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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창인의 밥집 이야기

닭이 먼저인지 인삼이 먼저인지 - 체부동 ‘토속촌’

[석창인의 밥집 이야기]- <69>

세계적인 요리사인 알랭 뒤카스가 어느 인터뷰에서 삼계탕을 무식한 음식이라고 그러더군요. 닭을 발가벗겨 뜨거운 물에 풍덩 넣어 익힌 음식이 무슨 요리냐고 말입니다. 하지만 한국에서 태어난 일본의 야시꾸리소설가 무라카미 류는 삼계탕이 한국 최고의 요리라고 치켜세웠고, 장이머우 감독을 비롯한 세계적 스타들도 한국에 오면 꼭 삼계탕을 찾습니다.

당연히 우리나라를 상징하는 대표음식이고 대표보양식인데, 내재된 음식문화를 고려하지도 않고 쉽게 그런 결론을 내버린 알랭 뒤카스가 오히려 무식한 요리사가 아닌지 모르겠군요.

 

원래 삼계탕은 계삼탕으로 불렀다고 하네요. 영어로도 Chicken Ginseng Soup이라 한다니 요리의 메인이 닭이고 보조 재료가 인삼인 것이죠. 그러나 언제부터인지 인삼이 비싸고 귀하다보니 그 위치가 뒤바뀌어 삼계탕이 되었습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인삼보다는 황기를 넣어 끓인 삼계탕이 훨씬 맛이 있다고도 합디다.)

그런데 인삼의 품질은 대개 일정하지만 닭은 그야말로 천차만별입니다.(참고로 삼계탕에 사용하는 닭은 죄다 웅추 즉, 숫놈들입니다.) 인삼은 그저 향내만 내면 그 임무를 다합니다만, 정작 주재료인 닭은 24시간 불을 밝힌 사육장에서 발톱도 잘리고, 부리도 잘린 채 항생제 범벅 사료를 먹고 뒤룩뒤룩 살이 쪄야만 합니다. 예전엔 몇 달을 걸려 키워야 했던 놈들이 이제는 20~30일만 크면 치킨용이나 삼계탕용으로 잡아버립니다.

 

그러니 조금만 끓여도 살이나 뼈가 흐물흐물 할 밖에요. 사람들은 이런 연약하기 짝이 없는 닭들이 오히려 야들야들하고 부드러워서 좋다고 합니다만, 무항생제, 무성장촉진제에 마당이나 야산에 방목하여 키운 닭을 먹어보지 못해서 하는 소리일 겁니다. 장안의 유명 삼계탕 집들은 죄다 직영 농장이 있거나 계약한 사육농가에서 닭을 가져다 씁니다. 염천 복날에 하루 수천 그릇이 팔려나가는 형편이니 어디 닭 한 마리 한 마리의 계권(?)에 신경이나 쓰겠습니까?

 

체부동 토속촌은 원래 효자동 토속촌이라 불렀습니다. 지금 장소에서 바로 큰길 건너 유료 주차장이 있는 자리가 원래 자리이고 그곳이 효자동에 속하기 때문입니다. 대략 25~30년 전 교수님들 모시고 점심 먹으러 다닐 때의 위치도 바로 그곳입니다. 사실 그 이전까진 어머니가 시장에서 사온 닭으로 만들어주신 삼계탕이나 먹었지 밖에서 돈을 내고 사먹었던 기억이 거의 없습니다.(심지어 집에서 닭목을 비틀어 잡은 적도 있었습니다.) 다행히 저희 과 교수님들은 미식가들이셔서 점심이나 저녁에 장안의 유명식당들을 제자들과 순례를 하곤 했었는데, 삼계탕은 서소문의 고려삼계탕, 삼선교 근처의 고려삼계탕 그리고 효자동의 토속촌을 주로 다녔습니다. 물론 촌스러운 제 입맛에도 최고는 토속촌이었지요.

당시에도 인삼주 한 잔이 서비스로 나왔고 마지막엔 인삼껌을 씹으며 계산을 했었습니다. 지금의 자리로 옮긴 시기는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식당의 구조가 여러 가옥을 사들여 서로 이어붙인 형태라 마치 왕십리 대도식당본점과 비슷하다는 느낌입니다.

 

근자에 한류 바람이 불면서 외국 관광객들이 손님들의 대부분을 차지하게 되니 예전보다 훨씬 소란스러워졌고 옛날 맛과 조금 달라졌다는 의견도 많습니다. 이번 방문에서도 집사람과 아들도 같은 생각이더군요. 아니면 첫사랑의 유효기간처럼 상대는 그대로이나 내 마음(입맛)이 시나브로 바뀐 것일 수도 있고요.

 

삼계탕 / 권오범

수컷구실 한번 하지 못하도록

몽달귀로 낙인찍힌 것도 억울한데

턱없이 에누리당한 천명

얼굴마저 저당 잡힐 줄이야

머나먼 저승길 허기질세라

대추 밤 찹쌀 미리 얻어먹고

지옥 물에 목욕재개 하고나니

골수마저 녹아내려 흐물흐물해진 몸

 

인삼 하나 끌어안고

볼썽사납게 다리 꼬고 누워

누드 쇼는 하지만

버젓한 한류스타이기에 여한은 없다

 

젓가락으로 잔인하게 꼬집어도 좋으니

뼈 마디마디 깔끔하게 해탈시켜주길

우리 목숨 좌지우지 하는

저승사자인 인간들이여

 

말복이 지나고 저녁시간 바로 전 어스름할 때 오니 줄을 서지도 않고 무혈입성입니다.

식당 입구엔 추억의 전기통닭구이도 빙빙 돌아갑니다.

식당 안에는 닭과 관련된 인형들이 많습니다. 신사복장을 한 닭이 명함을 들고 있네요.

 

글에 나오는 특수재료 3가지가 맛의 비밀이겠군요.

저희가 들어간 방엔 대만에서 온 어린이들 십여 명과 그 인솔자들, 그리고 중국에서 온 커플들로 난리가 아닙니다. 삼계탕집이 아니라 불난 호떡집 같아요.

 

네 사람이 가니 인삼주 네 잔이 나옵니다. 아들 두 잔, 저 두 잔!

 

설탕으로 버무린 깍두기와 겉절이입니다. 요즘 뜬다는 백주부 레시피 그대로입니다.

 

무슨 재료가 들어갔는지 대충 보이죠?

 

분명코 옛날 맛은 아니에요. 그리고 좀 짰나봅니다.

집에서 냉수 두어 컵을 벌컥 벌컥 마셨으니 말입니다. 소금을 전혀 투하하지도 않았는데 말입니다.

이 식당 화장실의 암모니아 냄새는 그야말로 화생방 훈련실입니다. 그렇게 많은 손님들과 외국 관광객을 유치하면서 화장실 냄새 제거를 못한다는 건 말이 안 됩니다. 제가 오히려 창피해 죽겠습니다.

 

 

 

 

 

글: 석창인

에스엔유치과병원 대표원장

음식 칼럼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