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르던 영국 일주여행을 열흘간의 주마간산으로 대신했다. 보는 즐거움보다는 못 몰 꼴 안 보는 것이 더 행복한 가운데, 이낙연 총리 지명 소식은 그나마 한줄기 위안이었다. 지난 20개월 남짓, 생명보다 더 소중한 붓을 꺾었던 고 천경자 화백의 ‘분노조절장애’로 시작하여, 분노와 증오가 불러온 세계적인 반(反)지성 물결의 정확한 한국판인 최순실-박근혜 사태까지, 모두 40여 편의 글을 썼다. 시차관계로 절반밖에는 실리지 않았지만, 분석과 진단에서 무리는 없었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소용돌이 가운데 광주일고와 서울법대를 나와 동아일보 논설위원을 하고, 4선 의원과 전남지사를 거치는 동안, 신중과 온건함의 대명사로서 명 대변인의 별명을 얻은 이낙연 총리의 인품을 높이 산다. 취임사에서 “촛불혁명은 정부의 무능·불통·편향에 대한 절망적 분노에서 출발해, 새로운 정부 가동에 대한 지지로 전개되고 있으며, 공직자들은 촛불혁명의 명령을 받드는 국정과제의 도구들”이라고 말했다.그의 진단과 소명의식은 그가 문재인 대통령을 포함한 집권세력을 통 털어, 가장 올바르고 뛰어난 군계일학(群鷄一鶴)의 인재임을 웅변한다. 적폐의 청산이라는 날 서고 보복적이며 낡아빠진 증오감을 초월하는,
Habeas Corpus. 지난 2월 삼성 이재용 부회장의 구속을 보고 쓴 칼럼 제목이다.영국은 이미 8백 년 전 인신(人身)을 함부로 구속하지 말라는 개념을 정립하였다(Magna Carta 1215년). 1679년 개정안으로 보강된 인신보호율 영장은 우리 헌법에도 인신보호법(Habeas Corpus Act)으로 규정되었다. 불구속 수사 원칙은, 확정판결 전 무죄추정의 원칙·적법절차의 원칙과 함께, 인권보호의 기본권이다. 피의자에게 검찰의 힘을 과시하여, 겁주며 기죽여 자백을 강요하는 구속이라면, 기본권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사실상의 고문 내지 징벌이다. 도주와 인멸의 우려가 있거나, 주변 사람을 해칠 정도로 흉악한 피의자일 때 추가 범죄를 막으려고, 검사는 구속영장을 신청하고 판사는 영장심사를 한다. 그러나 지극히 모호한 ‘중대한’ 사건이라는 이름으로 피의자가 판결 전에 징벌 받는 것은, 검찰의 ‘조사 편의주의’라고 본다.그런 의미에서 검사는 임관 전에 그리고 판사는 영장담당을 맡기 전에, ‘구치소 체험’을 제도화했으면 한다. 일반인 신청도 받자. 동아일보에 박 전 대통령을 마땅히 구속해야한다는 의견을 주신 하승원 주부나, 민주당의 “변기 교체” 안민석 의
아직은 한국 돈 천원이 중국에서 꽤 힘을 쓰던 시절, 칭따오 어느 골프장에서 겪은 일이다. 티샷을 하려고 빈 스윙을 하는데 가이드가 외친다, “잠깐만, 회원님이 오셨습니다.” 짱꼴라(중꿔렌)가 먼저 나가셔야 하니 비켜달란다. 덕분에 그날로 중국 골프여행은 발을 끊었다. 동서가 일본에 교환교수로 가서 조카가 일본 유치원에 다녔다. 언젠가 처가에서 자고 일어난 여섯 살 조카가, 이불과 요를 끙끙대며 개는 것을 보고, “사회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는 말을 실감하였다. 