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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중 칼럼

인공지능 2 : 특화와 일반화(特化, 一般化)

[임철중의 거꾸로 보는 세상] - <103>

 

   본과 4학년 초 동급생에게 바둑을 배웠는데, 늦 바둑은 스승을 넘지 못한다더니 기껏 3급까지였다.  짠물로 소문난 인천·부산 기원에 가도 반타작은 했는데, 서울바둑치고 물 급수는 아니었는지 아니면 내기 바둑으로 유도하려는 위장술에 속은 것인지, 아직도 궁금하다.  넉 달 만에 3급은 한 세대 안에 일본과 맞수로 성장한 한국바둑에 비하면 자랑도 아니다.  단기간에 스승을 따라잡은(Catch-up) 공통점은 있다.  조남철-김인-조훈현-이창호-이세돌로 이어지는 계보 중, 1980년대 조훈현의 성취다. 

 소설 정글북의 모델인 늑대소년처럼, 인간사회와 격리되어 10여 년 간 정지되었던 발달과정을 2년에 따라잡은 예는, ‘내재적 발달(Immanent Development)’이론으로 설명한다.  다시 그의 제자 이창호는 따라잡기를 뛰어넘어, 국내 외 고수를 모조리 물리치고, 십여 년 간 무적으로 군림한다.  순장바둑에서 얻은 육박전의 장끼에 더하여, ‘민족고유의 자산(Inherent Assets)’인 끈질긴 승벽(勝癖)의 승리다. 

 바로 이러한 장점이 한강의 기적·민주화 기적에 이어 한류열풍으로 이어진 것이라고 믿고 싶다. 

 

   목숨을 걸고 수련한 고수들에 의하여 바둑의 수는 꾸준히 향상되었고, 가보지 않은 길을 개척한 불세출의 기성들은 그 속도를 몇 단계씩 높였다.  축적된 기보를 분석하고 암기하여 정상에 이르는 연령도 빨라졌다.  프로기사는 특화된(Specialize) 바둑을 통하여, 인간들끼리 성취도와 우열을 가리는 고차원의 게이머다.  아무리 방대한 자료를 입력해도, 자료 처리의 하드웨어인 육체는 용량의 한계와 생노병사의 약점이 있어, 학습에 시간이 걸리고 전성기를 지나면 약해진다. 

 흙 한 삽이 버거운 인간은, 지치지 않고 톤 단위로 흙을 퍼 나르는 포클레인에 적수가 못된다.  그런 뜻에서 일찍이 바둑을 ‘스포츠’로 분류한 중국의 선견지명이 놀랍다.  인생이 만약 전능하고 영생불멸하다면, 경쟁·도전하고 때로는 타협하여 화합을 이루는 인간사회가 성립할 수 없을 것이며, 철학·종교적 성취를 목표로 계속 노력할 이유도 없을 테니, 어떻게 보면 그런 약점은 기계가 갖지 못한 인간만의 장점이기도 하다.
    
   약점과 한계 때문에 어느 한 분야에 노력을 집중하는 것이 특화(Specialize)다. 그러나 정상에 근접할수록 외길의 한계가 들어나고, 드디어 일반화·범용화(凡庸化: Generalize)의 필요성을 절감한다.  고단자가 되면 참선을 하고 철학책을 읽는다.

 철저한 계급사회인 군대에서 보병·포병·공병 등 병과를 가르다가, 정상의 장군(General)이 되면 병과가 해제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양한 종교가 어느 경지에 오르면 서로 통한다지 않는가.  특화는 단순화의 의미가 있어 인공지능이라는 기계가 인간을 대체, 능가하기 쉽다.  장기(臟器) 별로 개발된 로봇 수술이나 무인 기(Drone)의 폭격을 보라.  수천 Km 떨어진 관제 실에 앉아 조준·저격까지 해치우는 공군은, Air Force가 아니라 Chair Force라는 농담도 있다. 

 그렇다고 특화가 만만한 것은 아니다.  알파고도 최근 3년 동안 획기적인 돌파구(Break-through), 즉 심층학습과 범용그래픽처리장치를 통하여, 50년에 해당하는 진보가 일어난 덕분에 승리했다고 한다.  따라서 일반화를 위해서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분야가 특화 되고 (한번 경험했으니 빨라지겠지만), 그 분야들 간의 시냅스를 형성하는 훨씬 어려운 기적의 돌파가 필요할 것이다. 

 물론 이 단계에서도 인간사회에 혁명적인 변화가  일어나겠지만, 인공지능은 여전히 인류의 모든 분야를 덮지는 못하는 기계수준에 머무를 것이다.  감정·자아획득·사유·도덕·철학·종교의 경지에 이르러 가공할 SF적 괴물이 탄생하려면, 보다 더 천문학적인 돌파구가 필요할 것이기 때문이다.

 

 

 

 

글: 임철중
전 대한치과의사협회 대의원총회의장
임철중 치과의원 원장
대전고등법원 민사조정위원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