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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창인의 밥집 이야기

국가대표 정육점 식당 - 안양 남부정육점

[석창인의 밥집 이야기]- <39>


안양(安養)은 대도시임에도 불구하고 그에 어울리는 대우를 제대로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니까 위로는 수도 서울에 치이고 밑으로는 경기도청이 있는 수원으로부터 협공을 당한 까닭에 덩치만 어른이었지, 도시 규모에 따르는 공공기관, 교육기관 혹은 문화시설 등이 미흡했던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하여, 예전에는 명문 고등학교가 생길 여건이 되질 못했는데, 공부를 조금 한다 싶으면 어려서부터 서울로 전학을 가거나 아니면 시험제였던 수원으로 진학을 하곤 했기 때문이었죠. 제가 고등학교에 다닐 때, 한 학급 65명 중에 무려 20여 명이 안양 출신이었던 걸로 기억이 나는군요. 그러다가 겨우 십여 년 전, 서울과 수원이 평준화가 되고나서야 안양에도 명문 고등학교들이 생겨났습니다만, 요즘은 다시 특목고나 안산지역의 자율형사립고등학교로 진학을 한다고 하네요.


원래 '안양'이라는 말은 마음을 편안히 하고 몸을 쉬게 한다는 뜻도 있지만, 아미타불이 살고 있는 정토인 '극락'을 의미하는 불교 용어입니다. 그래서인가요? 수십 년 전, 관악산 유원지에서 생긴 물난리 이외에는 별다른 재해도 없었고, 역사적으로 기록이 될 만한 사건이 발생한 적도 별로 없는 무척 안전한 곳입니다. 정조대왕이 수원화성 행차를 할 때, 안양 만안교를 건너갔다는 기록이 제가 아는 유일한 역사적 기록입니다. 헌데, 가까운 과천 쪽 길을 피해 굳이 안양을 거쳐 내려온 까닭은 아버지 사도세자의 죽음에 일조를 했던 사람의 묘소가 과천 인근에 있었기 때문이라는군요.

안양 외곽의 평촌 신도시 같은 새로운 주거 단지가 만들어지기 전까지는 안양역 주변인 '안양 1번가'는 서울로 치면 종로나 명동이고, 수원으로 치면 팔달로 역할을 했던 중심 지역이었습니다. 물론 지금도 꽤 흥청이긴 하지만, 죄다 중학생이거나 고등학생들입니다. 이렇게 번화한 지역이었으니 예로부터 자연스럽게 시장이 형성되었고, 또 숙박시설을 포함한 유곽들도 제법 생겨났을 겁니다.


안양을 대표하는 식당인 '정호식당'과 '남부정육점 식당'도 그렇게 그곳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식도락가 입장에서 굳이 불리한 점을 꼽으라면 애써 안양까지 왔는데 두 식당을 같이 섭렵하기엔 너무나 가까이 붙어 있어서 미처 소화를 시키지도 못하고 또 옆집을 가야 한다는 점입니다. 하여, 저희 대학 동기들은 먼저 정호식당에서 가볍게 해물탕으로 위장을 워밍업하고, 안양 1번가에서 커피를 마시며 수다를 떨었습니다. 중늙은이 다섯이 안양 시내를 활보하니 마치 교육청 장학사가 청소년 지도를 나온 모양새가 되어 카페 주인들이나 학생들이 눈치를 흘끔 흘끔 보기까지 합니다.


사실 수다만큼 에너지가 많이 소모되는 일도 없습니다. 포만감이 줄어들자마자 부리나케 남부정육점으로 갔습니다. 혹시라도 실기하여 붐비는 식사시간에 갔다간 하염없이 자리 나기를 기다려야 하거든요. 공략하기 가장 좋은 피크 타임은 오후 3시에서 5시 사이인데, 이때는 줄을 서지 않아도 되는 무혈입성 시간입니다.


그런데 전국의 유명한 정육점 식당들은 공통점이 있습니다.

식탁은 대개 드럼통 개조한 것 아니면 정식 식탁이라 하더라도 죄다 찌그러지고, 표면이 벗겨지고 또 모서리가 깨진 상태라는 것, 바닥엔 온갖 쓰레기와 소주 뚜껑들 천지이고, 붐비는 손님들 등짝 사이로 불판과 반찬을 들고 쉴 새 없이 날라 다니는 무표정한 종업원들, 오래 앉아 있는 손님들에게 끊임없이 눈치를 주는 카운터의 사장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낮술에 불콰하여, 이를 쑤시고 나오면 바깥엔 이미 대기 손님만 수십 명입니다.

잘 되는 식당은 망하기가 참 어렵습니다.


 간판에서부터 우러나오는 범접하기 힘든 아우라~~!


밑반찬들은 그저 그렇죠. 적어도 정육점식당이라면 고기로 승부해야지 밑반찬으로 승부하는 곳이 아닙니다.


무한 리필되는 선지국입니다만, 숟가락이 세 개나 있으니까 3인용이군요. 귀하의 타액이 제 타액이 되는 그런 시스템입니다.


일단 무쇠철판을 달굽니다. 다음에 두태지(소의 콩팥을 둘러싼 기름) 같은 기름을 두르고 흰 연기가 솟아오르면 고기를 올립니다.


고기의 컬러가 좋지요? 한우 암소만 취급한다고 쓰여 있습니다.


이 정도면 육회로 그냥 집어 먹어도 되겠어요.


아쉬운 마음에 차돌박이를 또 시켰습니다. 두툼하게 썰어주는 게 마음에 쏙 듭니다. 차돌도 두터워야 씹는 맛이 나거든요.


남부정육점에서 바라본 골목길 풍경입니다. 여인숙이 이렇게 많을 줄 몰랐습니다. 다 과거의 빛바랜 영광이지요.



 

 


글: 석창인

에스엔유치과병원 대표원장

음식 칼럼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