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는 사흘에 한 번은 맞아야... 여자와 북어는 두들길수록... 여자 목소리가 담을 넘어가서야... 암탉이 울면 집안이... 이런 악담이 자연스럽게 오가던 시대가 있었다. “여인도 성불할 수 있나요?”라는 질문이 있었고, 카톨릭에 여성 신부는 어림없었으며, 여성 목사는 여전히 드물다. 무슬림여성의 인권은 말할 것도 없다.그렇지만 조부모님부터 필자 10남매에 2세들까지, 부부간 손찌검은 물론 대화에 “해라”도 들어보지 못했다. 보통사람들은 거의 다 그렇게 산다. 인생은 고해라 하니, 겉으로는 멀쩡해도 누구에게나 몇 번쯤 버거운 고비가 온다. 삶은 정(靜)적인 존재가 아니라, 끊임없이 숨 쉬고 반응하는 상태요 과정이기 때문이다. 배려하고 협력해야 버티어내니까, 부부간에 ‘인내와 상호존중’은 생존의 전략이기도 하다.시민사회가 형성되자 ‘세기말 현상’이라는 용어가 탄생한다. 20세기 말 월가의 무한자본주의에 따른 천문학적 부의 쏠림이 ‘증오와 분노’로 폭발하고, 무수한 파편이 우박처럼 쏟아지고 있다. ‘미투’에 벌집을 쑤신 듯 초대형 연쇄반응이 뒤따르는 첫째 이유는, 세기말적인 분노의 증폭현상에 있다고 본다. 둘째, 미투는 ‘남녀관계’에 엉뚱한 ‘갑을관계’가 끼
서울시장에 출마한 박원순 후보에게 기자가 물었다. “공약을 실천하려면 천문학적인 돈이 들 텐데요?” 대답은 간단하다. “기업에서 협찬을 받으면 됩니다.”공적 예산을 ‘삥 뜯기’로 마련한다는 발상은, 세금 걷어 월급 주면서 일자리라고 우기는‘퍼주기’와 거기서 거기다. 우리가 그런 세상에 산다. 해롤드 로빈스(1916–1997)는 베스트셀러만 25권에 총 7억5천만부가 팔린 인기작가로서, 전에 ‘벳씨’를 소개한 적이 있다(소비자 보호; 1978). 소비자 정보지를 만든다며 메이커를 등치고 삥 뜯는 고수얘기다.또 하나의 베스트셀러 ‘외로운 숙녀(the Lonely Lady; 1976)’에서 제릴리는 아카데미 대본(Best Screenplay)상을 받는다. 수상소감과 감사의 멘트. “내가 한 일은 제작자 배위에 올라타기, 남자주연의 그곳 애무하기와 감독 마누라의 거시기 뽀뽀였고, 이 모든 분에게 영광을 돌리려고 이 그림을 그렸습니다.” 목 뒤의 매듭을 풀자 드레스가 흘러내리고, 알몸 한복판에 거꾸로 그린 황금빛 오스카상이 선명하다. 오스카의 머리는 치모(恥毛)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영화계의 하비 와인스틴을 예고하고, 숨죽인 미투를 고발한 첫 소설이다. 첫
골프 장타대회에서(World Long Drive, Nevada)에서, 여성은 342야드(Chloe Garner) 남성은 436야드(Ryan Liswick)로 각각 우승했다. 남녀 맞수대결에서는, 대략 파 3는 30 파 4는 60 파 5는 120야드 정도, 여성이 앞에 나가 치도록 한다. 체격 즉 근골(筋骨; 2, 30%)의 격차를 보정해주는 것이다. 남자대회에 나간 장타의 미셀위는 컷오프 당했고, 전설의 소렌스탐은 아예 출전을 포기하였다. 존경받는 테니스의 마가렛 코트여사가, “여자 프로에 왜 그리 레즈(동성애자)가 많은지.”