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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중 칼럼

재간둥이 : 황석영 4

[임철중의 거꾸로 보는 세상] - <159>

 

   하늘이 주신 재능을 불꽃처럼 방전하고 2, 30대에 생을 마감한 모차르트 푸슈킨, 가깝게는 이상...  천재는 요절한다.  그러나 역도 진리는 아니어서 장수한다고 둔재는 아니다.  뉴턴 괴테 위고...  물론 의학지식과 농업생산성이 턱없이 낮던 옛날얘기다.  다행스럽게(?) 30대를 넘겨 나이 든 천재는 괴롭다.  내 눈에도 경이로운 나 자신의 업적을 어떻게 뛰어넘을까?  치받고 올라오는 후진들도 조바심을 부추긴다.

 쫓기는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고 싶다.  그렇지만 한 번 생각을 바꿔보자.  잔챙이 중에서 준척(準尺)은 폼이야 나겠지만, 월척과 어울려야 오래 살고, 씨알이 굵어야 낚시꾼도 몰린다.  영화계 황금기는 문희 남정임 윤정희의 1세대와 장미희 정윤희 유지인의 2세대 트로이카 시대였고, 소설도 조정래 황석영 최인호의 선 굵은 서사(敍事) 삼총사 시절에 인기를 끌고 책도 많이 팔렸다.  흔히 일인천하 독주를 꿈꾸지만, 열띤 경쟁은 판을 키우고 격을 높이니, 작가에게 필수품이요 고마운 존재다.


   치열한 경쟁의 스트레스를 벗어나는 방법 첫째는, 초반 점수 차를 확실히 벌려놓는 프로골퍼 식이다.  마지막 라운드에 여유 있게 우승하지만, 모든 자료가 열려있고 만인이 뛰어난 오늘날, 독보적인 절대강자는 존재하기 어렵다.  다음 방법은 변신이다.  무하마드 알리가 링을 벗어나 특유의 입심으로 저항의 아이콘이 된 것처럼...  그러나 그 길이 실은 도피이며 변신은 한 번 으로 끝나지 않는다.  거기는 이미 그 길에 목을 맨 전공자가 득실거려, 이색적인 신참의 시선끌기는 반짝하고 끝이며, 또 다른 길을 찾아 헤맨다.  

 그래도 입만 명의인 TV 닥터·함량미달 폴리페서(poli-fessor)·노래 잊은 가수 연예인의 행렬은 끝이 없다.  6·29를 딛고 어렵게 출발한 노 대통령이 민간인 남북교류를 선언하자, 미처 세부 절차가 마련되기도 전에 행동파 작가 황석영은 적성국 평양에 잠입, 김일성을 만난다(1989).  전례 없이 5, 6회 알현하고 ‘재간둥이’라는 칭찬에 감격, 훗날 “김일성은 이순신, 세종대왕 같은 위인”이라는 멘트를 날린다.  사실은 6·25의 범인, 민족의 적 김일성독재자와 변신의 길을 찾던 소설가가 윈 /윈 한 만남인데, 선비는 알아주는 주군을 위하여 목숨을 바친다던가(士爲知己者死)?  잘못된 만남이요 빗나간 평가일 뿐이다.

 

  황 작가의 변신·실언 기록은 화려하다.  김일성 알현·찬양으로 종신형 복역 중 DJ 특사로 나와 대한민국과 화해하였고, MB가 유라시아 특임대사로 임명하자(2009) 변절자로 비난받는다.  ‘정체불명’의 핵문제(2007)라든가 언제까지나 ‘이념문제’로 싸우려는가(2011)는, 둘 다 판단 착오다.  ‘강남물’은 표절시비에 걸리고(2010), “박근혜가 당선되면 프로방스에서 밥집을 한다.”고 식언(食言)을 한다(2012).  ‘여울물소리’가 책사재기 스캔들에 말리고(2013), 문예창작과를 헐뜯어서(2015) 구설에 오르더니, 탄핵정국의 결과로 정권이 교체되자, 이제는 블랙리스트로 MB를 고발하여 정점을 찍는다.  누구도 못하는 결단을 즉시 행동에 옮기는 데에는 일관성은 있다.  통일과 아시아 평화정착을 주도하겠다는 집착이다.  수많은 팬들이 따르고 평양의 절대강자를 감동시켰으니, 조국의 앞날은 자신이 책임져야 한다는 의무감 또는 과대망상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평양에는 인자한 미소로 흑심을 곧잘 위장하던 김일성이 가고, Talidomide Piggy(팔다리 짧은 초비만 새끼돼지)가 핵을 휘두르고 있다.  제 존재조차 몰랐던 할아버지 친구(?) 쯤은 김정은의 안중에 없고, 전대협이 대다수인 청와대 역시 관심이 없다.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 뻗자.

 언젠가 아들이 말했다는, “사나운 형님 그만하고 할아버지가 되라.”가 정답이다.

 그리고 김훈 작가의 충고대로, 이제는 느긋하게 ‘만년문학’을 즐기시라.





글: 임철중
전 대한치과의사협회 대의원총회의장
임철중 치과의원 원장
대전고등법원 민사조정위원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