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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묵 칼럼

“왜 인문학인가?”

[최상묵의 NON TROPPO]-<44>


 사람들이 세상을 이해하는 방법으로 미음에 의존하는 종교적인 관점과 어떤 통팔에 의해서 이해하려는 철학적 관점이 있으며 실험과 관찰에 의한 과학적 관점으로 세상을 이해하고 인간관계를 형성하면서 살아간다. 특히 과학적 관점에 의한 여러 가지 벌칙들은 미래를 예측하게 하고 삶을 편리하고 풍족하게, 안전하게 만들어 주기 때문에 유용하고 일관된 지식의 체계를 이루고 있다.

 우리는 세상 모든 일을 과학적 지식에 의해서 판단하고 접근하려는 경향 때문에 과학만능주의라고 성토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그로인해 인간성의 상실을 가져 온다는 표현으로 경멸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과학적 사고방식을 선호하는 사람들은 모든 현상을 인과관계로만 파악하려 들고 그 관계가 일치되지 않을 경우 불합리하다고 생각한다. 과학적 사고가 아닌 감성적인 판단에는 신뢰성이 없는 것으로 치부해 버리기 때문에 과학적 사고와 인문학이나 예술적 사고와는 항상 갈등을 일으키게 마련이다.


과학적 사고 방법은 자연법칙을 추출해내고 확인하는 데는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하지만 인간의 정신 세계에 대해서는 과학적 법칙으로 설명하기에는 너무나 미천한 부분이 많다.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지식은 엄밀히 정의되고 실험으로 검증된 지식도 있고, 아름다움, 사랑, 행복, 진리 같은 순수한 개인적인 경험과 통찰로 이루어진 지식도 있다. 그래서 지금까지 지식의 세계를 문예지식과 과학지식으로 나뉘어 분리된 지식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최근에 와서 예술과 과학이 하나로 합쳐진 제3의 문화가 새롭게 태어나기 시작했다.

 전통적인 옛날 지성인들의 소모적인 논쟁만을 일삼던 경우와는 달리 새로운 방식으로 우리가 누구인지, 무엇인지를 새롭게 정립해 보려는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정체성에 대한 추구를 자연철학의 일환으로 많은 물리학자, 생물학자들이 앞장서게 된 것이다.

 예술과 철학, 문학은 서로 얽혀 있는 인간의 마음의 산물이며, 인간의 마음은 인간의 뇌의 산물이다. 인간의 뇌가 부분적으로 인간의 유기체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며 진화과정을 통해 진화되어 왔다. 모든 지식이란 인간이 지각하고 동의할 수 있는 범위 안에 있어야 한다. 그런데 과학자들은 현실에서 존재하는 모든 것을 탐색할 수 있는 초월적인 신의 위치에 있다는 환상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데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21세기 과학은 이전과는 다른 독특한 양상을 띄우고 있다. 예술분야의 여러 조류에서도 과학에 대한 반응을 민감하게 하고 있다. 현대음악문야에서도 쇤베르크(Schoenberg)의 전자음악이 탄생되었고 시각예술분야인 입체파, 구성주의, 추상화, 미래파 등에서도 과학의 접목의 편린을 볼 수 있다. 물론 법률, 건축, 종교, 교육, 경제학, 정치 등에서도 과학의 성과와 방법론을 뺄 수 없게 되었다.