라며 혀를 찼다.빌리 진 킹은 좀 덜하지만 나브라틸로바의 용모나 체격은 남자 중에도 상 남자다. 올림픽약물검사는 주로 근육강화제(Anabolic Steroid)를 찾는데, 시작은 여자선수에게 남성호르몬을 투여하는 공산국가의 부정행위였다. 제 버릇을 못 고친 러시아는 여전히 올림픽에서 찬밥 신세다. 1·4후퇴로 헤어져 도쿄 역에서 13년 만에 눈물의 상봉을 한 신금단 부녀를 기억하는가? 북한 단거리육상선수로 세계신기록 11개 국제대회 금메달 28개를 자랑했던 신금단의 용모와 체격은 천상 남자, 조금 에누리를 해도 중성이었다. Frailt
아주 흔한 유머 하나. 한 남자가 알몸으로 여탕에 들어갔다. 신고 받고 출동한 순경의 체포 죄명은 불법무기 소지죄인데, 재판장은 무죄를 선고한다. 판결이유는 물총은 흉기가 아니라는 것.1960년대에 의치대나 법대에는 여학생이 2, 3% 정도였다. 하느님은 한 사람에게 두 가지 선물을 주시는 데에 무척 인색하시니, 그분들의 미모는 상상에 맡긴다. 천지가 개벽하여 요즘 판검사 임용 보도를 보면 여성이 보통 3, 40%다. 남녀불문으로 공부 잘하는 친구가 인물까지 훤하다. 헐리웃에서 불어온 ‘미투’바람을 한국에 도입한 서지현 검사도 “검사 맞아?”할 만큼 뛰어난 미모다. 권력기관에 있는 분일수록 권력에 약한 법인데, 비록 8년이 지난 일이라도 조직의 상관을 고발한 용기에, 사회 곳곳에서 반응이 뜨거웠다. 그것도 잠시, 문학·연극계에 옮겨 붙은 불씨가 역풍을 타고 문화계 전반에 번지자, 뜬금없이 음모론이 떴다. 꼴뚜기인지 망둥이인지 항상 헷갈리는 딴지일보 김어준이, “문재인 정부의 진보적 지지자들을 분열시킬 기회다.”라고 주장한다. 흔히 진보적 좌경 인사가 성적 절제력이 흐릿하다는 통념 탓에 제 발이 저렸는지, 여권 일각에서도 상당수가 음모론에 동조하는 분위기다.
짓궂은 사육사가 침팬지에게 자위행위를 가르쳤더니, 한 번 쥐면 놓지를 않아, 시름시름 앓다가 석 달 만에 죽었단다. 믿거나 말거나하는 얘기지만, 다큐 ‘동물의 왕국’에는 짝짓기를 위해서 목숨을 걸고 싸우는 수컷들이 약방에 감초 격이다.맹수는 수정도 어려워 수사자는 하루에 수십 번 사정을 하고, 성질 급한 호랑이는 체구 작은 암컷을 물어 죽이기도 한단다. 이처럼 DNA를 남기려는 수컷의 눈물겹고 필사적인 투혼이 없었더라면, 대부분의 동물은 일찌감치 멸종했으리라. 짐승 가죽을 몸에 두르고 조잡한 곤봉을 든 원시인이 나오는 미국만화가 있었다. 몽둥이는 본래 사냥용인데, 여자 뒤통수를 때려 기절시킨 뒤 끌고 와 짝짓기 할 때도 쓴다.비록 만화다운 상상력의 산물이지만, 강한 남자만 DNA를 남기고 근친교배도 예방하는 일석이조, 약탈혼(掠奪婚)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다. 문명이 발달하여 밀집생활 하는 사회가 되자, 인간은 도덕과 질서를 학습하고, 세상이 평등해지자 드디어 힘없는 짚신도 짝을 찾는다. 그러나 잠복했던 수컷의 공격본능은 애써 훈련한 자제력을 뚫고, 가끔 불쑥 불쑥 튀어 나온다. 통제(도덕·질서)를 벗어난 수컷의 공격성은, 힘이 사회적인 서열로 대체된 세상
