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케팅 4P 치과 Product(제품) → 진료 Place(매장) → 위치, 설비, 인테리어 Promotion(판촉) → 의사소통, 홍보 판촉 Price(가격) → 진료비
아프리카 밀림 속 작은 광장, 물이 설설 끓는 가마솥 옆에 백인 선교사가 묶여 있다. 아이가 막대기로 쿡쿡 찌르니 엄마가 타이른다. “아가, ‘먹을 걸’ 가지고 장난치면 못 써!” 미국 만화에서 본 이야기니까 그냥 전도에 따르는 위험과 어려움에 대한 해학으로 이해하시라. 종교는 문득 깨닫거나 신의 계시를 받아 시작된다. 비 종교인의 눈으로 보면 직관이니, 그 성인이 살던 환경이나 문화와 따로 떼어 해석할 수 없다. 단순화 해본 3대 종교의 출발점은, 유대 율법학자를 뛰어넘은 그리스도, 구약을 유목 생활에 접목한 마호메트, 성직자가 군림하는 브라만을 바로잡은 석가모니 아닌가? 가르치려 들면 누구나 질색하고 내 주장만 내세우면 ‘꼰대’라 하는데, 하물며 어디서 눈동자 피부색도 괴상한(?) 인간이 나타나 낯선 것을 따르라 하니 쉽게 먹혀 들 리가 없다. 처음 시작할 때는 본고장에서도 그랬다. 병나면 푸닥거리요 가물면 기우제 지내는 무당에게 새로운 경쟁자자 반갑겠는가? 부족국가가 큰 나라로 자라면 정교(政敎)의 마찰과 화해를 거쳐, 종교는 군주의 위계질서확립에 봉사하든가 아니면 도태된다. 산업의 발달과 도시화, 체제 변화와 주력계급 이동에 적응하지 못해도 역시 낙오
치과를 방문한 대부분의 환자는 국소마취를 통해 통증을 조절하며 치료를 받는다. 하지만 치과 치료에 극심한 공포를 가지고 있거나 국소마취제에 알레르기 반응이 있는 경우, 혹은 구강 내 기구 사용에 대한 구역반사(구역질)가 심한 환자는 국소마취 하 치료가 어려울 수 있다. 이러한 경우 대안이 될 수 있는 전신마취는 마취제를 통해 의식을 소실시키고 감각기능 중 아픔을 느끼는 통각(痛覺)을 억제하는 마취방법 중 하나이다. 전신마취 시 의식이 소실되어 치과 치료에 공포를 가지고 있는 환자도 편안하게 치료를 받을 수 있으며, 구역 반사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다. 또 국소마취제에 알레르기 반응이 있는 환자에게 전신마취는 유일한 해결책이 될 수 있다. 전신마취제는 국소마취제와 작용 기전이 다르므로 국소마취제에 알레르기 반응이 있는 환자가 전신마취제에도 같은 반응을 보이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이다. 실제로도 치과 치료에 대한 공포와 불안이 큰 환자들이 전신마취를 선택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European Journal of Oral Science(2009)에 게재된 논문에 따르면, 치과 치료에 강한 공포를 느끼는 사람은 약 20% 전후로 알려져 있으며 그중에서도
'마케팅은 제품과 제품의 싸움이 아니라 인식의 싸움이다' -Al Ries & Jack Trout- 병원 사업 역시 치료 기술의 싸움이 아니라, 고객의 인식을 어떻게 사로잡느냐의 싸움이다. 즉 잠재고객의 기억 속에 한 단어를 심을 방법만 있다면 그 회사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엄청난 성공을 거둘 수 있다. 소비자는 매일매일 엄청나게 많은 광고들에 둘러싸여 있다. 소비자들은 기억하려 애쓰지 않고, 기억할 수도 없다. 그러므로 짧은 단어로 우리를 표현하는 것이 소비자들에게 기억 당하는 데 훨씬 유리하다. 세계적인 기업들은 거의 모두가 고유의 이미지를 표현하는 한개의 단어를 갖고 있다. 즉 볼보는 안전, Crest는 충치, Fedex는 Overnight, Nike는 Just do it! 등등.. 치과에서 위력을 발휘할 수 있는 단어들도 많다. 무통, 정밀한 기술, 예술, 젊음 회복, 성형치과, 안전, 친절... 단어 선택은 한 국가의 대통령 선거를 좌우하기도 한다. 미국 공화당이 세금을 줄이는 '세금삭감' 정책을 발표했을 때 국민 여론은 부정적이었다. 왜냐하면 많은 사람들이 부유한 이들에게 혜택을 주는 정책이라 여겼기 때문. 그러자 공화당은 슬그머니 이를 '세
