걸신이 들어있어서 아무리 먹어도 배가 고프고, 포식을 하고 뒤만 돌아서도 배가 꺼져 버리는 그런 때입니다. 그야말로 인생의 화양연화에 다름 아니지요.그러나 동료들에게 다이어트 한다고 괜히 큰소리를 친 바람에 점심 식사를 김밥 한 줄에 왕뚜껑 컵라면으로 버티는 직원들도 꽤 있습니다. 물론 기혼직원들은 도시락을 싸오기도 하고, 매식을 하더라도 꼭 밥과 국이 있는 종류를 선택합니다. 최근엔 병원에서 한 식당을 정하여 점심을 같이 먹기로 해서 이런 고민이 사라지긴 했지요.과거엔 점심을 대충 때우니, 7시 전후로 진료가 끝나면 뱃속에선 칼로리를 빨리 넣어달라고 아우성이기 마련입니다. 이 상태로 집에 들어간다 하여도 혼자 자취하는 직원들은 저녁을 제대로 차려 먹기가 힘듭니다. 씻는 둥 마는 둥 대충 해치운 뒤에 바로 쓰러지는 것이죠. 재미있는 드라마가 있는 날은 '본방사수!!'를 외치며 졸면서 보기도 하구요.점심을 대충 때운 직원들은 오후 5시 전후로 병원 냉장고에 아이스크림, 케익 혹은 빵과 같은 간식을 먹으러, 몰래 주방(준비실)을 틈틈이 들락거리기 마련이
3월3일은 3이 두 번 겹친다고 해서 ‘삼겹살데이’입니다. 물론 5가 두 번 겹치는 5월 5일은 어린이날이자 ‘오겹살데이’구요. 그렇다면 5월 9일은? 소리 나는대로 쓰서 조금 응용하면 ‘아구데이’입니다. 치과대학 선배님 중에는 턱관절 즉, 악관절만 전문적으로 치료하시는 분이 계신데, 그 분의 병원 전화번호 뒷자리가 ‘5975’입니다. 아구(턱)만 치료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겠지요.아구의 표준말은 아귀입니다만, '귀'자가 귀신을 의미하는 것 같기도 하고, 발음도 그렇고 해서 사투리인 아구가 더 많이 쓰입니다. 동해안 강릉과 주문진에서 주로 잡히는 ‘삼세기’(삼숙이 혹은 삼식이)와는 종이 약간 다르지만, 인천의 '물텀벙'과는 같은 어종입니다. 아구는 남해안이나 서해안이나 어디서나 잡히는 놈이지만, 유독 마산을 중심으로 아구 요리가 널리 알려졌지요. (인천이나 여수, 부산 등도 나름 알려지긴 했지요.)요즘 젊은 사람은 생아구를 주로 먹습니다. 포슬포슬한 살도 맛있지만, 아구 특유의 젤라틴 비슷한 질감을 즐기는 것이지요. 그러나 인생을 좀 살아본 분들이거나 아구에 대해서 일가견이 있으신 분들은 구할 이상 아구수육을 주문하지요. 아구의 간은 '앙끼모'라고 해서 일본
스마트폰이나 각종 전자제품을 출시되자마자 남보다 먼저 사서 써보는 사람들을 ‘얼리 어댑터’라고 하던가요? 대체로 그런 사람들은 성격이 조급하거나 강박적이어서 빨리 써보지 않고는 못 배기는 스타일인 사람들로 추정됩니다. 우리 국민성마저도 얼리 어댑터들과 흡사한 점이 많아서 세계적 전자회사들이나 자동차 회사들도 우리나라를 테스트 마켓으로는 최고라 여긴다고 하던가요? 일단 한국 시장에 신제품을 뿌려서 소비자들의 반응을 보기도 하고, 각종 사용 후기를 통해 제품의 결함을 보완하고.... 하지만 소비자 입장에서는 너무 빨리 사는 바람에 완성도가 떨어지는 물건을 제일 비싼 값에 산다는 점이 문제겠지요.스마트폰 뿐만 아니라 새로운 모델의 차량이 나오면 대략 6개월 정도 지나야 결정적 결함이 드러나기 마련인지라 조금 여유를 갖고 구입을 하는 것이 좋은데, 남보다 앞서 구입하고픈 열망 때문에 종국에는 끊임없이 A/S 센터를 들락거리고야 맙니다.어디 이 것 뿐이겠습니까? 디지털 카메라, 신형 노트북, 대형 디지털 TV 등등... 가격 떨어질 때를 기다리다 보면, 어느새 구형 모델로 전락해 있고, 그렇다고 출시되자마자 사자니 바가지 가격을 쓸 것이라 두렵습니다.여담이지만, 작
