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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창인의 밥집 이야기

북해도(北海道) 스시 투어

[석창인의 밥집 이야기]- <49>

홋가이도(북해도)에 가면 천지사방이 먹고 마실 것인지라, 딱히 무엇을 먹으러 여행을 간다고 특정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반드시'라도 해도 좋을 만큼 리스트에 꼭 넣어야 할 것이 있다면 '스시'입니다.

도쿄 긴자에서 저녁식사 값으로 3~4만 엔을 각오해야 하는 스시 오마카세 코스(주인장 추천 코스)를 홋가이도에서는 더 뛰어난 맛임에도 절반 이하의 가격에 즐길 수 있다면 '과부 땡빚'을 내서라도 일단 저질러야 하는 것이지요.

일단 삿포로의 대표 스시집은 스시젠()입니다.

신라호텔 일식당인 아리아께에 근무했었다가 지금은 스시효의 메인 셰프가 되었고, 일본 만화 미스터 초밥왕에도 소개되었던 안효주씨가 도제 수련을 받았다는 곳이자. 긴자 최고수들도 머리 숙이고 간다는 곳이 바로 스시젠입니다. 만약 그곳에 가서 셰프들에게 한국에서 왔다고 알려주면 그 쪽이 먼저 안효주씨를 아느냐고 되물어 올 정도입니다.

삿포로에서 기차를 타고 30분 정도 가면 있는 바닷가 소도시 오타루는 만화 미스터 초밥왕주인공의 고향으로 알려진 곳입니다. 그만큼 초밥으로 명성이 자자한 곳이며, 심지어 스시거리라는 곳도 있습니다. 물론 최고로 치는 곳은 마사 스시가 아닌 다른 곳이지만, 이번 여행에서는 관광객 선호도 1위이자 위치가 가장 좋다는 그곳을 골랐습니다.

~! 이제 두 곳을 둘러볼까요?

  

스시젠 예약은 이미 한 달 전에 완료했습니다. 도심에 위치함에도 불구하고, 식당의 외부 분위기나 내부는 고즈넉한 산사에 가깝습니다. 수도원이나 정진도량 같기도 하고요.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는 배치입니다. 화장실도 들락거리기가 송구할 정도입니다.

십 미터가 넘는 스시다이는 히노키 원목을 통으로 사용하였습니다. 일단 초밥에 사용하는 재료인 네타(생선)가 보이질 않네요. 좋은 스시집은 진열장에 내놓질 않고 따로 흰 천에 싸서 보관합니다.

 

죽통주는 이집의 하우스 사케입니다.

 

유키노하나라는 자체 주문하여 만든 사케입니다.

 

작은 나무상자가 있어서 열어봤더니 정성스럽게 제작한 이쑤시개가 누워 있네요.

 

스시 장인은 일단 수려한 외모에 말을 잘해야 합니다. 외국인 손님에게도 쉬운 영어로 소통하며 미소를 짓게 하는 재주는 옵션입니다. 앞에 있는 분홍색 원구는 바로 암염입니다. 강판으로 갈아서 소금가루를 만들죠. 오너 셰프 할아버지는 하필 오늘이 쉬는 날이라, 바로 아래 셰프를 찾았습니다. 물론 두 양반이 만드는 요리는 가격 차이가 있습니다.

 

참치뱃살인 오도로는 언제나 예술입니다.

 

북해도의 연어알(이쿠라)은 입에서 폭죽처럼 터지면서 단맛을 냅니다.

 

파스퇴르 요구르트를 먹인 아가의 응가인가요? 성게알인 우니는 로마의 휴일에 나오는 아이스크림보다 부드럽습니다.

 

위의 사진들은 전체 먹은 것의 1/5정도도 안 됩니다. 후식에 금박까지? 요즘 금가루도 금값인데....

 

 오타루 최대의 스시집인 마사 스시’. 히노키를 통으로 쓰지 않고 베니어판처럼 얇은 판을 이어 붙였습니다. 생선(네타)은 사창가 아가씨들처럼 유리관 속에서 맨살을 드러내며 손님을 기다리고 있고요.

