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를 할 때도 그렇지만, 남자들 사이에 새로운 관계를 만들 때도 그렇습니다. 연애가 성공하려면 처음 몇 달 동안 매일 만나주는 일 정도는 기본 중의 기본이지요. 결국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이란 초장에 굳히기가 제대로 들어가야 뭔가가 이루어진다는 사실입니다. 매사에 뜨뜻미지근한 사람은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우물쭈물 하다가 급기야 애인도 빼앗기고, 취업 자리건 승진 자리건 결국은 남의 차지가 되고 맙니다. 정치가로 혹은 기업가로 성공한 사람들을 가만히 살펴보면 결단성과 과단성이 뛰어난 경우를 자주 봅니다. 음식점에서도 단골이 되어 대접을 잘 받으려면 주인장에게 뚜렷한 각인을 시켜줘야 합니다. 두어달에 한 번 씩 가뭄에 콩 나듯 조용히 왔다가 사라져봐야 주인이 기억할 리가 없지요. 최근 몇 주 동안 열심히 다닌 횟집이 있습니다. 사실 이곳은 식사를 할 만한 메뉴가 거의 없습니다. 다른 횟집들에서 쯔께다시(덤찬)로 나오는 놈들 위주로 메뉴가 구성되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매운탕과 이것저것 섞어서 밥을 먹는 사람도 봤지만 아무래도 이 횟집은 2차로 적당합니다. 근처 피칭웨지 거리에 있는 단골 고깃집에서 배를 채운 뒤 아쉬움을 달래기 위한 마무리 착지 코스입니다. 횟집
예전 고흥 나들이 때 인연을 한 번 맺은 뒤로 고흥 이야기만 들리면 마치 제 일처럼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고향도 아니면서 나로호 발사 성공을 고흥 사람 이상으로 좋아했고, 그 동네 출신의 인사동정까지 챙겨 볼 정도입니다.고흥은 지형상으로 '캥거루 불X' 모양으로 생겼습니다. 좌우로 득량만과 여자만이 있어 각종 해산물의 보고이기도 하지요. 고흥반도에 딸린 소록도 역시 일제때부터 나환자촌으로 널리 알려져 있고, 요즘은 외나로도와 거금도까지 다리로 연결이 되어서 많은 관광객들과 식객들이 찾는 곳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캥거루 불X의 목 부분 바로 위에 위치한 곳이 벌교읍인데, 이곳이 마치 고흥의 목줄을 쥐고 있는 꼴입니다. 보성, 벌교는 고흥보다는 여수, 순천, 광주, 목포 등 외지로 나가기가 편합니다. 아무리 고흥에 유명한 뭐가 있다고 하더라도 조정래의 태백산맥에 등장하는 '벌교 꼬막'에 눌려 제 대접을 못 받아왔습니다. 오죽하면 고흥 학생들이 외지로 나갈 때면 터미널이나 기차역에서 벌교 주먹들한테 매를 맞고 다 털리곤 했겠습니까. 들리는 풍문에 따르면 고흥 지역의 사람들이 하도 당하다 보니 터미널 같은 곳에 고흥의 힘쎈 장사들을 파견 보내 학생들을 보호하려