박정희 대통령이 중학교와 고등학교 입시를 시험제에서 추첨제로 바꾼 이후 평준화가 대세가 되었습니다.(중학교는 69년, 고등학교는 74년부터 평준화가 되었던가요?) 물론 그 이후에도 간간히 시험제를 유지하는 지방 명문고도 있었고, 최근엔 특목고니 자사고니 하면서 별도의 입학 사정을 하는 곳이 있긴 하지요.평준화가 좋은지 아니면 입시경쟁을 하는 시험제가 좋은지는 제가 교육학자가 아니므로 판단할 수는 없지만, 분명한 것은 과거처럼 '계층 이동이 가능했던 사다리'가 없어진 것만은 분명해보입니다. 시험제가 있을 때는 개천에서 용이 나는 경우가 꽤 있었지만, 이제는 '현대판 음서제'만 기승을 부리고 있거든요.의학전문대학원이나 치의학전문대학원은 물론이요, 법학전문대학원을 졸업하려면 매년 수천만 원의 학비가 들어갑니다. 물론 순수 학비와 교재비만 그러하니 졸업할 때까지 몇 년을 뒷바라지 하려면 좋은 집안 출신이 아니면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게다가 졸업만 하면 또 무얼 하겠습니까? 결국 실무를 익히려면 취업을 해야 하는데 여기서 또 높다란 장벽을 만나게 됩니다. 부모가 의사, 치과의사라면 자신과 관련된 병원에 부탁을 해서 수련을 받게 하고, 결국 자기 병원을 이어받게 하는
제 나이 언저리에는 유명한 '여류작가'(어떤 분들은 아예 ‘여류’라는 표현 자체를 거부합디다만)들이 꽤 있습니다. 은희경, 신경숙, 최영미, 공지영, 하성란... 그러나 제가 흠모해 마지않았던 박경리 작가와 박완서 작가가 돌아가신 이후의 여류작가계는 뭔가 허전합니다. 이 말은 서사적이거나 질곡 같은 우리네 삶이 녹아든 그런 작품들을 내기엔 현존의 작가들이 조금은 '약해' 보인다는 의미일 수도 있고, 한편으로는 '약게' 보인다는 뜻이기도 하고요. 더하여, 순전히 제 개인적 입장에서 보았을 때 작품이 조금 부담스러운 작가도 있습니다. 제게는 작품성에 대해서는 논할 자격이나 능력도 없지만, 소설가 K씨와 시인 C씨의 작품은 읽고 나면 약간의 불편감이 생깁니다. 그 불편감이란 것이 솔직히 도둑이 제 발 저린 것처럼 저의 속마음을 들켰기 때문일 지도 모릅니다. 굳이 이런 이야기로 시작하는 까닭은 동아일보 김화성 기자가 쓴 '순대이야기'의 서두에 C의 시가 실려서인데, 시를 읽어보면 순대라는 음식이 돼지국밥과 더불어 사내들 혹은 수컷들의 상징적 음식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혼자라는 건 C 뜨거운 순대국밥을 먹어본 사람은 알지 혼자라는 건 실비집 식탁에 둘러앉은 굶주
