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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빨 속 갉아먹는, 저희끼리 아름다운 벌레처럼..

[詩가 있는 풍경 19] 이성부 시인의 '蟲齒'

 

깡패를 불러들여서라도 그놈들을 혼내주자.

법으로 안되고 총칼로도 안되고 언어의 마음으로는 더욱 안되는

그 살살이 찌꺼기들을 쓸어내자.

내 이빨 속 깊이 갉아먹는 저희들끼리 아름다운 벌레처럼

이 동네 낙화유수 아픈 곳곳을 진통제로 얼버무리는 꽃피는 것들을 몰아내자.

맙소사, 자근자근 쑤셔오는데 내 어린 시절 당골네 마당굿 한 차례면 될까.

보이지 않는 힘으로 쇠나 돌을 뚫는 그대 영혼의 굴착기로 될까.

아니면 뽑아버릴까. 아픔의 저 늪으로부터 건져낸 한오라기 희망은

마침내 거대한 것이 되리니…….

 

 

[치통]

얼마나 지긋지긋했으면 '깡패를 불러들여서라도 그놈들을 혼내주자'고 했을까요.
치통은 누구에게나 참기 어려운 고통입니다. 그 섬광같은 통증이 치아의 뿌리를 지나 전류처럼
온 몸을 관통할 때쯤이면 정말 펜치라도 찾고 싶은 심정이 되고 맙니다.
시인을 괴롭힌 그 예리하고도 지속적인 고통에 공감합니다.

이 시를 발표한 1978년 무렵이면 서민들이 치과를 찾기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을 겁니다. 한국일보 기자로 근무할 당시임에도 시인은
치통을 그냥 참아 넘겼나봅니다. 그래서 시인은.., 오랜 고통의 시간이 지나고 식사 도중
까맣게 썩은, 이미 둔감해진 어금니 부스러기가 하나 둘 떨어져 나오는
참으로 난감한 경우를 경험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곤 하는 수 없이 치과를 찾아 뿌리만 남은 치아를 뽑고,
황금색 크라운 브릿지를 걸었겠죠.

시인은 광주고 재학시절인 1959년 전남일보 신춘문예을 통해 등단했습니다.
문예장학생으로 경희대 국어국문과를 졸업했고, 한국일보 사회부 기자,  일간스포츠 부국장을 거쳤으며, 왕성한 시작 활동을 하다가 2012년 2월 지병으로 별세했습니다.
아래는 1981년에 창작과비평사에서 펴낸 선생의 시집 前夜에 함께 실린 짧은 시 '부끄러움' 전문.     
 

 

그대 만나서 얼굴 붉어지지 않는구나.
가슴 둥둥 두근거리는 것도 잊었구나.
그대는 뱃가죽 어디 먼 나라에서 살쪄 오고
내 얼굴 신문사 10여 년에 철판이 쌓였구나.
가슴으로 말 못하고
셋바닥 놀림만 익숙해진,
우리 두 사람, 이 한국의 쩔쩔매는 美學,
남의 아픈 곳 후비면서 히히덕 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