얼마 전 건축사무소 '공간'이 부도가 났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착잡했었습니다.웅장하다 못해 두려움까지 느끼게 만드는 H 그룹 빌딩과 조선시대 왕들의 거처였던 창덕궁 바로 옆, 비록 자그마하지만결코 주눅 들지 않고 꼿꼿하게 있었는데 그만 세월과 현실의 벽을 넘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다행히도 저명한 아트 컬렉터 한 분이 구입을 해서 미술관으로 사용한다고 하니 작은 위로가 되었지요.요즘은 승효상이라는 양반이 1세대 건축가인 김중업과 김수근 선생의 뒤를 잇는다고는 하지만, 산업화 시대 혹은 개발 시대의 선배들과는 약간 스타일이 다릅니다. 아무래도 김중업과 김수근 선생은 국가에서 의뢰한 대형 건축물 작품이 많습니다. 물론 일반 주택을 비롯하여 작은 건축 작품들도 있지요. 헌데, 그들의 생애와 작품 세계를 체계적으로 정리한 도감까지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승효상씨는 널리 알려 진대로 '빈자의 미학'이 그의 건축철학입니다만 약간은 느닷없어 보입니다. 그렇게 비싼 작가가 부자들의 의뢰를 받아 건축물을 만드는데 가난한 사람의 미학이라니요. (악어의 눈물도 아니고 말입니다.)거추장스럽고 화려한 작품이 아니라 대략 원초적 기본 얼개에 충실한 작품을 하겠다는 뜻이겠거니 혼자 짐작은
남아프리카공화국(이하 남아공) 하면 생각나는 것들은 무엇이 있을까요?아파르트헤이트, 골드, 다이아몬드, 희망봉, 보어전쟁, 신세계 와인, 골프천국, 어니 엘스, 라티프 굿센, 게리 플레이어, 요하네스버그, 케이프타운, 썬시티, 블루 트레인, 투투 주교, 2010년 월드컵, 최초의 인공심장 수술... 그러나 넬슨 만델라를 빼고는 남아공을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최근 그 '어른'께서 타계하셨고, 모든 나라의 지도자들이 아프리카 대륙 남쪽 끝으로 그를 조문하기 위해 모여들었습니다. 장례를 통해 갈등을 풀고 화해를 하는 이청준의 소설 '축제'의 내용처럼 미국의 오바마와 쿠바의 라울 카스트로가 악수를 하였고, 남아공 사람들도 그 엄숙한 장례식장을 오히려 노래와 춤이 있는 축제의 장으로 만들더군요. 그러니까 한 위인의 죽음은 단지 슬픔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차원으로의 승화를 준비하는 과정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디다. 제가 만델라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나 존경하는 정도는 일반 사람들과 비슷할 겁니다. 그러나 남들과 다른 점은 제가 남아공을 무려(?) 두 번이나 방문을 했었고, 심지어 만델라가 투옥되었던 로벤섬과 그 안의 교도소를 방문했던 기억 때문에 좀 더 각
해장국의 종류는 상당히 많습니다. 우리가 익히 먹어보았던 기본적인 몇 가지 해장국에 더하여, 집집마다 어머니가 남편과 장성한 아들을 위해 뚝딱 만들어내는 '창작적인 해장국'까지 합친다면 그 가짓수는 그야말로 무량지수일 겁니다. 북어해장국, 콩나물해장국, 선지해장국, 순대해장국, 황태해장국, 다슬기해장국, 재첩해장국, 돼지국밥.... 여기에 주재료를 두어 개 이상을 조합하여 퓨전 해장국까지 만들 수도 있으니 말입니다.순전히 제 생각이지만 아무래도 해장국의 대표선수는 선지해장국이 아닐까 싶네요. 옛날에는 가장 싸게 구할 수 있었던 것이 '동물의 피'였을 것이고, 다수 국민들이 영양실조 상태였던 전후(戰後) 몇 십 년 동안은 아마도 선지가 최고의 영양보충식이었을 겁니다.제가 초등학교 때 살았던 수원시 세류동에는 어스름한 저녁이 되면 일주일에 한 두 번꼴로 선지장수가 "선지요! 선지가 왔어요~~!!"하고 큰소리로 외치며 지나갔습니다. 짐 자전거 양 쪽에 양철로 만든 쇼트닝 통 비슷한 것을 서너 개 씩 매달고 다니셨죠. 아이들은 엄마 심부름으로 몇 백 원과 큰 사발이나 바가지를 들고 나가면 아저씨가 선지를 퍼 담아주셨는데 저희들은 그게 진짜 '피고기'인 줄로만 알았다