서서히 성숙하고 연한이 차면 스스로 퇴화하는 ‘두뇌’라 불리는 슈퍼컴퓨터. 그것도 수십억 수백억이 다 다른 기종(機種)을 오직 단백질 하나만으로 조립해내는 전능한 ‘절대자(Supreme Being)의 존재’를 부인하기는 어렵다. 사람은 초기 컴퓨터라는 새하얀 천에 청실홍실 수를 놓으며 인생이라는 드라마를 엮는다. 절대자는 곧 ‘신’이요 어떤 수를 놓느냐 하는 것이 종교의 ‘가르침’이라면, 인간의 ‘영적상태’를 한 시점에 고정할 필요는 없으리라. 삶을 꿰뚫어 정성껏 수놓는 초심을 잃지 않았다면, 더러 만난 시행착오나 갈지 자 걸음은 용서를 받고, 마음이 탈진한 ‘치매’ 영혼도 당연히 구원받아야 한다. 일곱 번을 용서하라고 하시지 않았는가? 제 7일을 안식일이라 하니 안식 이야기를 여섯 꼭지로 잡았는데, 마무리가 늘어진 것은 필자 능력의 한계이리라. 고금동서 철인들이 평생 천착했던 엄중한 주제이니, 앞으로 더욱 매달릴 사색의 화두로 남겨둘 밖에... 풀리는 답이 아니라 원주율처럼 끝없이 풀어가야 할 인류 공동의 숙제이니까... 엎친 데에 코로나 팬데믹이 덮치니 갈데없는 말세다. 대 재앙이 닥치면 인류는 신에게 기도를 올렸다. 지난 세기 격동을 겪으며 인성은 거칠
핵심에 집중하고 핵심이 아닌 것은 포기하는 것. 즉 우리 병원의 핵심 능력에 자원을 집중하고, 핵심이 아닌 것을 표기하는 것을 전략이라고 한다. 중요한 것는 무엇을 포기할지 결정한 다음 확실하게 포기하는 것이다. 1980년대 미국의 반도체 회사 Intel의 Andy Grove 회장은 매출의 50%를 차지하던 메모리 반도체를 포기하고 비메모리에만 집중하기로 결정한다. 임원진은 물론 경쟁사에서도 Grove 회장의 이 결정을 이해하지 못했다. Grove 회장은 메모리 반도체 분야는 언젠가 한국과 대만 업체들 때문에 어려워질 것으로 내다보고 그런 담대한 결정을 내린 것이었다. 메모리 반도체를 포기하기 어려운 결정을 한 덕분에 10년 후 Intel은 경쟁업체들을 크게 따돌리고 세계 최대의 반도체 회사로 우뚝 서게 됐다. 모두를 위해 모든 것을 파는 시대는 지났다. 그래서 의료사업도 전략이 필요하다. 전략은 포기에서 시작된다. 지금 하고 있는 것 중 무엇을 포기할까? 이것이 곧 성공의 관건이다. To decide는 라틴어 어원에 의하면 잘라버린다(To cut off from)의 뜻이다. 자른다(Incision)과 같은 것이다. 포기하면 남는 것이 우리가 선택한 것이며,
1999년에 쓴 종말론을 다시 읽는다. “사는 동안 우리는 많은 죽음을 지켜보고 육체의 스러짐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지만, 그것으로 모든 것이 끝이라면 너무나 허망하다. 해서 눈에 보이지 않는 영혼에 희망을 건다. 따라서 영혼은 곧 희망이요 영혼의 구제란 모든 종교의 공통분모다.” 그렇다면 문제가 생긴다. 주님은 영혼의 신원을 어떻게 알아보실까? 용모라면 간난 아기·소년·젊은이와 노인의 생김새가 평생 변하는데, 그렇다면 혹시 유전자 검사라도?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정신상태도 당연히 변한다. 설명의 편의를 위하여 또 공인이라는 의미에서, 전 국민이 잘 아는 한 분을 예로 들자. 장모님을 도와서 천막 교회에서 열심히 전도하던 청년 조용기. 이적(異蹟)의 소문이 꼬리를 물어 교인이 구름같이 모여들고, 떨어진 믿음을 충전하려고 20세기의 이인(異人) 빌리 그레이엄과 부시 대통령이 찾아와 안수기도를 받았다는 영성이 충만하던 시절. 교회 상속문제로 언론의 집중조명에 당혹했던 노후. 천진한 유아기와 꿈으로 가득한 소년기를 더한다면, 생애 전환기의 몇 고비씩을 넘겨야 하는 인생에서, 어느 시점의 ‘영적 상태(靈的狀態)’를 조 목사의 진면목(眞面目)으로 볼 것인가? 다수