밥깨나 좀 먹고 다녔다는 사람들도 '밥집'에 대한 고민이 많습니다. 특히나 '밥 먹고 다니는 걸로 밥 벌어 먹고 사는 사람'이랄 수 있는 음식평론가들이라면 그들만의 '비장의 밥집' 하나 정도는 있을 거라고 추측을 하지만 실제 그렇지는 않습니다. 어느 식당 하나만 편애 했다가는 밥숟가락을 잃게 될(직업을 잃게 될)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지요. 저만 해도 여러 식당을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하고 특히나 식당을 직접 운영하고 있는 친구들과도 가는 또 다른 식당들까지 많이 있지만, 일단 ‘아마추어’이기 때문에 비장의 밥집 하나는 숨겨두고 있습니다. 그래야 급히 누구를 접대해야 할 때 요긴하게 써먹을 수도 있고 또 칭찬까지 받을 수 있거든요. 그래서 저는 이런 밥집을 '히든카드 밥집'이라고 부릅니다. 젊은 날을 고스톱이나 포커로 지새본 사람들은 압니다. 히든카드나 굳은자를 꼭 쥐고 있는 자가 결국 돈을 딴다는 것을 말입니다. 하여, 히든카드는 살아가는데 필요한 결정적 보험일 수도 있고, 요령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조커는 조금 다릅니다. 리베로 성격이 매우 강한데, 때로는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하고 어떤 때는 버리는 카드로 쓰기도 합니다. 결론적으로, ‘조커 식당’은
한민족에겐 기본적으로 비빔 본능이 있습니다. 아무리 상 위에 산해진미가 한가득 차려 나오더라도 종국엔 비벼 먹어야 직성이 풀리니 말입니다. 유교문화가 발달한 안동이나 진주 쪽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헛제사밥의 경우에도 밥에 각종 나물을 올리고 그리고 탕국물을 조금 떠 넣은 뒤 비벼 먹는 방식이니 비빔의 역사는 유교의 역사와 함께 꽤 깊어 보입니다. 그런데 왜 유독 우리나라 사람들만 비벼먹는 걸 좋아할까요? 혹자들은 외국의 식사 방식은 메뉴가 순서대로 나오는 ‘시간전개형’이지만, 우리는 상 위에 한꺼번에 차려 나오는 ‘공간전개형’이어서 여러 반찬을 입에 집어넣고 구강 내에서 비비고 섞어 새롭게 만들어지는 맛을 찾는 것이라며 미화를 하지만, 아무래도 설득력이 부족합니다. 일본 사람들에겐 우리의 비빔밥에 해당하는 덮밥이 상당히 다양하게 있는데, 그네들은 밥과 밥 위의 올린 건더기를 절대로 섞어 먹는 법이 없습니다. 젓가락으로 밥 따로 반찬 따로 즐기는 것이 돈부리(덮밥) 음식의 핵심이지요. 그네들은 음식을 섞음으로 해서 본래의 맛을 훼손하는 것을 매우 두려워 하지만, 우리는 아무 거리낌이 없습니다. 이런 성향을 고려하면 과거 우리나라를 지칭했던 '은둔의 나라'
안양(安養)은 대도시임에도 불구하고 그에 어울리는 대우를 제대로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니까 위로는 수도 서울에 치이고 밑으로는 경기도청이 있는 수원으로부터 협공을 당한 까닭에 덩치만 어른이었지, 도시 규모에 따르는 공공기관, 교육기관 혹은 문화시설 등이 미흡했던 것이 사실이었습니다.하여, 예전에는 명문 고등학교가 생길 여건이 되질 못했는데, 공부를 조금 한다 싶으면 어려서부터 서울로 전학을 가거나 아니면 시험제였던 수원으로 진학을 하곤 했기 때문이었죠. 제가 고등학교에 다닐 때, 한 학급 65명 중에 무려 20여 명이 안양 출신이었던 걸로 기억이 나는군요. 그러다가 겨우 십여 년 전, 서울과 수원이 평준화가 되고나서야 안양에도 명문 고등학교들이 생겨났습니다만, 요즘은 다시 특목고나 안산지역의 자율형사립고등학교로 진학을 한다고 하네요.원래 '안양'이라는 말은 마음을 편안히 하고 몸을 쉬게 한다는 뜻도 있지만, 아미타불이 살고 있는 정토인 '극락'을 의미하는 불교 용어입니다. 그래서인가요? 수십 년 전, 관악산 유원지에서 생긴 물난리 이외에는 별다른 재해도 없었고, 역사적으로 기록이 될 만한 사건이 발생한 적도 별로 없는 무척 안전한 곳입니다. 정조대왕이 수원화