 

일반 셰프, 마스터 그리고 장인이 만드는 세 가지 코스가 있다고 해서 이왕 비행기 타고 멀리 와서 먹는 거 스시장인이 만드는 것을 주문했습니다. 잠시 후 파킨슨을 앓고 계시는 장인이 나오시더니 손과 머리를 계속 흔들흔들 하시며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런데 고급 스시집에 가면 식탁에 앉아 편하게 먹질 않고 왜 스시다이에 불편하게 앉아서 먹으려 할까요? 이유는 바로 스시를 쥐자마자 마르기 전에 바로 먹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장인과의 대화를 통해 스시에 대해 강의도 듣고, 무슨 생선인지 또 무엇에 찍어 먹어야 하는지를 듣는 것이 중요하거든요. 말이 어느 정도 통하면 사회 돌아가는 이야기, 정치 이야기, 여자 이야기.... 끝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곳은 손님에게 하나하나 만들어 주는 게 힘드신지 이렇게 한 접시에 담아 주시네요. 다섯 개 정도 먹으니 이미 밥은 말라 비틀어졌습니다. 손이 떨리셔서 그런지 아니면 생선 밑 손질에 문제가 있어서인지 스시가 너덜너덜 합니다. 그러나 가격은 삿포로의 스시젠과 어깨를 나란히 합니다. 이곳 마사 스시는 고급 재료를 썼건 아니었건 간에 이미 손님의 마음을 얻는데 실패한 듯 보이네요.

 

좋은 스시집이란 예약시간에 맞춰 허겁지겁 들어오는 손님을 위해 재촉을 하지 않습니다. 먼저 따뜻한 차나 음료 등을 내주면서 스시를 맞이할 몸과 마음을 준비시킵니다. 종업원이 와서 생맥주나 사케를 주문 받을 동안에도 세프는 온화한 미소만 짓습니다. 원하는 메뉴를 주문하면, 슬슬 재료를 꺼내 하나하나 밑 손질하기 시작합니다.

손님에게 첫 사시미나 스시를 내놓고서는 각자의 페이스에 맞게 완급을 조정하며 음식을 만들어 갑니다. 셰프 앞에 여러 손님들이 있더라도 모두의 상태를 잘 파악하고 있습니다.

어떤 스시는 간장, 어떤 스시는 소금, 어떤 스시는 이미 간이 되어 있으니 그냥 드시라고 일일이 조언을 하며, 손님과 열린 마음으로 대화를 시작합니다. 말이 통하지 않는 외국 손님들이라도 눈치가 백단인지라 기분이 좋아져서 사케나 생맥주 간조를 올리기 시작하지요이렇게 풀코스를 완주하면 대략 두어 시간이 금세 지나갑니다.

그러나 마사 스시에서 한 시간도 채 못 되어 식사를 마쳤습니다. 손님의 질문이나 셰프의 응대도 일체 없었음은 불문가지입니다. 그 쪽에서 우리의 심기를 살피는 게 아니라 우리가 그 쪽의 눈치를 보며 먹어야 했고요.

먹는 순서도 뷔페 스타일로 한 번에 내주었기 때문에, 먹는 순서나 간을 어찌 해야 하는지 난감하기 이를 데가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도 치과에 온 환자들에게 이런 서비스를 하고 있지는 않은지요?

그들의 심리 상태나 시간, 경제 사정을 살피면서 진료에 임해야 함은 치과의사로서가 아닌 인간으로서의 기본입니다. 직원과 동료 원장들에게 조회시간에 이 이야기를 꺼내며 치과 환자에 대한 배려 운운 했더니, 반은 경청하고, 반은 시큰둥합니다.  

 스시젠 수준의 서비스를 제공하기엔 아직 멀고 험난합니다.

 

 

 

 

 

 

글: 석창인

에스엔유치과병원 대표원장

음식 칼럼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