아이가 식당에서 고함치며 뛰어다녀도 흐뭇하게 바라만보고, 옆에서 한마디 하면, “왜 우리 아이 기를 죽이느냐!”고 달려드는 부모들.자식을 이렇게 키우니 ‘떼 법’이 거리를 접수하고, 법치는 물 건너간다. 그 부모가 바로 최순실 아닌가.일본 따라가려면 한 세대, 아니 50년도 어렵다. 중국은? 한마디로 백년하청이다. 오냐 오냐 온실에서 키운 민족이 한국인이라면, 중국은 공산당 일당독재 인공보육기(Incubator)에서 사육한 동물의 왕국이다. 죽으라면 죽는 시늉이 아니라 죽는다. 아니 죽인다. 마늘과 쑥으로 백년 만에 사람이 되고, 다시 백년쯤 더 간다고 유전자가 바뀔까? 대
심산유곡 오지에 아직도 당나라 세상인 줄 아는 중국인들이 있다고 한다. 처음중국에 가서 가이드에게 들은 얘기로, 그만큼 나라가 크다는 자랑에다가, 정치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백성이 모를 정도라야 태평성대라는 뜻도 되겠다. 물론 단 한 번도 자유민주주의를 경험하지 못한, 절대독재 공산주의국가인 중국의 우중(愚衆)정책에 대한 풍자도 곁들였다. 반대로 소위 자유민주국가라는 대한민국 국민은 정치를 ‘너무 밝혀’ 불행한 것인지도 모른다. 포장마차에 서넛이 모이거나 월례 친목회에 가도 정치토론 과잉으로 고성(高聲)이 오가더니, 종편방송 전성시대를 맞아 정치토크쇼가 목숨을 건 ‘밥줄’로 자리 잡았다. 종편들이 앞 다투어 선정성 자극성 과열경쟁으로, 불타는 ‘정치과잉’에 기름을 들어부으니, 냉정한 판단은 실종하고 분노와 분열과 대치(對峙) 국면만 남은 것이다. 이제는 끊었지만 한때 빠져들었던 TV 조선 ‘강적들’을 보면, 보수패널 틈에서 고군분투하는 적일점(赤一點; 꽁지머리라도 거시기는 달렸을 테니 분명히 紅一點은 아님)* 김갑수는 꽤 매력이 있었다. 돌아가며 들이대는 도발에도 흥분하지 않고, 차분하게 논리적으로 대응하더니, 시청자들의 항의로 끝내 잘렸단다. 막말파동으로
똑같은 날생선(raw fish)을 한국은 생고무처럼 팔팔한 회로 먹고, 일본은 열 시간쯤 숙성하여(aging) 입안에서 스르르 녹는 사시미로 즐겼다. 우리는 먹고살기 바빠 적당히 분해된 아미노산의 감칠맛을 몰랐던 탓이다. 이제 생활수준의 향상과 신선한 식재료의 공급으로, 육류까지도 숙성의 묘미를 즐긴다. 문제는 빨리 빨리 습성은 여전하여 느긋하게 기다리지 못하는 점이다. 한국병의 많은 부분이 이처럼 몸과 마음이 따로 놀기 때문 아닌가 싶다.낡은 상투어(cliche) 한 마디 하자. 젊어서 진보가 아니면 바보요, 나이 들어 여전히 진보라면 더 바보다. 연륜이 성숙하지 못하고 헛바퀴만 돌기 때문이다. 진보는 사회주의·공산주의자로, 보수는 자유주의·시장주의자로 바꿔 써도 좋다. 보수는 계속해서 보수(補修)하는 자, 진보는 진부(陳腐)한 수구꼴통으로, 이념에 갇혀 제자리걸음 내지 후퇴하는 자라는 말이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라는 질문은 영원한 숙제다. 그러나 보수가 먼저 있어야 진보가 성립한다는 사실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따라서 대한민국에 진정한 진보는 없다. 갑자기 얻은 독립 겨우 2년, 김일성 침략으로 무너진 경제적 토양에, 과연 역사적으로 유
