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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묵 칼럼

기억을 버리고, 생각을 바꾸자

[최상묵의 NON TROPPO]-<29>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경험을 하면서 많은 것들을 기억한다. 어떤 기억은 시간이 지나면 희미해지고 어떤 기억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왜곡되기도 한다. 우리의 기억은 실제 사건을 정확하게 복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경험한 것을 특정 형태로 저장하였다가 나중에 재생 또는 재구성하는 현상을 기억이라 한다.

우리는 과거의 경험을 조합해서 새로운 기억을 만들어 내기도 하고 어떤 바램이나 기대에 따라 실제와는 다른 기억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우리들의 기억이 얼마나 자주 실수를 하고 부정확한지를 모르고 대다수의 사람들은 우리가 경험한 사건을 정확히 저장하고 재생산한다고 믿고 있다. 대부분의 기억들은 경험한 사건과 똑 같은 형태로 복제하지 못하고 사실과 유사하게 복원되는 경우가 많다. 기억들이 애매모호하게 서로 섞여 있다가 그 사람의 감정이 섞인 두려움, 기쁨, 사랑, 분노, 슬픔 등의 구체화된 사건들의 결과가 최종 기억으로 남게 된다.

  기억은 우리의 마음을 만드는데 풍부한 소재를 제공해주기도 한다. 기억이 없다면 우리의 마음은 아주 동물적이고 말초적인 단위의 단순한 생존행위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나 기억들 때문에 우리는 행복해지고, 기뻐하고, 고민하고, 때로는 괴로워하며, 창조하고, 발명을 한다. 인간의 모든 행위는, 기억력의 작용결과이므로 기억은 인지력의 근본이며 기억력이 작용하지 않는 지적 능력이나 지적행동은 있을 수 없다. 꽃이 아름답고, 사나운 동물들이 두렵고 무서운 것을 곧 알아보는 것은 기억력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들이 말하는 행위도 언어에 대한 기억력이 작용하는 것이며 자동차 운전을 할 때는 운동기능에 대한 기억력이 작용하는 것이다. 우리는 기억을 우리 자신의 의지에 달렸다고 생각하여 지울 수도 있고, 의식 속으로 들어 오지 않은 것처럼도 살 수 있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삶의 질을 향상시키려면 기억의 역할과 활용할 수 있는 최상의 방법이 무엇인지를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기억이 없는 삶이란 있을 수 없다. 기억은 우리를 인간답게 만든다. 기억은 우리의 일관성, 동기, 느낌, 행동자체이다. 기억은 한편, 우리를 끊임없이 실망시키기도 한다. 몇 십 년 전 사건은 선명하게 기억하기도 하지만 어제 아침에 무엇을 했는지를 기억 못할 때가 있다. 컴퓨터의 기억이 정확한 이유는 저장된 정보가 거대한 지도처럼 프로그램이 구성되어 있고 데이터뱅크에 있는 모든 항목은 고유한 위치, 주소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인간의 기억은 한 조각의 정보가 정확히 어디에 저장되어 있는지 모르고 있다. 우리 인간의 기억은 컴퓨터 기억과는 전혀 다른 논리에 따라 진화해 왔다. 고유한 위치, 주소가 있는 데이터뱅크가 없는 대신에 우리는 일종의 맥락기억(contextual memory)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어떤 것을 기억 속에서 끄집어 내기 위해서 우리가 찾는 것이 무엇인지를 넌지시 알려주는 맥락이나 단서를 이용한다. 무슨 일이든지 잘 풀려갈 때는 필요한 정보가 머릿속에!”떠오른다.

무엇이 머릿속에 가장 쉽게 떠오르는가는 맥락에 따라 좌우 될 때가 많다. 맥락은 우리의 기억에 가장 강력한 단서들 가운데 하나다. 맥락에 의한 기억은 컴퓨터처럼 모든 기억을 똑같이 취급하는 능력과는 다르게 기억에 대한 우선순위를 매긴다. 자주 일어나는 것, 최근에 일어났던 일들, 가장 인상적인 사건 같은 가장 유용한 가능성이 큰 정보를 가장 빨리 머릿속으로 불러내준다. 모든 단서가 기억의 향상에 도움이 될 뿐 아니라 새로운 기억술을 개발할 수 있는 가능성도 많이 가지고 있다.

 

흔히머리가 좋다는 말은 기억력이 비상한 것을 두고 하는 소리다. 아직 우리는 학교교육이나 취직시험에서 기억력의 경쟁으로 우열을 판가름 하려 하고 있다. 이제 기억력은 컴퓨터 같은 기계에 맡기면 된다. 사람들은 자기의 기억을 상실한 사실에는 불만을 가지지만 판단력 결여에 대해선 불만을 품지 않는다. 일상에서 우리는 어떤 사람은 기억력이 좋고 어떤 사람은 기억력이 나쁘다고 한다. 기억은 일원적 현상이 아니기 때문에 얼굴과 사람이름을 잘 연결하는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음악 연주를 위한 악보 암기는 맹탕인 경우도 있고 한번 읽은 것은 모두 기억하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 골프스윙을 배우는 운동기억을 전혀 못하는 사람도 있다.

  역사학자 토인비는 말했다. 역사적 성공의 반은 죽을 지도 모를 위기에서 비롯되었고. 역사적 실패의 반은 찬란했던 시절에 대한기억에서 비롯되었다.”

옛 찬란한 기억들 때문에 역사의 반이 실패했다는 말이다. 옛 성공의 향수에 젖어 앞으로의 역사발전을 등한시했고 옛날 방식을 답습함으로써 새로운 역사 발전을 등한시 했다는 뜻이다. 옛날 것들에 대한 기억으로 어떤 선입견에 젖으면 새로운 방식을 만들어 내는 개혁적 사고에 지장이 생긴다. 새로운 네트워크를 만드는데 실패했다는 뜻이고, 창의성이 부족했다는 말이다.

과거의 경험을 세세한 부분까지 전부 기억한다면 우리는 정보의 과부화에 걸려 제대로 기능하지 못할 것이다. 마음을 평온하게 가지려면 불쾌한 기억들은 머릿속에 불러들이지 말 것이다. 시궁창이 있는 곳을 피해 가듯이 불쾌한 기억을 피해 가야 한다. 사람은 언제나 불행한 것이 아니라 불쾌하고 슬픈 기억 때문에 불행한 것이다. 그러한 기억에서 떠난다면 오늘 이 하루가 그런대로 즐거울 것이다. 기억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생각을 바꾸라는 것이다. 그러나 기억을 버리면 새로운 세계가 보인다. 이제 불필요한 기억일랑 놓아버리자!

 

 

 

글: 최상묵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덴틴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