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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창인의 밥집 이야기

대만 국립고궁박물관에서의 점심

[석창인의 밥집 이야기]- <38>

고백하자면, 우리나라 국립중앙박물관에 갔던 횟수보다 대만의 국립고궁박물관을 더 많이 찾았던 것 같습니다지금은 서울 용산에 멋들어지게 박물관이 들어섰지만, 과거엔 우리나라의 귀한 국보와 보물들이 제 자리를 잡지 못하는 바람에 십 수 년 동안 일부는 전시되고 나머지는 수장고에서 이리저리 홀대를 받았습니다. 과거 경복궁 옆 국립박물관은 이제 민속박물관이 되었다지요? 그나마도 학생 때는 박물관 관람보다는 정원에 있던 찻집에서의 미팅만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타이베이의 고궁박물관을 그리도 찾았던 이유가 특별히 중국의 역사나 유물에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고, 타이베이에서 낮 시간을 보낼 곳이 마땅찮아서입니다. 예전 같으면 골프나 치고 발 마사지도 받았으련만 이젠 모든 게 귀찮습니다.

저 같은 어리버리관광객을 위한 고궁박물관을 제대로 관람하는 팁은 다음과 같습니다.

일단 1층 입구로 들어가(진짜 유물에 관심이 있으면 한국어 오디오 서비스를 제공 받으세요), 전체 중국역사를 요약해 놓은 방에 들릅니다. 이곳에서 대강의 중국사연대기를 확인하는 것이죠. 그리고는 뒤 쪽 화장실로 가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맨 꼭대기 4층까지 가는 겁니다. 그런데 4층은 전시장이 아니라 찻집입니다. 대다수 관광객들은 이게 뭐야 하는 뜬금없다는 표정이지만, 이곳은 중국의 유명한 전통 서재를 본 따서 만들었다는 유서 깊은 찻집입니다. 이곳에서 커피도 좋고 차도 좋고 폼 나게 한잔 마십니다. 물론 군것질거리도 팔지요.

그리고는 계단을 이용해서 3층으로 내려와야죠. 3층은 고궁박물관의 핵심이자 앙꼬인 공예품 전시실입니다. 중국 사람들의 놀라운 손기술을 이곳에서 확인할 수가 있는데, 관광객들도 이곳에만 주로 몰리기 때문에 평일임에도 길게 줄을 서야 간신히 하나씩 볼 수 있습니다. 2층과 나머지 1층은 우리가 봐도 이게 훌륭한 유물인지 아닌지 도저히 알 수가 없는 유물들입니다.

고궁박물관을 찾는 사람들의 대다수는 당연히 중국 사람들입니다. 다음이 일본 사람 그리고 한국 사람들과 서양인들이죠. 그런데 제가 중국말을 모르기 때문에 이 사람들이 대만 사람인지 아니면 중국본토 사람들인지 구별이 가지 않습니다만, 대충의 옷차림과 소란스러움 정도를 보고 구분을 합니다. 이런 기준으로 보면 의외로 본토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왜 본토 사람들이 이리도 많이 몰릴까요?

 

고궁박물관의 유물들은 전부 북경 자금성 안에 있던 보물들입니다. 장구한 중국 역사의 엑기스들이란 말이죠. 이 유물들은 예전 일본의 침략을 시작으로 국공내전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대장정 못지않은 험난한 피난길에 오릅니다. 드넓은 중국 땅을 허름한 궤짝에 넣어져 마차에 실려 이리저리 옮겨 다녔던 것입니다. 물론 유물 이동에 관한 지휘부는 국민당의 장개석 정부이구요. 마지막으로 충칭에서 상하이로 옮긴 뒤, 공산당에 패색이 짙어지자 장개석은 대만으로 철수를 명령합니다. 군인과 물자를 실어야 할 배에 그들 대신 이 보물들을 실었던 것입니다. 대만에 와서도 처음부터 타이베이에 있었던 것이 아니고 한참 지난 후 옛 고궁박물관을 건립하고야 겨우 유물들이 전시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한편으로 중국 모택동과 그 이후 집권자들 입장에서는 장개석이 자금성에서 약탈해간 유물이니 당연히 전쟁을 일으켜서라도 반환을 받아야겠지만, 중국이 또 어떤 민족입니까? 그야말로 만만디민족이지요. 흑묘백묘 이론처럼 유물이 어디에서 있건 간에 중국 사람들이 온전하게 가지고 있으면 된다고 보는 것은 아닐까요? 언젠가는 다시 자금성 제 자리에 올 수 있다고 보는 것은 아닐까요? 그러나 유한한 수명을 가진 본토 사람들은 죽기 전에 그 보물이 보고 싶어 끊임없이 타이베이를 찾는 것은 아닐까요?

그런 상황을 유추해보면 우리나라 국립박물관도 자주 못가는 제가 부끄럽기도 하고, 또 한편으론 중국 사람들의 만만디 애국심이 부럽기도 합디다.

국립고궁박물관 옆에는 번듯하게 세워진 고급연회장 건물이 있습니다. 결혼식 피로연도 열리는 걸 봐서는 상당한 고급 레스토랑입니다. 소격동 국립현대미술관 안에도 카페가 생겼다는데, 이곳은 먹는 일에 목숨을 거는 중국 사람들답게 그 규모가 상당합니다. 이번 고궁박물관 나들이도 가고 싶어서 간 것이 아니라 대만 친구가 점심 예약을 이곳에 해두었기 때문에 또 박물관의 유물을 봐야 했습니다.

 

    박물관의 지붕 색깔이 독특하죠? 당삼채 스타일 같기도 하고요.

 

   박물관 옆 레스토랑은 웨딩 포토 찍는 장소로도 유명하더군요.

 

 아스파라거스 요리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비슷합니다. 서양에 비해 기름을 너무 많이 넣었어요.

 

  돼지고기 찜입니다. 동파육 스타일이죠. 그런데 고궁박물관의 핵심보물인 육형석(肉形石)과도 닮았습니다. 위의 요리보다 돈을 조금 더 내면 진짜 육형석 모양의 돼지고기도 나옵니다.

 

  샤오룽바오도 빠뜨릴 수는 없지요.

 

고궁박물관의 최고 인기 보물 중에 하나인 비취배추를 본 딴 요리입니다. 여치 대신에 새우를 올렸군요.

 

 오리지널 비취배추입니다.

 

스프를 담아온 그릇도 고궁박물관의 유물을 흉내낸 것입니다.

 

 해장용으로 따끈한 국물의 면도 빠뜨릴 수는 없지요.

 

   마무리는 볶음밥입니다. 역시나 볶음밥엔 폴폴 날리는 안남미가 제격입니다.

 

 

 

글: 석창인

에스엔유치과병원 대표원장

음식 칼럼리스트