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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창인의 밥집 이야기

혼자 다 하면 많이 남을까? - 도곡동 이수부 레스토랑

[석창인의 밥집 이야기]- <61>

제 헤어스타일을 두고 사람들은 시쳇말로 '구리다'라고 말합니다. 이름 있는 헤어 스튜디오에 가서 커트를 하거나 조금 기른 뒤에 퍼머를 한번 해보라고들 하지만, 저는 그럴 수가 없습니다. 25년간 한 이발소를 다닌 까닭에 그 아저씨를 도저히 배신할 수가 없는 그런 '으~리' 때문입니다.

그 이발소는 혼자서 모든 일을 다 하는 1인 시스템입니다. 머리를 깎아야 하고, 면도도 해줘야 하며, 머리도 감아주고, ‘비타 500’ 같은 서비스 음료수도 따주고 그리고 계산까지 직접 하십니다. 손님이 몰릴 때는 하염없이 기다려야 하는 구조이지만, 그래도 딴 곳에 눈길을 준 적이 없습니다. 25년 전 요금이 만 원이었는데, 지금은 2천 원이 올라 만이천 원입니다. 물가상승률을 따져 보아도 도저히 말이 안 되는 요금이지요. 잔돈이 없는 날은 그냥 만 원에 해주시기도 합니다. 저와 이발소 아저씨와의 이런 의리는 요즘 문제가 된 어느 기업인의 로비 방식인 ‘기브 앤 테이크 으~리’와는 많이 다릅니다.

한 때 '원 테이블 레스토랑'이 뜬 적이 있었지요. 특별한 이벤트를 해야 하는 손님들에겐 더 없이 좋은 시스템이고, 세프와 교감을 하며 식사를 할 수가 있어 인기가 있었습니다. 요즘은 어디에 계신지 모르겠으나, 라미띠에의 서승호 세프도 이런 스타일 밥집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원 테이블이라고는 하지만 대개 두 팀 혹은 8 명 정도까지는 식사를 할 수가 있는데, 이는 식당 운영에 필요한 최소한의 매출 때문이겠지요. 편하게 1인당 10만 원이라고 쳐도 한 달 매출이 1000~1500만 원은 되어야 임대료, 식재료 등을 내고 집에 조금 가져갈 수가 있을 겁니다.

게다가 자기 이름을 걸고 밥집을 하기 때문에 재료에 무척 신경을 씁니다. 제철 식재료는 물론이고, 유기농 혹은 친환경이어야 함도 당연하고, 기존에 널리 알려진 요리가 아니라 세프의 창작력을 쏟아 부어야 합니다. ​

도곡동에 위치한 ‘이수부 레스토랑’은 1인 요리사에 원 테이블 그리고 완전 예약제입니다. 자신의 이름을 건다고 하는 것은 흔히들, 하느님을 내세우거나 자식 혹은 자신의 목숨을 내거는 허세와는 다릅니다. 자신의 명예와 자존심을 거는 것이죠. 이수부 스타일은 프렌치나 이탈리안 요리에 익숙한 사람들에겐 약간 당혹스러운 요리일 수도 있지만, 우리나라 고유의 식재료와 서양식 요리법이 묘하게 어우러진 독특한 음식을 냅니다. 빵에 발라 먹는 바질 페스토도 독특하며, 파프리카 퓨레를 제철 생선에 맞게 재밌는 응용을 합니다. 다만 한 가지 흠이라면 혼자서 일을 다 하니, 접시 치우는 일이나 새로운 접시 제공을 손님이 직접 하거나 음식도 큰 그릇에 나오면 직접 덜어먹어야 하는 게 좀 아쉽지요. 그러니까 최상의 서비스를 보여주는 파인 다이닝에 익숙한 사람들에겐 불편할 수도 있지만, 세프와 서로 교감하고 도와가며 식사를 하기엔 그만입니다. 그러나 혼자나 둘이는 갈 수가 없고, 4인 이상만 예약이 가능하다는 점도 좀 걸리긴 하네요.

얼마 전 일간지를 보니, 혼자서 모든 걸 다 하는 치과가 있습디다. 나름 장점도 많고 불편한 점도 많겠지만 오죽하면 저렇게 치과를 할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직원들 구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이고, 임금은 하늘 높은 줄 모르며, 4대 보험이니 연금이니... 머리가 지끈지끈 아픕니다. 어차피 환자 숫자도 줄어갈 텐데 저도 좀 더 나이가 들면 혼자서 치과를 한번 해볼까 구상 중입니다. 대세가 미니멀리즘 추구라니까 하는 말입니다.


사족:

‘수부’라는 이름은 상당히 독특합니다. 죄송스럽지만, 같은 이름(성은 다르지만)을 가지신 은사님도 계셨지요. 그래서인지 그 식당이 낯설지 않습니다. 최근 요상한 사건에 연루되어 매출 상승 효과를 본 ‘비타 500’의 광동제약 회장도 같은 이름입니다. 요즘은 병원 접수를 보는 곳을 프런트 데스크 등으로 부르지만, 제가 원내생 때만 해도 '수부'라 불렀지요.

이수부 세프의 본명은 이덕영입니다. 옛 이름이 훨씬 더 정감이 가는데 왜 개명을 했을까요? 점쟁이가 바꾸라고 해서? 튀어 볼라고? 어렸을 때 이름이어서? 참 알쏭달쏭 입니다.


 얼굴이 긴 이수부 세프처럼 '이'라는 글자를 길고 휘어지게 늘어뜨렸습니다.

보이는 부분이 식당의 전부입니다.

미니멀리즘을 추구한다는 말이군요. 행복을 담는 식탁이라.... 우리 치과도 환자들에게 행복을 줘야 할 텐데 말입니다.

특급호텔 출신답게 의관을 정제하고 요리를 하는군요.

낮에는 오늘 사용할 식재료들을 시장에 가서 산 뒤에, 저녁 예약 전까지 다듬습니다.

따끈한 빵과 바질 페스토.

 

페스토에 이것저것 대여섯 종류의 재료가 들어간다고 하더군요. 일행들이 다들 맛있다고 해서 작은 통에 하나씩 사갔습니다.

문어와 고수풀 그리고 콩으로 버무린 샐러드였어요.

 

제가 연어를 별로 안 좋아하는데 요 놈은 무척 맛있네요. 신선도의 차이인가요?

 

전복 삶은 것입니다.

웬 찌개냄비가?


토마토로 국물을 내었고, 새우와 대합들이 들어가 있습니다. 코리안 스타일 부야베스라고 할 수 있네요. 

 

숭어와 파프리카 퓨레입니다.

 

생크림과 딸기로 마무리했습니다.




 

 

 

글: 석창인

에스엔유치과병원 대표원장

음식 칼럼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