최근 일본 거주 중국인들이 APA 그룹 호텔에 비치된 모토야 도시오의 저서에서, 극우 역사관을 보고 놀라 시위를 벌였다. 필자는 2013년 7월 니가타에서 그 책을 읽고, “피해자 놀이” 등 5편의 칼럼으로 왜곡된 역사를 논박하였다. 그룹회장인 저자는 대일본제국 부흥을 꿈꾸는 아베수상의 열렬한 후원자다. 다음해에 “종군위안부와 성노예” 시리즈에서는, 오리발 내미는 아베정권을 꾸짖었다. 두 문제는 독도와 함께 우리 가슴에 염장을 지르고, 흥분한 일부 국민의 과민 반응은 피해를 자초하였다.싸움이든 흥정이든 국제관계도 먼저 흥분하는 편이 진다. 경기 도중 골대를 옮긴다는 일본의 비난은 국제여론의 지지를 얻었고, 대사 소환과 외화스워프 협상연기와 정보 상실로, 우리는 외교·경제·군사 모든 면에서 막대한 타격을 입었다. 외환위기(1997) 때에 결정타가 일본의 지원 거부였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마침 대통령탄핵으로 인한 리더십 부재와 맞물려, 미·중·일·러 등 국제정세의 격변 가운데, 대한민국은 고립무원의 외톨이로서 궁지에 몰리고 있다. 전투 중에도 대화의 창구는 열어두려고 백기를 든 사자(使者)는 해치지 않고, 외교관의 행낭은 뒤지지 않는다. 세계만방이 대사관의 치
비좁은 이마를 밭고랑처럼 기어간 석 삼자(三字)와, 미간에 깊이 파인 내 천자(川字) 주름. 가난한 집안에 태어난 고 노무현대통령이 최종학력 상고 졸업에 독학으로 사시에 합격하기까지, 간구(艱苟)한 성장기의 어려움이 남긴 자랑스러운 훈장이다. 그러나 뉴스시간마다 하구한 날 험상궂은 얼굴을 접해야하는 국민을 생각해서라도, 보톡스나 필러 시술은 국민에 대한 예의요 서비스였다. 청와대 최초이자 최후로 부부가 함께 쌍까풀 수술을 받은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하고 인정한다.귀천을 떠나 구(區)의원에 출마해도 점 빼고 사마귀 빼고 필러 넣은 세상 아닌가? 물론 모기처럼 가냘픈 목소리에 작은 포유류를 연상시키는 얼굴을 자랑스럽게 들고 다닌 이명박 전 대통령의 의연(毅然)한 강골을 따를 수는 없지만 말이다. 양악수술은 윗 턱뼈를 시계방향으로 회전하고 상방으로 매몰하여 얼굴을 귀여운 V 라인으로 만들어준다. 때로는 아래턱 양 우각 부와 앞 끝을 줄이고(Genioplasty), 광대뼈 축소술도 함께 시행한다. 어려운 수술이지만, 수요가 늘자 기술도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술 후 가끔 나오는 환자의 호소 중에 비대칭의 빈도가 높다. 선반(旋盤)에서 백만분의 일 인치 오차로 절삭
진시황의 분서갱유(焚書坑儒) 이래 최악의 재앙인 문화대혁명은, 북경대학교 벽에 나붙은 한 장의 대자보에서 시작되었다. 내용의 진위와는 관계없이 인류 보편적 가치를 추구하던 선각자(당권파: 류샤오치 덩샤오핑)들은 인민재판으로 숙청당하고, 그 후 10년간 사망 34,800명에 피해자가 729,511명(실제로는 몇 백만?)에 달하였다.마오쩌둥은 장춘하오가 장악한 공식 미디어와 대자보(오늘날 인터넷 언론)를 동원하여 반대파를 모조리 실각시켰다. 그것은 대약진운동의 참담한 실패로 실각했던 마오가 권력을 탈환하기 위하여, 홍위병의 떼 법을 동원한 ‘국정농단’이었다. 