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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묵 칼럼

‘완전한 육체와 아름다운 영혼’

[최상묵의 NON TROPPO]-<47>



인간은 정신(mind)과 신체(body, 몸)로 구성되어 있다. 정신과 신체 중에 어느 것이 더 인간의 진정한 면모를 대표하는 것일까? 인간은 이성을 가진 존재이기 때문에 이성을 관장하는 정신이 보다 진정한 인간의 모습이라고 말하며 몸보다 정신을 더 값진 것으로 쳐주던 시대도 있었다.
그러나 정신은 신체가 없으면 존재할 수 없는 신체이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먹고, 입고, 활동하는 신체만이 참된 인간의 모습이라고 생각 하는 게 맞는 말일 것이다.

몸이 인간의 주체로서 그 중요성이 인정받게 되면서 현대사회에서 신체에 작용하는 많은 권력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미셀 푸코(Michel Foucault)는 이것을 생체권력이라 했다. 현대사회에서 생체권력은 교묘한 방식으로 신체를 감시하고 통제하면서 권력을 행사하고 있다. 요즘 왠만한 길목이나 동네 어귀에 CCTV가 설치되지 않은 곳이 없다. 시도때도 없이 우리의 몸은 감시 받고 있는 셈이다. 지상에 움직이는 자동차 번호판까지 식별할 수 있는 인공위성이 우리머리 위에서 돌고 있는 세상에 살고 있는 우리는 하나의 거대한 감옥에 살고 있는 셈이다.


21세기가 되면서 개인의 행복추구가 어떤 가치나 권리보다 더 소중하게 생각하는 복지적의미의 웰빙시대를 맞이하면서 사람들은 생명과 몸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시대보다 높아지고 있다. 옛날에는 생명, 출생, 질병, 노화, 죽음 같은 명제들은 거역할 수 없는 운명이나 숙명처럼 받아들였지만 요즘엔 그 명제들에 대한 원리를 규명하고 대안을 마련하여 해결방법을 모색하려는 연구대상의 표적으로 되었다. 몸에 대한 관심이 지난시대의 노동하는 몸(laboring body)에서 욕망하는 몸(desiring body)으로 바뀐 것이다.

오늘날의 소비주의는 몸을 쾌락, 욕망, 놀이의 대상으로 생각하여 몸은 조작 될 수 있으며, 잘 포장될 수 있는 하나의 상품적 가치가 있게 만들려고 하는 경향이다. 몸은 곧 자신의 간판이고, 대표성이기 때문에 항상 애지중지하고, 치장하고, 다듬어지고, 또한 화려한 장신구의 걸이가 될 수 있도록 구멍 뚫리고 문신까지도 새겨진다.

아름다운 몸이 곧 개인의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으로 생각하여 날씬한 몸을 만들기 위해 운동을 강요받고, 성형수술, 임프란트시술, 염색, 지방제거 수술 등이 서슴없이 시행되고 있다. 신체의 변형을 시도함으로써 현대인의 정체성을 벗어나고 싶은 욕망을 해결하고 싶어 한다.


철학자 데카르트는 신체와 정신을 두 개의 다른 신체로 분리해서 생각하는 심신이원론(心身二元論)을 주장하며 정신은 마음의 주체이고 신체는 단지 객체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이 의학에서 인간은 자신의 신체를 마치 기계 부품처럼 한 사물로 취급할 수 있다는 사고방식을 탄생시킨 출발점이 되기도 했다. 그래서 현대의학에서 신체 각각의 장기(organ)를 기계 부품처럼 생각하게 된 경향이 생긴 것도 바로 심신의 원론의 영향이라 생각된다. 우리는 몸을 통해서 모든 것을 지각하고 인식하며, 사색하는 행동의 기반을 표현한다. 이러한 몸의 표현은 심(마음), 신(육체)로 분리되어 이원화되어서는 불가능해질 것이다.


몸은 우리의 생각과 행동의 살아 있는 표현 현상 그 자체인 것이다. 따라서 몸과 정신은 서로 확연히 구분 지을 수 없는 것이다. 몸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이해하는 방식은 사회적 배경이나 역사적 관점에 따라 달라진다. 몸에 대한 접근방식은 계속 바뀌고 있으며 사회와 기술이 변화되듯이 몸에 대한 관심도 바뀌고 있다. 최근에 몸에 대한 견해는 주체로서의 몸과 객체로서의 몸으로 구분하여 분석한다. 주체로서의 몸은 인격체로서의 몸을 의미하며, 인간의 자아, 인성, 정체성에 대한 생각들을 야기하는 희생자로서 몸, 즉 나게, 손상된 육체 등을 말한다.

한편 객체로서의 몸은 강간이나 폭행사건이 발생하여 몸이 인성이 없어진 단순한 객체로만 보는 시간에서 몸이 더 이상 자아나 주체로서의 몸이 아니라, 잘리고, 매매되고, 변형되어 객관화된 사물로 되어 버린 몸을 말한다.

따라서 첨단기술로 발전해온 의료기술들은 몸을 마음대로 조작하고 변형시키는 일을 서슴없이 하고 있다. 체외수정, 장기이식술, 인공두뇌제작, 새로운 생식술과 인간복제 같은 것들이다. 인간게놈 프로젝트가 시작되면서부터 대체 무엇이 몸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와 오용될 수 있는 몸의 통제 기능의 활성화 작업에 대한 의학적 연구에 자성과 견제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누가 몸을 통제하고 소유할 권리를 갖는가에 대한 윤리적 문제와 신체의 해체와 재조합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도덕적 기준은 무엇인가에 대한 논쟁도 끊임없이 계속 될 것이다.

우리는 몸을 통해서 모든 것을 배우는 것이다. 사람이 몸이 없다면 그 영혼이 온 우주를 더 쉽게 떠돌아다닐 수 있지 않았을까 상상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육체는 우리들을 항상 바쁘게 한다. 혹시 병에라도 걸리는 날에는 우리들의 활동을 방해 받기도하고, 온갖 종류의 욕망과 애정, 공포 등의 쓸데없는 일들로 우리의 심신 속에 가득 차 있기 때문에 육체는 한시도 쉴 수 없고 사색할 겨를이 없다.


육체의 욕망을 천하게 생각하여 정신만을 높이 쳐들어 대는 학자들 때문에 우리들은 도덕적인 생활을 매우 어려운 것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육체의 욕망을 무시하는 일은 극히 잘못된 것이며, 부자연스러운 것이다. 사람은 자연스럽게 있는 그대로 살아가면서 되는 것이다. 그 자연스러움 속에 도덕적 규율도 생겨날 수 있기 때문이다. 가장 자연스러운 생활 속에 높은 도덕적 규범을 갖출 수 있다.

건전한 육체는 정신의 훌륭한 저주지가 되고 병약한 육체는 정신의 감옥이 된다. 육신은 영혼의 바탕이고 영혼은 육신의 자용이다. 인체(육신)는 영혼의 거울이며 가장 아름다운 실체이다. “완전한 육체는 그 자체가 영혼이다”







                                                                                  

  글: 최상묵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덴틴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