저는 결혼식이나 돌잔치 뷔페 그리고 상갓집 문상을 가서는 웬만큼 배고프지 않고는 식사를 하지 않습니다. 간혹 멀리까지 인사를 갔다면 차라리 인근의 맛집을 찾아가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대개 잔칫집 뷔페에 가면 윗저고리에 형형색색 스티커를 붙여줍니다. 손님 머릿수를 세기 위한 방법일 텐데 영 마뜩찮습니다. 사람에 대한 값어치가 단순히 스티커 하나로 평가되는 기분이 드니까요.문제는 상갓집입니다. 상갓집에서 밥이나 국 그리고 반찬은 일인당 얼마씩 책정된 것이 아니라 밥 한 솥, 국 한 양동이 단위로 계산을 하더군요. 그러다보니 서빙을 담당하는 상조회 직원의 요령에 따라 비용이 많이 나가기도 하고, 절약이 되기도 하고 하는 시스템입니다. 제 경우에서도 과일이나 음료 등이 밤마다 상당한 양이 사라진 경우가 있었는데 누구의 소행인지 짐작만 할 뿐입니다. 예전에는 머리고기나 홍어, 가오리무침 등 때문에 단체 식중독도 생기곤 했는데, 요즘은 전문업체에서 제대로 만들기 때문에 그럴 염려는 많이 줄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그러나 대한민국 최고라는 삼성병원, 아산중앙병원, 세브란스병원, 서울대병원 할 것 없이 전국 대부분의 전문 장례식장 음식 내용은 거의 비슷하고 또 서빙 방식,
우리나라 사람들에겐 따로 '비빔 유전자'가 있는 모양입니다. 골동반과 골동면이라 불리는 비빔밥과 비빔국수를 비롯하여, 어떠한 요리(혹은 반찬)라도 국물(소스)만 남아 있다면 일단 '챔기름' 혹은 달달하면서도 매운 각종 양념을 더하여 비벼줘야 직성이 풀리니 말입니다. 물론 남긴 국물이 아까워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한 설명이 되지 못합니다.십여 년 전 홍콩 여행 중에 변두리 선창가 식당에서의 일입니다. 깐풍기 비슷한 맛이 나는 해물 요리를 먹고 남은 소스가 있어 일행들은 이구동성으로 폴폴 날리는 안남미 밥을 주문했습니다. 실제 비빔밥이나 볶음밥으로는 우리나라와 일본 사람들이 주로 먹는 자포니카 계열보다 밥알이 따로 노는 인디카 계열 쌀을 써야 제 맛입니다. 주문한 밥이 나오자, 여행용 고추장을 넣고는 사정없이 비볐더니 식당 사장 이하 주방 식구들이 모두 나와서 신기한 듯 쳐다보더군요. 드셔보시라고 한 수저 떠줬더니 너무 맛있다며 난리도 아니었던 기억이 납니다.여기에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비빔 소스나 기타 매운 요리(떡볶이 혹은 매운 찜갈비 등)의 소스를 만들 때 누가 누가 더 맵게 만드나 경쟁을 할 정도로 뭔가를 첨가합니다. 청양고추는 기본이고
