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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묵 칼럼

문화적 진화, 밈(meme)

[최상묵의 NON TROPPO]-<43>



나는 클래식음악을 좋아한다. 그런데 우리 집 아이들은 학교 다닐 때 주로 듣는 음악이 팝송 아니면 가요를 즐겨 듣는 듯 했다. 그러나 한 번도 그들의 음악 취향에 대해 간섭하거나 내가 좋아하는 음악 쪽으로 강요해 본적도 없다. 그런데 요즘 와서 모두가 클래식 음악의 신봉자(?)가 되어 있는 게 아닌가?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내가 그 나이에 음악을 좋아했었던 모습과 비슷한 모습을 자식들에게 발견하면서 세삼 신기하고 놀랍기도 했다.

 아버지의 유전인자를 닮아서 인가? 아님, 아버지의 문화를 모방하거나 문화적 유전을 한 것인가? 하기야 요즘의 생물학적 견해에 의하면 문화의 전달도 진화의 형태를 취하고 마치 유전자 전달과 똑같은 과정을 그친다고 한다. 유전자는 복제되는 것이 특징이다. 문화의 전달도 유전자처럼 복제기능이 있다는 것이다.

 문화를 전달 또는 모방하는 사회적 관습의 단위를 밈(meme)이라는 명칭을 처음 사용한 사람은 진화생물학자 리처드디킨스(Richard Dawkins)이다. 유전자가 정자, 난자를 통해 하나의 신체에서 다른 신체로 건너뛰어 퍼지는 것과 똑같이 밈(meme)도 모방이라는 과정을 통해서 한 사람의 뇌에서 다른 사람의 뇌로 건너뛰면서 퍼져 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밈은 뇌 속에 저장된 행동을 밖으로 끌어내어 복제를 통해서 전달하는 문화적 모방을 뜻한다. 사람에게 사람으로 전달되는 모든 형태의 비유전적 정보 모두를 포함하는 것이다. 노래, 식사습관, 종교적 신념, 학문적 개념 등의 비유전적 정보가 모두 밈이 될 수 있다.

 

인간이 다른 동물과 다른 특이성이 있다면 문화를 가지고 있는 것이며, 그 문화를 진화적 모방을 통해서 전달시킬 수 있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자면 과학자가 훌륭한 이론이나 학설을 동료나 학생에게 강연이나 논문을 통해서 전달되는 현상 같은 것이다. 우리 몸은 유전자를 전달하기 위해 만들어진 유전자기계인 셈이다. 그 윤자의 자기 복제자는 DNA이다. 그러나 DNA가 영원히 그 복제 전매권을 확보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유전자기계로서 몇 세대 경과하면 유전자 본색은 점점 희석되어지기 때문이다. 유전자 자체는 불멸일지 몰라도 유전자의 성격, 특성은 사라지게 마련이다. 그러나 위대한 소설이나 아름다운 음악이나 위대한 발명 등을 통한 밈 복합체는 영구히 생존되어 있다. 베토벤이라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밈 효과는 아직도 우리들 속에서 건재하고 있다.

 문화의 진화는 밈들이 단순히 이사람 머릿속에서 저 사람 머릿속으로 건너 뛰어다니는 것만은 아니다. 한 집단에서 다른 집단으로 건너 뛰어 가기도 한다. 어떤 집단이 다른 집단에 의해 모방되는 이유는 그 집단이 생산적이고 모범적이며 상호 조화로운 일을 하기 때문에 그 밈들은 다른 사람들로부터 추앙을 받거나 거듭 채택되거나 모방된다. 문화적 진화는 유전적 진화와는 물론 다르다. 문화적 진화는 더 빠르게 일어나고 훨씬 더 번잡한 방식으로 무작위 적으로 진행되기도 하고 의도적으로 도입되기도 한다. 마치 들불처럼 빠르게 번져나가기도 한다.