농단이라는 말은 사전적 어휘라기보다 “가지고 놀다” 정도의 의미니까, 형법상 ‘농단’이라는 범죄는 없다.* 문제는 대통령이라는 직책의 중량이다. JTBC 등 최순실 사태를 주도한 미디어들은, 첫째 박근혜 대통령이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막중한 나랏일을, 무지몽매한 여편네에게 떠맡겼다는 논리를 펴왔다. 탄핵단계에 와서는 용인 판결을 피하려고 영리하고 교활한 기획 플레이를 하고 있다고 말한다.무지와 영리 사이에 일관성이 없으니, 만약 똑똑하다면 무지한(?) 박대통령이 사람 하나는 잘 골랐다는 결론이 된다. 둘째
왕의 남자에 이어 관객 천만을 돌파한 영화 ‘괴물’을 보고, “괴물과 퀴즈”라는 칼럼을 썼다(2006). 미군기지 영안실에서 시신용 방부제 포르말린을 하수구에 버려, 한강에 돌연변이 괴물이 태어난다. 괴물을 퇴치하는 “정의의 무기”가 바로 신나(thinner), 화염병과 불화살이요, 최후에는 송강호가 쇠파이프로 숨통을 끊는다.방류사건 당시 삐딱한 언론들은 “하수구에 방류”가 아니라 “미군, 한강에 독극물 살포(撒布)!”라는 제목을 달았다(2000). 도발적으로 왜곡하여 반미감정을 선동하는 언론, 그리고 전 세계 매스컴을 장식하던 부끄럽고 폭력적인 불법시위 무기에 찬가(讚歌)를 바치는 영화... 문화 예술에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면 안 되지만, 최소한 ‘왜곡된’ 이념의 선전물에 국민 세금으로 조성된 ‘지원금’을 줄 수는 없다.“허구에 기초한 블랙 코미디”라고 강변하다가 세 장면 삭제 및 1억 원 배상 판결을 받은 “그때 그 사람들”에 비하면, 괴물은 그나마 가족영화 또는 패러디로서 완성도 높은 수작이었다. 사전검열은 금기요 일단 영화관에 걸리면 반론의 수단이 없는 영화이기에, 국뽕이든 좌경이든 상습적으로 편향된 이념의 판촉(販促)물을 돈 주고 보는 사람은 공범
“새 시대 향한 명예혁명(중앙일보)”, “대통령 ‘100만 촛불’의 목소리 제대로 듣고 있나(동아일보)”. 눈에 익은 ‘De-ja vu’다. 2008년 광우병 때 70만 촛불 보도를 닮았다. 8년 전 주제는 결국 ‘사기극’이었으나, 당시 햄버거 세트 + 지방 버스 동원과 이번 관광버스 할인 + 도시락제공은 판박이다. 의혹이 밝혀질 때까지를 못 참고 냄비처럼 들끓어 국력을 소진하는 것이 답답하다. 불통의 ‘박 고집’은 꺾이고 최순실 비선라인은 부서져 구속수사 중이다. 일단 진정하고 국가명예 회복과 새 시대 여는 일에 집중해야지, 막말로 똥 밟은 발바닥을 왜 자꾸 비비나?‘최순실게이트’의 최종 책임자는 청와대이니 ‘박근혜 게이트’가 옳다는 말에 동의한다. 사기 당해서 재산 날리고 자살하는 가장이 한 둘인가? 같은 선출직으로서 청와대에 대한 감시와 견제에 무능하고 소홀했던 국회는 준 공범 아닌가?참회하는 자세로, “30년 간 6공 체제를 지키려 노력한 결과가 이 꼴이니, 후진을 위하여 새 판을 짜는 것 까지만 하고, 우리는 물러납시다.”라고 선언하자. 새 판짜기(개헌)를 주도할 인물은? 한 방송 진행자는 대선후보가 잠룡인지 잡룡(潛·雜)인지 발음이 똑같다며 웃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