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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일 칼럼

두 도시 이야기

[김태일의 'Probe'] ①

 

 

하버드대학 제362회 졸업식이 개최된 지난 530일에 필자는 졸업식장 근처에 위치한 연구실에서 이번 졸업식 축사 연자로 누가 등단할 것인지 무척 기대를 하고 있었다. K-POP 의 대표주자로 한국의 존재감을 전세계에 심어주는 가수 싸이가 이미 5월 초에 하버드대 캠브리지 캠퍼스 내의 메모리얼 처치(Memorial Church) 에서 강연을 한 바 있었기 때문에 더욱 궁금해했던 것 같다. 하버드대학 최초의 여성 총장인 드류 파우스트 (Drew Faust) 박사의 가난과 폭력을 이겨낸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이라는 소개와 함께 등장한 오프라 윈프리(Oprah Winfrey)는 내 기다림을 충분히 보상하고도 남을 만큼 귀중한 연설을 해주었다.

 

실패(Failure)란 단지 삶이 우리를 다른 방향으로 이끄는 것이기에 진정한 실패가 아니다. 우리가 고귀한 자아를 실현하려는 단 한 가지 목적만 추구할 수 있다면 성공과 행복을 얻을 수 있다. 하버드대학에서 수학한 여러분들의 귀중한 경험은 이웃과 사회의 발전을 위해 쓰여질 때 비로소 의미를 발한다”. 결코 순탄하지 않은 삶을 살아왔고 최근까지도 힘든 난관의 시기를 겪었던 그의 축사는 많은 참석자들의 심금을 울리고 있었다. 그런데 오프라 윈프리의 축사를 계속 듣고 있으니 하버드대학이 그 동안 야심차게 추진해온 정책과 일맥상통하는 것이라, 필자는 졸업식 축사 연자를 선별한 파우스트 총장의 의도를 그제야 깨닫게 되었다.

 

고등교육기관이 사회발전에 기여하기 위해서는 혁신적인 연구작업이 필수적이며, 이를 달성하려면 각 학문 분야에서 개별적인 연구의 수월성을 추구하는 것을 넘어서 다양한 전공 분야가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융합연구가 필요함을 직시한 하버드대학은 많은 인적/물적 자원을 투자해오고 있다. ‘하나된 하버드(One Harvard)’라는 표어로 요약되는 이 정책은 사실 1928년 애버트 로웰(Abbot Lowell) 총장이 하버드대학 내의 분과(Division)를 최소화하고 학문간 융합을 펼쳤던 것에 역사적인 바탕을 두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오늘날 하버드 혁신연구소(Harvard Innovation Lab)를 위시한 다양한 융합연구소들에는 정책대학원과 법학대학원, 경영대학원, 디자인대학원, 문리대학원, 의학대학원 그리고 필자가 속한 융합과학기술대학원을 포함한 10개의 하버드대학 내전문 대학원들이 공동으로 참여하고 있다.

 

이곳에서 진행되는 과제들의 일례를 들자면 시각장애자가 명화를 감상할 수 있도록 삼차원재현 기술을 개발하는 마이더스의 손(Midas Touch)’ 계획처럼 사회복지를 위한 다양한 기술혁신 프로젝트들이 있다. 범용성을 가진 전자화된 대학교과서를 지향하는 ‘H2O’ 과제와 디지털 구연(Storytelling) 프로그램 개발을 위한 ‘Zeega’ 과제 등도 한 전문분야만의 노력으로는 결실을 맺을 수 없는 사업들이다.

 

필자의 원 소속기관인 서울대학교와 현 소속기관인 하버드대학은 비슷한 문장(Shield)과 제명(Motto)을 가지고 있다. 어떻게 보면 캠퍼스 구분도 유사하다. 인문/사회/자연/공학/예술 분야를 포괄하는 관악 캠퍼스와 의학/치의학/간호학으로 구성된 연건 캠퍼스를 가지는 서울대와 같이 하버드대도 본교에 해당하는 캠브리지 캠퍼스와 의학 관련 보스턴 캠퍼스로 구분된다. 서울대는 관악 캠퍼스와 연건 캠퍼스가 서울이라는 대도시 내에 함께 위치하고 있으나, 하버드대는 두 캠퍼스가 캠브리지와 보스턴이라는 두 도시에 나뉘어져 있다. 그런데, 미래사회를 위한 융합연구의 중요성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는 하버드대학은 두 캠퍼스의 시공간적 간극을 줄이기 위해 하루에도 수십 번씩 두 도시를 연결하는 셔틀버스를 정기적으로 운행하고 있다. 사회참여에 대한 강한 의욕을 가진 하버드대는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미흡하다고 판단했는지, 최근 두 도시에 추가 부지를 확보하여 지역주민과 함께하는 생활기반시설과 융합과학기술대학원을 위한 새로운 과학센터를 건립할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찰스 강을 사이에 두고 존재하는 하버드대학의 두 캠퍼스가 상아탑에 안주하지 않고 사회를 위해 열린 자세로 접근하는 것은 교육과 연구 및 협력을 위한 새로운 시도를 가능하게 하는 생태환경(Ecosystem)의 창출에 있으며,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미국 정부와 민간 분야에서는 과감한 지원을 준비하고 있다.

 

사회발전의 원동력은 혁신(Innovation)에 기인하며 이것은 고등교육기관 내 다양한 전문분야들의 활발한 융합연구와 능동적인 사회참여를 통해 얻어질 수 있다. 얼마 전까지 우리나라에서 활발하게 논의 되었던 국내 대학 반값 등록금 문제가 대한민국 사회발전에 걸림돌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18세기를 무대로 삼은 두 도시 (파리와 런던) 이야기가 아닌 21세기에 주목을 받는두 도시(캠브리지와 보스턴)에서 현재 벌어지는 이야기를 주의 깊게 들여다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필자 김태일은 서울대학교 치과대학을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를 취득한 후, 서울대학교 치의학대학원 치주과학교실 교수 및 서울대학교치과병원 치주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현재 하버드대학교 융합과학기술대학원의 초청을 받아 동 기관의 방문교수를 겸임하며 캠브리지와 보스턴에서 융합연구작업을 진행 중이며, 하버드대학의 한국인 교수들과 정부기관에서 파견한 공무원들로 구성된 하버드 한국학회(Harvard Korea Fellow Society)의 회장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