독실한 신자가 하늘나라로 갔다. 주님이 힐끗 보고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저기 앉아라.” 같은 교회 집사가 오자 반갑게 웃음으로 맞는다. 한참을 지나서 목사가 들어서니 버선발로 달려나가 와락 끌어안는다. 신자가 참다못해, “아니, 여기서도 인간을 차별합니까?” 따지니까, “그게 아니고, 목사가 천국에 온 건 백 년 만에 처음이니라.” 해묵은 우스개지만 교회가 회화화(戲畫化) 된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유럽 여행 때 교회를 둘러보며 신도 수가 적은 데에 놀랐다. 서구 발(西歐發) 신도 감소문제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요, 오히려 대한민국 대형교회의 성장이 하나의 불가사의였는데, 그마저 코로나 직격탄과 한편으로는 정치적 논란에 휩싸이고 있다. 사회의 대변혁 때마다 늘 그랬듯이, 종교는 4차 산업혁명, 특히 인공지능의 폭발적 진화에 대처도 해답도 주지 못하고, 오히려 사이비 종교만 발호한다. 교회가 힘을 잃자 팬데믹을 기화(奇貨)로, 자유와 인권의 외연을 넓혀오던 자유민주주의가 독재 전체주의로 회귀하고, 역사와 문명의 수레바퀴는 역회전 중이다. 안식 이야기에 종교를 건너뛸 수 없으니, 혹시 비 종교인의 실수가 있어도 사전 양해를 구한다. 이천 년간 체제와 정통성을 지
“어떤 치약과 칫솔이 치아 건강에 좋죠?” 환자들이 묻는 대표적인 질문이다. 치아의 건강과 수명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올바른 양치질 습관’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부모님 혹은 주변 지인들의 어깨 너머로 양치질을 배우곤 한다. 혹은 의무감에 어쩔 수 없이 하다 보니 자신만의 방법을 고수하기도 한다. 경희대치과병원 보존과 김덕수 교수는 “평소 양치질을 열심히 하는데도 치과방문이 잦다면,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자신의 양치질 습관을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며 “양치질의 주목적은 구강 내 치태와 치석 등을 제거해 구강 건강을 유지하는 것으로 잘못된 습관은 마모증을 유발해 치아의 민감도를 높이는 등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치아 내부에는 신경이 분포되어 있고, 이를 법랑질과 상아질이라는 단단한 치아 조직이 보호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건강한 치아라면 불편감을 느끼지 않는 것이 당연하지만, 특정 요인에 의해 법랑질과 상아질이 파괴되면 외부 자극이 신경 근처에 가깝게 도달함으로서 치아가 더욱 민감해진다. 이가 시리거나 시큰거린다면? 양치질 습관 확인해보세요! 우리가 흔히 이가 시리다 혹은 시큰거린다고 표현하는 증상은 민감성 치아의 일상화된 표현이다
밤길 걷던 아일랜드 술꾼이 쿵 넘어졌다. 겨우 몸을 일으키는데 다리에 뭔가 죽 흘러내린다. “아, 이것이 제발 피라면 좋겠네.” 바지춤에 찬 술병이 깨지느니 차라리 피가 나기를 바랄만큼 애주가는 못 되지만 필자도 위스키를 즐긴다. 최고의 호강은 백화점에서 백만 원한다는 발렌타인 30년산으로 면세점가격이 $320 정도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발렌타인의 반값이 채 안 되는 조니 워커 블루를 더 좋아한다. 첫째로 블루는 담백하다. 꼬냑 딱 한 잔이라면 모를까, 여러 잔 즐기려면 향 짙은 위스키는 별로다. 둘째는 블렌딩(blending)의 마술. 블루는 5 - 60년까지 노소동락의 배합으로, 평균 30년의 부드러운 목 넘김이 예술이다. 셋째로, 위스키 숙성(Aging)은 포도주를 담았던 오크통을 재활용한다. 희미한 셰리주*와 참나무 향이 어우러지고, 살아 숨 쉬는 나무통 속에서 매년 2%씩을 천사에게 바치며(Angel’s Share: 증발), 30년 동안을 푹 익은 맛. 호텔등급을 낮추고 기념품을 포기해서라도 백여 달러를 아껴 한 병을 사 온다. 옛날부터 한 세대를 30년으로 잡았으니, 나보다 다음 세대를 위하여 빚은 배려와 사랑의 술이 아니던가. 떠나는 사람에게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