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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창인의 밥집 이야기

프렌치 레스토랑을 위한 변명

[석창인의 밥집 이야기]- <60>

 

'The Open'이라 하면, 영국하고도 스코틀랜드 땅에서 벌어지는 메이저 골프대회입니다. 대략 4대 메이저 대회 중에 역사와 정통성으로 따지면 가장 권위가 있지만, 요즘은 마스터즈나 US Open에도 밀리는 분위기입니다. 워낙 그 쪽의 날씨가 변화무쌍하기도 하고, 코스도 양떼나 기르던 잡초투성이라 골프 치는데 변수가 너무 많습니다. 때문에, 실력과는 무관한 결과가 종종 나오기도 하여 우승자가 예상했던 선수와 매번 다른 걸로 유명합니다. 'The Open'은 이제 일반 PGA 대회 수준 일보직전까지 떨어진 분위기이긴 하지만, 아직 골프의 종가 대우를 해주는 것은 골프가 전통과 예절 존중의 운동이기 때문이겠지요.

'The Times'도 마찬가지입니다. 요즘은 영국 사람들도 외면하는 신문이 되었지만, 아직 자기네가 신문의 표준이라고 우기고 있습니다. 영어에서 'The'를 쓰고 그 뒤에 일반명사를 쓰면 가장 대표되는 것, 표준인 것... 뭐 대충 그런 뜻 아니겠습니까?

 

강남을 지나가다 '더 성형외과'라는 간판을 보고 실소를 금치 못한 적도 있고, 지금으로부터 십여 년 전 '더 레스토랑'이라는 밥집이 생겼다는 소식을 듣고 콧방귀를 낀 적이 있었습니다. “자기네들이 뭔데 'The'라니!!” 하면서 말이죠. 심지어 더 레스토랑은 그릇에 금테를 둘렀거나 스테이크 위에 금가루를 뿌리나 하면서 친구들과 흉을 보기도 했습니다. (이런 추세라면 더 치과도 곧 나올 것 같습니다만)

그런데 우리나라 레스토랑들의 평균 수명을 고려했을 때, 그 식당은 진즉 문을 닫거나 아니면 이름과 스텝들을 바꿔 리뉴얼을 시도했어야 함에도 아직 초창기 세프도 그대로이고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는 조금 리모델링했을 뿐 대부분 그대로입니다. 개업 초에 '아베'라는 일본인 요리사가 손님들이 추가적인 양념(소금이나 후추)을 요구하면 절대로 내주지 않는다며, 자기 요리에 대한 자신감이 강하다는 그런 보도들도 있었는데 이마저도 그대로입니다.

 

각설하고, 대한민국에서 정통 프렌치를 한다는 것은 거의 육영사업 내지는 자선사업에 가깝습니다. 돈을 벌 수 없는 구조이기 때문입니다. 무슨 코스 메뉴 가격이 십 수만 원씩 하느냐고 볼멘소리들을 하지만 이는 베를린 필이나 빈 필 연주회 티켓이 오십만 원에 육박한다고 항의하는 것과 같습니다. 정작 레스토랑과 연주회 주관사는 하면 할수록 손해나는 구조입니다. 당연히 일본에 가서는 일주일 씩 전국 순회연주를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한 번 혹은 두 번의 연주를 마치고 서둘러 떠날 수밖에 없습니다. 영악하면서도 재기가 번득이는 요즘의 요리사들이 왜 정통 프렌치를 마다하고 비스트로나 요상한 스타일의 밥집을 내는 데는 다 이런 경제적 계산이 깔려있기 때문입니다.

 

세계적인 오케스트라들의 연주회가 성공하려면 후원하는 기업이 있어야 합니다. 예상되는 손실을 지원해 줄 수 있을 정도로 말입니다. 정통 레스토랑도 마찬가지입니다. 돈 많은 호사가들이나 재벌 며느리들이 운영하거나 그것도 아니면 갤러리 오너들이 고급 사교장으로 생각해야 가능합니다. 잘 나가는 해외 작가들의 작품을 수십, 수백억에 거래하려면 당연히 그런 장소가 별도로 필요할 밖에요.

더 레스토랑의 음식은 화려하지 않습니다. 게다가 약간 올드한 스타일입니다. 그러나 기본에 매우 충실하지요. 프랑스나 동경의 유명 레스토랑들을 가보면 최신 경향을 따르는 곳도 있지만, 오히려 요리의 기본에 충실한 곳이 더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젊은 식객들은 연예인급의 잘 생긴 요리사들만 추앙합니다. 심지어 그 요리사들은 주방을 버려두고 방송에 나와 먹방이니 쿡방이니 하며 종횡무진입니다. 기본에 충실한 정통 레스토랑에 와서는 그 음식에 대해서 잘 알지도 못하면서 맛이 없다고 블로그에 써댑니다. 그리고 자기가 파리에 갔을 때 혹은 밀라노에 갔을 때 그곳 맛과 다르다고 후렴을 붙이죠.

그러니까 적어도 대한민국에서 밥집을 하려면 주인이나 요리사가 젊고 잘 생겨야 하고, 음식의 데커레이션도 모던해야 하며, 강남의 ''한 곳에 오픈해야 함은 당연하고, ‘드라이에이징이니 수비드분자요리니 하는 요리방식을 모토를 내걸어야 하며, 마카롱이나 쇼꼴라 같은 디저트도 직접 만들거나 유명한 가게에서 사입해 내놓아야 하고, 와인 코키지도 무료이거나 저렴해야 하며, 마지막으로 밥값은 무조건 싸야만 합니다.

전쟁 직후 어느 외국 기자가 한국에서 민주주의가 이루어진다는 것은 쓰레기통에서 장미꽃이 피는 것과 같다는 망언과도 비슷하게 이 땅에서 정통 프렌치로 성공한다는 것은 아베 신조가 개과천선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라는 거죠.

 

지붕위의 바이올린이 아니고 여자가? 국제갤러리 내에 '더 레스토랑'이 있습니다.

 

아베 세프입니다. 새롭게 리모델링한 주방을 보여주고 싶어 안달입니다.

2층 별실인데 경복궁이 한 눈에 들어 옵니다.

봄을 확 느끼게 하는 요리입니다. 바닷가재 살을 투명 젤리로 감쌌어요. 그리고 소스에는 새우머리 속을 갈아서 넣었더군요.

전복 리조또. 베리 굿입니다.

시금치와 레드와인 소스를 뿌린 도미입니다.

저는 언제나 안심이 되는 안심 스테이크입니다.

아베상이 안심 사이에 프와그라를?

호불호가 갈리는 소혀 스테이크입니다.

속은 토마토로 들어찬 크렘블레입니다.

마무리는 쇼꼴라입니다.

동경에서 막 공수해온 화이트 와인입니다. 무똥 로칠드의 대표 화이트와인이죠.

엘 다르쟝! 무똥에서 필요할 때만 살짝살짝 만든다는 와인이죠. 소비뇽블랑, 세미용, 뮈스카데 등이 섞여 있대요.

 

 

 

 

 

글: 석창인

에스엔유치과병원 대표원장

음식 칼럼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