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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창인의 밥집 이야기

팁의 미학 - 논현동 고깃집 '원강'에서

[석창인의 밥집 이야기]- <1>

봉사료, 팁, 촌지, 봉투, 와이로, 급행료, 거마비... 등의 단어는 전부 다른 사람에게 돈을 준다는 뜻이지만, 그 목적은 제각각 다릅니다. 봉사료와 팁 이외에는 공여자의 불순한 의도가 도사리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지요.

이집트 피라미드 안에서나 왕가의 계곡에서 '바쿠시시'가 없으면 사진조차 찍지 못하게 하다가도 일단 돈이 건네지면 아예 필자의 카메라를 뺏어들고 중요한 유물을 마구 찍어서 줍디다만, 어쨌거나 위에서 언급한 단어들은 사람이 살아가는데 중요한 윤활유가 되기도 하고 더러는 폐유가 되어 주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 모두 쇠고랑을 차게도 합니다.
 
오늘은 팁에 대해서만 생각을 좀 해보죠.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하고 팁은 코끼리도 싸이 춤을 추게 만들 수 있지만, 문제는 팁의 타이밍입니다. 솔직히 말해서 팁 말고도 남에게 주는 돈은 전부 타이밍의 예술입니다.

요즘도 교사에게 촌지를 주는지는 모르겠으나 만약 학기 초나 중간에 준다면 검은 뜻이 있음이 분명하고, 학년을 모두 마치고 일 년 동안 아이를 돌보아준 것에 감사하다며 전해주는 선물은 그야말로 착한 촌지입니다.

병원에 입원하여 수술을 집도하는 의사에게 촌지를 준다면 언제 줘야 좋을까요? 수술이 잘 되어 퇴원을 할 때 줘야 정상이지만, 기왕 줄 거면 입원할 때 드리거나 아예 입원 때 반, 퇴원을 할 때 반으로 나누어 드리는 것은 어떨까 싶네요.

"아니! 치료비를 주는데 뭔 또 촌지야? " 하시는 분들도 계시지만, 봉급으로 살아가는 봉직의사나 교수들한테는 촌지가 여러모로 쓰이는 돈입니다. 연구비 보조도 되고, 의국 살림에도 쓰이고, 품위 유지에도 요긴하게 쓰이겠지요. 저희 같은 개원의들은 진료비 완납이 곧 촌지입니다만, 가끔 직접 농사지은 검은 콩이나 옥수수를 선물로 받으면 가슴이 시큰거리곤 합니다.

최근 보도에 서울대학병원 의사들의 연봉이 3억 원 내외라고 해서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일단 촌지의 효과로 환자에게 불필요한 검사나 투약이 줄어드는 걸 기대할 수 있습니다. 요즘은 대학병원들도 교수별로 매출액이 병원장에게 당일로 바로 보고가 되기 때문에 노교수님들마저 전전긍긍한다지요?

어찌되었든 감동적인 촌지는 매출 압박을 받는 의사들로부터 과잉 진료를 막아주는 효자가 될 수도 있다는 얘기입니다. 그래서 의사들끼리는 자기 가족 치료를 부탁할 때 반드시 촌지가 ‘꼽싸리’로 늘 따라 다닙니다.
 

미국의 식당에서는 대략 15%의 팁을 밥값 계산할 때 냅니다. 아예 안 주거나 10% 이내라면 x 먹으라는 소리고, 20%는 아주 서비스가 좋았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팁 문화가 자연스럽게 자리 잡은 사회가 있는가 하면, 우리는 상황에 따라 눈치까지 봐가며 줘야합니다.

여자의 적은 여자라고, 가족 외식 때 경제권을 지닌 와이프들은 아줌마 종업원들에게 팁을 주는 경우가 많지 않습니다. 준다 하더라도 기껏 오천 원입니다.

식당에 따라서 형식적인 봉급 말고는 별다른 수입이 없는 곳이 많습니다. 그런 식당은 손님들이 주는 팁이 주 수입원이죠. 그런데 아줌마 손님들이 단체로 와서 엄청난 수다를 떨면서 식당을 들었다 놓았다 하면서 때려먹고는 팁 한 푼 안 주고 가버리는 경우도 왕왕 목격을 합니다. 일하는 분들 입장에서는 허탈 그 자체입니다.

아주 오래된 유명 식당의 경우는 종업원 아주머니들이 중국 교포들이 아니고 노회한 우리나라 아주머님들입니다. 이 분들은 일도 노련하게 하지만, 팁이 어느 테이블 손님에게서 잘 나오는지 감별진단이 확실합니다. 팁이 나올 것 같지 않은 테이블엔 신참을 내보내고 자기는 단골 손님이나 팁을 받을 가능성이 높은 곳을 담당하지요.
 
저는 식당에서 팁을 잘 주는 편입니다. 식사 후에 계산대에서 지갑 꺼내는 속도가 너무 빨라서 집사람에게 핀잔을 들을 정도인데 팁마저도 광속입니다. 팁의 타이밍은 대략 메인 메뉴를 시킨 뒤 '소폭' 첫 잔을 제조할 때 종업원을 불러 남들 몰래 주머니에 넣어줍니다. 아니면 아예 같이 소폭을 말아서 컵을 돈으로 감싸서 전해주면 못이기는 척하면서 ‘원샷’하시고 팁은 어느새 행방을 감춥니다.

팁을 받은 노련한 종업원들은 자기의 재량껏 사이드디시를 비롯해서 주방에 특별 부탁도 해주죠. 가령 만 원을 팁으로 줬다면 그 이득은 두서너 배는 족히 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평소 일상에서 느끼는 팁의 예술이자 미학 아니겠습니까?

며칠 전 논현동에 있는 고깃집 '원강'에 갔습니다.

등심과 갈빗살로 포식하고 식사로 무밥을 시켰지요. 그러나 그날따라 무밥을 싸먹는 김이 똑 떨어졌다네요. 그러나 팁의 위력은 여기서부터 시작입니다. 초장에 팁을 받은 종업원이 주방 어딘가에 숨겨둔 김을 들고 와서는 다른 테이블 손님들 볼 새라 몰래 손으로 잘라주고 갑니다.

 

여기서 ‘밥의 달인’이 주는 팁 하나!!

식당에서 팁을 주려면 밥 먹기 전에 줍시다!!

 

           두툼한 등심 그리고 그 위에 뿌려진 하얀 소금

 

            간받이살입니다.

 

1. 먹음직하게 구워진 간받이살 / 2. 팁을 받은 언니가 주방에서 훔쳐온 김을 빠알간 매니큐어 손으로 정성스레 잘라주고 있습니다 / 3. 무밥을 1인분 시켜 조금씩 나눴습니다 / 4. 무밥을 김에 싼 뒤에 간장을 조금 뿌려 먹으면 둘이 먹다가 둘 다 죽지요.

 


 

 

 

 

글: 석창인

에스엔유치과병원 대표원장

음식 칼럼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