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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창인의 밥집 이야기

어복쟁반 이야기

[석창인의 밥집 이야기]- <71>

추석 연휴, 판교에 위치한 냉면집 ‘능라’에서 친구들이 모였습니다. 고속도로는 이미 아비규환의 거대한 주차장으로 변했다는 소식이지만, 식도락 한량들은 이북 스타일 안주에 소주 한잔을 생각하며 콧노래를 부르며 달려왔다지요?

이곳에 오면 평소 돼지고기 제육부터 시키지만, 이미 동이 났다는군요. 평양식 찹쌀순대도 손이 많이 가서인지 메뉴판에서 슬그머니 없어졌고요. 하는 수 없이 친구들이 다 모일 때까지 빈대떡에 막걸리를 했습니다. 사실 친구들이 다 오더라도 술안주로 선택할 것이 별로 없습니다. 소고기 수육과 어복쟁반 정도지요. 능라를 그리 많이 왔으면서도 어복쟁반을 따로 주문한 적은 없습니다. 가족들이 별로 내켜하지 않아서입니다. 그런데 오늘은 친구들과의 술자리니만큼 안주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니까 드디어 주문을 하게 되는군요.

그런데 이 집의 어복쟁반은 소의 ‘찌찌’인 유통이 들어있질 않아서 특유의 치즈향 혹은 젖비린내가 나질 않습니다. 단순히 깔끔한 양지 수육에 야채와 육수를 넣어 끓인 정도입니다. 중구 을지로의 남포면옥 어복쟁반 맛에 길들여진 탓인지 능라의 어복쟁반은 도시사람들 입맛에 맞게 변형시킨 개량형 같다는 생각이네요.

아래의 글은 예전에 어복쟁반에 대해서 정리를 해둔 것이 있어서 옮겨봅니다.



 

음식의 유래와 함께 그 명칭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하는 것은 미식의 첫걸음입니다.

의학이라는 학문도 터미놀로지(terminology) 즉, 용어들의 이해와 암기만 제대로 해도 절반은 먹고 들어가는 것입니다. 명의(名醫)란 수많은 병명과 증상들을 머릿속에 저장해두었다가 특정 환자의 여러 증세와 검사 자료 등을 ‘쓰~윽’ 리뷰한 뒤, 두뇌의 고속회전을 통해 최종 진단을 정확히 내릴 줄 아는 의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물론 피를 보고, 째고, 갈고 하는 외과 쪽은 좀 다르긴 하지요.

의료계와 마찬가지로 식도락계에서도 조금 색다른 음식 이름이나 식재료 등에 관한 작은 정보만 알고 있으면 어디서건  전문가 행세를 할 수 있어서 어중이떠중이 파워블로거들이 대거 탄생하게 된 배경이기도 합니다.

Anyway!

어복쟁반은 어북쟁반이라고도 불리는데 평양의 저잣거리(시장바닥)에서 생겨난 음식인 것은 분명하지만, 나머지 정보들은 죄다 정체불명이고 오리무중입니다. 혹간, 평양의 기방음식이라고들 말하기도 하는데 이는 틀린 이야기입니다.

어복쟁반이라는 표현도 우리나라 음식명칭을 정할 때 먹을 수 있는 것을 뒤로 두는 법칙이 있기 때문에 쟁반어복이 맞지 어복쟁반이라는 표현은 약간 생뚱맞습니다. 이는 쟁반짜장의 경우와도 같은데, 짜장쟁반이라 하면 쟁반을 먹어야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된장뚝배기처럼 그릇이 뒤로 오는 경우도 있지만 이는 최근의 경향이지 어복쟁반이라는 요리가 만들어질 때는 절대 아닙니다. 그리고 1970년대 이전까지는 한국일보 주필이셨던 홍승면 선생님의 글에서처럼 ‘어복장국’이라고 불렀는데 어느 날부터인가 장국 대신에 놋쟁반을 뜻하는 '쟁반'이 떡 하니 자리를 잡았더라는 것이죠.

어복이냐 어북이냐고 따지는 것보다는 우복이냐 어복이냐 논쟁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어복이라고 하니 임금님이 배불리 먹고 배를 두드렸다고 견강부회를 하기도 하지만, 사실은 소의 아래뱃살 즉 우복(牛腹)을 말합니다. 평양의 시장바닥 음식에서 유래되었다고 위에 설명하였듯이 한양에 있는 임금님과는 전혀 연관이 없기 때문이죠. 또한 소의 뱃살 즉 유통(젖가슴살)은 고기 부위 중에서도 가장 싼 부위이기 때문에 저잣거리에서 쉽게 만들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또 하나 생각해 볼 것은 유통이 주요 재료라면 서울 을지로의 남포면옥 스타일이 모범답안이라는 것이죠. 어복쟁반의 재료는 통상 유통, 양지머리 편육, 우설, 머릿고기, 계란 등과 각종 야채류입니다. 여기서 유통이 들어간다면 당연히 국물에는 치즈향이 비릿하게 올라와야 맞습니다. 남포면옥의 어복쟁반이 딱 그 맛입니다. 식사로는 남은 국물에 만두나 냉면 사리를 넣어 먹는 것이 정석이고요.

그런데 서울의 일부 평양요릿집이나 냉면집에서는 유통 대신에 먹기 편한 양지 편육만을 넣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이를 과연 어복쟁반이라고 칭해야 하는지 고민이 따르긴 합니다.

 

 

야채계란쟁반인가요? 고기는 보이지도 않고? 

 


야채를 대충 건져먹으니 속살이 드러나는군요. 양지 편육이외엔 다른 부위가 없습니다.


용인 양지면에 위치한 냉면집 '우리소'의 어복쟁반입니다. 


남포면옥의 어복쟁반입니다. 치즈향이 강합니다.  



빈대떡은 사각거리면서 씹히는 질감이 중요하지요. 



소고기 수육입니다. 그러나 수육은 돼지고기가 훨씬 낫죠.  



맛보기용 냉면입니다. 선주후면의 모범을 보여야지요. 

 


건강을 위하여 지나친 노른자를 삼갑시다.




 

 

 

글: 석창인

에스엔유치과병원 대표원장

음식 칼럼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