 지금은 변화의 시대, 크로스오버시대에 살고 있다. 모든 일에 성공하고, 발전하려면 세계는 열려있어야 하고 끊이없이 수정되어야 하며 편견에 사로잡히지 말아야한다. 최근에 예술가들이 인간의 조건을 탐구하기 위해 한 곳으로 모이는 현상을 보고 있다. 이런 현상은 과학자들이 인문학에 관심을 가져서가 아니라 오히려 예술가와 인문학자들이 과학적 사고방식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예술은 우리의 본성 속에 존재한다. 우리의 피와 뼈 속에 있고 우리의 뇌와 유전자 속에 있다. 때문에 예술도 진화적 적응의 결과물이라고 믿는 것이다. 인문학적 상상력 과학의 실용성은 현대문명을 창조하고 있는 두 개의 축이다. 인문학적 상상력이 없다면 문명이 나아갈 목표와 방향을 잃게 될 것이며 과학의 힘이 없으면 우리의 꿈과 상상력이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될 것이다. 아무리 과학의 만능시대가 온다 해도 그 과학은 이끌어나갈 인문적 상상력이 없으면 그 과학은 가치가 없게 될 것이다. 외형적인 모습보다도 내면적인 것을 소중히 여기는 인문학적 태도는 삶의 의미, 가치, 아름다움과 같은 무형의 자산이다. 이러한 자산은 아무리 외적 변동이 있어도 변하거나 줄지도 않는 무형의 재산이며 인문학적 자본인 셈이다.

 요즘 사람들이 특히 인문학에 관심이 높아지는 이유는 매우 불확실한 시대를 살고 있기 때문에 미래에 대해 합리적이고 바람직한 예측이나 선택을 하기 어려운 시대일수록 미래를 꿰뚤어 보는 통찰력이 필요하고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비전이 필요한 시대를 살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사람답게 살고 싶은 욕망에서 인문 문화적 가치를 추구하려 하고 인문 문학적 환경에 살고 싶어 한다. 인문학적 사고는 내일의 삶을 개척해 나갈 수 있는 에너지가 되고 상상력의 원천이 되며 모든 세상살이의 기본이 되기 때문이다. 여러 학문들이 서로  캌ㄴ막이를 만들어 독립적으로 자기 영역만 주장하는 시대는 지났다.

 인간의 생명에 관한 문제도 이제 의사만의 몫이 아니라 공학이나 다른 분야와도 밀접하게 관련되고 더 기본적인 바탕에는 인문학이 포함된 예술성이 가미되어야 한다. 얼핏 생각하면 의학(의술)만큼 현대과학기술이 가지고 있는 무한한 능력과 가능성을 과시하는 분야도 없을 것이다. 의사를 과학자로 착각하고 의사가 행하는 일은 모두가 과학적 근거가 있으려니 생각하고 비판 없이 신뢰하는 경향도 없지 않다. 한편 과학 기술만으로 무장된 의술로서 모든 질병이 치유되고 건강을 회복되기를 바라는 것은 더욱 어리석은 생각일 것이다.
 
 의술을 인술(仁術)이란 용어로 많이 사용되고 있는 걸 보면 의술은 단순한 기술과는 다른 뜻으로 해석함이 맞는 표현이다. 어떤 면에서는 기예(技藝, art)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합리적 이다. 환자는 과학기술 지식만을 적용하는 하나의 사례(事例, case)의 대상이 아니고 이해(理解)의 대상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의학에서 질병을 정복하겠다고 높이 기치를 올리는 오만한 계몽주의적 의사들은 점점 그 한계를 실감하고 있다. 최근 유전자분석과 연구를 통해서 무병장수라는 인류의 오랜 희망을 실현시킬 수 있을 거라는 핑크빛 미래를 꿈꾸고 있지만 또 다른 한편에서는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원초적인 철학적 고민을 하는 의료인들도 있다.

 자연을 인간이 정복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듯이 인간이 자연의 일부임을 깨닫게 될 때 인간은 과학기술의 위력에서 겸손해질 수 있다. 의학도 결국 인간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과학기술의 한계성을 인정함으로써 인간을 사례나 분석이 아닌 자연인으로서 대우를 받게 해야 할 것이다.


『너무 많은 것이 너무 적은 것으로 너무 적은 것이 너무 많은 것으로 뒤집힐 가능성에 대해 끊임없이 신경을 곤두세우며 그 결과를 예측하려고 노력하는 것이야 말로 의사가 갖추어야 할 기술의 덕목이다』










                                                                                    글: 최상묵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덴틴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