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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창인의 밥집 이야기

경상도 산골짜기에 난데없는 평양냉면이?

[석창인의 밥집 이야기]- <6>

 

저의 식도락 노트에 용두식당과 함께 세트 메뉴로 붙어 다니는 식당이 있습니다. 풍기읍내의 '서부냉면'이 바로 그곳입니다.

 

그 쪽 여행을 할 때 봉화의 용두식당을 먼저 가기도 하고, 풍기의 냉면을 먼저 먹고 용두식당을 나중에 들르기도 하니 어찌되었든 두 식당에서 취급하는 한우구이를 하루에 두 번씩이나 먹게 됩니다. 봉성의 솔잎 숯불구이(돼지고기)를 먹으러 갈 때도 있지만 이럴 경우 용두식당이나 서부냉면 둘 중에 하나는 포기를 해야 하니 베르테르 못지않은 번민이 따릅니다.

당일치기로 울진이나 영덕까지 내려가 대게를 먹는 날에도 한 곳만 선택을 해야 하니까 그 아쉬움은 이루 말할 수가 없을 정도입니다.

 

우리나라 최장 터널인 죽령터널이 생긴 이후로 풍기는 이제 오지라 할 수는 없는데, 예전엔 풍기나 영주에 한 번 가려면 박달재를 지나 죽령이나 이화령을 거쳐 돌고 돌아야 했습니다. 그 정도로 오지였던 경상도 두메산골인 풍기에 난데없는 정통 평양냉면이 왠말입니까?

지금은 은퇴하신 대학 은사님이 계십니다. 교수님의 원래 고향은 평안도이신데, 전쟁 때 피난을 풍기로 내려오셨고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이곳에서 다니시다 고등학교는 다시 다른 지역으로 유학을 가셨다는군요. 그런데 많고 많은 남쪽 지방 피난지 중에 왜 하필 풍기란 말입니까?

 

사연인즉슨, 정감록을 비롯한 옛 고서에 십승지가 언급되어 있답니다. 그 십승지 중에 한 곳이 풍기라는 거지요.

십승지(十勝地)란 난리를 피할 수 있고 전염병도 막을 수 있는 천혜의 요새 같은 곳이라는군요. 물론 물도 풍부하고 농사도 어느 정도 되는 곳이고요. 그런데 주변 산세가 험하여 외부와의 통로가 오직 한 길 뿐이고, 물이 들어오기보다 빠져나가는 곳이랍니다. 역으로 해석하면, 적군의 입장에서는 군사적, 경제적 가치가 없는 곳이란 말도 되니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는 곳이기도 하겠군요.

참고로 정감록에서 언급한 십승지는 아래와 같습니다. 혹시 여러분이 사시는 동네나 고향이 끼어 있나요?

 

1. 영월 정동 상류 (강원도 영월군 상동읍 연하리 일대)

2. 봉화 춘양 일대 (경북 봉화군 춘양면 석현리 일대)

3. 보은 속리 난증항 일대 (충북 보은군 내속리면과 경북 상주군 화북면 화남리 일대)

4. 공주 유구 마곡 두 강 사이 (충남 공주시 유구읍 사곡면 일대)

5. 풍기 차암 금계촌 (경북 영주시 풍기읍 금계리 일대)

6. 예천 금당동 북쪽 (경북 예천군 용궁면 일대)

7. 합천 가야산 남쪽 만수동 일대 (경북 합천군 가야면 일대)

8. 무주 무풍 북쪽 덕유산 아래 방음 (전북 무주군 무풍면 일대)

9. 부안 변산 동쪽 호암 아래 (전북 부안군 변산면 일대)

10. 남원 운봉 두류산 아래 동점촌 (전북 남원시 운봉읍 일대)

공주의 유구 마곡 쪽이 요즘의 행정신도시와 어느 정도 가까운지는 모르겠지만, 그곳을 빼고는 아직도 땅값이 제대로 올라간 곳이 근세 이후로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 난리도 피해가는 곳이 된 거겠지요.

 

그렇게 해서 풍기 지역으로 이북사람들이 대거 내려왔습니다. 정감록에 따르면 임진() 이북은 다시 오랑캐의 땅이 된다고 쓰여 있는데 지금의 북한 사정을 생각하면 맞는 말 같기도 하고요.

 

그런데 풍기 지역으로 이북 사람들이 '디아스포라'를 한 것은 6.25 전쟁 전 후 뿐이 아닙니다. 구한말부터의 1차 디아스포라, 일제시대 2차 디아스포라 그리고 해방 후 3차 디아스포라까지 거의 4~5천 명의 이북 사람들 특히, 평북 박천, 영변 지역 사람들이 내려왔습니다. 지금도 그 후손들이 대략 천여 명이 살고 있으며, 개성 쪽 출신 사람들은 인삼을 그 외 지역 사람들은 견직물업에 종사를 하고 있다는 군요.

 

그렇다면 의문이 자연스럽게 풀립니다.  왜 이런 시골구석에 번듯한 정통 평양냉면집이 있는 지 말입니다. 애초에 견직물이 잘될 때는 냉면집이 상당히 많았는데, 직물업이 한풀 꺾이자 지금은 서부냉면집만 명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개업년도가 1973년이니 대략 40년 전통이긴 하지만, '디아스포라' 이후 많은 세월이 흐르고 나서 뒤늦게 개업을 한 경우가 되겠군요.

 

그런데 말입니다. 이 집을 다녔던 십여 차례의 시식 경험을 바탕으로 단언컨데, 육수의 간이 조금 강해졌습니다. 물론 일반 사람들과 제 입맛에 더 맞게 변한 것이긴 하지요. 그러나 과거 그 밍밍슴슴한 맛은 분명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는 거죠.

시인 백석도 국수(옛날 이북에서는 냉면을 국수라고 불렀습니다)를 이렇게 표현했다네요.

 

-중략-

 

, 이 반가운 것은 무엇인가

 

이 히수무레하고 부드럽고 수수하고 슴슴한 것은 무엇인가

 

겨울밤 찡하니 닉은 동티미국을 좋아하고 얼얼한 댕추가루를 좋아하고 싱싱한 산꿩의 고기를 좋아하고

 

그리고 담배 내음새 탄수 내음새 또 수육을 삶는 육수국 내음새 자욱한 더북한 삿방 쩔쩔 끊는 아루궅을 좋아하는 이것은 무엇인가

이 조용한 마을과 이 마을의 으젓한 사람들과 살틀하니 친한 것은 친한 것은 무엇인가

 

이 그지없이 枯淡하고 素朴한 것은 무엇인가

 

 

 

하루에 고기만 두 끼를 너끈히 먹어대는 막내 딸아이를 생각하면 부지런히 환자를 봐야 한다는 의지가 불끈불끈 생깁니다.

 

 

                     고깃값과 냉면값이 얼마나 착한지 모릅니다.

 

요즘 방송 신문에서 하도 빙초산 나쁘다는 타령을 해대니 이 집은 아예 테이블마다 양조식초를 자랑스럽게 올려두었군요.

 

 

                   고기 때깔 좀 보이소.

 

                            참숯 화력 일품이고요.

 

 

                            드디어 정통 평양 물냉면이 나왔습니다. 근자에 먹은 냉면 중에 최곱니다.

 

                          현관 입구의 구식 공중전화가 아직 작동을 합니다.

 

               풍기의 또다른 명물인 정 도너츠! 마늘마저 달콤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