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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창인의 밥집 이야기

가을의 호사 - 송이와 능이

[석창인의 밥집 이야기]- <44>

 

스마트폰이나 각종 전자제품을 출시되자마자 남보다 먼저 사서 써보는 사람들을 얼리 어댑터라고 하던가요? 대체로 그런 사람들은 성격이 조급하거나 강박적이어서 빨리 써보지 않고는 못 배기는 스타일인 사람들로 추정됩니다.

우리 국민성마저도 얼리 어댑터들과 흡사한 점이 많아서 세계적 전자회사들이나 자동차 회사들도 우리나라를 테스트 마켓으로는 최고라 여긴다고 하던가요? 일단 한국 시장에 신제품을 뿌려서 소비자들의 반응을 보기도 하고, 각종 사용 후기를 통해 제품의 결함을 보완하고.... 하지만 소비자 입장에서는 너무 빨리 사는 바람에 완성도가 떨어지는 물건을 제일 비싼 값에 산다는 점이 문제겠지요.

스마트폰 뿐만 아니라 새로운 모델의 차량이 나오면 대략 6개월 정도 지나야 결정적 결함이 드러나기 마련인지라 조금 여유를 갖고 구입을 하는 것이 좋은데, 남보다 앞서 구입하고픈 열망 때문에 종국에는 끊임없이 A/S 센터를 들락거리고야 맙니다.

어디 이 것 뿐이겠습니까? 디지털 카메라, 신형 노트북, 대형 디지털 TV 등등... 가격 떨어질 때를 기다리다 보면, 어느새 구형 모델로 전락해 있고, 그렇다고 출시되자마자 사자니 바가지 가격을 쓸 것이라 두렵습니다.

여담이지만, 작고한 개그맨 김형곤이 우스갯소리로 9.11 테러 때 부지런한 사람만 희생을 당했다더군요. 그러니까 부지런한 새(얼리 버드)가 먹이를 많이 얻는다는 교훈 때문에 출근시간보다 30분 이상 먼저 사무실에 간 사람들은 테러의 희생양이 되었고, 9시 땡 소리와 함께 입실한 게으른 사람들만 살았다는 웃을 수도 울을 수도 없는 그런 이야기 말입니다. (9.11은 미국시간으로 아침 840분 정도에 일어났습니다.)

저는 일반 생활용품에 대해서는 레이트리 어댑터에 속합니다. 천성이 게을러서이죠. 그러나 딱 한 분야! 먹는 데만큼은 '베리 얼리 어댑터'에 속합니다. 일종의 식탐이랄까요?

 

오늘의 이야기는 송이버섯입니다! 송이는 아시다시피 채집하는 양과 시기에 따라 가격이 결정되지요.

 

늦여름에 비가 많이 오느냐 혹은 태풍 같은 바람이 많이 불어 포자가 널리 퍼졌느냐 등에 따라 송이가 풍년이네 혹은 흉년이네 결정이 되는데, 매년 가격이 워낙 들쭉날쭉이어서 용한 점쟁이라 할지라도 송이값 예측은 불가능합니다. 대략 특A 상등품을 70~80만 원정도로 기준 잡으면, 흉년인 해는 추석 전후로 150만원까지 치솟고, 풍년이면 20~30만 원 선에서 구입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마다 심리적 가격 저항선이라는 것이 있기 마련입니다. 미식에 대한 열정과 더불어 개인의 경제력 등을 고려할 때, 저의 송이 마지노선은 50만원 아래입니다. 이를 넘어갈 때는 일반 식당에서 맛보기나 요리의 꾸미로 나올 때만 구경을 할 뿐이지요. 그런데 어느 해인가 명절을 앞두고 산지에서 50만원 전후라 하여 큰마음 먹고 1 킬로그램을 샀는데, 사자마자 그 다음 날 절반 값으로 떨어져 명절 내내 눈물 젖은 송이를 먹어야 했습니다. 이 또한 식도락판 얼리 어댑터의 비애겠지요.

이번은 능이버섯 이야기입니다.

순위(등수) 정하기, 니편 내편 가르기... 이런 방면으로 국가 대항전이 있다면 단연코 우리나라가 금메달감일 겁니다. 편 가르기의 경우만 해도 그렇습니다. 최근의 여러 정치적, 사회적 사건들도 각자의 진영에서만 바라보기 때문에 중도적 입장을 취하거나 양비론 혹은 양시론 입장을 취하는 사람들이 드뭅니다. 예전 이청준의 '소문의 벽'이라는 소설에 나왔던 '전짓불의 공포'처럼 어느 한 쪽에 서지 않으면 양 쪽으로부터 따돌림 내지는 협박을 받는 것이 현실인지라 경험칙에서 우러나온 자연스런 생존법처럼 되었습니다.