 

밈은 다음 세대에 수직 전달되기도 하지만 전염병을 일으키는 바이러스처럼 수평적으로 전파되기도 한다. 우리는 방송의 ‘개그’ 유행어가 삽시간에 온 국민에게 퍼져나가는 현상을 알고 있다. 밈들은 빛의 속도로 세계로 퍼져나가면서 스스로 복제하고 있다. 또 밈들은 매체에서 매체로 이리저리 무차별적으로 옮겨 다니면서 격리가 불가능해질 경우도 생긴다. 문화적 밈이 계속 지속하려면 여러 가지 물리적 매체를 이용해야 한다. 언어를 통하여 번역되거나 종이나 잉크로 비디오테이프, 컴퓨터 하드 디스크 등으로 보존되고 전달되고 복사 되고 있다.

 밈이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지? 또 어디에 거주 하는지 물리적으로 무엇인지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유전자와 마찬가지로 밈은 밈풀에서 밈복합체를 이루어 각자의 뇌 속에 함께 모여 살고 있을 것이다. 유전자는 보이지만 밈을 볼 수 없다. 즉. 모든 밈들이 정박해 있는 항구는 인간의 정신이지만 인간의 정신자체는 밈들이 보다 나은 서식처를 만들기 위하여 인간의 뇌를 재구성함으로서 생겨나는 부산물이다. 그래서 복제의 신뢰성과 지속성을 강화할 수 있는 다양한 장치들로 보강하려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문화를 구성하는 많은 개념들로 가득 차 있으며 보다 넓은 뇌 공간을 차지하기 위하여 그들 나름대로 경쟁을 하기도 한다.

 문화는 인간의 생태학적 성공을 의미한다. 문화는 일을 쉽게 만들거나 가능하게 만들어 준다. 언어와 문화는 어느 쪽이 먼저 나타났을까? 전통과 규범이 필요하고 상호 이해하는 역할이 필요한 공동체가 형성되기 전까지는 언어가 그다지 필요 없었을 것이고, 따라서 문화가 언어보다 먼저 발생했을 거라는 주장은 근거가 있다. 호미니드가 100만 년 전애 불을 다스렸다는 증거가 있다. 이것은 분명 문화적 행위였다. 그러나 언어는 불과 수십 만 년 전에 등장된 것으로 추정되므로 더 최근에 생긴 사건이다. 문화와 문화적 전달은 꼭 언어가 없어도 가능하지만 문화적 전달로서 우리를 여러 가지 종(種)으로 갈라놓게 된 원흉은 언어인 셈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우리를 이성적 동물이라 했다. 우리가 이 유명한 말에 어울리는 존재로 만든 것은 문화다. 우리는 어떤 규범을 정해 놓고 왜 하고 묻는 생물이다. 또 도덕성을 하나의 지향성으로 삼고 그것을 어떻게 삶과 조화시킬지를 항상 생각하는 동물이다. 우리들이 진화시킨 문화는 오직 우리들에게만 그 목적과 수단을 평가할 기회와는 능력을 부여해 주기 때문이다. 다른 종들과 달리 우리인간들은 언제나 연구하고 시간과 에너지를 쏟고 정보를 모으면서 우리의 미래가 어느 궤도로 갈지 항상 생각하고 있는 동물이다.

 

요즘 밈(meme)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까닭은 앞으로 수십 년 안에 기계가 인간보다 더 똑똑해져 인간의 삶이 기계에 의해 지배를 받고 기계가 시키는 일을 무엇이든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처지에 놓게 될 것이라 예측하고 있다. 기계가 발달되고 영리해져서 이 지구상에서 인간 대신에 주인 노릇을 하게 되는 어떤 미래가 올 것이라고 많은 학자들이 예언하고 있다. 그 시점을 특이점(Singularity)이라 한다. 그때가 되면 인류가 유전에 의한 진화를 마감하고 문화적 진화에 의존하게 될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인간의 마음이 컴퓨터에 이식 될 수 있게 되면 사람과 기계의 구분이 모호해질 뿐 아니라 사람보다 기계가 더 우월한 입장이 될지도 모른다. 인류의 미래가 앞으로는 생명보다는 인간의 마음을 이식 받는 기계에 의해 발전되고 승계될 가능성을 더 있을 거라는 생각을 배제할 수가 없다. 유전자보다 밈(meme)이 진화의 주역이 되는 세상이 오고 있는 것이다.











글: 최상묵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덴틴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