“만약 워털루에서 나폴레옹이 승리했다면,” 이런 역사의 가정법은 죽은 자식 불알 만지기라고 한다. ‘나만 옳을까?’라는 칼럼 세 편의 글 머리였다(2014. 7).1편은 그해 8월에 실리고 함께 보낸 2·3편이 나오기까지 근 2년이 걸린 이유를, 편집인의 실수라고 둘러대지만, 필자는 살아있는 문학권력에 대한 비판을 꺼리고 노벨문학상 기대주인 작가를 배려한 것으로 본다. 바로 시인 고은 얘기다. 첫 편 ‘과거사 청산’에서는 많은 한국인이 부러워하는, 나치 부역자에 대한 프랑스식 청산을 살폈다. 프랑스는 제1차 대전 패전국 독일에 지독한 배상금을 부과하여 히틀러의 집권을 도왔고, 마지노 방어선만 믿다가 불과 40여일 만에 나치의 탱크에 무릎을 꿇어(1940. 6. 22), 전쟁 내내 무대에서 쫓겨난 굴욕과 무력감을, 나치에 협력한 동포들에 대한 분풀이로 투사하였다. 5년 간 독일군 사상자 815만에 포로 185만 명, 악에 받힌 나치의 유태인 학살과 열 명 스무 명씩 프랑스 국민을 무작위로 공개처형하는 공포의 광기 속에 벌어진 부역행위다. 제 손으로 지켜주지 못해 독일군 현지처가 될 수밖에 없었던 제 누이들의 머리를 깎고 조리를 돌리는 등 전국적인 린치(私刑)
베토벤의 에그몬트 서곡 같은 느릿한 저음. 사형대계단을 오르내리는 듯한 3단음의 반복이, 정점에 이르러 흠칫 멈췄다가, 순간 추락하여 여운처럼 길게 깔린다.억눌린 격정을 음표로 써내려간 의태어(擬態語)다. “난 이미 죽어있을 거에요.그리고 내 눈동자는 자연스럽게 당신을 향해 열려있을 거에요. 우울한 일요일에”찬바람의 슬픈 외침 속에 죽은 여인이 남긴 시는 이 선율과 만나, ‘죽음의 후크 송, 자살에의 초대’를 완성한다. Laszlo의 노랫말에 Rezso가 곡을 붙이고 프랑스 다미아가 부른 ‘우울한 일요일’은, 헝가리에서 발매 8주 만에 악단 전원, 그 외에 187명의 연쇄자살을 불러와(1933), 유럽에서는 노래를 금지시키고 판을 회수하였다.예측 못한 무서운 음악의 충격이, 두 세계대전 사이 유럽사회에 만연했던 우울증의 뇌관에 불을 댕긴 것이다. 같은 해에 히틀러는 수상이 되고 의회가 ‘전권위임 법’을 통과시켜, 세계적인 ‘전체주의의 광풍’이 불어 닥친다. 자살률 세계1위인 대한민국에, 거래자의 60%가 2030이란다. ‘김치 프리미엄’ 나라에 ‘비트코인 블루’라는 신종 우울증이 발병하고, 국내외 규제로 시세가 반 토막 나자(검은 금요일: 2월 2일), 한
오후의 山村. 다섯 살쯤 돼 보이는 아이 하나가 앉아서 소가 풀 먹고 새김질 하는 걸 바라보고 있다. 가까이 가는 사람도 못 느끼고 정신없이 보고 있다. 문득 나를 알아차리고 쳐다보며 얼른 「어디 살아요?」 하고 묻는다. 「나는 서울 사는데 너는 여기 사니?」 목소리를 듣자마자 천하를 안심하고 다시 소한테로 눈길을 돌린다. 소 주려고 우리 바깥에 있는 짚을 한움큼 집는데 아이가 좋아하는 얼굴로 「그거 잘 먹어요」 한다. 그 목소리 속에는 친근감과 기쁨이 들어 있다(자기가 하는 짓을 낯선 사람도 하는 데서 느끼는 친근이요 기쁨이었을 것이다).그 뒤로 내 마음에 또렷한 그 「풀 먹고 있는 소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는 아이」의 사진을 나는 가끔 바라본다. 