 

일상에서도 등수 정하기 버릇은 도처에서 확인됩니다.

일엽, 이도, 삼첩(一獵, 二賭, 三妾)이라는 말을 들어보셨나요? 예로부터 회자되던 사내들의 놀이(?) 중에 제일 재미있는 걸 순서대로 적은 것입니다. 그러니까 첩질이 세 번째요, 도박이 두 번째고, 으뜸은 사냥이라는 것입니다. 헌데 요즘은 사냥하기가 수월치 않습니다. 그래서 사냥 대신에 들판에서 하는 골프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고 봅니다. 또한 첩질 역시 패가망신의 지름길이 된 세상이니 만큼 역사책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단어가 되었지요. 그런데 그 세 가지를 다 합친 놀이가 있다면 그야말로 금상첨화가 아닐까요? 가령, 애인이랑 돈내기 골프를 치는 놀이 말입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버섯에도 과연 순서가 있을까요? 당연히 있습니다. 흔히들 이야기하는 일 능이, 이 표고, 삼 송이가 그것입니다. (혹자에 따라서 표고 대신에 석이버섯을 이야기 하는 사람도 있긴 합니다만)

그러나 가격은 송이가 가장 비쌉니다. 능이와 송이는 인공재배가 아직 불가능하기에 표고에 비하여 비싸고, 일본 친구들이 송이를 워낙 숭배하는 바람에 능이와 송이는 위치가 바뀐 느낌입니다. 그러나 향이 강하기로는 능이가 으뜸입니다. 그것도 송이처럼 은은한 향이 아니라 아주 강렬한 향입니다. 흐르는 수돗물에 능이를 한번 씻었는데, 손에 능이 향이 배여 하루 종일 냄새가 날 정도입니다. 그 옛날 치과재료로 많이 쓰던 유진올 냄새나 FC 냄새와 비슷할 정도로 강하더군요. 하지만 능이는 모양새가 좀 그로테스크합니다. 송이는 남자 거시기를 닮아서 유감주술로도 뭔가 있어 보이는데, 능이는 께름칙할 정도입니다. 색도 지나치게 어두워서 백숙에 넣으면 고기의 색이 변할 정도이니까요.

심마니가 주업이고 카인테리어가 부업인 친구가 뭔 상자를 하나 던져주고 갔습니다. 무얼까 궁금해서 원장실로 가져가 열었더니 향이 코를 찌릅니다. 처음엔 갓이 다 핀 송이버섯이겠거니 했는데 자세히 보니 능이버섯입니다. 요걸 어찌해서 먹을까 고민을 하다가 고기 구울 때 같이 구워보기로 했습니다. 된장찌개와 명란젓찌개에도 넣어보기로 했죠.

능이는 생으로 먹으면 독소가 있어서 탈이 납니다. 그래서 살짝 데쳐서 먹으라는군요.

 

가을이 점차 깊어갑니다. 송이와 능이 그리고 전어를 놓치고 이 가을을 떠나보내는 것은 작은 사치 한번 누려보지 못하는 드라이한 치과의사의 삶은 아닌지요?

 

하얀 이불 호청 속에 누가 누워있을까요?

 

가을의 진미 송이로군요.

 

일단 캔맥주와 소금을 준비하고, 송이를 잘 씻어 찢어 먹어야죠.

  

생으로 먹는 것도 좋지만, 얇게 슬라이스 해서 팬에 구워 먹어도 향이 제법입니다.

 

밥을 할 때 송이버섯 두 개를 썰어 넣어 송이밥을 만든 뒤에, 미리 삶아둔 콩나물과 양념장을 넣은 뒤에 비비면 콩나물 송이비빔밥이 완성됩니다.

 

송이가 그래도 남는다면 이제 호사 중의 호사인 송이라면을 시도해봐야죠.

 

라면 스프의 강렬한 맛도 송이 향을 이기지 못합니다.

 

 신문지에 싸여 있는 버섯 사진

 

친구가 던져주고 간 박스 안을 펼쳐보니, 능이와 갓이 핀 송이 그리고 노루궁둥이 버섯이 있군요.

 

일단 씻어서 펼쳐 봅니다.

능이 표면이 마치 곰보자국 같습니다.

 

명란젓 찌개에도 능이를 좀 넣어봤습니다. 향이 죽입니다.

 


글: 석창인

에스엔유치과병원 대표원장

음식 칼럼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