고백하자면, 우리나라 국립중앙박물관에 갔던 횟수보다 대만의 국립고궁박물관을 더 많이 찾았던 것 같습니다. 지금은 서울 용산에 멋들어지게 박물관이 들어섰지만, 과거엔 우리나라의 귀한 국보와 보물들이 제 자리를 잡지 못하는 바람에 십 수 년 동안 일부는 전시되고 나머지는 수장고에서 이리저리 홀대를 받았습니다. 과거 경복궁 옆 국립박물관은 이제 민속박물관이 되었다지요? 그나마도 학생 때는 박물관 관람보다는 정원에 있던 찻집에서의 미팅만 기억이 납니다.그런데 타이베이의 고궁박물관을 그리도 찾았던 이유가 특별히 중국의 역사나 유물에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고, 타이베이에서 낮 시간을 보낼 곳이 마땅찮아서입니다. 예전 같으면 골프나 치고 발 마사지도 받았으련만 이젠 모든 게 귀찮습니다.저 같은 ‘어리버리’ 관광객을 위한 고궁박물관을 제대로 관람하는 팁은 다음과 같습니다.일단 1층 입구로 들어가(진짜 유물에 관심이 있으면 한국어 오디오 서비스를 제공 받으세요), 전체 중국역사를 요약해 놓은 방에 들릅니다. 이곳에서 대강의 중국사연대기를 확인하는 것이죠. 그리고는 뒤 쪽 화장실로 가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맨 꼭대기 4층까지 가는 겁니다. 그런데 4층은 전시장이 아니라 찻집입
대체로 일식은 고급 음식으로 칩니다. 古來로 일식은 혀로 보고 눈으로 먹는 음식이라 했으니, 혀에 감기는 고급스러운 맛과 단순 절제미가 돋보이는 데커레이션(꾸밈)이 생명이겠지요.하지만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는 말처럼, 일식이 현해탄을 건너 우리나라에 들어와서는 상당히 변질되었음을 부인 할 수 없습니다. 부담스러운 일식집 간판보다는 'OO 횟집'이라는 차라리 우리식 이름의 식당이 더 정감이 갈 정도입니다. 그러나 회(사시미)를 먹는 대표적인 나라가 일본과 우리나라이기 때문에, 서로 간의 장단점을 고려하여 새롭게 만든 퓨전 스타일이라고 일식집에서 항변한다면 딱히 할 말은 없지요.대체로 우리나라의 일식집들은 대중적이거나 고급이거나 할 것 없이 천편일률적입니다. 심지어 간판은 분명 '스시'집인데 저녁에 가이세키 혹은 회정식을 주문하지 않고, 초밥을 시켰다간 욕만 실컷 먹고 나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요즘은 초밥을 전문으로 내는 식당들이 제법 생겨서 이런 고민을 하지 않아서 좋긴 합니다만.게다가 맛은 둘째 치고, 일본의 정통 가이세키 코스대로라도 나오면 그나마 봐주겠지만, 우리나라 특유의 일식 코스는 '츠께다시'에 목숨을 거는 형국입니다 (가이세키는 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