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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묵 칼럼

의술은 테크닉이 아니다

[최상묵의 NON TROPPO]-<28>

 

 

의술에서 다루고 있는 기술을 그리스말로 테크네라 부른다. 원래 테크네라는 말은 어떤 물체를 만드는데 필요한 능력을 구성하는 지식을 말하며, 물체를 제작하는 영역에서 처음 사용해온 용어였다. 의술에서 말하는 테크네는 응용기술이나 과학에서 말하는 테크닉과는 달리 해석해야 한다. 의술에서 테크네는 모든 사물에 대한 자유로운 탐구를 말하며 문화나 역사정신을 포함하는 모든 것에 대한 탐구의 근거를 찾는 독특한 창조적 행위를 의미한다.

일찍이 서구문명에서 이 테크네의 개념을 의학에 적용했다는 뜻은 곧 의사는 특별한 능력이나 신비로운 치료사의 모습이 아니라 지혜로운 지식을 갖춘 인간으로서의 인식을 강조한 개념으로 받아들이고 있었음이다.

의술이란 존재하지 않는 어떤 것을 도구를 써서 제작함으로써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기술이 아니라는 뜻이다. 의술에서는 기술을 가지고 새로운 형태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재료 같은 게 존재하지 않는다. 의술자체는 아무것도 만들어 내지 않으며 무엇을 만들만한 소재도 없는 특별한 행위일 뿐이다. 의술에서의 제작능력이란 재생이나 회복을 기대하는 능력이며 이것만이 의학의 본질이라 할 수 있다.

질병이란 자연에 대한 신체의 평형상태의 교란에 의해서 일어나거나 평형상태를 거스르게 되는 어떤 요인에 의해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이때 의사가 할일 이란 어떤 것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단지 평형유지를 돕는 요인들을 뒷받침해주는 일 일뿐이다. 이 행위가 바로 진정한 의학의 제작품이다. 의술의 완성된 걸작품을 만들어내는 장인적인 기술 정복과는 전혀 다르며 어떻게 하면 평형을 계속 유지시킬 것인가를 생각하고 그 평형을 자연적인 과정과 잘 조화시킬 것인가에 관심을 쏟을 뿐이다.

현대의학은 삶의 경험보다는 무엇인가를 생산화하고 제작하는 일에만 몰두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의학이 지나치게 과학적인 사유 속에서 저절로 만들어 지는 것 보다는 무엇인가 인공적으로 만들어 내려는 역학적인 개념에 더 가치를 두고 있다는 데 문제가 있는 것이다.

요즈음 우리의사들이 겪는 갈등은 의사가 인간적인 것을 소홀히 하고 단순히 직업적으로서 행동하는 것과 인간성을 부각시켜야 하는 두 가지 갈래 길에서 서성거리게 된다. 의사가 환자로부터 존경과 신뢰를 얻어야 하는 동시에 직업적인 권위와 영향력을 행사하고 싶은 충동으로 겪게 되는 갈등이다.

의사자신이 행하는 의학적 행위와 그것이 환자에게 미칠 수 있는 영향에 대해 항상 깊이 생각해야 하며 의사는 환자로 하여금 지나치게 의사에 의존하도록 해서도 안되며 삶의 평형을 찾는데 방해가 될 것이라 생각하는 어떤 치료나 처방에 인색할 정도로 절제가 필요하다.

인간의 노력을 덜어주고 살기 편하게 해 준다는 그 훌륭한 과학기술이 어째서 그토록 우리에게 행복을 가져다주지 못하고 있는가? 그 해답은 우리는 아직도 그것을 분별 있게 이용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학기술은 사물을 조직적으로 관찰하는 가장 치밀한 방법이긴 하지만 우리에게 궁극적인 의미에서 사물의 본질에 관해서는 한마디도 말하지 않고, 또 못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의술에 있어서도 과학기술의 적용도 그 예외가 될 수 없음이다.

 

 

 

 

 

 

글: 최상묵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덴틴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