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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창인의 밥집 이야기

진주 육회 비빔밥과 구마모토의 말고기

[석창인의 밥집 이야기]- <3>

 

소고기 육회를 듬뿍 넣어 비벼먹는 진주 비빔밥입니다. 원래 진주 교방(쉽게 말해서 요정 혹은 기생집)에서 만들어 내는 비빔밥은 칠보화반이라고 하여 붉은꽃이 활짝 핀 것처럼 꾸미지만, 진주의 천황식당이나 제일식당에서는 일반 대중을 위해 얼기설기 내는 모양새입니다.

 

 

위 사진은 구마모토의 명물인 말고기 사시미(바사시)입니다. 마블링이 소고기 이상이죠? 실제 식용으로 기르는 말이기 때문에 고베소고기처럼 육질을 개량한 것입니다. 말의 발음이 '바'이기 때문에 '니기리'를 더하여 '바니기리'라는 스시(초밥)로도 먹습니다. 물론 스테이크로도 먹고요.
 
위 두가지 음식은 전혀 공통점이 없어 보이지만, 임진왜란이라는 공통분모가 숨어 있습니다.

진주비빔밥은 진주성이 왜군에게 함락 당할 때, 군사들과 백성들이 결사항전을 다짐하고자 모든 소를 징발하여 잡은 뒤에 같이 비벼 먹은데서 유래한 음식입니다. 어차피 전쟁에 지면 소가 필요도 없고 왜군에게 뺏길 것이기 때문이죠. 결국 6만 내외의 군사와 백성이 희생된 슬픈 전쟁 음식인 셈입니다. 그에 비하여 전주비빔밥은 그보다는 역사도 짧고 덜 유명했지만, 마케팅 효과로 널리 알려진 음식입니다. (해주도 비빔밥이 유명합니다. 해주는 곰탕, 냉면 등도 유명한 걸 보니 음식에 관한한 이북의 광주가 아닐까 여겨질 정도입니다.)


구마모토의 명물인 말고기는 우리에겐 천하의 나쁜 놈이지만, 구마모토 사람들에겐 영웅같은 존재인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와 관련이 있습니다. 말고기는 그 옛날 군마가 절대적으로 중요했을 때는 잡아먹는 것이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런 전통은 전세계적으로 비슷할 터이고요. 최근 유럽의 말고기 햄버거 파동도 다 관습의 문제 때문일 겁니다. 하지만, 폐사한 말이나 다른 목적으로 사용된 말이 병들었을 때는 분명 먹기도 했겠지요. 일본에서도 간혹 먹기는 하지만 상식하지는 않았고, 구마모토나 아오야마 같은 지역에서 먹는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예전 동경의 스시집에서 '바니기리'를 먹은 경험은 있습니다만...

그렇다면 가토 기요마사와 말고기의 상관관계는 뭘까요?


구마모토는 가토의 고향이자 근거지입니다. 임진왜란이나 정유재란 이후에도 그곳에서 계속 살았는데, 인근 지역 출신이고 천하의 라이벌이었던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가 서군인 토요토미 히데요시 측에 붙은 것에 질투심을 느껴 먼 친척간인 토요토미 대신에 동군인 도쿠가와 이에야스 측에 붙어 세키가하라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습니다. 덕분에 고니시 유키나가의 땅도 전부 뺏어왔고요.
그런 가토 기요마사가 정유재란 때 조명 연합군에게 쫒겨 패퇴하다가 마지막으로 항전을 하며 최후의 탈출을 도모한 곳이 바로 울산성입니다. 그곳에서 혹독한 추위와 물부족 그리고 식량부족을 겪은 나머지 모든 군마를 잡아 먹었다는데, 구마모토 사람들이 이를 기념코자 지금까지 말고기를 먹는 것입니다.
북한 역사책에서 주장하는 바에 따르면 경상도의 '쾌지나칭칭나네'가 원래 울산성 전투에서 패퇴하여 도망가는 가토 기요마사를 보고 '쾌지나 청정(淸正)나가네~'라고 노래를 한 데서 비롯되었다고 그럽디다만....


그런데 구마모토에 가서 제가 과연 말고기를 먹었는지 안 먹었는지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조선을 침략하고 무고한 백성들을 죽인 토요토미의 제 2 선봉장이었던 가토 기요마사를 기리기 위해 구마모토 사람들이 먹었다는 그깟 말고기를 자칭 애국자인 제가 먹을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그러니까 '미식'보다 우선하는 것은 '민족과 역사'라는 말입니다.

 

 

 

 

 

글: 석창인

에스엔유치과병원 대표원장

음식 칼럼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