한식과 와인의 궁합을 맞추려는 시도는 와인이 우리나라에 소개된 이래 끊임없이 있었을 것입니다.이러한 궁합 맞추기를 통상 '마리아쥬'라고 부르는데, 이는 곧 남녀의 결혼과 그 의미와 같기 때문이겠지요.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한식과 와인의 어울림에 대해 딱 부러진 결론이 없다는 것은 마치 동성애자끼리의 결혼처럼 영원히 2세를 잉태할 수 없는 그런 안타까운 스토리인지도 모르겠습니다.로버트 파커나 젠시스 로빈슨 같은 유명 와인 평론가들이나 유럽의 와인메이커들은 우리나라에 와인붐을 일으키고 또 와인판매고를 올리기 위해 어떤 포도 종류로 만든 와인이 한식과 무척 어울린다고 강변을 하고 다니지만, 적어도 제 결론은 이런 '결혼은 미친 짓이다'라는 것입니다.왜 그럴까요?한식의 특징은 일단 짜고 맵습니다. 마늘은 그래도 익힌 뒤에는 그 성질이 부드러워지지만, 고추류를 포함한 오신채들은 익힌다 한들 본래의 성질이 그대로이죠. 음식에 과도히 집어 넣는 소금은 두말 할 것도 없습니다. 이처럼 혀를 마비시키는 음식첨가물들은 와인의 맛을 즐기는데 절대적인 장애물입니다.사정이 이러할진대, 론 지역 와인이 비교적 어울린다는 둥, 시라즈 품종이 좋다는 둥 하는 것은 '견강부회'일 따름
1.커피에 관심을 가지게 된 지는 채 이십 년도 되지 않았습니다.물론 그 이전에도 다방 레지언니가 타주는 커피나 자판기 커피 애호가였고, 가끔은 블랙커피가 몸에 좋다며 인스턴트 커피가루를 뜨거운 물에 타서 마시곤 했었지요.그러나 선무당 사람 잡는다고 서점에서 커피에 관한 간단한 책을 몇 권사서 읽고서는, '그까이꺼~!' 커피가 뭐 대단하냐는 생각과 '에스프레소'가 아니면 커피도 아니라는 편협한 생각에 사로 잡히기도 했었습니다. '로부스타'종 커피는 개도 안 마시 거고, 아메리칸 스타일은 미국의 트럭 운전수들이나 마시는 거고, 일본 애들은 쓰잘 데 없이 이상한 기구나 필터 용지를 써서 커피를 뽑아 먹는게 마치 포르노에 등장하는 해괴망측한 짓과 다름없다고 여겼으니 말입니다.그러나 영화 '카모메 식당'과 '버킷리스트'에서 '커피 루왁'이 언급되고, 일본만화 '카페 드림'에 빠져들기 시작하면서 저는 지금껏 드립식 커피를 제대로 마셔보지도 않았으면서, 그 '포도는 실거야'하고 지레 포기한 여우였던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물론 이전에도 동경에 갈 때 마다 인스턴트 드립 커피를 구해와서 마시긴 했지만, 커피를 뽑아내는 지난한 과정이 생략된 커피란 '밀당'이 핵심인 연애 과
매년 도루묵값이 금값이더니 일본 원전 사고 때문에 올해는 많이 내렸습니다. 게다가 풍어까지 겹쳐 어민들 시름이 이만저만이 아니랍니다. 올 겨울 술안주는 무조건 도루묵구이입니다.날씨가 쌀쌀해지니 도루묵 생각이 간절해집니다.예전엔 제철에 잡은 도루묵보다 사철 냉동한 놈들을 내놓는 곳이 많아서 살도 퍽퍽하고 특유의 감칠 맛도 적으며 알을 에워싸는 점액질도 있는 둥 마는 둥 했습니다. 크기도 좀 컸으면 좋으련만 기껏해야 양미리 정도 사이즈이니 씹는 맛도 기대난망이었죠.하지만 도루묵 제철에 제법 큰 놈을 구어 먹다 보면, 뱃속 알의 크기도 이쿠라(연어알) 정도인데다 낫또의 그것처럼 점액질 범벅이라 묘한 맛을 냅니다. 하나하나 씹히는 알의 질감 역시 매우 독특합니다.알려진 도루묵 요리로는 찜, 찌개 등도 있지만 뭐니 뭐니 해도 전어처럼 구워 먹어야 제맛입니다.일단, 웰던(well-done) 수준으로 도루묵을 구운 뒤에 꼬리와 머리를 양손으로 잡고 머리부터 속의 뼈까지 남김없이 씹어 먹는 것이 정석입니다. (전어를 구워서 먹는 방법과 같다고 보면 됩니다.)전설에 따르면, 고려시대의 어느 왕이 동해 쪽으로 몽진을 갔다가 이 생선을 맛있게 먹고는(피난길엔 허기가 반찬인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