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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창인의 밥집 이야기

고흥 한정식을 아십니까?

[석창인의 밥집 이야기]- <56>

저처럼 와이프에게 쫀쫀하기로 소문난 사람들이 진료를 하루 땡땡이 치고 놀러간다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입니다.

대개 이런 일을 감행하는 치과의사들은 개원 경력이 오래 되었거나(그렇다고 돈을 많이 벌진 않았죠), 다람쥐 쳇바퀴 같은 일상에 너무 지친 사람들입니다. 그런 친구들을 모아놓고는 차를 하나 빌려서 1박 2일로 남해안 나들이나 다녀오자고 살살 꼬드겼습니다. 악당들의 유혹에 넘어간 피노키오처럼 동기 친구들은 잘도 속아서 따라옵니다.

제 입장에서는 같이 갈 일행이 있어서 좋은데 한편으론 덜컥 겁도 납니다. 진료도 팽개치고 시간과 돈을 들여 놀러 가는 마당에 만약 볼 것도 없고 먹는 것도 시원치 않다면, 그 원성은 고스란히 제 몫이기 때문입니다. 어쨌거나 제 신조가 ‘선사고 후수습’인 까닭에 일은 저지르고 볼 일입니다. 와이프들에게 바가지 긁히는 것은 차후의 문제이지요.

차량도 대형 ‘카니발’로 빌렸고, 심지어 운전기사도 수배했습니다. 같은 돈 내고 쉬러 가는 판에 누구는 운전하느라 피곤하고 게다가 술까지 못 마신다면 공평한 일이 아니지요.

전라남도 고흥반도의 지형은 벌교가 목줄을 쥐고 있는 ‘캥거루 불알주머니’ 형상입니다. 반도의 좌우로 여자만, 득량만, 순천만 등이 있는데다, 거문도 같은 섬에서 올려 보내는 다양한 해산물들이 녹동항으로 들어옵니다. 벌교가 꼬막이라면 고흥은 자연산 굴이 좋고, 우리나라 유자의 최대산지입니다. 최근엔 커피까지 재배되지요.게다가 항공우주공학의 중심센터이자 나로호 발사기지도 있습니다.

안토니오 이노키 그리고 자이언트 바바와 일합을 겨누며 일세를 풍미했고, 개발독재 시대에 온 국민의 스트레스를 풀어줬던 ‘박치기왕 김일’도 고흥의 거금도 출신이며, 권투의 유제두와 축구의 박지성을 배출한 곳이기도 합니다. 예술인으로는 지금 생사확인이 안 되는 천경자화백이 유명하지요.

호사가들끼리의 이야기 중에 우리나라 몇 대 불가사의한 집단으로 해병전우회, 호남 향우회, 고대교우회 등을 꼽는데, 고흥 향우회도 끄트머리에 한자리 한다네요. 예전부터 효창구장을 빌려 매년 수만의 고흥사람들이 모여 체육대회를 했다는데 그 규모나 열기가 불가사의에 해당할 정도라는 거죠.지방자치제가 자리 잡으면서 각 시군구마다 슬로건을 하나씩 만들었습니다만, 경기도 수원시는 약간 유치찬란합니다. '사람이 반갑습니다'이던가요? 고흥은 '지붕 없는 미술관'입니다. 실제 가보면 눈에 보이는 모든 풍경이 미술작품입니다.

고흥에도 고유의 한정식이 있고, 겨울철엔 민어보다 커 보이는 대삼치회가 별미입니다. 일행들은 소록도와 거금도 관광을 하고, 녹동항에서 해장 겸 점심식사로 먹은 장어탕(붕장어탕)에 다들 넋을 잃습니다. 여름엔 당연히 갯장어(하모)가 최고인 거는 두말하면 잔소리지요.그러니까 고흥 땅을 가보지 않고 남도 맛기행 운운 하는 것은 격화소양이고, ‘언발에 오줌누기’에 불과하다는 말이지요.

 

디젤 기름을 가득 채우는 걸로 시작하는 남도여행!

 

집결지는 수원입니다. 다들 아침 일찍 나왔으니 무조건 아침 해장을 하고 가야지요.

소주 두 잔과 해장국을 후루룩~~!

 

그렇게 몇 시간을 달려 늦은 점심에 도착한 고흥 중앙식당입니다. 시골 마을의 식당치고는 예사롭지 않은 외관입니다. 

 

이번 여행에서 고흥 9미 중에 한 두 개만 빼고 다 먹고 왔네요.

 

손님들이 가장 무서워 한다는 ‘싯가’라는 글귀가 눈에 뜨입니다.

 

일차로 차려져 나오는 기본 상차림입니다. 개불, 굴, 낙지... 회도 나오고 가이바시라도...

 

꼬막은 겨우 맛뵈기입니다.

 

유자청입니다.

 

전복도 당연히 나와야지요?

 

깨드립인 걸 보니 전라도풍의 육회입니다.

 

서대인지 박대인지 막걸리에 취해서....ㅠㅠ

 

뜬금없이 중화요리가 다 나옵니다.

 

마지막으로 밥과 국입니다.

 

매생이에는 굴이 들어가야 제맛입니다. 매생이가 서울에서 통상 팔리는 국에 들어가는 양보다 서너 배는 족히 많습니다.

 

흑마늘 막걸리입니다.

 

 

이미 낮술에 불콰해졌습니다. 방도 따뜻하니 그냥 드러눕고 싶네요.

불행히도 고흥의 별미인 '피굴'이 나오질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 음식이 빠진 걸 저만 아니까 다행이라면 다행이죠.

 




 

 

 

글: 석창인

에스엔유치과병원 대표원장

음식 칼럼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