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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묵 칼럼

문화적 종착점에 선 ‘생명공학적 기술’

[최상묵의 NON TROPPO]-<43>

 

 소설이나 영화에서 우리들의 미래의 삶에 대한 예측이나 생각들을 소재로 많은 작품들이 발표되고 있다. 그 작품들의 내용이 정말 실현가능성이 있는지에 대한 여부는 제쳐두더라도 언제가 매우 세련되고 발전된 기술문명들이 배경이 되고 있는 환상적이고 유토피아를 추구하는 경향이 짙게 깔려 있는 것이 추세인듯하다.

 그러나 그 속에 출연하는 인간상들은 왠지 우울하고 긴장되고 심각하여 행복해 보이지 않는 반 유토피아적인 상태로 표현되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지금 21세기를 출발한지 꽤 지난 시점에서 앞으로 50년 후쯤에 우리에게 어떤 변화의 세계가 펼쳐질 것인가에 대한 여러 분야에서 여러 학자들에 의한 논쟁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우리가 미래에 직면하게 될 일반적인 상식적인 변화에 대한 예측은 어느 정도 가능해 지고 있는 것 같다.

 우리 인간은 점점 기계화되어 일상적으로 기계에 적응하는 것과 똑같은 기술적인 대상이 되어 우리 육체에 적용되는 기술(의술도 포함)과 물질에 적용되는 기술이 같아지는 일반화가 이루어질 거라는 예측이다. 우리는 이미 50년 동안 분자 생물학의 분석 자료를 공학적 자료로 변화시키는 작업을 했다. 그래서 생명자체를 가장 근본적인 단위수준에서 조작할 능력도 가지게 되었다.

 또 앞으로 50년 후면 더 많은 새로운 생물학적 능력을 갖추게 될 것이다. 유전적 변형시도를 함으로써 인체를 근본적으로 변형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가질 것이라는 예측을 하고 있다. 새로운 생물분자를 합성하고 새로운 생화학적 반응방식을 개발하여 새로운 조직과 기관을 만들 수 있게 될 것이다. 생명공학은 생물학적 진화의 힘을 능가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전환을 가져오게 될 것이다.


 생명학적 가능성이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무궁무진해지면서 윤리적인 문제 즉, 생명윤리가 앞으로 최대의 쟁점으로 부각되고 있다. 유전공학의 발달이 인류의 생존을 위협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 대표적인 위협이 유전자 변형 농산물 같은 유전자이식 작물이 인체에 대한 유해성 논란이 될 것이고, 생태계를 교란시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생명공학이 의학에 접목되면서 새로운 환자치료법을 개발하면서 인간의 능력까지도 강화시킬 수 있는 기술도 개발하게 된다. 인간의 몸과 마음을 개선할 수 있는 힘을 얻어 그 힘으로 더 뛰어난 학습능력과 기술도 개발하게 된다. 인간의 몸과 마음을 개선할 수 있는 힘을 얻어 그 힘으로 더 뛰어난 학습능력과 기억력, 강한 근육 그리고, 긴 수명까지도 얻을 수 있게 된다. 인간의 능력강화를 얻게 됨으로서 질병치료의 수준을 넘어 인간개조의 범위까지 확장, 침범하게 된다는 것이다.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능력을 개선하여 더 오래 살고 건강하게 더 좋은 삶을 살 수 있기를 누구나 바라고 원한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더 빠르게, 더 건강하게, 더 오래 살 방법을 항상 찾아왔다. 우리자신을 바꾸고 개선하려는 충동은 먼 옛날 역사 속에서 수백 만 년에 걸쳐 진화해 왔다.

 생명공학의 가능성과 잠재력은 상상을 초월하게 진화 될 것이다. 앞으로는 인간이 원하는 성격이나 육체를 슈퍼마켓에서 물건을 고르듯이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게 될 것이며 태어날 자손의 형질까지도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는 시대가 분명히 올 것이다.

 더 개발된 컴퓨터와 여러 가지 자동화된 첨단장비를 통해서 생명의 신비를 더 파헤치게 되어 21세기 중반 즈음에는 지금 사용하고 있는 암 치료를 위한 수술이나 화학요법, 방사선 치료 같은 것들이 아무런 효과가 없다는 것이 노출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단순한 화학물질로부터 시험관 안에서 생명체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가능성도 탄생할 것이며 질병을 공학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인공면역계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들 있다.


 우리는 지금 문화적 종착점에 와있는 것이다. 19세기에는 다른 사람들을 외면하고 자기 스스로에게 초점을 맞추어 풍요로운 내면의 세계에 살았는가 하면 20세기에 본인 스스로보다 타인에게 초점을 맞추어 학습과 연산에 바탕을 둔 있는 그대로의 인간본성에 충실한 삶을 살았다. 앞으로의 21세기에는 인간의 의식이 순간적이고 변덕스러우며, 자아와 타자, 주관과 객관을 구분하는 경계가 허물어짐으로 해서 훨씬 더 포괄적인 인간과학이 등장할 것이다.

 우리가 지금 또 다른 문화적 신기원 속으로 들어가고 있는 지금 미래에 무엇이 어떻게 될 것이라고 예언하는 자체가 무의미해 보이기도 한다. 인간이 생명공학을 통해 유전자를 주무르는 일을 비윤리적이라고 성토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환경론자인 빌 매키븐은 유전공학의 개발은 인간에 대한 범죄행위라고 말하면서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지금도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이대로 충분하다』 지금 이 상태의 현상을 유지하면서 변화 대신 인정을 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재의 인간성을 침식하는 기술이 육체적 한계를 뛰어 넘도록 접근하는 태도는 제한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2000년 미국 부시 대통령은 생명공학 기술을 견제하는 생명윤리자문위원회를 만들어 보고서를 발표했다.

  “유전자 조작 및 복제기술은 생명의 가치를 떨어뜨리고..... 인간의 정신을 조작하는 기술은 우리의 정체성을 위협할 수 있다. … 자연 상태 그대로를 존중해야 하며 자연을 개선하려는 것은 인간의 오만성을 나타내는 것이며 인간 고유의 존엄성을 위협하는 것이다. …”


 우리 인간에게는 한계가 있을 것이다. 그 한계 안에서 살 소 있기 때문에 인간인 것이다. 우리가 이를 초월한다면 아니 거역한다면 우리는 더 이상 인간 일 수는 없을 것이다. 진지한 과학자나 사상가들이 많은 증거와 논거에 근거하여 발표하는 사상과 주장들이 반드시 이 시대에 우리가 공유하고 있는 도덕과 질서에 항상 맞아 떨어질 수 없는 일이다.

 때문에 자연의 질서를 존중하고 따르며 이것을 마음대로 바꿀 수 없다고 생각하는 현대인들의 분별 있는 행동이 아닐까 생각한다. 과학기술을 올바르게 사용하느냐 못하느냐 하는 문제는 사람에게 달려 있다. 21세기는 과학윤리가  필요한 시대가 되어야 할 것이다. 필자도 『이대로 충분하다』는 소극적 태도에 훨씬 마음이 기울어지는 지성인이 되고 싶다.









글: 최상묵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덴틴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