잊히지 않는 그림. 지지 않는 꽃. 평화여.[평화]아이와 소, 세상에서 가장 순수한 것들의 조합입니다. 그걸 바라보며 평화를 느끼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겁니다. 그러므로 이 시는 처음부터 끝까지 맑고 얕은 강물처럼 속을 훤히 드러내 보입니다. 무얼 꾸미고 말고 할 것도 없이 있는 그대로 느끼기만 하면 되는, 독자들에겐 마냥 편한 시입니다. -어느 산촌. 혼자 심심한 아이가 우리에서 풀을 씹는 소를 물끄러미 쳐다보고
예과 때 농구 잘하는 후배가 있었다. 키는 165에 언제 외국인의 피가 섞였는지 얼굴은 이종격투기의 알도를 닮았다. 몸놀림이 날렵하여 장신 숲 속을 내 집 안방처럼 휘저어, 번개같이 레이업 슛을 성공시키는 포인트 가드였다. 청량리 역전 골목에 ‘돈 놓고 돈 먹기’ 야바위꾼이 많았다. 두자 사방의 목판에 놓인 컵 3개를 엎었다 제쳤다 빙글빙글 현란하게 돌리는데, 그 중 하나에만 주사위가 들어 있다.돈을 걸어 맞추면 다섯 배를 받고 틀리면 빼앗기는 머니게임의 이름은 ‘오 곱’. 눈썰미라면 자신만만한 이 친구가 도전했다가 30분 만에 한 달 용돈을 다 털렸다.시계를 풀어놓고 마지막 한 판, 선수 손과 함께 컵을 꽉 잡는 순간, 옆에 서있던 친구와 동시에 정신을 잃었다. 한참 뒤 깨어나니 꾼들은 모두 달아나고 친구 가방까지 가져갔다. 사실 얼핏 본 주사위는 어느 컵 안에도 없고, 항상 선수 주먹 안에 숨겨져 있었다. “저런, 틀리셨네.”하며 다른 컵을 뒤집어 보일 때 슬쩍 나타난다.눈치 빠른 이 친구도 뒤늦게 깨닫고, 손목을 잡는 순간 퍽치기가 날아온 것이다. 프로는 막다른 궁지에 몰려도 전세를 뒤집을 막판 에이스를 감춰둔다. 프로들은 가시는 걸음마다 돈이다. 머
얼음을 등에 지고 가는 듯 봄은 멀다 먼저 든 햇빛에 개나리 보실보실 피어서 처음 노란 빛에 정이 들었다 차츰 지붕이 겨울 짐을 부릴 때도 되고 집 사이에 쌓은 울타리를 헐 때도 된다 사람들이 그 이야기를 가장 먼 데서부터 시작할 때도 온다 그래서 봄은 사랑의 계절 모든 距離가 풀리면서 멀리 간 것이 다 돌아온다 서운하게 갈라진 것까지도 돌아온다 모든 처음이 그 근원에서 돌아선다 나무는 나무로 꽃은 꽃으로 버들강아지는 버들강아지로 사람은 사람에게로 산은 산으로 죽은 것과 산 것이 서로 돌아서서 그 근원에서 相見禮를 이룬다 꽃은 짧은 가을 해에 어디쯤 갔다가 노루꼬리만큼 길어지는 봄해를 따라 몇 천리나 와서 오늘의 어느 주변에서 찬란한 꽃밭을 이루는가 다락에서 묵은 빨래뭉치도 풀려서 봄빛을 따라나와 산골짜기에서 겨울 산 뼈를 씻으며 졸졸 흐르는 시냇가로 간다 [회귀] 봄은 회귀의 계절입니다. 눈 녹고 얼음이 풀리면서 졸졸 계곡 물이 흐르고 그 생명수를 마시고 나무들이 깨어나 꽃을 피웁니다. 얼었던 길이 열리면 길 끝 아지랑이 너머로 떠났던 것들 슬밋슬밋 제자리인양 되돌아오고, 봄볕에 마음마저 녹아내려 서운하게 갈라진 모든 것 처음인양 근원에서 돌아섭니다. 봄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